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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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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112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0.08 09:00
조회
795
추천
6
글자
8쪽

중학교 -2-

DUMMY

학교의 급식실은 필요 이상으로 커서 학생들이 아무리 밀고 들어와도 꼭 비는 자리가 있었다. 햇빛이 잘 들어왔지만 구석이고, 다른 자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더러웠으며, 결정적으로 잔반통과의 거리가 가까웠기에 그랬다.


모두가 기피하는 그 자리를 사용하는 한 명이 바로 나였다. 애초에 혼자 식사하는 걸 선호하기도 했고, 다른 아이들과 식사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친해지면 안 됐기에 찾은 자리가 여기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잔반통에서 멀리 떨어진 창가에 앉아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자랑스러운 우리 학생들의 수다 소리에 귀가 멀 지경이지만 되도록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각각 두세 번 썼을 때였다.


“야, 김민지!”


목소리의 홍수 사이에서 유독 또렷하게 들리는 이름에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가 다시 식사로 돌아갔다. 최근 어느 기사를 본 적 있는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여자이름 중 하나에 영광스럽게도 김민지가 들어있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이 여자 중학교에 김민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비단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 맞은 자리에 식판이 놓였다.


“얘, 너 왜 내 말을 무시하니?”


고개를 들었더니 나에게 그림을 강요……아니, 부탁했던 단발머리의 그 애가 의자를 꺼내고 있었다. 게다가 좌우로 친구 한 명씩을 데리고 말이다.


내 기준으로 그 애 왼쪽의 양 갈래 머리를 한 애가 앉으며 말했다.


“이 학교 처음 입학한 날에 이 자리에는 절대 앉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러자 양 갈래 머리의 한쪽 어깨에 그 애가 손을 올렸다.


“친구야.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는단다.”


양 갈래 머리가 삐친 듯이 볼에 바람을 넣고 있을 때, 그 애 오른쪽에 앉은 똥머리가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안녕, 이마루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내 사고는 잠시 정지했다가 저 멀리에서 새치기로 일어난 작은 소란 덕분에 간신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내 앞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빠르게 파악했다. 그 애가 친구들을 데리고 내 앞에 앉아있었다. 이것이 사실이었다.


그 뒤에 숨겨진 내막을 알아내기 위해 나는 이마루라고 자신을 소개한 애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니?”

“응? 미연아. 미리 얘기된 거 아니었어?”


이마루가 그 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애의 이름은 미연이었나 보다. 두 번의 쉬는 시간 동안에도 알아내지 못했던 그 애의 이름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알아내니 기분이 시원섭섭했다.


미연이 양 갈래 머리를 달래다 말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맞아. 아직 말 안 했지. 김민지, 이게 아까 내가 말했던 대가야.”

“……저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내 말에 미연은 가슴을 크게 펴며 우쭐거렸다.


“보통 사람들은 대가라고 하면 돈이나 물건 같은 물질적인 걸 주려고 하지. 하지만 나는 대상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준다 이 말씀.”

“하지만 나는……”


차라리 돈을 원하는데,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미연은 이번에도 내 말을 끊었다.


“걱정 마.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네가 왜 아무도 앉지 않는 구석 자리에 홀로 앉아있는지. 왜 쉬는 시간마다 조용히 그림만 그리고 있는지. 네가 원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던 거겠지. 그래서 점심 먹을 때만이라도 함께 해주기로 했어. 어때? 좋지?”


내 의도와 목적을 완전히 착각한 미연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 말을 정정해주고 싶었지만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웃음이 나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미연과 이마루, 그리고 아직 이름을 모르는 양 갈래 머리의 얼굴을 살펴봤다.


미연은 자신만만하지만 좌우의 두 친구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인 걸로 봐서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상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나는 혼자 먹는 걸 좋아해, 라고 말하면 미연은 혼자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하면서 점심시간마다 끈질기게 내 앞에 앉겠지. 얼마 안 있으면 전학 갈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거야, 라고 하면 그때까지만이라도 내가 함께 밥 먹어줄게, 하면서 또 내 앞에 앉겠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이 애를 떨쳐내는 건 힘들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절로 긴 한숨이 나왔다.


“얘 싫어하는 거 같은데?”


양 갈래 머리는 의외로 눈치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미연은 일부러 모른척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첫날이라서 어색한 거야. 그렇지 민지야?”


미연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이름도 몰랐으면서 마치 오래된 친구를 부르는 것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참 대단한 아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무슨 대답이 그래?”


미연은 얼굴을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마루와 양 갈래 머리는 내 대답을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미연의 막무가내 행동에 시달리는 건 나 혼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 애들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알아낸 것들은 쓸모없는 것밖에 없었다. 셋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며, 모두 더 울프를 좋아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더 울프 내에서 좋아하는 ‘오빠’는 각자 달라 서로 간의 사랑의 크기로 싸우는 일이 절대 없다는 것 정도였다.


정작 내가 조금은 관심이 갔던, 미연의 성이나 양 갈래 머리의 이름은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듣지 못했다.






보통 내가 사진을 보면서 그림 하나를 그리는 데에는 2, 3일이 걸렸다. 조금 더 힘을 들인다면 4, 5일. 정말 제대로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하나는 유일하게 일주일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막상 완성된 그림은 내 상상하고 완전히 틀려서 실망했지만……. 아무튼 그림에는 따로 시간을 내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간간이 생기는 자투리 사용해 그리는 거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미연에게 부탁받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고민됐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나 이틀 만에 대충 그려서 주고 싶었다. 내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더 이상 더 울프 같은 듣도 보도 못한 그룹 얘기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완성된 그림을 주면서 이제 같이 밥 먹어줄 필요 없다고 말하면 만사 OK였다.


그런데 실력은 없지만 그림쟁이로서의 내 마음가짐이 그런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중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그림을 부탁받았단 사실도 옆에서 거들었다. 아무리 대충 그리고 싶어도, 이왕 그리는 거 잘 그려보자란 생각이 자꾸만 들어 그림에 사용하는 시간이 자꾸만 늘어갔다.


이틀, 사흘, 나흘. 미연과 이마루, 여전히 이름을 모르는 양 갈래 머리는 점심시간마다 매번 급식실 구석에 앉아있는 나를 찾아왔고 그때마다 더 울프에 대한 수다로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는 관심도 없는 더 울프에 대한 머릿속에 정보가 쌓여, 만약에 누가 물어보면 어느 정도 답을 해줄 수 있을 정도였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인슈타인도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정보나 섭취하고 있다니. 위기의식이 고개를 쳐들었다.


결국 나는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 할 주말까지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해버렸다. 덕분에 내 책상 한쪽에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숙제가 쌓여있었다. 그나마 사진이 역동적이라 그리는 보람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정말 시간만 버릴 뻔했다. 절대로 사진에 찍힌 강지웅이란 사람의 헐벗은 모습이 좋아서가 아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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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대학교 -9- 14.11.12 47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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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대학교 -7- 14.11.07 59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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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중학교 -4- 14.10.13 741 5 11쪽
5 중학교 -3- 14.10.10 613 5 10쪽
» 중학교 -2- +1 14.10.08 796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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