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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로맨스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111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0.31 09:00
조회
384
추천
4
글자
12쪽

대학교 -4-

DUMMY

“역시 최송아. 우리가 하지 못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헤헤, 감사합니다.”


한 학년 높은 남자 선배가 엄지를 들며 지나가고,


“그 교수님, 엄청 깐깐한데 너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알지 못하는 송아의 친구가 걱정을 해주기도 하는가 하면,


“꼭 그렇게 강의를 방해해야 해?”

“메~롱이다.”


비판의 의견을 받기도 했다.


함께 복도를 걸으면서 그 모든 얘기를 같이 들은 나는 그러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송아가 참 신기했다. 어쩌면 그 성격 때문에 나하고 같이 다니는 걸 수도 있었다.


“민지야. 잠깐 저거 좀 마시고 가자.”


송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학내에 있는 자판기였다. 바깥에서 사는 것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해서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반드시 하루에 한 번 이상 이용하는 인기제품. 나와 송아는 앞에서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울 때까지 기다린 후에 돈을 넣었다.


“너는 뭐 마실래?”


송아가 먼저 자기가 마실 콜라를 뽑고 난 뒤에 물었다.


“식혜.”

“넌 항상 이것만 먹더라.”

“밖에서 사면 이거 하나에 천 원이 넘잖아.”

“맛보다는 가격에 의한 결정?”


나는 말 대신 미소로 답하며 차가운 식혜 캔을 받았다.


앉을 자리를 찾던 우리 둘은 건물 밖에 비어있는 벤치를 발견하고 그곳에 가서 앉았다. 다음 강의까지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손은 괜찮아?”


송아가 물어와서 나는 일부러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보여줬다.


“찔린 부분이 조금 쓰라리긴 한데 큰 문제는 없어.”

“으으……. 찔릴 때 아팠겠다.”

“그래도 경찰이 바로 와줘서 다행이었지.”


만약 경찰이 조금만 늦게 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끔찍했다. 분명 그 강도는 담배로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차하면 내가 있던 카운터로 들어와 포스기가 또 한 대 있는 거 보고 열라고 협박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으로는, 생각하기도 싫지만 흉기에 위협당해 성폭행당했을 수도 있었다. 겨우 과도 따위에 말이다.


그때를 생각하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당시에는 제법 담담하게 행동했었는데 아마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긴장조차 느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을 때, 다른 이의 손가락이 내 등을 콕콕 찔렀다.


“저기 민지야.”


송아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왜?”

“누가 찾아왔어.”


그 말에 나는 얼굴에서 손을 뗐다. 시야에 오래된 운동화 한 짝이 나란히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운동화의 주인을 바라봤다. 나는 순간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 선배.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이재명 선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앞으로 내밀었다. 봉투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약국 이름이 찍혀있어 내용물이 쉽게 짐작이 갔다.


나는 바로 받지 않고 이재명 선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 주시는 거예요?”

“응. 부탁받은 말도 전할 겸 겸사겸사. 소독약하고 이것저것 들어있어.”


선배가 빨리 받으라는 듯 공중에서 봉투를 한 번 움직였기에 나는 주저하면서도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전할 말이라는 건?”

“박 교수님께서 시간 있을 때 한 번 들르라고 하시더라.”


박 교수님은 방금 전 강의에서 송아에게 시비 걸린 그 사람이었다. 혹시 그 일 때문에 불만을 터트리려는 거 아닌가 하며 걱정됐다가 그럴 거면 내가 아닌 송아를 불렀을 거란 생각이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박 교수님과는 따로 이야기 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럼 난 간다.”

“아, 고마워요. 선배.”


서둘러 떠나는 이재명 선배의 등에 대고 인사했지만 선배는 뒤를 돌아보거나 손을 흔드는 등의 행위는 일절 하지 않고 그저 가는 길을 걸어가기만 했다. 저러니까 사람들과 안 친하지 하고 생각하며 봉투 안의 약들을 확인했다.


“오올~, 저 사람 너한테 관심 있나 본대?” 송아가 몸을 바짝 붙이더니 엉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김민지 씨는 저 음침한 복학생에게 관심이 있으십니까?”

“관심? 동정도 관심에 포함되면 관심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

“동정? 보통은 동정을 느끼기 전에 기분이 나빠질 것 같은데.”

“어휴, 됐다 됐어.”


나는 봉투를 닫으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송아가 뒤따라오며 말했다.


“그나저나 그 교수님, 왜 내가 아니라 널 부른 걸까?”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은 하고 있나 보네?”


나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혀를 살짝 내미는 송아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살짝 치며 머릿속으로 시간표를 떠올렸다. 다음 강의까지 시간이 조금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교수의 부름에 즉각 응하기로 했다.


“교수님한테 가봐야겠다.”

“지금?”

“나중에 하려고 하면 잊어먹거든. 시간이 언제 날지도 모르고. 같이 갈래?”


송아는 정색하며 힘차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호의는 고맙지 않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말이 이상하다?”

“당황해서 그런다. 그리고 어차피 못 가. 나 다음 강의 들어가야 하잖아.”


우리는 다 먹은 음료수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단에서 헤어졌다. 송아가 가야 할 강의실은 3층, 교수실은 1층에 있었다.


박 교수님의 교수실 문 앞에 선 나는 심호흡을 하고 노크를 하려다 손에 들고 있는 비닐 봉투를 눈치챘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봉투를 가방에 넣고 다시 손을 들었다. 바로 눈앞에 교수님의 이름과 직함이 적혀있었다. 그걸 보니 교수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나에게 할 첫 말도 떠올랐다. 하지만 그 뒤에 일어날, 정말 중요한 일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 번 더 크게 했다.


