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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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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117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1.26 09:00
조회
650
추천
2
글자
10쪽

회사 -4-

DUMMY

세상이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고 다들 불평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빠른 변화라 해도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스며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일이 일어났다.


진아 선배가 결혼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따뜻한 봄날에 공원이 바로 앞에 있는 예식장에서. 무엇보다 상대가 같이 일하던 사진작가여서 놀랄 노 자였다. 알고 봤더니 사실 두 사람은 벌써 5년째 사귀는 사이였다. 매번 뼛속까지 씹어먹을 듯이 툴툴대던 게 진짜 화가 난 게 아니라 단순한 사랑싸움이었다는 사실에 이 세상 그 어떤 반전영화보다 큰 충격을 받은 건 덤이었다.


진아 선배가 항상 욕만 했던 수수께끼의 사진작가는 아줌마 파마 같은 헤어스타일에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같은 막 자란 수염과 덩치를 가진 상남자였다. 생김새를 모르니 작품으로 그를 알았던 나는 여기에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그 사람이 찍은 사진은 굉장히 섬세하고 색감 또한 따뜻해서 일백 퍼센트 여자 같은 남자일 거라고 제멋대로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내가 받은 충격과는 별개는 진아 선배는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화장할 시간도 아깝다며 항상 맨얼굴로 다니던 진아 선배가 풀 메이크업을 한 모습은 거의 변장수준으로 예뻤다. 평소에는 털털하던 행동도 그 순간만큼은 조신한 신부였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눌 때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하객들 전부가 박수를 쳤다. 나도 편집부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를 쳤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는데 나도 결혼을 하게 되면 저렇게 될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로 이뤄진 생각이었다.


부케는 진아 선배의 20년 지기 친구가 받아갔다. 내가 선배를 알게 된 건 1년. 친구분이 받아가야 할 게 당연했다. 매일 옆자리에서 일하고 저녁을 같이 먹어도 그게 20년의 세월을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서운함을 느끼는 내가 싫었다.


“얘! 김민지!”


예정된 식이 대충 끝나고 식당으로 이동하기 전에 진아 선배가 달려왔다. 나는 약간의 서운함은 뒤에 두고 활짝 웃어 선배를 반겼다.


“축하해요. 아니 이제 자유를 속박당했으니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어이구, 그런 낭만적인 표현은 글 쓸 때나 쓰세요. 아무튼 오늘 와줘서 고마워.”

“편집부 사람들 전부 다 왔는데요?”

“그래도 진짜 반가운 사람은 몇 명 없어.”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간사한지, 그 말에 가슴 속에 있던 서운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기쁨과 미안함이 동시에 자리해서 내 얼굴의 미소는 힘이 살짝 없어졌다. 나는 그걸 숨기려고 일부러 야박스런 말을 했다.


"됐고, 신혼여행이나 잘 갔다 와요.”

“아, 그거 말인데.” 진아 선배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한테 얼굴을 가까이 가져와서 “사실 신혼여행은 안 갈 거야.”

“예? 휴가는 신청해놨잖아요?”

“후후후, 게다가 유급휴가지. 그런데 여행 가려면 돈도 많이 들어서 그냥 집에서 쉴 거야. 그러니까 일하다가 뭔가 안 풀린다 싶으면 주체 말고 전화하라고.”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후회하지 않겠어요?”

“어차피 나나 그이나 지금은 여행갈 생각도 없거든. 나중에 생각이 들면 그때 갈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너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된다?”

“말 안 해요. 물어볼 사람도 없고.”


진아 선배는 화장이 뭉개지지 않게 가볍게 웃었다.


“그럼 난 이만 우리 남편님에게 돌아가야겠다. 밥 맛있게 먹고 가.”

“네. 수고하세요.”


수고하세요? 이게 상황과 장소에 맞는 인사말인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진아 선배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이라 진아 선배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듯싶었다. 나는 진아 선배가 사라진 곳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당은 뷔페식으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비싼 축의금값에는 조금 부족한 인상이었다. 게다가 비치된 음식 대부분이 기름져서 많이 먹을 수도 없었다. 나는 김밥과 토마토를 접시에 담고 편집부 사람들이 모여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민지 씨, 그거밖에 안 먹어?”


결혼식이라고 화장을 짙게 하고 온 채영 선배가 물었다. 선배의 접시에는 탕수육에서 닭 다리까지 기름진 음식으로 가득했다. 저렇게 먹으면서 평소에는 다이어트한다고 유난이었다.


나는 오랜 기간 단련된 서비스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기름진 걸 먹으면 많이 못 먹거든요.”

“아, 맞다. 그걸 생각 못 했네.”


채영 선배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치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그 행동 자체가 우스웠던 걸까 아니면 평소 채영 선배의 행동과 지금 한 말의 괴리감에 웃음이 나온 걸까. 어느 쪽이든 간에 순수하게 유쾌한 웃음은 아닌 것 같았다.


