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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전직천사 가온의 생활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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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7.19 17:56
최근연재일 :
2022.08.04 14:1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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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3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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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운명적인 만남을 운명이라 믿으면 안 돼

DUMMY

리엘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빌라 옥상은 황혼의 모래사장으로 바뀌었다. 맑은 바닷물이 출렁였고, 잔잔한 파도소리가 들렸다.


바우의 전공은 드럼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기타를 연주했다. 기타연주에 맞춰 은서가 춤을 추었다. 나는 반주 없이 천사의 노래를 불렀다.


역시 정령의 춤은 달랐다. 정령들은 바람처럼 공기처럼 춤을 춘다더니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것처럼 가벼워 보였다.

손끝으로 바람을 부르고 몸짓으로 리듬을 만들었다.

과거로 갔을 때 본 요정들의 춤과 비슷했다. 즐겁고 유쾌해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리엘은 끊임없이 환호하고 손바닥이 달아오르도록 손뼉을 쳤다. 결계를 쳐놓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나도 바우와 은서를 보고 소리 지를 정도였으니.


“이런 모임에 오다니 행운이에요. 천사의 노래가 아름답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듣는 건 처음이거든요. 이 감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리엘은 은서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은서님, 역시 정령의 후예군요. 산들바람이 머무는 것 같았어요. 숲의 향기가 느껴져요.”


리엘은 나와 은서에게 스노우볼을 하나씩 주었다. 뒤집으면 모래가 흩날리니 샌드볼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구슬이라고 해야겠다.

그녀의 구슬은 바우가 준 것과 비슷했는데 훨씬 정교하고 더 독특하고 아주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받은 구슬에는 바다 속 궁전이 들어있었다.

건너 차원의 인어족이 사는 집이라니 용궁도 근거 없는 상상이 아니구나. 조각이 너무나 섬세해서 들어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서에게 준 것은 바다 밑 숲이었다.

산호초와 비슷하게 생긴 알록달록한 나무들인데 놀랍게도 잎이 흔들렸다. 숲 가운데 아담한 오두막도 있었다.


은서와 바우는 그믐의 모임이 아쉬운지 식탁을 치우고도 한동안 기타를 연주하고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을 본 리엘이 흐뭇하게 웃었다.

“라버린이 차원을 넘어간다고 했을 때는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네요.”

“정말 보기 좋아요. 둘이 너무 잘 맞아요.”


나는 리엘의 구슬이 너무 예뻐서 손에서 놓지 못했다.

리엘이 구슬에 손을 올리고 무슨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손에서 생겨난 빛이 구슬을 감쌌다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내 손에도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여기에는 특별히 정화의 힘을 넣었어요.”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특별한 힘’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우리 차원으로 오세요. 가온님과 은서님을 위한 연회를 마련할게요.”

해밀의 차원에 간다고?

바다 속에서 인어가 된 내 모습이 그려졌다. 커다란 만타가오리처럼 부드럽게 펄럭이며 날아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황홀했다.


멍하니 앉아 마음으로 헤엄치는데 아무와 얘기하는 하륜이 보였다. 갑자기 만타가오리 옆으로 하륜이 튀어나왔다.


그와 함께 헤엄치는 만타가오리 때문에 놀라서 침을 잘못 삼켰다. 기침이 심하게 나왔다. 아니, 거기서 하륜이 왜 나와?


“괜찮아요?”

언제 왔는지 하륜이 물컵을 내밀었다. 리엘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태연한 척 물컵을 받았다.

한 모금으로 진정시키려 했지만 기침은 딸꾹질로 바뀌었다. 이 몸은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이렇게까지 솔직한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다.


숨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쉬기를 반복했지만 소용없었다.

하륜이 내 등에 손을 얹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등을 쓸어내리자 어느새 편안해졌다.


돌아보니 그는 여느 때처럼 다정한 얼굴이었다. 고맙다는 인사 대신 고개를 숙였다. 볼이 달아올랐다. 얼굴은 안 보일 테니 다행이야.


오늘은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하는구나.

결계의 정수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인사를 늘어놓았다. 하륜이 그만하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그 정도 인사를 해야 다음에 또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계산이었다.


한 편으로는 언제까지 신세를 져야 하나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문지기를 하는 내내 신세를 지겠지. 그러니 인사라도 잘해야지.


*


리엘이 돌아간 다음 날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손님이 왔다. 담아였다.

사람과 똑같이 꾸미고 가게로 들어오는데 환상이 아닐까 내 눈을 의심했다.


“담아?”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담아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스스로 잘 지낸다고 믿었는데 마음속까지 그렇지는 않았나 보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버텼던 걸까.


“사람이 되더니 아예 갓난아이가 된 거야?”

“어떻게 왔어? 일하러?”

“콘서트 보러 왔지.”

뜻밖의 대답이었다. 담아가 바우의 콘서트 때문에 사람처럼 꾸미고 여기 왔다고?


