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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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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122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0.03 09:00
조회
1,164
추천
10
글자
13쪽

특별한 날 -2-

DUMMY

눈이 너무 아팠다. 자신을 놓고 애처럼 울어버린 벌이었다. 내 손에는 와퍼 세트가 들어있는 버거킹 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매장 안에 가득한 햄버거 냄새가 얼마나 달콤했던지 나는 눈물을 펑펑 흘리는 와중에도 손가락으로 와퍼 세트를 가리켜 주문했다. 괜히 인간의 3대 욕구에 식욕이 들어있는 게 아니었다.


큰길에서 원룸촌으로 도망쳐왔더니 역시나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한산한 거리가 나를 맞이해줬다. 나는 근처에 있던 전봇대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공모전 탈락도 탈락이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것이 말도 못할 만큼 부끄러웠다. 지나가는 사람도, 위로해주는 사람도 없이 나는 계속 울었다.


울다가 울다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고, 탈진 증세까지 나타나려 할 때 나는 울기를 그만뒀다. 주변은 여전히 아무도 없어 나 혼자였다. 나는 몸의 방향을 바꿔 전봇대에 등을 기댔다가 그대로 아래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오른손에 햄버거를 왼손에 콜라를 들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와 함께 먹어도 햄버거와 콜라는 맛있었다. 골목을 넘어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와 수다 소리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계속 먹었다. 최소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음식을 씹는 것에만 집중해 다른 생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렇게 반 정도 먹었을 때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길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노숙자처럼 식사를 하다니. 누가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사람이 평소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상태가 있는데 바로 자포자기예요. 제가 지금 딱 그런 상태랍니다.


한참 동안 울고 동시에 두통에 시달린 탓인지 새벽 4시라도 된 것처럼 피곤이 몰려왔다. 전봇대에 등을 기대고 지독하게 아름다운 겨울 하늘을 올려봤다. 아아, 하늘이 회색이다. 하늘마저 우울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도 우울해도 된다.

나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감자튀김과 쓰레기가 들어있는 버거킹 봉지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나올 때와 똑같이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들려오는 건 골목 너머 큰길에서 건너온 자동차 소리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봉지 안에서 감자튀김만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쓰레기는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컴퓨터 책장 아랫부분에 있는 작은 서랍을 열었다. 체크카드를 만든 이후로 오랫동안 쓰지 않은 통장과 도장, 예전에 쓰던 휴대폰의 배터리, 여분의 펜 등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설탕같이 하얀 가루가 들어있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투명한 유리병을 꺼냈다.


대학 입학식에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유명한 어떤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현대인은 죽음을 망각하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사람도 동물이니 자신이 언제든지 죽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 사람이 예로 든 사례들은 모두 죽음과 관계되어 있었다. 교통사고에서 겨우 살아남은 뒤 삶을 좀 더 알차게 보내게 된 어느 유럽인,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작품을 남긴 어느 일본인,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복지 단체를 설립한 미국인 등. 하나같이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했기에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는…… 어떻게 저런 사례로만 모아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희망적인 얘기들이었다.


몇이나 그 사람의 말에 속으로 동의했을까? 어릴 적에 운 나쁘게 사고를 당해 거의 죽을 뻔했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반의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게 뻔하다. 어쩌면 가슴이 조금 뭉클해졌을 수도 있지만 길어야 한두 시간 후에는 잊어버렸겠지. 확실한 건 이제 막 스물이 되어 기대에 부풀어 있는 대학생들에게 그리 와 닿는 얘기는 아니었다.


다만, 나처럼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새롭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나는 사고도 아니었고,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거였으니 사례의 사람들처럼 마음을 극복하는 것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음을 항상 옆에 둔다면, 구체적으로는 한 번의 시도로 목숨이 사라질 수 있는 독 같은 걸 지니고 다니면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청산가리. 이것이 있었기에 그동안 모든 힘을 쥐어짜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 잠을 최소한으로 자고,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입고 싶은 거 못 입으면서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제 곧 쓰겠구나.”


나는 청산가리가 든 유리병을 손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가 모니터 옆에 내려놓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리고 윈도우가 실행되는 동안에 휴대폰의 인터넷뱅킹 앱을 실행해 계좌를 확인했다.


43만 3천 527원.


