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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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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116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0.10 09:00
조회
613
추천
5
글자
10쪽

중학교 -3-

DUMMY

월요일 아침부터 나는 녹초가 되어 책상 위에 엎어져 있었다. 숙제 때문에 늦은 밤까지 깨어 잠을 평소의 반밖에 못 잤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은 게 후회됐다. 만약 숙제를 빌려 베낄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사실 이렇게 된 원인을 제공한 미연에게 숙제를 보여달라고 할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반이 달라 진도가 다를 테니 숙제도 다를 거라 생각했다. 사실은 미연이 몇 반인지도 몰랐다. 진짜 진짜 사실은 숙제가 같더라도 보여달란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학교에 관련된 내 모든 행동은 언제나 불시에 찾아올지 모르는 전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미연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그림을 줄 수 있게 준비했다. 하지만 수업 종이 몇 번이나 울렸지만 미연은 우리 반에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그럴 걸 알고 있었다. 처음 그 애와 점심 먹을 때, “나는 누가 옆에서 빤히 바라보면 더 못 그리니까, 그림 다 그릴 때까지 찾아오지 마” 라고 못을 박아버렸으니까. 그런데 설마 우리 반을 아예 안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평소 미연과 알고 지내던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반을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찔렸다.


그래서 보통이라면 맨손으로 가는 급식실을 옆구리에 연습장을 끼고 갔다. 단지 한쪽 팔을 제대로 못 쓸 뿐인데 내가 속하지 못한 무리에 앞뒤로 끼여 병아리 걸음으로 움직이는데도, 식판을 들고 걷는 데도 너무나 불편해서 강제로 내 몸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나는 항상 그랬듯이 급식실 구석 자리에 앉은 뒤, 바로 식사를 시작하지 않고 창문을 보며 잠깐 시간을 죽였다. 1학년의 수다 소리로 급식실 유리창이 제일 크게 흔들릴 때쯤에 미연과 그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이 민지야. 좋은 점심.”


미연의 인사에 마루가 옆에서 딴지를 걸었다.


“뭐야, 그 어색한 인사는.”

“어색한가?”

“대박 어색해.”


둘이 그렇게 말하면서 맞은 편에 나란히 앉을 동안 양 갈래 머리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얼래? 민지 너 불편하게 연습장은 왜 가져 왔어?”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면서 연습장을 식탁 위에 올렸다.


“응. 저번에 미연이가 부탁했던 그림 다 그렸거든.”

“정말?” 미연이 눈을 반짝이며 연습장을 바라봤다. “지금 봐도 돼?”

“그러라고 가져온 건데.”

“몇 페이지에 그려져 있어?”

“사진 껴 있는 곳에.”


미연은 촤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연습장 페이지를 넘기다가 정확하게 내가 사진을 끼워둔 페이지에서 멈췄다. 아이고, 누가 팬 아니랄까 봐. 내 그림에 대한 감상은 사진을 회수해 지갑에 돌려놓은 뒤로 밀려놨다.


당연히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팬이란 생물체의 특성을 이 일주일 동안 일곱 번의 점심 식사로 자세히 알았었기에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내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나는 일부러 무관심한 척, 밥과 반찬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잘 느껴지던 맛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했구나. 자기 자신에게 괜찮다고, 이 애들은 호의적이라고 희망찬 말을 해보았지만 직접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 긴장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잘 그렸네.” 무미건조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마루였다. “독학했다고? 그런 것치곤 기본이 잘되어있어서 좀 놀랍다.”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미연이한테 들었지.”


마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나도 아아 그렇구나 같은 반응으로 넘어갔다. 일주일 동안 같이 밥 먹으면서 서로의 성격을 어느 정도 익힌 덕분이었다. 사실 그것도 그렇지만 내 궁금증을 더 유발하는 게 있었다.


“저기……”

“야야, 너희끼리만 보기냐. 나도 좀 보여줘.”


옆에 앉아있던 양 갈래 머리가 내 말을 끊고 앞에 나서는 바람에 잠시 기다려야 했다. 연습장을 건네받은 양 갈래가 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 나는 마루에게 다시 제대로 물었다.


“저기 마루야. 어떻게 기본이 잘되어있다는 걸 알아?”


솔직한 심정이었다. 책만 보고 독학으로 그리고 또 그리면서 항상 한 켠에서는 이게 잘못된 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기본이 되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을 더는 느낌이었다.


마루는 먹고 있던 음식을 삼키고 난 뒤 말했다.


“나 미술하거든. 유치원 때부터 거의 반강제적으로.”

“정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마루가 아닌 미연이를 보면서 “근데 왜 나한테 그림 그려달라고 했어?”