계속 김밥과 과일만 먹을 수 없어 납작한 피자 한 조각과 순살 닭 조각 몇 개를 담아 돌아왔을 때, 가방에서 내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부터 확인했다. 송아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어, 송아야.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없으면 전화하면 안 돼?


오랜만에 듣는 송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고 활기찼다.


“그건 아니지만 요즘 바쁘다며.”

-그건 맞아. 잠시 시간 나서 뭐 하고 사나 전화한 거야.

“나야 뭐 항상 일하지.”

-그런데 거기 어디야? 되게 시끄러운데.

“여기? 결혼식장.”

-너 결혼해?

“아니. 내 직속선배가 결혼했어.”


나는 문을 열고 예식장 밖으로 나왔다. 밖도 자동차와 공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완전히 조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리가 울리고 울리는 예식장 안보다는 훨씬 통화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아, 그나저나 나 그 사람 봤다?

“누구?”

-이재명 선배.


그 이름을 듣자마자 방금 전에 먹은 음식이 역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전화기 너머의 송아는 거리낌 없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학교에 도와줄 일이 있어서 갔었거든. 내가 참가하는 강의에 있길래 봤는데 참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 꼭 노숙자 같더라고. 같은 과 애들도 피하는 눈치고.

“뭐? 그 인간 아직도 학교 다녀?”

-응. 뭐 중간에 휴학하고 했으면 불가능은 아니지. 아무튼 간에 너 잘 헤어진 것 같아.

“그래……. 참 잘 헤어졌지.”


그 의견에는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흉터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왼 손목을 들여봤다. 간신히 누르고 있던 기억들이 먹이를 발견한 물고기 떼처럼 심연에서 솟아 나에게 달려들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일주일 뒤 재명 오빠를 만났다. 아니, 만난 게 아니라 그쪽에서 나를 찾아왔다. 모 회사 면접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못 본 척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도망가는 대신 그 사람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온 힘을 다해 뺨을 때리는 것을 선택했다. 추운 날이어서 그런지 유독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건조한 내 손바닥은 때렸지만 맞은 것만큼 아팠다.


“왜 그런 거짓말했어?”


없는 목소리를 겨우 짜내 물었다. 재명 오빠는 맞은 얼굴을 바로 하지도 입을 열어 내 질문에 대답하지도 않았다. 평소라면 상대가 행동한 이유를 생각해봤을 나였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것도 추측할 수 없었다.


“말 안 해?”


재차 물어도 재명 오빠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저히 말할 수 없던지, 아니면 자기 자신조차 잊어먹었던지 상관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숨을 고른 다음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그 얘긴 그만하자. 괜히 기부 안 좋아진다.”

-미안. 내 생각만 했네. 그럼 화제를 바꿔서, 너 요즘 회사 생활은 어때?

“음, 요즘은 예전에 하던 일에 외국 기사 번역도 하고 있는데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

-오홍 드디어 네 전공을 살리는 일을 하는구나.

“월급은 그대로지만 말이야. 그러는 넌 대학원 생활 어떠냐?”

-항상 바쁘지 뭐.


우리는 잠시 동안 서로 하고 있는 일을 주제로 통화했다. 송아와는 조금 덜 성숙했을 때 만났기 때문일까? 대화는 평소 사무실 사람들과도 했지만 역시 느낌이 달랐다. 대화가 흘러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재명 오빠에 대한 불쾌한 기억은 서서히 날아가고 대신 그보다 훨씬 성숙하지 못했을 때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는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한참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바로 옆의 문이 열리면서 채영 선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민지 씨, 여기 있었네? 사무실 사람들 식사 다 하고 돌아가려는데.”


나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말했다.


“네. 금방 들어갈게요.”

“아니, 민지 씨는 식사 제대로 못 했으니까 천천히 식사하고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신경 써주는 건 고마웠지만 이미 아까 전에 먹은 걸로 배가 적당히 찬 상태였다.


“사람들 돌아갈 때 같이 가야죠.”

“그래? 그래도 나중에 배고프면 말해. 남은 거 몇 개 쏴왔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채영 선배가 핸드백을 살짝 열어 보여줬다. 정말로 투명한 비닐 봉투에 음식이 담겨있었다. 그것도 기름기로 가득한 종류로만. 절로 쓴웃음이 났다.


“네, 그렇게 할게요.”


채영 선배가 다시 예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휴대폰을 다시 귀로 가져왔다. 그런데 몇 번이나 송아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뭔가 이상해서 화면을 봤더니 전화가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혹시 잘못 누른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화면 위쪽에 표시된 메신저 아이콘이 눈에 들어왔다. 메신저를 확인했더니 송아가 보낸 문자가 있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가 봐야겠어. 미안.]


채영 선배와 말하는 도중에 뭔가 일이 생겼나 보다. 나는 [알았어] 라고 답을 보낸 뒤 예식장 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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