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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전직천사 가온의 생활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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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7.19 17:56
최근연재일 :
2022.08.04 14:15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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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수 :
246,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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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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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에필로그 – 하륜의 이야기 1

DUMMY

그날은 천사장의 초대로 스승 동명이 천계에 방문한 날이었다.

어린 하륜은 동명을 따라 천계로 갔다. 천계는 처음이지만, 선계만큼이나 밝고 따뜻했다.


천사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천계와 인간계를 두루 보살피는 일로 바빠 보였다. 인간계는 어느 시대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늘 바삐 움직여야 했다.


선계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니 낯설지 않았다. 방식만 다를 뿐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조화롭게 이끄는 것은 같으니까.


이제 막 수습기에 들어선 어린 하륜은 스승을 따라오고 싶지 않았다.


동명과 천사장은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가 한없이 길어졌다.

별의 흐름부터 차원의 생명체와 수많은 변수에 대해 주고받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건너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도 공통된 관심사였다.


하륜은 갖고 간 책을 읽다가 지루해져 정원을 걸었다.

천계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각오했지만 역시 기다리는 일은 힘들었다.


정원의 바위 계곡을 구름이 떠받치고 있었다. 꼭대기로 올라가 보니 거대한 알둥지였다. 하륜이 사는 중산의 호수만큼이나 넓었다.


푸른 구름 둥지에 크고 둥근 알들이 떠 있었다. 알이 숨 쉬듯 부풀었다 주저앉았다. 알을 품은 구름도 살아있는 것처럼 꾸물거렸다.


하륜은 알에서 나오는 숨소리에 이끌려 구름둥지 가까이 다가갔다.


숨 쉬는 알둥지를 바라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알이 있었다. 수천 개의 알 중에서 그것만 유난히 영롱했다. 다른 것과 달리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색으로 반짝였다.


알은 통통 튀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하륜에게 가까이 왔다. 하륜은 바로 앞까지 굴러온 알을 쓰다듬었다.


알도 심장이 뛰는지 꿈틀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의 온기가 전해지자 알이 더 빨리 숨쉬기 시작했다. 하륜의 심장도 덩달아 빨리 뛰었다.


통통 튀던 알이 둥지 밖으로 떨어졌다. 하륜은 얼른 알을 들어올렸다.

조심스럽게 안고 있으니 가슴에 닿는 느낌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하륜은 재빨리 알을 둥지에 밀어 넣었다.


천사장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 뒤를 동명이 따라왔다.

“만지면 안 된단다. 천사의 알이야.”


천사장이 근심 어린 얼굴로 둥지를 살펴보았다.

당황한 하륜을 보니 알을 만지면 어떻게 되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안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천계가 아닌 다른 손이 닿으면 부화가 늦어진단다.”

다음 말은 속으로 삼켰다. 안 깨어날 수도 있고, 온전한 천사가 못될 수도 있어. 삼킨 말이 한숨이 되어 나왔다.


하륜이 조금 전에 보았던 알을 가리켰다.

“죄송해요. 그런데 저것만 색깔이 달라서요. 너무 신기했어요.”


천사장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그가 둥지를 바라보았다.

“그래?”

“다 똑같은데 뭐가 다르다는 거니?”

동명도 다가와 둥지를 바라보았다. 동명에게는 모든 알이 푸르스름한 빛깔로 보였다.


“저거요. 저 애만 반짝거리잖아요. 무지개색으로.”

하륜이 가리켰지만 천사장의 눈에도 빛이 다른 알은 없었다. 하륜이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알을 바라보아도 여전히 찬란한 빛이 뿜어 나왔다. 그 알만 여러 색깔로 바뀌고 있었다.

하륜이 알을 보고 싱긋 웃었다. 뜨겁게 뛰던 심장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천사장이 하륜을 향해 돌아섰다.

“그 알이 마음에 드니?”

“예.”

하륜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천사장은 잠시 침묵했다. 선대 천사장에게 들은 기억이 있지만, 몇 천 년간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너와 인연이 있나 보다.”


