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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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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124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0.27 09:00
조회
679
추천
3
글자
9쪽

대학교 -2-

DUMMY

학교 근처에 있는 롯데리아는 붐비지 않을 때가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카운터에 서서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일을 했다. 자취방을 구하자마자 일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3년째였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손님.”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니 가끔 건성으로 대답할 때도 있었는데 일한 기간이 오래돼서 그런지 점장님은 주기적으로 정직원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다. 처음 말을 들었을 때에는 나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냥 기뻤다. 하지만 기쁨이 지속되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평생 한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손님?”


영혼 없는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다가 진짜 웃음을 짓는 순간이 어쩌다 있었는데, 바로 지금처럼 송아가 과 친구들과 쳐들어올 때였다.


“안녕, 오늘도 변함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군. 기특하다 김민지.”


나는 송아 뒤에 선 친구들과 눈으로 가볍게 인사하며 말했다.


“그래. 바쁘니까 빨리 주문해.”

“일부러 너희 가게 매상 올려주려고 왔는데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흑흑흑.”

“아르바이트생으로서는 너무 바쁜 건 또 안 좋거든.” 나는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그래서 뭐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송아는 툴툴거리면서 대답했다.


“쳇, 새우 버거 세트 4개.”

“주문받았습니다.”


송아와 친구들은 번호표를 받아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내가 도저히 끼어들지 못할 각종 연예, 가십 등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송아는 나하고 있을 때는 저런 주제를 꺼내지 않았다. 내가 그쪽으로 관심이 없었기에, 최대한 나를 배려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나에게 그럴 자격은 없지만 말이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손님.”


벌써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나는 몰려오는 손님들을 향해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아와 친구들을 바라봤다. 그 애들은 테이블 위에 책과 노트북을 올려놓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마도 과제, 하지만 자리에 앉은 지 벌써 두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민지야, 쟤네 언제 가냐?”


역시나, 점장님이 소리 없이 내 옆에 다가와 항상 하는 물음을 던졌다. 나 역시 항상 짓는 무심한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두 시간 안 됐죠?”

“5분 전이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두 시간까진 봐주세요. 보통 뷔페도 두 시간이잖아요.”


내 말에 점장님은 팔짱을 끼고 불평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뷔페가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이잖니.”

“대학가 패스트푸드점이니까 좀 봐주세요.”


그때 송아와 친구들이 노트북과 책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봤죠?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자 점장님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송아가 출입문으로 걸어가면서 나에게 말했다.


“민지야, 우리 이만 가볼게. 일 열심히 해.”

“민지야, 안녕.”

“내일 보자.”

“너무 무리하진 마.”


나는 손을 흔들어 답해주었다. 애들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조금 부끄럽긴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이런 일상적인 인사가 과거와 비교해 내 인간관계가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증거였다. 비록 송아를 제외하면 형식적인 인사이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 형식적인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나가고 우리 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무리가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거의 열 명이나 되는 숫자였다. 아마도 의기투합한 동아리 멤버 같이 보였다.


좋아, 다시 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는 다가오는 남학생들을 향해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손님.”






오후 11시가 됐다. 나는 오후 내 입고 있던 유니폼과 모자를 벗어 사복으로 갈아입고 점장님과 다른 직원들에게 퇴근 인사를 한 뒤 근처 버스정류장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이제 두 번째 아르바이트 장소인 편의점으로 향해야 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우리 학교 학생으로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술에 취한 채 인사불성이 되어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왕이면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싶었지만, 벤치 아래에 신선한 피자가 펼쳐져 있는 게 보여서 조금 멀찍한 곳에 섰다.


여름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였지만 밤 공기는 여전히 차가운 편이었다. 나는 숄더백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휴대폰에 연결하면서 음악을 틀었다. 늦은 밤에 어울리지 않는 신 나는 노래가 재생돼서 미리 만들어둔 ‘밤’ 재생목록을 틀었다.


잔잔하게 마음을 감싸주는 음악에 취해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하면서 불쾌한 냄새가 날아왔다. 정류장 안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주변에 다른 사람도 많은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있는 힘껏 찡그리면서 그를 노려보면서 정류장 벽 뒤로 몸을 옮겼다.


생각 같아서는 공공장소에서는 금연이라는 걸 모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 일로 아르바이트에 늦으면 곤란했다.

그런데 내 생각을 대신 실천해준 사람이 있었다.


“야, 너 지금 담배 피냐?”


정류장 안쪽에서 술에 잔뜩 취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벤치에 누워있던 남자인 것 같았다. 그의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 자식-, 나 무시하냐? 버스 정류장은 금연이라고! 금연!”


발로 바닥을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안쪽의 일을 무시하고 음악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몇몇 사람들이 불안한 얼굴로 정류장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의아해하며 정류장 안을 살펴봤다. 담배 피던 남자와 술 취한 남자가 서로 주먹다짐을 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 문이 열리자 기사 아저씨가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거기! 그만 싸워!”


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은 나는 기사 아저씨가 빨리 버스를 출발시켜주길 바랬다. 그런데 아저씨는 버스 배차 간격보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있는 두 젊은이가 걱정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먼저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와 통화를 한 뒤 운전석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두 젊은이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 싸우라니까!”

“아저씨는 무슨 상관이야!”

“이 자식들이 정말!”


아저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싸움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방해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행동이 더욱 험해졌다.


“이 녀석들이! 말을 하면 알아들어!”


아저씨까지 싸움에 가담하면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입에서 나왔다. 다행히 주변 남자들이 맞을 것을 각오하고 뛰쳐나와 세 사람을 뜯어말린 덕분에 큰 싸움까지는 번지지 않았다. 담배를 폈던 남자는 반성도 하지 않고 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고 술 취한 남자는 그런 남자를 손가락질하며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자식! 또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펴!”


이제 됐으니까 제발 빨리 가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디선가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공권력의 힘은 대단했다. 두 명의 경찰은 아비규환이었던 정류장을 순식간에 정리됐다.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던 남자는 강아지처럼 온순해지고, 담배를 피던 남자는 그 자리에서 벌금을 물었다. 그리고 드디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안심하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1시 28분. 다음 아르바이트 시간인 12시까지 편의점에 도착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남으면 잠시 집에 들렀다 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첫 번째 신호등이 지날 때 기사 아저씨가 차내 방송으로 말했다.


“지금 버스에 타고 있는 학생분들. 아까 전에 그 싸움 봤겠지만 웬만하면 그러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리고라는 접속 부사가 있었지만 기사 아저씨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대신 가벼운 한숨이 방송을 통해 들렸다. 말이 떠오르지 않은 걸까, 아니면 하고픈 말이 있지만 해서는 안 될 말이라 생각해서 입을 다문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방금 그 싸움이 기사 아저씨에게 불편했던 것 같다.


나는 휴대폰 타이머를 맞추고 눈을 감으며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부족한 잠을 최대한 보충해야 했다. 마침 베토벤의 비창 2악장이 이어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잠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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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대학교 -9- 14.11.12 47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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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중학교 -4- 14.10.13 741 5 11쪽
5 중학교 -3- 14.10.10 614 5 10쪽
4 중학교 -2- +1 14.10.08 796 6 8쪽
3 중학교 -1- 14.10.06 699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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