멍한 얼굴로 바라보자 담아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랑 콘서트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맞아. 언제 또 이런 일을 해보겠어.”

담아가 그렇다면 그렇게 믿어야지.


언제나 나를 보살펴주던 담아를 보니 편안해졌다. 하륜의 도움을 받으며 안심하는 마음과는 다른 종류였다.


그동안의 일을 얘기하며 새로 구한 물건도 보여주었다. 복원술을 배우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담아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워했다. 격려의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는 동안에는 무심한 얼굴이었다. 내가 말을 시작하면 거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의 태도였다.


신의 계획이 어그러질 때 제 자리로 돌려놓는 것도 천사들의 몫이었다.

담아의 눈빛은 그런 작전을 짤 때의 눈빛이었다. 그 정도로 중대한 일을 앞두고 콘서트를 보러 여기까지 내려올 리 없는데.


담아에게 쉬고 있으라고 하고 카페로 달려갔다. 하륜에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차를 부탁했다.


“담아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왔다고요?”

“네. 그런데 어딘지 피곤해 보여요. 몸이 편해지는 차도 있을까요?”

“그거야 가능하지만···.”


하륜은 차를 우리면서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나 저기나 무슨 고민이 그리도 많은지.


차를 내주면서도 다른 말은 없었다.

내가 조금 더 예민했다면 그때 알았을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담아와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계획을 세웠다. 고민한 끝에 리엘과 같이 갔던 별궁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세상은 계획대로 되는 곳이 아니었다.


차를 마시자마자 담아는 나갈 준비를 했다.


“무슨 일 있지?”

콘서트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다. 순진하게 그 말을 믿다니. 사람의 몸이 되면 생각도 몸에 갇힌다니까.


담아는 준비를 마치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영혼수집가 알아?”

“검은 그림자들?”

“너도 봤어?”


“응. 예전에는 자주 봤는데···. 그러고 보니 고연당에 안 간지 한참 되었네. 사람들을 쫓는 그림자들이 있어. 왜?”

“영혼수집가들이 사람의 목숨을 흔들고 있어.”

담아는 테이블 끝을 톡톡 두드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많지 않았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사라지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도 없어. 사람들은 영혼의 대부분을 빼앗기고 수명이 줄어든 것도 물라.”

담아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하려고?”

“일단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우두머리를 찾아야지.”

“대장이 있어?”

“응. 그자가 사람의 영혼을 조립해 영혼수집가를 만든대. 엄청난 힘을 가졌다지. 차원에서 넘어온 존재인가?”


“그런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지?”

“아직 몰라. 살랑이라고 불린다는 거 외에는.”

“살랑?”


순간 나는 몸이 뻣뻣해졌다.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검은 그림자의 협박이 생각나 혀가 굳어졌다.


“너도 알아?”

“응. 살랑이 데리러 온다고 했어. 천사의 혼이 필요하다고.”

“뭐?”

담아가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이 짙은 흙빛으로 변했다.


“넌 여기 있으면 안 되겠어. 빨리 천계로 돌아가자.”

담아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내 생각은 담아와 달랐다.

“살랑을 잡으려면 미끼가 필요하잖아.”

“그래서 네가 미끼가 되겠다고?”


“살랑이 찾아온다고 했어. 아직 안 왔지만, 가끔 그림자의 시선이 느껴져.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올 테니 오히려 잘된 일이지.”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는···. 넌 좀 특이한 체질이라 너무 위험해.”

“무슨. 나도 엄연히 천사인데.”

“지금은 아니지. 사람의 몸에 갇혀 있는 데다 감정이 너무 발달해서. 그런···.”

담아는 얘기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하든 나는 결심을 굳혔다. 그런 일이라면 더더욱 물러설 수 없지.


담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조심해. 나도 여기 오래 있지 못하거든. 요즘 사건이 많아서.”

“알았어. 걱정하지 마. “


여태까지 이 몸으로 인간계에서 버틴 실력을 봐. 염려 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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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잃어버린 기억 5 – 기다림이 꽃을 피운다 22.08.02 40 0 11쪽
42 잃어버린 기억 4 – 갈 곳도 없이 22.08.01 39 0 8쪽
41 잃어버린 기억 3 – 머물지 못하고 22.08.01 6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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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뭔가 일이 터지겠군요 22.07.31 36 0 10쪽
37 비바람이 지나면 한 뼘 더 자랄 거야 22.07.31 41 0 10쪽
» 운명적인 만남을 운명이라 믿으면 안 돼 22.07.30 42 0 10쪽
35 우리에겐 축제가 필요해요 22.07.30 33 0 10쪽
34 어떤 빛깔도 어울리는 오늘 22.07.30 37 0 10쪽
33 새 한 마리가 알에서 나올 때 22.07.29 31 0 10쪽
32 가면이 두꺼워지면 눈물도 늘어나 22.07.29 29 0 11쪽
31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야 22.07.29 3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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