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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전직천사 가온의 생활적응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7.19 17:56
최근연재일 :
2022.08.04 14:15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2,021
추천수 :
23
글자수 :
246,751

작성
22.08.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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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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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사라져도 좋은 추억은 없어

DUMMY

스페셜 컬렉션 데이가 문을 열었다.

유미가 인터넷에 올린 사진 덕분에 구경하러 온 사람도 있었지만, 걱정한 만큼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유미가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

언니가 생기고 엄마가 건강을 되찾자 유미도 제법 친구들과 어울렸다. 나는 한 일도 없으면서 괜히 뿌듯했다.


이제 슬슬 주인공들이 나타날 시간인데. 손님들에게 웃으면서도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되었다.


약속한 시각이 되자 바우가 영준을 데리고 왔다. 곧 은서가 이현을 데리고 올 것이다. 간만의 차이로 들어오기로 미리 시간을 맞췄다.


예상대로 영준은 나를 몰라보았다. 고연당 최씨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크게 당황했을 텐데 모르는 척 손님으로 맞을 수 있었다.


바우는 그런 사정을 모르기에 당황했지만, 곧 담담하게 나를 소개했다.

“달숲 사장이세요. 가온님, 이쪽은 김영준씨예요. 예미그룹 문화사업부에서 일해요.”

“반갑습니다.”

영준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웃으며 악수를 받았다.


“아, 그러고 보니 카페에서 뵌 것 같아요. 저 블랙 미러 회원이거든요.”

“그러셨군요. 어쩐지 낯설지 않네요.”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이 가게를 둘러보았다.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네요.”

“뭘요. 재미있었어요.”


영준은 가게를 둘러보다 때마침 들어온 이현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에게는 은서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현씨! 여기서 또 뵙네요. 어쩐 일이세요?”

“아, 영준씨도 이런 데 관심 있나 봐요?”

이현도 반가워했다. 서로 호감이 있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렇지.


두 사람 사이에 이어지기 시작한 오로라가 보였다. 걱정할 것 없겠구나. 이제부터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잘 될 인연이야.

지후는 지후이고, 영준은 영준인 것처럼 전생의 인연을 끌고 갈 이유가 없었다.


이현은 아무가 내놓은 그릇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그릇의 사연을 전해 주었다. 아무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여하튼 그릇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으니까.


요즘 아무의 태도는 확실히 이상했다.

집에 있는 자잘한 물건을 모조리 갖다 주었다. 이제 필요 없다나. 왜 자꾸 그러냐고 서운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아무튼 필요 없다고 했다.

아무야 떠나도 그런가 보다 붙잡지 않겠지만, 꽃술이 떠나는 것은 정말 싫었다.


“이건 꽤 오래전 물건이네요.”

이현의 말에 정신이 돌아왔다.


“이 보석함은 터키에서 온 건가 봐요.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드네요.”

“구경만 하셔도 돼요.”

“그건 안 되죠. 원래 예술가들끼리는 서로 사주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술에 돈 안 쓰거든요. 아주 인색해요. 시인들만 시집을 사는 것처럼요.”

이현은 농담처럼 말하며 물건을 살펴보았다.


인형 옷을 전시한 테이블 앞에서 바우가 은서에게 손짓했다. 그 사이 영준이 이현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현은 계속 티포트를 만지작거렸다. 아라베스크 문양이 화려하고 정교한 작품이었다. 영준은 그런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마음에 드세요? 하나 선물해드릴까요? 병문안 와주셨던 인사로.”

“아니, 그럴 것까지는···.”

이현이 망설였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어떻게 말을 바꿀지 조용히 기다렸다.


“아, 우리 서로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하나씩 추천하는 건 어때요?”

이현이 말을 받았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다른 손님들에게 눈길을 돌렸지만, 여전히 영준과 이현의 대화가 들렸다.

“이거 멋지네요.”


이현은 영준에게 용 조각을 보여주었다. 보라색 자수정 조각을 넣어준 보람이 있구나.

영준도 마음에 들어 했다.

용 조각에서도 살짝 빛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자기의 새 주인이라는 뜻이었다.

