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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로맨스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100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0.29 09:00
조회
646
추천
3
글자
11쪽

대학교 -3-

DUMMY

“누나, 오늘은 조금 늦었네요.”


바로 앞 시간의 중원이가 익살맞은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과하게 올리면서 말했다.


“말도 마. 버스 정류장에서 싸움 나서 거기에 휘말리고 오는 길이다.”


뱉어내듯 한 말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걸 눈치챘을 때는 이미 대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예? 싸움이요? 어디 안 다쳤어요?”

“난 괜찮아. 싸운 놈들만 경찰에게 밉보였지.”

“그래도 경찰이 와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싸웠대요?”


나는 카운터 뒤로 들어가며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한 놈이 정류장에서 담배를 폈거든. 그래서 술 취한 놈이 왜 담배 피냐고 화내면서 시작.” 나는 편의점 앞치마를 메면서 “너는 그러지 마라.”

“어떤 거요? 담배? 아니면 술?”

“웬만하면 둘 다 안 하는 게 좋지만 지금은 담배 쪽으로 기우네.”


중원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한국에서 술 담배 안 하면 어떻게 살아요.”


나는 넉살 좋게 말하는 그 놈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난 잘살고 있어.”

“누나는 여자니까 그렇죠. 남자는 안 그래요.”

“네 말대로라면 남자들은 모두 술담배 해야겠네?”


말이 막혔는지 중원이는 겸연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빠르게 정산작업을 완료하고 교대했다.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가 내가 맡은 시간이었다.


“그럼 누나 수고하세요.”

“오냐, 밤길 조심하고.”


중원이가 문을 열고 나가면서 새소리를 흉내 낸 전자음이 잠시 울렸다. 그 사이 나는 가방에서 책과 공책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렸다.


잠을 줄이면서까지 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첫째, 자취방 근처여서 출퇴근이 비교적 편했다. 두 번째, 번화가가 비해 손님이 비교적으로 적어 야간 시간대에 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세 번째, 그럼에도 시급이 괜찮은 편이다. 따지고 보면 최저 시급보다 조금 더 많은 정도지만 요즘 편의점에서는 이마저도 챙겨주지 않는 곳이 많았다. 사장님도 좋은 분이라서 나는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어서 오세요.”

“할인카드 있으신가요?”

“잔돈 320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편의점에 들른 손님은 모두 8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펜을 공책 위에 올려놓고 잠시 기지개를 켰다. 아무리 버스에서 30분 정도 잤어도 역시 이때쯤 되면 피곤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음료수가 들어있는 냉장고로 걸어가 에너지 드링크를 한 병을 꺼내왔다. 그리고 손님이 살 때와 똑같이 계산하고 포스기에 돈을 집어넣은 다음 뚜껑을 까서 한 모금 마셨다. 탄산음료도 약도 아닌 애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가 사라지면서 정신이 돌아왔다.


다시 과제로 돌아가려는 찰나, 새소리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반사적으로 에너지 드링크 뚜껑을 다시 닫으면서 인사를 하던 손님을 보고 속으로 살짝 놀랐다. 손님은 모자를 푹 눌러쓴 것도 모자라 커다란 흰색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반 이상 가리고 있었다. 취객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불길한 예감이 들려는 찰나였다.


“가만히 있어!”


주머니에서 과도를 꺼내면서 남자가 소리쳤다. 과도, 말 그대로 과일을 자를 때 쓰는, 플라스틱 손잡이가 새빨간 평범한 과도였다. 그것이 바로 코앞에 들이닥치니 그 무엇보다 위험한 흉기가 됐다.


나쁜 일은 항상 한꺼번에 터진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교하면 버스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은 새 발의 피였다.


나는 남자가 말한 대로 손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척하면서 왼쪽 다리를 들어 무릎 끝으로 비상 버튼을 누르려고 애썼다. 하지만 다리 하나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균형을 잡는 게 생각보다 힘들어서 버튼을 누르는 게 어려웠다.


“호, 혹시 다, 다른 손님이 있나?”


남자가 편의점 안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릴 때 버튼을 누르는 데 성공했다. 나는 재빠르게, 그러면서 소리가 나지 않게 다리를 다시 바닥으로 내렸다.


그 순간 남자가 소리쳤다.


“다른 손님이 있냐고!”

“어, 없어요.”

“좋아. 그럼 기계 열고 돈 꺼내. 어서!”


비상 버튼을 누른지 얼마나 지났을까? 1분? 아니면 30초?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경찰이 도착하길 바라면서 가장 가까운 포스기를 열었다. 우리 편의점에서는 두 개의 포스기를 사용했는데 지금 내가 연 것은 잔돈 용으로 쓰는 물건이었다. 실제 대부분 현금은 안쪽 포스기에 있었다.


나는 강도가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이 없기를 바라면서 돈을 꺼냈다.


강도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이게 전부야?”

“이, 이게 전부예요!”


강도는 여전히 과도로 나를 겨누면서 고개를 숙여 카운터 위의 현금을 바라봤다. 아마도 돈을 세는 듯했다. 전부 합해 10만 원이 겨우 되는 푼돈이었다.


강도가 고개를 다시 들면서 말했다.


“가게 매출이 이것밖에 안 돼?”

“이런 골목에 편의점이 장사가 얼마나 잘 되겠어요? 오늘도 이 시간까지 손님이 열 명도 안 왔다고요!”

