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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전직천사 가온의 생활적응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7.19 17:56
최근연재일 :
2022.08.04 14:15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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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6,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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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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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에필로그 – 하륜의 이야기 2

DUMMY

가온이 손을 내밀었다. 하륜이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하륜이에요. 여기서 수련하고 있어요.”


“그래요? 저도 수련생인데. 언제 정식이 될지 모르지만요.”

그녀의 웃음소리가 맑게 울렸다.


가온은 구름바다 너머 하늘 끝을 바라보았다. 하륜이 나지막하게 가온의 이름을 되뇌었다.

“네? 뭐라고요?”

“아니, 이름이 예뻐서요.”


가온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 가야겠어요. 돌아가는 길이 생각났어요.”


하륜도 같이 일어섰다.

“벌써요?”


가온이 조금 더 머물기를 바랐다.

무언가를 이렇게 간절히 바란 것은 처음이었다. 선위가 되는 것조차 이렇게 강렬하지 않았다.


가온은 발을 구르며 통통 튀어 올랐다.

“더 늦으면 길이 안 보이거든요. 또 길을 잃으면 담아가 걱정할 거예요.”


가온이 날아오르려 했다. 하륜은 급한 마음에 그녀의 팔을 잡았다.

“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죠?”

“당연하죠. 이렇게 빛나는 사람은 처음인걸요.”


공중에 떠오른 가온이 고개를 숙여 하륜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다음에 꼭.”


그녀는 어느새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하륜은 쿵쿵 뛰는 심장을 내버려 두고 그녀가 사라진 하늘만 바라보았다.


‘가온.’

하륜은 오래도록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스승 동명이 결계에 들어가기 전날 하륜은 동명을 찾아갔다.

“차원의 문지기가 되겠습니다.”

“중산에서 수련하기가 어려우냐?”

“아닙니다. 더 뜻깊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동명은 말없이 하륜을 바라보았다. 아무 이유 없이 무엇을 바라는 하륜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듯 확고하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문지기 정도는 다른 신선도 할 수 있다. 너는 선위로서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왜 그러느냐?”

“중산도 수련하기에 좋지만, 번뇌가 많은 인간계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간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고요.”


“정말 그게 다라고?”

동명은 더 캐묻지 않았다.

하륜이 가끔 먼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니 오래전 하륜이 던진 질문이 생각났다. 그때 하륜은 아직 어렸고 천계에 다녀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신선이 천계에서 살면 안 되나요? 아니면 천사가 선계에 와서 살 수는 없나요?’

‘천계와 선계는 직접 왕래할 필요가 없지, 안 되는 건 아니란다.’


‘천사들과 같이 일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주로 인간계에서 만나 함께 일하지. 사람과 똑같이 지내면서 일하기도 한단다.’

‘천사들은 자주 내려가겠죠?’

‘그렇지. 녀석, 아직 임무를 받지도 않았는데 열심이구나.’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동명은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제자가 애타게 기다리는 상대가 누구인지. 왜 차원의 문지기를 맡으면서까지 인간계에 있으려는지.


동명은 하륜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허락했다. 대신 결계에 자주 들어와 영혼을 정화하고 신력을 보충하라고 부탁했다.


“너에게만 특별히 결계를 열어주겠다.”


*


하륜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가온이 생각나 혼자 미소 지었다.

어떤 모습으로 지낼까 상상하면서 한때는 창고였고, 한때는 주막이었고, 병원이기도 한 차원의 문을 지켰다.


신은 가끔 문을 열어둔다.

저절로 흘러가도록 놓아두고 마냥 기다리다가도 아주 드물게 기다리는 자에게 대답한다. 간절하게 기다리고 애타게 바라는 자에게, 귀찮은 파리를 쫓듯이.


가온을 다시 만나자마자 곧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천사장이 기억을 지웠다고 해도 가온은 여전히 가온이고, 그가 여전히 사랑하니까.