액수를 확인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결국에 내게 남아있는 돈은 오십만 원도 되지 않았다. 할인도 되지 않은 와퍼 세트를 산 게 후회됐다.


덕분에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이 정도 돈으로 여유로운 해외여행은 불가능하다.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한 번 날아가는 비행기 값으로 모두 소진해버릴 게 뻔하다. 아무리 그래도 굶어 죽고 싶지는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국내라면……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보고 그동안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끌어내려 후회를 몰아낸 뒤, 마우스를 손에 쥐고 인터넷을 켰다. 익숙한 검색창이 화면에 떠서 두 손을 키보드로 가져갔지만 막상 머릿속에 있던 것을 쓰려니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 손을 깍지 껴 잔뜩 힘을 주니 그제서야 손가락이 움직여, 나는 검색창에 해남 땅끝마을을 입력했다.


이곳에서 죽고 싶은 건 아니다. 내가 죽을 장소는 따로 있었다. 사람이 많이 찾는 명소에서 죽는 게 굉장한 민폐라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정신을 놓친 않았다. 오히려 다른 어느 때보다 차가워서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어떻게 죽기로 결심한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생각해봤다. 답은 빠르게 나왔다. 내가 이런 상황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삐-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두통이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서랍에서 아스피린이 든 통을 꺼냈다. 아귀가 제대로 맞지 않은 뚜껑은 열기도 힘들었다. 거의 뜯어내듯이 뚜껑을 열어 손가락에 잡히는 대로 아스피린을 꺼냈다.


나는 의자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이사이 마다 두통이 치고 들어와 뚜껑을 여는 데 고생했다. 겨우 뚜껑을 열어 입 안을 물로 채우고 아스피린과 함께 삼켰다.


나는 뚜껑을 닫지 않은 냉수 통을 그대로 냉장고에 넣고 침대로 걸어갔다. 아무 조짐 없이 깨끗하게 시작된 삐 소리에는 방송이 없는 채널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한 잡음이 섞이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나는 베개로 머리를 감쌌지만 소리는 없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약효가 나길 바라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나는 집 밖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고함에 눈을 떴다.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베개를 치웠더니 눈앞이 깜깜했다. 아무래도 피곤에 두통까지 겹친 덕분에 굉장히 오랫동안 잔 모양이었다. 컴퓨터 본체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힘을 내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옷의 무게에 비틀거릴 뻔했다. 깜짝 놀라며 살펴보니 상의 하의 할 것 없이 모두 땀에 흠뻑 젖어있는 게 아닌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행히도 나를 깨운 고함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옷의 무게를 충분히 인지한 다음 몸을 일으켰다. 잔뜩 말라있는 입안을 침으로 적시면서 욕실 문을 열었더니 몸이 떨릴 만큼 차가운 공기가 반겨줬다.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움직여 전등을 켜니 벽에 붙은 커다란 거울에 내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만 보면……. 완전히 병자네.”


옷은 잔뜩 젖어있고 머리는 산발에, 화장기 없는 얼굴은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창백해 보였다. 나는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빨래 더미 위에 올려놓고 차가운 물로 간단히 얼굴을 씻고 축축한 목과 겨드랑이를 닦아냈다.


나는 방으로 돌아온 다시 의자에 앉았다. 마우스를 몇 번 움직이니 모니터가 번쩍이며 마지막으로 보고 있던 화면을 표시했다. 화면 오른쪽 아래쪽의 시계를 보니 오전 3시 28분이었다.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니 거의 10시간을 잔 셈이었다. 평소의 8시간보다 2시간이나 더 잔 것이다.


불규칙적으로 머리를 누르는 통증이 신경 쓰였지만 오랫동안 잔 덕분인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또렷했다.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두 눈의 눈곱을 떼어내고 땅끝 마을로 향하는 갖가지 교통편들을 계속 조사했다.






해가 뜨기 시작할 때, 나는 대학생 때부터 애용했던 숄더백을 꺼내고 있었다. 청바지와 같은 소재로 만들어져 튼튼하지만 안에 많은 내용물을 넣을 수 없는 일종의 패션용 가방이었다. 짐이라고 해봐야 휴대폰과 지갑이면 충분했지만, 어딘가를 가는데 가방이 없으면 불편한 일이 많았다.


