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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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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127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0.24 09:00
조회
728
추천
6
글자
13쪽

대학교 -1-

DUMMY

내가 입학한 대학교에서는 평균 두 달에 한 번 꼴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외부인 강연을 했다. 그렇게 학교를 찾아오는 외부인은 다양했다.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해 부적절한 뒷거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오는가 하면, 한창 텔레비전에 출연해 주가가 오른 사람이 오기도 했다. 물론 강연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강사의 인기에 비례했다.


나는 외부인 강연을 잘 듣지 않았다. 자취방 월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두 개나 하고 있었고, 잠깐 시간이 남을 때는 어김없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했다. 그런 내가 강연에 참가할 때는 누군가의 꼬드김 때문이었다.


“헤이, 김민지! 강연 듣는데 같이 가자!”


같이 갈래? 도 아니고 같이 가자!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묶은 머리가 어울리는 최송아였다. 성격이 활발해 두루두루 인기가 많은 그 애가 나에게 특히 친하게 구는 건 우리가 한 건물에 살고 있어서였다. 나는 1층, 송아는 2층. 아침에 마주치는 건 기본이요, 가끔 우리 집에 쳐들어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 때 일도 있어서 항상 그 애와 거리를 두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송아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도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집이 가까우니 그만큼 자주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학점에도 반영 안 되는 걸 뭐하러 듣니?”


거절의 말이었지만 송아는 내 팔을 잡아끌며 억지를 부렸다.


“학점에는 반영 안 되지만 인생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어떤 식으로?”

“우리의 가슴 속에 뿌리 뻗어 평화의 싹을 틔우는 식으로?”


나는 걸음을 일명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군요 표정을 지었다. 송아도 자신의 말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혀를 살짝 내밀었지만, 여전히 속으로는 그래도 재미있지? 하고 묻는 얼굴이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니. 내가 다 부끄럽다.”

“같이 안 가면 옆에서 비슷한 말 할 계속 거야.”

“협박이냐.”

“협박이다.”


코맹맹이 목소리로 대답하는 송아는 흠집 하나 없이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 딱 어울린다. 딱히 강연을 듣고 싶지도 않고 필요도 없지만, 송아가 부탁 겸 협박을 해대면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빌 때만이었다. 아르바이트 시간과 겹친다면 송아라도 반드시 거절했다.


“알았어. 가자.” 나는 강연이 열리는 강당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그런데 오늘은 누가 오는데?”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자기 계발 강사라는데 TV에도 자주 나오는 사람이래.”

“하아, 그놈의 자기 계발.”

“그래도 TV에서 하는 말 보니까 괜찮더라. 넌 본 적 없어?”

“우리 집에 텔레비전 없는 거 알면서 그런 말 하니.”


그 해, 나는 학점과 돈에 이리저리 치이느라 생활에 여유가 없는 조금 신경질적인 성격의 영문학과 3학년생이었다.






자기 계발 강사의 강연은 도서관에 있는 수십, 수백 권의 책들과는 다르면서도 똑같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처음에는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질 만큼 새로운 이야기였는데 결국에는 같은 얘기로 귀결됐다. 노력해라, 포기하지 마라, 하지만 운도 필요하다.


결국 깊은 실망을 느끼고 있을 때, 이제까지 계속 서서 강연을 진행하던 강사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지금 다른 자기 계발서하고 다른 게 없다고 속으로 실망하시는 분들 계시죠?”


그 말이 나오자마자 마음을 들킨 웃음이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나는 겉으로는 딱히 반응하지 않고 속으로 그걸 알면서 왜 강연 내용이 그따위입니까? 하고 소심하게 항의했다.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런데 진리라는 건 말이죠.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머니 잔소리같이 계속 들어 귀에 딱지가 붙을 말들, 그 말들이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책을 사지 않아도, 이런 강연을 듣지 않아도 모두 진리를 알고 있는 겁니다. 다만 실천하기 어려울 뿐이죠.”


진심을 담은 듯한 강사의 목소리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어두워서 강사가 보진 못하겠지만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강사가 말을 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이 이 진리를 실천하게 하느냐? 극단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주먹을 입에 가져가 헛기침을 하고 “제가 무명이었던 시절에 고시원에 살았는데요. 제 바로 옆방에 사는 사람이 락스를 두 병이나 마셨습니다. 자살시도였던 거지요.”


순간 내 몸이 움찔했다. 설마 학교 강연에서 자살에 대한 얘기가 나올 줄이야.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고시원 벽은 매우 얇습니다. 계속된 기침 소리에 저하고 건넛방 사람이 동시에 상황을 파악하고 문을 따고 들어가, 구토하면서 신음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급히 119를 불렀죠. 다행히 그 사람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작은 박수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강사는 박수 소리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말을 계속했다.


“병원에서 한 달 동안 입원하고 돌아왔을 때, 그 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더 이상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됐고, 그 좋아하던 술도 단박에 끊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덕분에 전 밤에 잘 잘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사람이 술만 마시면 벽 너머에서 신세 한탄이 들려와 될 공부도 못했거든요.”


농담에 분위기를 맞춰주려는 힘없는 웃음이 지나갔다.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그 사람은 완전히 바뀌어 다음 사시에 합격했습니다. 그렇……”


시끄러운 박수 소리가 강사의 말을 끊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가장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단어가 합격이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광경이었다. 아마도 4학년 졸업반 사람들의 박수가 가장 컸을 것이다. 지금 그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게 합격이었을 테니. 그러고 보면 대학교는 합격으로 시작해 합격으로 끝나는 구조인 것 같다. 입학 합격, 입사 합격…….