그 말을 하자마자 미연이 애증이 듬뿍 담긴 미소를 지으며 마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적절한 질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했지. 그랬더니 얘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에……. 그. 그러니까 뭐였더라? 뭔가 굉장히 복잡하고 있어 보이는 단어를 막 섞어서 말했었는데.”


미연이 말이 막혀 바라보자 마루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우리 오빠들의 원초적이고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내 실력이 너무 하찮다.”

“맞아. 바로 이거였어. 완전 재수 없지 않아?”


달리 할 말이 없어서 나는 그저 이를 드러내고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양 갈래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조용하단 걸 생각해내고 옆을 돌아봤다. 순간 헉 소리가 올라오다 목에 걸렸다. 양 갈래가 연습장 페이지를 하나하나 앞으로 되돌리면서 내 그림을 살펴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그 그림들을 말이다.


나는 황급히 손을 움직여 양 갈래의 두 손에서 연습장을 구출해냈지만, 그 과정에서 플라스틱 스프링이 드드득 비슷한 소리를 내며 양 갈래의 손가락을 갉아버리는 바람에 양 갈래가 손을 흔들면서 불평했다.


“그림 좀 봤다고 너무 심하다.”

“미, 미안.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닌데.”

“괜찮아 별로 안 아프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양 갈래는 한쪽 눈에 눈물이 걸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나저나 그림 괜찮네. 나도 하나만 그려주라.”

“어……. 너, 너도?”

“걱정 마. 이 언니는 미연이 보다 훨씬 좋은 걸 줄게. 그러면 되는 거 아냐?”


곤란했다. 미연이가 그림에 만족하니 나름 좋은 분위기에서 점심을 혼자 먹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런데 그 나름 좋은 분위기가 지금 막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로 바뀌고 말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거절할 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뭐, 뭘 줄 건데?”


내 말에 양 갈래는 검지를 입술에 가져가면서 말했다.


“흐음, 글쎄. 미연이는 점심 같이 먹어주기로 했으니까 나는 쉬는 시간이 놀아주는 걸로 할까?”

“그건 그림 방해받기 싫어서 내가 일부러 거절했는데…….”

“그래? 그럼 교과서 없는 거 빌려줄까?”

“중학생 된 지 몇 달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교과서를 잃어버렸겠니.”

“마루는 벌써 몇 개 잃어버렸던데.”


그 말이 나오자마자 나와 양 갈래는 동시에 마루를 바라봤다. 시선을 눈치챈 마루는 덤덤하게 왼손을 들어 숫자를 셌다.


“정확하게 3권 잃어버렸다. 수학, 미술, 사회.”

“그렇게나 많이?”


내가 놀라자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하는 과목이라 신경을 안 썼더니 그렇게 됐네.”


싫어하는 과목에 미술이 들어가 있는 게 좀 의아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짧은 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생각했지만, 여전히 양 갈래의 부탁을 거절할 마땅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같은 조건인데 미연이만 그려주고 양 갈래만 안 그려줄 수 없었다. 일주일 동안 같이 점심을 먹으며 정이 든 까닭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가장 큰 이유는 그거였다. 과하지 않은 이상 자기 좋다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숟가락을 국을 조금 떠서 먹은 뒤에 양 갈래에게 말했다.


“됐고, 너 이름이나 알려주면 그림 그려줄게.”


양 갈래는 그 말을 듣더니 얼굴 한쪽을 미묘하게 찡그렸다.


“뭐? 내 이름 아직도 몰랐어?”

“가르쳐준 적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들하고 얘기하는 중간에 내 이름이 몇 번이나 나왔을 텐데, 여태까지 모른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


양 갈래는 동의 구하는 표정으로 미연과 마루를 바라봤지만 둘은 상관없다는 듯 태연하게 오늘의 고급 반찬인 불고기를 입에 가져갈 뿐, 양 갈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거기에 힘을 받은 나는 설명하는 말투로 담담하게 말했다.


“따로 뭘 해주는 것보다 이름 가르쳐 주는 게 훨씬 싼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만, 거의 거저로 뭘 받는다는 게 영 찝찝하잖아.”

“설마 그거 가지고 뭐라고 그럴까. 네가 그러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먼저 말한 건데.”

“그런가?” 양 갈래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고 머리를 좌우로 까닥이며 귀여운 척하면서 “그럼 부담 가지지 않고 말하지 뭐. 내 이름은 유지인. 그리고 얘는 최미연, 얘는 이마루.”

“야야, 왜 우리까지 도매 급으로 싹 넘기는 거야?”


미연이 젓가락으로 삿대질하며 불평하자 양 갈래, 아니 유지인은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응했다.


“얼레? 우리 운명공동체 아니었어?”


그 말에 미연과 마루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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