어떤 천사가 나올지 궁금하면서도 걱정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여태까지 보던 평범한 천사가 아닐 거라는 예감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


수습기가 끝날 때까지 천년이 넘도록 하륜은 그 아름답고 달콤한 빛깔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저 막연한 기억과 그리움만 남아있었다.


하륜은 수련기에 들어갔다.

신선 중에서도 맑은 영혼을 가진 그를 위해 중산이 문을 열어주었다. 영험한 기운 때문에 웬만한 신력을 가진 자가 아니면 수련할 수 없는 곳이었다.


중산의 꽃들은 피고 싶을 때 피고, 지고 싶을 때 졌다. 일 년이 넘도록 피어있는 꽃도 있었다.

기간이 얼마나 오래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꽃은 언젠가 피고, 언젠가는 진다는 진리만 지키면 되었다.


하륜의 신력은 점점 강해졌다.

그를 연모하는 선인들이 많았지만 중산에 가까이 올 수 없었다. 그들은 하륜이 가끔 산에서 내려와 동명과 함께 머무를 때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륜은 중산 꼭대기에 앉아 천계를 바라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더 좋았다.


동명은 그런 하륜이 걱정스러웠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중산으로 직접 찾아갔다.

“결계에 들어갈 때가 가까워졌구나.”

“전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스승님, 떠나시면 안 됩니다.”

“내가 널 모르겠느냐? 넌 혼자서도 무사히 선위에 오를 것이다. 다만···.”


동명이 하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단다.”


하륜은 스승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천사장에게도 인사를 해야겠다.”

하륜도 천계에 가고 싶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서 불쑥 따라갈 수 없었다.


동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제자의 얼굴을 살폈다.

“같이 가겠느냐? 내가 요즘 기력이 부족해 왕래하기가 어렵구나.”


하륜은 기뻐서 바로 소리쳤다.

“예! 스승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천계에 도착하자 동명은 하륜을 정원에 남겨놓고 천사장을 찾아갔다.

“천사장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려무나.”


하륜이 바라던 순간이었다. 정원을 둘러보았다. 천사의 알을 보았던 바위 계곡을 찾으려 했지만 길을 알 수 없었다.

‘천계의 지리를 미리 알아둘 것을···.’


이곳저곳을 헤매다보니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번민을 잠재우는 맑고 사랑스러운 소리였다. 하륜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이끌려갔다.


인간계에 다녀온 천사들이 모여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기적을 부를 만큼 힘이 있고 아름다웠다.


하륜은 많은 천사 중에서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알에서 나왔던 영롱하고 밝은 빛이 그대로 비쳐 나왔다. 누구도 그런 빛을 내는 천사가 없었다.


오직 그녀의 춤만 보였고 그녀의 노래만 들렸다. 그녀를 보고 있으니 하늘을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녀에게 다가가려는데 다른 천사가 그들을 불렀다.

“천사장님께 보고해야지. 기다리신다.”


천사들은 저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정원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녀도 가볍게 날아오르며 춤추듯 사라졌다.


하륜은 자리를 쉽게 떠날 수 없었다.

멀리서 동명이 찾는 소리가 들렸다. 하륜은 눈가에 묻은 물기를 닦고 서둘러 스승에게 달려갔다.


“천사장에게 잘 부탁했다. 한동안 선계에 선위가 없어도 천계에서 도와주기로 했단다.”

“스승님, 결계에 들어가는 걸 늦추면 안 될까요?”


“모든 때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란다. 네 삶도 네 뜻대로 흘러가지 못하듯이.”

동명이 제자를 보며 장난스레 웃었다.


여태까지 얻은 제자 중에서 가장 맑고 선량한 제자였다. 능력도 특출 나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이 뿌듯했다.

하륜이 선위가 될 때까지 지켜보고 싶었지만,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동명의 말투에는 쓸쓸함이 묻어있었다.


*


그날도 하륜은 수련을 끝내고 천계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땀을 말렸다. 휘파람을 불며 앉아있는데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중산에서 인기척이라니. 놀라 뒤돌아보았다.


