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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전직천사 가온의 생활적응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7.19 17:56
최근연재일 :
2022.08.04 14:15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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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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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6,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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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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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길목마다 서성이는 바람

DUMMY

밤늦은 시각인데도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갈지자로 걷는 사람, 꼬부라진 혀로 중얼거리는 사람, 삼삼오오 노래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빛이 화려한 번화가로 나오자 사람들 뒤를 쫓는 그림자 병사가 보였다. 고연당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어두운 골목에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밝은 곳에 나가니 또렷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냥감이 된 것도 모르고 비틀거렸다. 그림자 병사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달숲으로 찾아온 살랑이 생각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언제부터인지 그림자 병사의 숫자가 늘고 있단다. 그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모른다. 휘청거리는 영혼을 사냥한다는 것 외에는.


‘영혼수집가에게 영혼을 빼앗긴 사람은 어떻게 되죠?’

내가 물었을 때 아무가 그때까지 알아낸 것을 들려주었다.


‘금방 죽지는 않아요. 감정도 꿈도 없이 오로지 돈을 위해 움직이죠. 사람들은 돈을 신처럼 모시니 영혼수집가들에게 좋은 먹이가 된 거죠. 그래서인지 계속 늘어나요.’


내가 지켜보는 것을 알았는지 그림자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졌다.

살랑을 만나게 될까 봐 조심하면서 내게 신호를 보내는 물건이 없는지 귀를 기울였다.


골목을 지나는데 희미하게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골목 깊이 들어갔다.


지저분하게 쌓인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며 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소리에 집중하느라 다른 물건은 보지 못했다.

의자를 옮기다가 쓰레기 더미가 무너져 내렸다. 와르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풀풀 날렸다.


재빨리 뒤로 물러선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다. 휴, 다행이야.


길게 숨을 내쉬는데 누군가 다가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아줌마?”

유미였다.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아 처음에는 못 알아보았다.


“여긴 웬일이야?”

“독서실 갔다 오는 길이요. 아줌마는 뭐해요? 뭐 훔쳐요?”

유미가 난장판이 된 주변을 둘러보았다.


“뭘 좀 찾으려고.”

“이건 쓰레기잖아요.”

“쓰레기 속의 보석 찾기라고나 할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유미가 어질러진 물건을 둘러보고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의 어깨를 잡아 돌려 골목에서 내보내려는데 이쪽으로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가 났지?”

“이쪽이야.”

생각보다 훨씬 소리가 컸던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들켜서 좋을 것이 없는데. 유미의 팔을 잡아당겨 벽 쪽으로 붙었다. 너무 긴장해서였을까.

벽 사이 틈으로 숨는다는 것이 벽 속으로 스며들고 말았다. 이런.


놀랄 틈도 없이 두 사람이 우리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자율방범대원 두 명이 널브러진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는데.”

“아무렇게나 쌓아놓으니 무너지지.”

깡통이 바람에 구르다 고장 난 선풍기에 깡 부딪혔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골목을 빠져나갔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확인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유미의 굳은 몸이 느껴졌다.


“어머,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웃음으로 넘기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정말 살기 힘든 곳이네.”

한숨이 나왔다. 그때서야 구석에 떨어진 나무 가락지가 보였다.


손가락에 끼기에는 너무 크지만, 날개 모양을 세밀하게 조각했다.

청동기 시대에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세월의 때가 묻었다. 나무 가락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상한데. 나무가 지금까지 썩지 않는 게 말이 돼?


“아줌마, 뭐예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유미는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응? 나무 가락지.”

“아니요! 아까 그거요. 분명 아저씨들이 여기까지 왔는데도 우리를 못 봤잖아요.”

우리가 잠시 벽으로 스며들었다는 건 눈치 채지 못했다. 상상도 못 하겠지.


“투명인간이 된 거였죠? 그쵸?”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지도.”

“아줌마 누구예요?”

“나? 천사.”


사실대로 말해도 유미는 믿지 않았다.

“아휴, 아줌마. 그걸 누가 믿어요. 투명망토 같은 거죠?”

유미도 판타지에 익숙하구나. 지금 상황도 나름 받아들인 건데. 이런 식이면 사람들의 반이 좀비나 외계인이라 해도 수긍할 것 같군.


“그만 집에 가자.”

