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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전직천사 가온의 생활적응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7.19 17:56
최근연재일 :
2022.08.04 14:15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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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
추천수 :
23
글자수 :
246,751

작성
22.07.2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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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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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새 한 마리가 알에서 나올 때

DUMMY

울먹이던 하륜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 민망했다.

먹먹한 마음을 풀어내려고 억지로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근거 없는 의심에 이어 이번에는 질투와 민망함이라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못 들은 것이 내내 아쉬웠다.


일부러 흥겨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가게를 청소하는데 은서가 케이크와 커피를 들고 왔다.

”식사 안 했다고 해서 가져왔어요.“

”고마워요. 소설 마감 때문에 바쁠 텐데···.“

”쉬면서 해야죠. 너무 몰두하면 머리만 아파요.“


은서는 가게를 둘러보면서 장사가 잘 되는지 물어보았다.


”가끔 손님이 있으니까 사람 구경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다른 걸 추가해보세요.“

”어떻게요?“

”타로 카드 리딩은 어때요?“

”그런 건 할 줄 모르는데요.“


”괜찮아요. 사람이 미래를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니까 마케팅이죠. 사람들 고민이야 빤하잖아요. 거기서 거기거든요.“


은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내쪽으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성적이나 진로 걱정하다가 취업 고민하다가 결혼이니 임신이니 갈등하고 다음엔 자식 걱정하는 거죠. 때때 맞춰서 적당히 단서만 흘려주면 넘어온다니까요.“

”와, 은서님이 해도 되겠는걸요.“


”그러니까요.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살짝 흘려주면 되겠더라고요. 먹고 살 걱정 없고 잘 나가는 사람이 뭣 하러 생돈 내고 그런 걸 보겠어요. 안 풀리고 답답하니까 가는 거지.“

”그렇군요.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는데요.“


은서가 케이크를 잘라 접시에 덜어주었다.

”요즘 제가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거든요. 타로 리딩을 하다가 정령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죠.“

”그럼 은서님에게 배우면 되겠군요.“

”그렇죠! 천사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는 볼 줄 아니까 가온님에게 맞춤이죠.“


내게는 의미 없지만,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실은 팍팍하니 붙잡을 것이 필요하겠지. 불안하고 못 믿으니까.

진짜로 할 건 아니지만,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은서의 말을 끊지 않고 흥미 있게 들었다.


그때 갑자기 유미가 뛰어 들어왔다.

신나는 일이 있는지 들떠서 들어왔다가 은서를 보자 갑자기 얼굴이 굳었다. 표정이 변하는 것을 누구라도 알아차릴 정도였다.


유미는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생각하는 것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발끝이 바깥을 향했다가 돌아섰다가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다 무언가 결심했는지 은서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아줌마, 아는 사람이에요?“


은서를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걸 보니 시비 걸고 싶은가 보다. 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동조하기로 했다.

”이분은 소설가야. 꼭지라고 인터넷에 판타지 소설을 연재하고 있어.“

”그래요? 별로 유명하진 않나 보네요. 처음 들어요.“


아이가 가시 돋친 말을 뱉으니 은서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에게 생각신호를 보냈다.

‘바우님 왕팬이래요. 은서님이랑 같이 있는 걸 몇 번 봤나 봐요.’


그제야 은서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인 사이트라서 그래. 너도 19금 정도는 몰래 읽잖아?“

”아니요. 전 순수한데요.“

”책을 안 읽는 건 아니고?“

”아니에요!“


유미가 토라져서 고개를 돌렸다.

싸움을 걸고 싶어도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씩씩거리며 뭔가 쏘아줄 말을 찾는 눈빛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이 귀여웠다.


이번에는 은서가 일부러 유미에게 들리도록 귓속말을 했다.

”바우가 작곡한 배경음악 들어보셨어요?“

”벌써 올라갔나요?“

”잔잔하면서 소설이랑 잘 어울려요.“

”제가 볼 때는 소리 안 나던데.“

”업데이트했어요. 다음 회차부턴 동시에 올라갈 거예요.“

”와, 기대돼요.“


은서와 얘기하는 동안 유미의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쯤 되면 집에 간다고 일어날 것 같은데 의외로 잠잠했다.

왜 이렇게 조용한가 싶어 바라보니 굳은 얼굴로 은서의 목걸이를 보고 있었다.


은서가 항상 걸고 다니는 목걸이였다.

타오르는 태양 안에 숲의 정령을 새긴 나무 목걸이였다. 아버지 정령이 소멸하기 전에 남긴 것이라고 했다.


목걸이에서는 매화 향기처럼 아련하면서도 독특한 향기가 났다. 그 향기는 은서와 은서의 방에서 나는 향기와 비슷했다.


”이거···. 이거, 우리 엄마 거랑 똑같은 건데···.“

유미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소중한 사람이 남긴 거라고···.“

유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당황하여 은서를 쳐다보았다. 은서도 놀란 얼굴이었다.


”맨날 보고 싶다고 울어서···. 할머니 건 줄 알았는데···.“

유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은서가 단숨에 유미에게 물었다.

”너희 엄마 이름이 한송화?“


유미가 벌떡 일어났다. 양쪽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언니 누구예요? 왜 우리 엄마랑 똑같은 걸 하고 있어요!“

”음. 말하자면.“

은서가 설명하려 했지만, 유미는 팔뚝으로 눈물을 닦더니 그대로 뛰쳐나갔다.


”바우를 쫓아다닌 것이 아니었네요.“

가까스로 답을 찾았다. 바우가 없는 걸 알면서도 찾아오는 이유.


버스킹에서 처음 보았을 때 은서가 함께 있었으니 바우에게 끌렸는지 은서에게 끌렸는지 깨닫지 못했으리라.