언젠가 만날 것이다. 마음은 한결같고 그들에게는 영원한 시간이 있으니까.


*


기다리던 그녀가 다시 왔다.


동명의 부름을 받고 결계로 들어갔을 때 하륜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녀의 빛은 여전히 영롱하고 아름다웠지만, 목에 남은 흉터를 보자 가슴이 먹먹했다.


자신을 잊지 않으려 얼마나 애썼는지 흉터가 말해주었다.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해도 좋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쓰러진 가온을 안고 돌처럼 굳어버린 하륜을 위해 동명은 잠시 기다렸다.

사랑하는 제자가 겨우 정신을 차리자 그제야 안심했다.

“기연랑에게 데려다주어라.”

“그믐의 손님인가요?”


동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다.

가온이 어떤 선택을 할지 확실하지 않기에 동명도 기다리기로 했다.


차원의 문지기로 내려온 가온은 당연히 하륜을 알아보지 못 했지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지켜야 했다. 인간계 생활도 서투른데 천사의 능력을 잃고 사람의 몸으로 지낸다니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이 없었다.


하륜은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골목에서 마주쳤다.

가온이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아, 이건 말이죠. 산책, 그래요! 산책인 거죠.”

“안 물어봤는데요.”

“그렇죠. 안 물어봤죠. 에, 에취!”

”그 가방은 뭐예요?“


가온은 가방을 얼른 품에 안았다. 입을 삐죽거리며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몰라요.“

하륜은 웃음이 터져 나와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웃는 거예요?“

가온이 정색을 하고 하륜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곧 가온도 웃음을 터뜨렸다.


가온이 그의 옆에 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바로 옆방에서 지낸다. 같이 대화하며 같이 밥을 먹고 가게를 운영하며 월세를 내겠다고 열심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외치던 가온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방에서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가끔 구호를 외쳤다. 언제나 활기 넘쳤다.


*


한적한 카페에서 하륜은 반지를 쓰다듬었다.

선물을 만든다며 손가락마다 바늘구멍을 내는 가온이 생각나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뭐가 그리 좋아요?“

기연랑이었다. 떠날 준비를 마친 기연랑은 분신술을 풀고 하나로 돌아왔다. 하륜이 대답하려 하자 기연랑이 손을 들었다.


”됐어요. 됐어. 얼굴에 다 쓰여 있어요.“

”준비는 다 했어요?“

”그럼요. 벌써 삽살이와 참새도 와 있고.“

”삽살이가 고생 많겠네요.“


”그러게요. 가온님이 워낙 길치라서 말이죠.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에서도 길을 잃고 헤맨다고 도저히 놔둘 수가 없대요.“

”길을 잘 찾는 것이 항상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하륜이 말하자 기연랑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어련하시려구요.“


가온이 카페로 들어왔다. 여전히 씩씩한 모습으로 노리개 하나를 들고 있었다.

”기연랑!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네요?“

”이것도 내 모습은 아니죠.“

”자, 선물이에요.“


가온이 노리개를 내밀었다.

벽걸이 장식으로 걸어야 할 만큼 커다란 노리개였다. 가운데에 파라다이스 빌라 식구들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가온이 사진 옆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 봐요. 여기는 내가 바느질한 거예요. 어때요?“


가온이 생글생글 웃자 기연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법 쓸 만해졌어요. 좀 더 연습해야 하지만요.“


”언제 돌아와요?“

”오백년이 될지 천년이 될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잠깐이에요.“

”기연랑이 없는 빌라는 상상이 안 돼요. 꽃술이 없는 건 더 슬프구요.“


기연랑이 숨을 삼키며 카페를 돌아보았다.

”제가 올 때는 다른 건물이겠죠? 나무 위의 집이나 호수에 떠 있는 수상 주택도 좋겠네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기연랑.“

가온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하륜은 웃으며 물을 한 컵 따라 건네주었다.