나는 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구석에 있는 옷걸이로 향했다. 몇 년이나 계속된 혼자만의 생활은 걸려있는 옷 대부분을 장식으로 만들었다. 나는 옷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면서 마지막으로 입었던 날을 떠올려봤다. 정장에서 예쁜 옷들까지, 대부분 입지 않고 방치된 지 몇 년째였다.


가슴 한쪽에서 씁쓸함을 느끼면서 그중에서 특히 예쁜, 행사 때나 가끔 입었던 분홍색 원피스를 꺼냈다. 많이 입어본 적도 없고, 많이 입을 수도 없었던 옷.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입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옷. 그리고, 무엇보다 슬픈 기억이 전혀 없는 옷이었기에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간단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나는 책상 위에 연습장을 폈다. 이 집의 계약은 앞으로 2개월 정도 남아있었고 그때까지의 비용은 모두 지불된 상태였다. 그러니 그때를 대비해 주인아주머니에게 편지를 남겨야 했다.


주절주절 사연을 펼치지 않고 간단하게 사정이 있어 멀리 나가 있으니 물건은 모두 처분해도 괜찮다고 적었다. 적고 보니 가장 먼저 역시 연습장과 펜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뒤에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개인적인 물건과 기록들을 없애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당장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내 인터넷 검색기록과 저장해 놓은 아이디와 암호들을 없애고,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파일들을 완전히 삭제했다. 다행히 실제 물건 중에는 남에게 보이면 안 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컴퓨터에 표시된 시간이 오전 6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 전원을 끄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은 채로 몇 시간이나 컴퓨터를 사용해서인지 몸이 찌뿌둥했다. 아침이 되면 집을 나갈 건데 그 전에 몸을 좀 씻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오랜만에 예쁜 옷을 입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옷을 입었던 날들이 항상 즐거운 날들이었기 때문인지 마음이 들뜨는 걸 느꼈다. 마치 소풍을 가는 듯했다. 집을 떠나 먼 곳으로 향하는 건 사실이니 어느 정도는 들어맞는 것 같았다.


나는 왼손을 원피스 치마 주머니에 넣어 청산가리 든 유리병을 확인했다. 작은 유리병의 차가운 촉감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면서 들떴던 마음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오니 검은 정장을 입고 바쁘게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잠시 출입문에 서서 그 사람들을 지켜봤다. 해가 진 다음에도 일하는 나머지 피곤이 가득한 얼굴이 남자나 여자나 유니폼처럼 똑같았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이미 오래전에 저들이 속한 굴레에서 빠져나온 나로서는 그들의 길에 끼어드는 데 저항감을 느꼈다. 다들 눈길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건물이나 자동차 창문 혹은 시야 밖에서 얼핏 비친 분홍색 원피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모두 그랬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척, 그렇지 않지만 그런 척.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거에 시달리는 것도 오늘로 끝이길.”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뜨면서 길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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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사 -4- 14.11.26 651 2 10쪽
24 회사 -3- 14.11.24 712 2 15쪽
23 회사 -2- 14.11.21 464 2 10쪽
22 회사 -1- 14.11.19 513 3 10쪽
21 특별한 날 -4- 14.11.17 804 5 12쪽
20 대학교 -10- 14.11.14 581 3 14쪽
19 대학교 -9- 14.11.12 473 3 11쪽
18 대학교 -8- 14.11.10 570 3 11쪽
17 대학교 -7- 14.11.07 59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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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대학교 -5- 14.11.03 574 4 12쪽
14 대학교 -4- 14.10.31 385 4 12쪽
13 대학교 -3- 14.10.29 647 3 11쪽
12 대학교 -2- 14.10.27 679 3 9쪽
11 대학교 -1- 14.10.24 728 6 13쪽
10 특별한 날 -3- 14.10.22 521 7 11쪽
9 중학교 -7- 14.10.20 654 4 18쪽
8 중학교 -6- 14.10.17 776 5 15쪽
7 중학교 -5- 14.10.15 597 4 17쪽
6 중학교 -4- 14.10.13 741 5 11쪽
5 중학교 -3- 14.10.10 614 5 10쪽
4 중학교 -2- +1 14.10.08 796 6 8쪽
3 중학교 -1- 14.10.06 699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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