“쉬잇! 목소리 낮춰!”


강도는 편의점 문밖을 확인하더니 왼손으로 카운터 위에 올려놓은 돈을 허겁지겁 주머니에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시간을 재고 있었다. 거의 5분이 다 된 것 같은데 이놈의 경찰은 왜 안 오는 거지? 설마 지난번처럼 오인 신고로 착각하고 오지 않는 건 아닐까? 만약 올 때 사이렌을 요란하게 켜서 강도가 나를 잡고 인질극을 벌이면 어떡하지?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속을 스쳐 지나가는 사이, 강도는 지폐에 이어 동전을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바닥에 놓인 동전을 한 손으로 챙기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강도는 몇 번이나 돈을 잡으려다 짜증이 났는지 잡히는 것만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머지 것들은 포기했다.


“정말 이게 다야?”

“네, 네.”


강도는 이를 악물더니 카운터 위에 진열되어 있던 껌을 한 움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주변을 살피더니 과도로 내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담배도 이리 가져와.”

“다, 담배요? 어떤 걸로…….”

“손에 잡히는 걸로 전부!”


강도가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앞으로 들이댔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과도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아악!”


나는 비명을 질렀다. 손바닥에서 불이 붙은 것 같은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강도가 당황해서 뒷걸음치는 동안 왼손을 살펴봤다. 손바닥 한가운데가 칼에 깊게 찔려 피가 나고 있었다.


“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강도가 소리칠 때 문밖에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을 참으면서 그쪽을 바라보니 경찰이 서둘러 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 정류장에서의 일 때문에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가 한창 오른 상태였기 때문인지 마음이 놓이며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이어 강도를 바라봤다. 아마도 내 표정은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강도의 유일하게 드러난 두 눈은 공포와 당황으로 떨리고 있었다.


경찰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강도를 향해 권총을 겨눴다.


“칼 버려! 이 자식아!”


경찰의 외침에 강도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들고 있던 과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즉시 뒤쪽에 있던 경찰이 강도에게 다가가 바닥에 눕히고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에 아픔도 잊고 지켜봤다.






송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우와, 그래서 어떻게 됐어?”


나는 붕대를 감은 왼손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응급실가서 치료받았어. 별로 큰 상처가 아니라 소독하고 약 바른 게 다긴 했지만.”

“강도는? 어떤 놈이었는데?”

“몰라. 굳이 봐야 할 이유가 없어서 잡혀간 이후로 안 봤어.”

“경찰서도 갔어야 했겠다.”

“맞아. 조서 쓰고 편의점에 돌아오니까 아침이더라. 사장님이 큰일 당했다고 바로 퇴근하라 해서 집에서 자다가 학교 온 거야.”


그때 나이 지긋한 교수님께서 매서운 눈빛으로 우리 쪽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거기 여학생들. 수다는 강의가 끝난 다음에 하는 게 어떤가?”


지적과 동시에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혔지만 송아는 오히려 이걸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민지가 어젯밤에 큰일을 당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큰일? 무슨 큰일을 당했길래?”


송아는 고개를 젓는 나를 무시하고 냉큼 팔을 뻗더니 붕대를 감은 내 왼손을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민지가 어젯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강도를 당했다고 합니다.”


사방에서 감탄사가 울렸다. 부적절한 반응이라 생각했지만 일단은 들려진 왼손이 아팠기에 송아의 옆구리를 찔러 팔을 원상복귀 시켰다.


교수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건 정말 큰일인데. 손은 그때 다친 건가?”

“네, 그렇습니다.”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려있어 어쩔 수 없이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젯밤이라면 야간에 일하는 건가?” 교수님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찬 뒤 “여학생들은 되도록 밤에는 일하지 않는 게 좋지 않나? 내가 이런 말 한다고 남녀차별로 몰고 가지는 말도록. 아무래도 신체적인 조건이 다르니까 좀 더 범죄에 노출되어 있기에 하는 말이니까.”


강의실이 일순 조용해졌다. 하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도 부족한 학비와 월세의 압박만 아니었다면 밤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지 일을 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송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여자는 밤에 일하지 말라 이 말인가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친 송아에게 모인 시선은 실로 설명할 수 없는 갖가지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그중 당황의 감정을 드러낸 교수님이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내 말은 밤에 일하지 말라가 아니라 위험을 경계하란 뜻이지.”

“밤에는 일하지 않는 게 좋지 않냐는 말이 어떻게 그런 뜻이 되는 거죠?”


강의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누구도 감히 송아의 말을 비난하거나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내 강도 사건에서 갑작스레 남녀차별 문제로 주제를 바꾼 송아의 발언에 다들 경악하고 있으리라. 이 초유의 사태를 교수님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교수님은 주먹에 대고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내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했군. 그 부분은 사과하지.”

“감사합니다.”


송아가 다시 자리에 앉자 강의실이 잠시 시끄러워졌다. 나는 교수님이 학생들을 진정시키는 틈을 타서 말했다.


“대체 왜 그랬어?”

“열 받잖아. 네 사정 하나도 모르면서 저런 말을 막 하는 게.”


그 순간 머리 한 곳에서 종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나 때문에 그런 거였어?”


송아는 교수님에게 소리칠 때와는 다르게 배시시 웃기만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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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대학교 -9- 14.11.12 47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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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학교 -3- 14.10.10 61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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