기연랑이 물을 다 마시고 가온과 하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런. 시간이 되었네요. 그럼 이만.“


의자에 앉아있던 기연랑이 갑자기 사라졌다. 컵은 빙그르르 테이블 위에서 혼자 돌다 멈추었다.


가온은 망연자실 빈 의자만 바라보았다.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다니···.“


가온은 가슴이 먹먹한지 말을 잇지 못했다. 하륜도 서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나 겪은 일이지만 떠날 때마다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돌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없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가온님, 은서와 바우가 올 때까지 문을 잘 지켜야 해요.“

하륜이 가온에게 당부했다.


”그럼요, 잘해야죠. 그믐의 손님도 잘 찾아내고요.“

가온이 굳은 결심을 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문을 꼭 지키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잠깐이었다.

카페 밖에서 삽살이가 꼬리를 흔들자 잊었던 약속이 생각나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오늘 갤러리 오픈식인데. 이번에는 저도 작품을 냈잖아요.“

가온이 가볍게 통통 뛰어가 문을 열었다. 문을 닫다 말고 뒤돌아보았다.


손바닥으로 하륜에게 하트를 날리며 윙크했다.

”이따 봐요.“


창문 너머로 가온이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걷는 모습이 보였다.

삽살이와 참새가 그 뒤를 따랐다.


가온을 바라보는 하륜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미소가 그의 빛을 더 밝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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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번 이야기는 마무리되어도 22.08.04 36 0 -
» 에필로그 – 하륜의 이야기 2 22.08.04 47 0 10쪽
53 에필로그 – 하륜의 이야기 1 22.08.04 34 0 10쪽
52 꽃이 질 때 다시 필 것을 알고 있듯 22.08.04 37 0 13쪽
51 사라져도 좋은 추억은 없어 22.08.04 46 0 9쪽
50 마지막 대결 22.08.03 34 0 12쪽
49 우연을 가장한 만남 22.08.03 36 0 12쪽
48 비바람을 견뎌야 열리는 씨앗 22.08.03 35 0 10쪽
47 움직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야 22.08.03 40 0 12쪽
46 꽃잎에 어린 눈물이 새벽을 깨우면 22.08.02 37 0 12쪽
45 내 깊은 울음이 기억하는 이름 22.08.02 37 0 9쪽
44 잃어버린 기억 6 – 부딪치는 두 세계 22.08.02 39 0 12쪽
43 잃어버린 기억 5 – 기다림이 꽃을 피운다 22.08.02 40 0 11쪽
42 잃어버린 기억 4 – 갈 곳도 없이 22.08.01 40 0 8쪽
41 잃어버린 기억 3 – 머물지 못하고 22.08.01 63 0 9쪽
40 잃어버린 기억 2 - 숨어있는 고리 22.08.01 36 0 10쪽
39 잃어버린 기억 1 – 근원을 찾아서 22.07.31 36 0 10쪽
38 뭔가 일이 터지겠군요 22.07.31 36 0 10쪽
37 비바람이 지나면 한 뼘 더 자랄 거야 22.07.31 42 0 10쪽
36 운명적인 만남을 운명이라 믿으면 안 돼 22.07.30 42 0 10쪽
35 우리에겐 축제가 필요해요 22.07.30 33 0 10쪽
34 어떤 빛깔도 어울리는 오늘 22.07.30 37 0 10쪽
33 새 한 마리가 알에서 나올 때 22.07.29 32 0 10쪽
32 가면이 두꺼워지면 눈물도 늘어나 22.07.29 30 0 11쪽
31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야 22.07.29 34 0 11쪽
30 문이 열리면 새로운 비밀이 들어서고 22.07.28 31 0 11쪽
29 길목마다 서성이는 바람 22.07.28 36 0 10쪽
28 고개를 돌려요, 그림자가 사라질 거예요 22.07.28 28 0 10쪽
27 가끔 잃어버려야 맞는 길이죠 22.07.27 30 0 11쪽
26 이렇게 만난 인연도 소중하니까 22.07.27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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