“김민지 학생?”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걸어오는 박 교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교수실에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다른 곳에 일을 보신 후 느긋하게 오신 것 같다. 한쪽 팔에 들고 계신 책이 그 증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왔는데, 나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만든 건가?”

“예, 뭐……. 이재명 선배한테 말 듣고 바로 왔네요.”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만약 이 호출이 없었다면 나는 평소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펼치고 있었을 테니까.


“그래. 그럼 안으로 들어가지.”


처음 들어가 보는 박 교수님의 교수실 풍경은 딱딱하고 건조했다. 창문이 있는 벽을 제외하면 모두 책으로 가득한 책장으로 가득했고 그 중심에 책상 하나가 놓여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교수실을 훨씬 좁아 보이게 하는 배치였다. 그런데 교수님은 저 많은 책을 다 읽어보긴 한 걸까?


교수님이 책상에서 의자를 꺼내 앉으며 말했다.


“얘기는 짧게 끝날 것 같으니 의자에 앉아도 되고 아니면 서 있어도 되고.”

“앉겠습니다.”


단박에 대답하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어딘가 부품 하나가 모자란 듯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서 있어도 된다고 하신 건가.


교수님은 안경을 고쳐 쓰셨다.


“아까 전에 있었던 일로 뭐라 하려는 건 아니니까 안심해.”


나는 억지로 이를 보이며 웃었다.


“아하하……, 그 일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단단히 교육시켜 놓을게요.”

“아니라니까? 처음부터 내가 말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도 없었어.”


교수님은 정말 자신의 실수로 생각하고 있던 것 같았다. 신기했다. 학생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편안한 자세를 잡은 교수님이 말했다.


“이번에 부른 건 다른 게 아니라, 김민지 학생이 다친 것 때문에 그런데, 사무보조로 일해 볼 생각은 없나?”

“예?”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교수님을 바라보며 “사무보조요?”


교내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는 1학년 때 신청해본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성적도 별로 안 좋았고 무엇보다 고등학교에서 막 올라온 터라 성격까지 음침했던 탓에 뽑히지 못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간단한 질의응답을 하고 방을 나왔는데 문 안에서 들려온 ‘쟤하고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하는 목소리. 나는 한숨을 쉬고 다음 면접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롯데리아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억 속에서 잊혀졌는데 3학년이나 돼서 다시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학교에서 비는 시간에 일하는 거야. 위험하게 야간에 일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좋은 기회였다. 교수 추천이라면 거의 100% 합격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눈을 내리깔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기만 하며 정작 목소리는 내지 못했다.


나는 간신히 돌파구를 떠올려 입에 올렸다.


“교수님. 혹시 근무 시간이나 시급 같은 게 정리된 안내문 같은 건 없을까요?”

“응? 있지. 잠깐 기다려 봐.”


교수님은 서랍을 몇 번이나 여닫더니 글자보다 여백이 더 많은 A4용지 한 장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몇 달 전 게시판에 붙어있다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라졌던 모집공고였다. 시급은 최저 시급보다 딱 10원 많았고 일하는 날과 시간은 주중으로 늦어도 저녁 전에는 끝났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나는 종이를 집어 읽는 척하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혹시 괜찮다면 대답은 생각을 한 뒤에 해도 될까요?”

“생각이 필요한 문제인가?”


달리할 수 있는 대답이 없어 부끄럽게 웃기만 했다. 내 마음이 보인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교수님은 푸근하게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알았다. 그래도 되도록 이번 주 안에 답을 줬으면 좋겠군. 자리가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모르겠거든.”

“알겠습니다.”


나는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은 뒤 인사를 하고 교수실을 나왔다.


한창 강의가 시작될 시간이라 복도는 인기척이 드물었다. 건물 밖과 비교해 서늘한 공기를 삼키면서 생각했다. 만약 1학년 때 이런 제의를 받았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소리를 질렀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나라고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두 개나 하고 싶지 않았다. 서너 시간밖에 자고 싶지도, 시간에 쫓겨 다니고 싶지도, 몇 벌 안 되는 옷을 계속 돌려 입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자동차 사고를 당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2학년 겨울 방학 때 어머니는 전화로 치료비 일부를 나에게 부탁했다. 식당에 나가 일하는 돈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나 또한 월세와 등록금을 생각하면 여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늘렸다. 심할 때는 과외까지 합해 세 개나 했던 적도 있다. 휴학을 생각해봤지만 그만큼 사회 진출이 늦어진다는 생각에 최후의 수로 남겨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군대에 갔다 온 복학생들이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뒤에 휴학할 용기가 사라졌다.


사무보조 일은 지금의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급도 현재 하고 있는 일보다 적었고 시간 또한 매력적이지 않았다. 비슷한 시간에 일하는 롯데리아는 오랫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그만큼 시급이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을 사무보조로 바꾸게 되면 일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지만 버는 돈은 현재 벌고 있는 돈의 70퍼센트 정도로 내려가게 됐다. 신경 써준 박 교수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일은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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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학교 -10- 14.11.14 581 3 14쪽
19 대학교 -9- 14.11.12 473 3 11쪽
18 대학교 -8- 14.11.10 569 3 11쪽
17 대학교 -7- 14.11.07 59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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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대학교 -5- 14.11.03 57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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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대학교 -3- 14.10.29 64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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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중학교 -7- 14.10.20 654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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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중학교 -5- 14.10.15 596 4 17쪽
6 중학교 -4- 14.10.13 741 5 11쪽
5 중학교 -3- 14.10.10 613 5 10쪽
4 중학교 -2- +1 14.10.08 795 6 8쪽
3 중학교 -1- 14.10.06 699 6 14쪽
2 특별한 날 -2- 14.10.03 1,164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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