유미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발을 굴렀다.

무슨 상상이든 거기 빠져 있게 내버려 두고 골목 밖으로 나왔다.


주춤거리던 유미가 뛰어왔다.

“이거 비밀로 할게요. 저 알바 시켜주세요.”


비밀로 안 해도 돼. 어차피 아무도 안 믿어. 말하고 싶었지만, 유미가 가여웠다.

왜 이렇게까지 바우 옆에 있으려고 할까. 정말 바우를 지키려는 것인지,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인지.


“장사가 안돼서 알바 쓸 돈도 없어. 어머니가 기다리시겠다. 얼른 들어가.”

계속 떼를 쓰려고 하기에 골목을 돌자마자 유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몸이 많이 가벼워졌으니 훌쩍 그곳을 떠나는 것쯤이야.

이거 봐라? 조금만 더 수련하면 신선들처럼 다닐 수 있겠는걸.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갔다.


*


그룹 갤럭시의 콘서트가 얼마 남지 않아 바우를 만나기는 힘들지만, 덕분에 청소 알바에는 계속 따라갈 수 있었다.


가게는 무인수납으로 해놓고, 물건은 새벽에 준비하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손님도 없는 가게에서 종일 앉아있는 것은 너무 무료하니까.

청소하러 가면 시간도 빨리 가고 쓸 만한 물건도 쏠쏠하게 얻으니 좋은 기회였다.


어디를 가든 버려진 물건을 유심히 바라보고 쓸 만한 것을 담는 버릇이 생겼다. 청소하러 들어간 집에서도 이 빠진 옛날 그릇을 발견하고 얼른 가방에 넣었다.


은서가 큰 소리로 웃었다.

“쓰레기더미 속의 천사네요. 푸하하.”

“아직 구실 할 수 있는 건데 버려지니까 불쌍하잖아요.”

“가온님은 어쩔 수 없는 천사네요. 물건에도 그렇게 마음을 주니···. 그런데 왜 문지기 하겠다고 했어요?”

“그게···. 저도 알 수 없는 사정이 있어요.”


처음에는 분명 사정이 있었다. 아주 간절했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있었는지조차 희미해졌다.

나를 부르던 소리가 안타깝고 서글펐는데, 이제는 다른 기분이 들어찼다. 어느새 이곳에 적응한 것이다.


하륜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무의 독설을 듣는 일도, 은서와 일하러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이건 좋은 변화인가, 아니면 뭔가를 놓치는 건가.


빌라 가까이 왔을 때 누군가 따라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나와 은서 중에서 누구를 따라오는지 확인해야지.

“달숲에 들렀다 가세요. 그동안 리폼한 거 보실래요?”

“다 복원했어요?”

“복원은 아니고요. 새롭게 태어났다고나 할까요?”


은서가 물건을 둘러보는 동안 가게 앞의 세움 간판을 옮기는 척하면서 둘러보았다. 생각한 대로 유미였다.

‘바우를 쫓아다니는 거 맞아? 용케도 바우가 없는 시간에만 마주치는 이유가 뭐야?’


모른 척 가게로 들어왔다.

은서는 복원술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는 마감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다면서 방으로 올라갔다.


은서가 나가고 속으로 열을 세자 유미가 들어왔다. 그럼 그렇지.

“아줌마, 저 언니랑 왜 같이 다녀요?”

“같이 다니면 안 돼?”

“불여우 같은 여자예요. 바우 오빠를 지켜야 한다고요.”


바우가 언제부터 이 아이 것이 되었지? 그리고 은서가 여우랑 비슷했나. 구태여 동물에서 찾는다면 강아지랑 비슷하지 않나. 그러니까, 음···, 포메라니안 같은.

뒷머리를 깡총하게 묶은 하얀 털의 포메라니안을 떠올렸다. 딱 은서구나.


강아지를 상상하며 웃자 유미가 투덜거렸다.

“왜 그렇게 이상하게 웃어요?”

“아니야. 아무것도. 놀러 왔니?”

“설마 아줌마를 협박하러 왔겠어요. 오빠가 있나 보러 왔죠.”

“바우님은 요즘 집에 잘 안 와. 합숙한다나.”

“어디서요?”

“그건 몰라.”

“에잇, 헛걸음했네. 괜히 보기 싫은 불여우만 보고.”