그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알에서 본 빛이 거기 있었다. 눈을 깜빡여 다시 보니 천사도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중산에 들어왔지?’


그녀에게서 영롱한 빛이 멈추지 않고 스며 나왔다.


“와, 이렇게 빛나는 사람은 처음 봐요.”

천사가 쪼르르 다가와 하륜의 머리를 만졌다. 그녀의 손이 하륜의 머리에서 등으로, 어깨에서 팔로 내려갔다.

“사람이에요?”


심장이 몹시 뛰었지만, 그녀의 손이 닿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가슴으로 내려오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천사의 알을 안았을 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손이 뜨거워졌지만 놓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놀라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륜이 천천히 손을 놓았다. 아쉬운 마음을 떨쳐내느라 손이 파르르 떨렸다.


“죄송해요. 빛을 내는 사람이 있다니 너무 신기해서.”

천사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멀리 구름바다를 내려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아, 이런 경치가 있다니. 가끔 길을 잃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고개를 까딱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길을 잃었다면서 당황하지 않았다.

“근처에 왔는데 꽃향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잠시 쉬어가려 했는데 나비들이···.”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비가 굉장히 많았는데. 다 어디 갔죠?”


두리번거리던 천사는 한숨을 내쉬며 하륜을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결론을 내렸다.

“집으로 돌아갔나 봐요.”


천사가 하륜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륜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싱긋 웃었다.

“난 가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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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에필로그 – 하륜의 이야기 2 22.08.04 46 0 10쪽
» 에필로그 – 하륜의 이야기 1 22.08.04 34 0 10쪽
52 꽃이 질 때 다시 필 것을 알고 있듯 22.08.04 37 0 13쪽
51 사라져도 좋은 추억은 없어 22.08.04 46 0 9쪽
50 마지막 대결 22.08.03 34 0 12쪽
49 우연을 가장한 만남 22.08.03 36 0 12쪽
48 비바람을 견뎌야 열리는 씨앗 22.08.03 35 0 10쪽
47 움직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야 22.08.03 40 0 12쪽
46 꽃잎에 어린 눈물이 새벽을 깨우면 22.08.02 37 0 12쪽
45 내 깊은 울음이 기억하는 이름 22.08.02 37 0 9쪽
44 잃어버린 기억 6 – 부딪치는 두 세계 22.08.02 39 0 12쪽
43 잃어버린 기억 5 – 기다림이 꽃을 피운다 22.08.02 40 0 11쪽
42 잃어버린 기억 4 – 갈 곳도 없이 22.08.01 40 0 8쪽
41 잃어버린 기억 3 – 머물지 못하고 22.08.01 62 0 9쪽
40 잃어버린 기억 2 - 숨어있는 고리 22.08.01 36 0 10쪽
39 잃어버린 기억 1 – 근원을 찾아서 22.07.31 35 0 10쪽
38 뭔가 일이 터지겠군요 22.07.31 36 0 10쪽
37 비바람이 지나면 한 뼘 더 자랄 거야 22.07.31 42 0 10쪽
36 운명적인 만남을 운명이라 믿으면 안 돼 22.07.30 42 0 10쪽
35 우리에겐 축제가 필요해요 22.07.30 33 0 10쪽
34 어떤 빛깔도 어울리는 오늘 22.07.30 37 0 10쪽
33 새 한 마리가 알에서 나올 때 22.07.29 32 0 10쪽
32 가면이 두꺼워지면 눈물도 늘어나 22.07.29 30 0 11쪽
31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야 22.07.29 33 0 11쪽
30 문이 열리면 새로운 비밀이 들어서고 22.07.28 31 0 11쪽
29 길목마다 서성이는 바람 22.07.28 36 0 10쪽
28 고개를 돌려요, 그림자가 사라질 거예요 22.07.28 28 0 10쪽
27 가끔 잃어버려야 맞는 길이죠 22.07.27 30 0 11쪽
26 이렇게 만난 인연도 소중하니까 22.07.27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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