은서는 예상과 달리 담담했다. 괜찮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엄마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있을지는 몰랐네요.“

”찾아갈 거예요?“

”글쎄요. 생각해 보지 않아서.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그분은 기다릴 것 같아요.“

”그러시겠죠.“


은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허리를 쭉 펴서 등받이에 기댔다가 다시 팔짱을 끼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한참 고민하던 은서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전에 온 손님 기억나요? 팔백 년 동안 살았다는. 나도 평범하게 살지 못해요. 아마 유미의 손자가 다시 손자를 낳을 때까지도 이 모습일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모습을 보여요.“


그녀의 말대로 보통 사람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떠나고 혼자가 되면 얼마나 두렵고 슬플까. 은서 곁에 바우가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보고 싶기는 하잖아요?“

은서가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안 보고 싶다면 거짓말이지만, 아직 용기도 없어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있죠.“

꽃술이 빚어 준 포도주를 꺼내왔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 고민만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그런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예요. 지금은 마시자고요.“

”아주 좋은데요.“

은서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애써 웃으려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유미는 조만간 다시 올 것이다. 그때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


바우의 콘서트가 이 주 후로 다가왔다.


중요한 시기에 그믐 모임을 준비하면서 바우는 상당히 들떠있었다. 마당과 계단까지 물청소도 하고 오랫동안 치우지 않은 잡동사니까지 내다 버렸다.


원룸에 짐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을까 싶었는데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많았다. 주로 홍보용품으로 받은 것인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며 내게 갖다 주었다.


바우가 왜 들떠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이번 그믐은 특별한가 봐요?”

“예. 엄마가 오거든요.”

“바우 어머니요?”


바우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니. 아니. 당연히 있겠지.

“그, 그쪽 차원에서 넘어온다고요?”

“예, 벌써 시간이 되었어요.”


바우는 달숲에 물건을 내려놓자마자 서둘러 나갔다. 다른 차원에서 온 문지기를 만나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바우를 쫓아 이 층과 삼 층 사이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바우는 문을 열고 어머니의 손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바우 어머니가 인어라고 했을 때, 등에 지느러미가 달리고 두 개의 다리에 큼직한 물고기 머리가 달린 반인반어를 상상했다.


지느러미가 보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키가 큰 여자가 나왔다. 호리호리한 몸에 바우 만큼이나 하얀 얼굴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본 얼굴인데. 어쩐지 낯익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간신히 떠올렸다. 인기 드라마에 나오는 탤런트의 얼굴이었다.

어, 어, 말을 더듬으며 여자의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호호호, 아가씨도 그 드라마 보는군요.”

목소리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그녀는 신비로운 느낌을 물씬 풍기면서도 품위 있었다. 세상에 이런 존재가 정말 있구나.


“저를 아세요? 아니, 그보다 안녕하세요? 가온이에요.”

“아, 천사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리엘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런데 원래 이 모습이세요?”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라서요. 똑같이 꾸며봤는데 어때요? 비슷해요?”

“완전, 완전히 똑같아요.”

양쪽 엄지를 동시에 들어 보였다.

“원래 모습으로는 다닐 수 없잖아요. 이왕이면 좋아하는 모습으로 골라야죠.”


리엘은 요란하게 손을 흔들었다. 웃는 입매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 것이며 들떠있는 목소리가 소풍을 하루 앞둔 어린아이 같았다.

그 설렘이 내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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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에필로그 – 하륜의 이야기 1 22.08.04 3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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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사라져도 좋은 추억은 없어 22.08.04 46 0 9쪽
50 마지막 대결 22.08.03 34 0 12쪽
49 우연을 가장한 만남 22.08.03 36 0 12쪽
48 비바람을 견뎌야 열리는 씨앗 22.08.03 35 0 10쪽
47 움직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야 22.08.03 40 0 12쪽
46 꽃잎에 어린 눈물이 새벽을 깨우면 22.08.02 37 0 12쪽
45 내 깊은 울음이 기억하는 이름 22.08.02 37 0 9쪽
44 잃어버린 기억 6 – 부딪치는 두 세계 22.08.02 39 0 12쪽
43 잃어버린 기억 5 – 기다림이 꽃을 피운다 22.08.02 40 0 11쪽
42 잃어버린 기억 4 – 갈 곳도 없이 22.08.01 40 0 8쪽
41 잃어버린 기억 3 – 머물지 못하고 22.08.01 62 0 9쪽
40 잃어버린 기억 2 - 숨어있는 고리 22.08.01 36 0 10쪽
39 잃어버린 기억 1 – 근원을 찾아서 22.07.31 35 0 10쪽
38 뭔가 일이 터지겠군요 22.07.31 36 0 10쪽
37 비바람이 지나면 한 뼘 더 자랄 거야 22.07.31 42 0 10쪽
36 운명적인 만남을 운명이라 믿으면 안 돼 22.07.30 42 0 10쪽
35 우리에겐 축제가 필요해요 22.07.30 33 0 10쪽
34 어떤 빛깔도 어울리는 오늘 22.07.30 37 0 10쪽
» 새 한 마리가 알에서 나올 때 22.07.29 32 0 10쪽
32 가면이 두꺼워지면 눈물도 늘어나 22.07.29 30 0 11쪽
31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야 22.07.29 33 0 11쪽
30 문이 열리면 새로운 비밀이 들어서고 22.07.28 31 0 11쪽
29 길목마다 서성이는 바람 22.07.28 36 0 10쪽
28 고개를 돌려요, 그림자가 사라질 거예요 22.07.28 28 0 10쪽
27 가끔 잃어버려야 맞는 길이죠 22.07.27 30 0 11쪽
26 이렇게 만난 인연도 소중하니까 22.07.27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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