유미는 고개를 까딱하더니 터덜터덜 거리로 나갔다.

저런 식으로는 알바를 구하기는 어려울 텐데. 어리고 순진하구나. 세상이 얼마나 고단한지 아직은 모르는 게 나으려나.


*


어두워지기 전이지만 가게에 불을 환하게 켜놓았다. 평소에는 간접등을 주로 켜는데 이번에는 탁자 위의 작업등까지 켰다.


무얼 만들까 스케치하는데 아무가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들어왔다.

어슬렁어슬렁 걷는 모양새를 보니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왔군. 아니면 무슨 부탁이든가.


“요즘 장사는 어때요?”

천천히 진열대를 둘러보며 느린 말투로 말하기에 얼른 대답했다.

“그냥 본론으로 가세요. 우리 사이에 무슨.”

“허허. 그렇지요. 허허허.”


짓궂은 장난을 꾸미는 웃음이었다. 기연랑이 이렇게 나올 때는 생각지도 못한 큰일을 벌이는 것이다. 덩달아 긴장되었다.


“묘수의 차원 보고 싶지 않아요?”

묘수의 차원이라면 이곳과 공간이 겹친 곳이다. 신령수가 있는 곳. 그 엄청난 크기의 신령수를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다시 태어나는 곳이에요. 여기 오래 있으면 몸에 독소가 쌓여 살다 오거든요.”

아무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이렇게 서론이 길까.


“이번엔 삽살이와 참새를 데려다주려고요. 그 애들은 아직 어려서 여기 오래 있을 수 없거든요. 가온님도 신령수를 보면 좋을 것 같고.”

묘수의 차원이라니, 가지 말라고 말려도 가고 싶은 곳이다.


“당연히 가야죠. 정말 가보고 싶었거든요. 언제 가나요?”

“지금 당장 가면 되죠. 여권이라도 필요한가요? 하하하.”


아무를 따라 이 층과 삼 층 사이 계단에 멈춰 섰다.

계단이 꺾어지는 부분에 벽과 같은 색깔의 흰색 문이 하나 있었다. 가슴 높이 정도로 낮은 데다 틈도 딱 맞아 여태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차원의 통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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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마지막 대결 22.08.03 34 0 12쪽
49 우연을 가장한 만남 22.08.03 36 0 12쪽
48 비바람을 견뎌야 열리는 씨앗 22.08.03 35 0 10쪽
47 움직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야 22.08.03 40 0 12쪽
46 꽃잎에 어린 눈물이 새벽을 깨우면 22.08.02 37 0 12쪽
45 내 깊은 울음이 기억하는 이름 22.08.02 36 0 9쪽
44 잃어버린 기억 6 – 부딪치는 두 세계 22.08.02 39 0 12쪽
43 잃어버린 기억 5 – 기다림이 꽃을 피운다 22.08.02 40 0 11쪽
42 잃어버린 기억 4 – 갈 곳도 없이 22.08.01 40 0 8쪽
41 잃어버린 기억 3 – 머물지 못하고 22.08.01 62 0 9쪽
40 잃어버린 기억 2 - 숨어있는 고리 22.08.01 36 0 10쪽
39 잃어버린 기억 1 – 근원을 찾아서 22.07.31 35 0 10쪽
38 뭔가 일이 터지겠군요 22.07.31 36 0 10쪽
37 비바람이 지나면 한 뼘 더 자랄 거야 22.07.31 4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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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우리에겐 축제가 필요해요 22.07.30 33 0 10쪽
34 어떤 빛깔도 어울리는 오늘 22.07.30 37 0 10쪽
33 새 한 마리가 알에서 나올 때 22.07.29 31 0 10쪽
32 가면이 두꺼워지면 눈물도 늘어나 22.07.29 30 0 11쪽
31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야 22.07.29 33 0 11쪽
30 문이 열리면 새로운 비밀이 들어서고 22.07.28 31 0 11쪽
» 길목마다 서성이는 바람 22.07.28 36 0 10쪽
28 고개를 돌려요, 그림자가 사라질 거예요 22.07.28 28 0 10쪽
27 가끔 잃어버려야 맞는 길이죠 22.07.27 30 0 11쪽
26 이렇게 만난 인연도 소중하니까 22.07.27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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