박수 소리가 잦아들고 강사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살 시도를 해야 하는 건 아니죠. 그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사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화이트 보드에 큼직한 글자를 써가며 강연의 핵심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더 이상 그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강연이 끝나고 강당을 나올 때 송아가 말을 걸어왔다.


“민지야.”

“응?”

“자살하는 사람들 정말 이해 안 되지 않아?”


나는 노골적인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도록 목소리를 붙잡고 얼굴에 궁금한 표정을 띄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살다 보면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는 법인데 한때 힘들다고 죽는 건 바보 같잖아. 강연에서 말한 그 사람도 나중에는 사시 합격했고.”


나는 송아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만 해도 중학교 때 자살시도를 떠올려보면 그 당시 일이 과연 자살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 정도였다. 그러니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커다란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자살시도를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 이해란 원래 착각이다. 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않는 이상, 사람이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다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송아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노력이라니? 무슨 노력?”

“그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본심을 살짝 비추기로 했다. “그 사람이 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

“이해하려는 노력?” 송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당연히 공부가 잘 안 돼서 그랬던 거 아니야?”

“그렇게 간단한 이유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만약 그거라면 생각해보자. 아까 그 강사 나이가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던데 그렇다면 그 사시 합격한 사람도 지금쯤 비슷한 나이겠지?”

“그렇겠지.”

“그렇다면 그 사시 합격한 사람의 나이를 유추해보자. 강사는 그 사람을 형이라고 말했어.”

“응? 사람이라고만 하지 않았어?”

“했어. 딱 한 번. 아무튼 그 사람보다 나이가 많으니 현재는 30대 후반 혹은 벌써 40을 넘었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그 자살시도가 10년 전 얘기였다고 해도 당시 그 사람은 20대 후반이었다는 얘기가 돼. 아마 곧 서른이 되는 시점이었겠지.”

“오오, 상상이 되기 시작했어.”

“잘됐네. 그럼 조금만 더 덧붙여 보자. 고시원에서 방 한 칸 얻어서 공부만 하는데 성적이 항상 안 좋아. 그런 데다가 내일모레 서른이지. 이뤄 놓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모아놓은 돈도 없어.”


송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 벌릴 정도로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았으려나?”

“그럴 수도. 혹은 부모님이 병으로 입원해있다거나. ……이 정도만 해도 되겠다. 상상해보니까 어때?”

“막막하네.”

“상상만 해도 그 정돈데 현실로 다가오면 어떻겠어?”


송아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잠시 걷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난 이해가 가지 않아. 사람, 생물이라면 원초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어떻게 자살할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죽을 용기로 다른 일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시에 합격했다면 기본적으로 실력도 있는 사람이었다는 얘긴데 학원 강사라도…….”


순간 나는 소리를 꽥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죽을 용기로 살라는 정말 어리석고 무책임한 말이었다. 인간이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는 건 어린애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어째서 삶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지는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앞에서 막막하다고 동의까지 해놓고 말이다.


속이 탔다. 하지만 나도 중학교 때 자살시도가 없었다면 송아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참을 인자를 몇 번이고 쓰면서 참아냈다.


“뭐,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니까.”


그 말로 불편한 대화를 끝내려고 할 때였다. 정문으로 가는 길 근처에 있는 벤치에 한 남자가 홀로 앉아있었다.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보다 학번이 높지만 군대를 다녀오는 바람에 학년은 우리보다 낮은 2학년인 이재명 선배였다.


복학생. 선배는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우울한 그 단어의 산 증인이었다. 학과 내에 동기도 없고, 그나마 성격까지 내성적이라 친하게 지내는 사람마저 없었다. 그나마 선배를 보면 인사를 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나였다.


“선배, 안녕하세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선배는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옆구리를 찌르자 마지못해 송아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

“응. 안녕.”


선배는 눈동자만 굴려 우리 얼굴을 확인하더니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송아를 잡고 일부러 잠시 멈춰 서있다가 선배가 우리에게 할 말이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송아가 선배와 우리 사이의 거리를 확인한 뒤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제 저 사람 무시할 때도 되지 않았어?”

“매일 보는 사람을 어떻게 무시해?”

“이미 다른 사람들은 다 무시하고 있거든요? 댁이 유난히 이상한 거거든요?” 송아는 질렸다는 표정을 하면서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저 사람 처음부터 무시하려고 한 것도 아니잖아? 인사를 해도 건성으로 받고, 누구하고 말하려고도 하고, 학과 행사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지. 내 말 틀렸어?”

“학과 행사에는 나도 참여 안 하는데.”

“너는 일해야 해서 그런 거고. 그런데 이상하네? 너 왜 자꾸 저 사람 편드는 거야? 관심 있는 거야? 그런 거냐?”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내 어깨를 때리는 송아의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났다.


“관심은 무슨. 동정도 관심에 들어간다면 관심이겠다만.”

“동정. 흐음, 그래. 동정도 관심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 정말 그 이상은 아니지?”

“아니라니까. 그나저나 난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다. 괜찮지?”

“응. 나중에 선배들하고 놀러 갈게.”

“서비스 없다?”

“알고 있어.”


송아와 헤어진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이재명 선배는 아직도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제 보니 벤치 자리도 정중앙에 턱 하니 앉아 자리를 찾는 다른 사람들이 앉기 힘들게 하고 있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나는 몸을 돌리고 학교 정문을 향해 걸었다. 저 사람이 저러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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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사 -2- 14.11.21 464 2 10쪽
22 회사 -1- 14.11.19 51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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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학교 -10- 14.11.14 581 3 14쪽
19 대학교 -9- 14.11.12 47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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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대학교 -3- 14.10.29 64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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