사람은 물건의 기운을 알지 못해도 마음으로 느끼는 경우가 있다. 지금의 영준처럼.


그동안 달숲의 수문장 역할을 하던 옥룡. 과거 신세계잡화점에서 기연랑의 바구니에 들어있었지. 빛결이 만든 물건이 돌고 돌아 지후의 환생에게 가는 것인가.


인간계의 인연은 복잡하고 촘촘하게 얽혀있어서 누구도 쉽게 단정하지 못한다. 영준의 이번 생이 평탄하기를 축복해주었다.


계산하면서 옥룡에게도 인사했다.

‘그동안 도와줘서 고마워.’

옥룡이 인사하는 듯 꿈틀거렸다.


두 사람은 각각 티포트와 용 조각을 들고 일이 있어 먼저 간다고 인사했다.


은서가 쪼르르 다가와 윙크를 했다.

“잘 될 것 같죠?”

“그럼요. 누가 고른 인연인데요.”

“벌써 만날 약속을 했을 걸요?”

바우도 엄지를 치켜 보였다.


오늘의 스페셜 컬렉션 데이는 완벽한 성공이었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카페 영업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륜과 차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일과를 마치고 함께 차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간도 행복했다. 문지기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랄까.


긴장 속에 준비한 스페셜 데이를 끝내니 허전해서일까. 마음이 어두웠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요.”


“인간계에 오래 있으면 감정의 양면성까지도 배우게 되죠. 문지기로 있으려면 그 안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해요.”

하륜이 빈 잔에 차를 더 따라주었다.


“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그에게 들었던 말을 새겨보았다. 그래도 그다지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아무가 요즘 나오지 않는데. 내일은 아무한테 가봐야겠어요.”

“기연랑이 휴양 갈 때가 되었어요. 천계에 문지기를 보내 달라고 부탁한 이유지요.”

“여기를 떠나나요?”

“걱정 말아요. 길어야 천년 정도니까. 짧으면 오백 년 만에도 돌아온 적 있어요.”

기연랑이 없는 파라다이스 빌라라니. 꽃술이 없다면 오백 년도 엄청나게 긴데.


꽃술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살랑이 사라지고, 영준의 인연도 찾아주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서운한 마음이 더 컸다.

그믐이 가까워서인지 하늘도 어두웠다.


그믐 모임에 아무와 꽃술은 나오지 않았다.

낮에 가보았을 때는 둘 다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믐밤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누워있어야 했다.


독설을 던지는 아무의 모습도 나쁘지 않은데···. 기연랑이 가버리면 한 번에 두 사람이나 빠지니 네 명이 모이는구나.


자리를 정리하자마자 꽃술에게 달려갔다.

“아무는 자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꽃술이니 아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꽃술에게 하륜이 준 결계의 우물을 따라주었다.

“고마워요. 이것도 잠깐 도움이 되겠네요.”

“결계의 정수로도 낫지 않는 병이에요?”

“이건 병이 아니라서요. 그냥 주기적으로 그러는 거예요.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꽃술이 떠난다고 생각하니 울상이 되었다.

“기연랑이 다시 와도 이 모습은 아니잖아요. 아무만 보내고 꽃술님은 남으면 안 돼요?”

”가온님, 어린애처럼 왜 이러실까.“


“그래도 꽃술님이 가버리면 나는···.”

가슴이 미어지며 목이 메어 말을 다 마칠 수 없었다.


“월세 안 내고 좋은 거죠.”

언제 일어났는지 아무가 방에서 나왔다. 이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일관될 수가.


아무도 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이런 건 꼭 혼자 마셔. 나를 깨워야지.”

“줄 생각도 없었거든.”

꽃술이 아무에게 눈을 흘겼다.


“기연랑, 언제까지 두 사람인 척할 거예요?”

둘이 싸우는 모습도 이전처럼 재미있지 않았다. 웃기고도 슬픈 장면이지만 농담이 나오지 않았다.


꽃술이 내 손을 잡고는 손등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금방 돌아와요. 천사님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예요.”

“짧아도 오백 년은 걸린다면서요? 그렇게나 오래 꽃술님을 못 보는 건 싫어요.”

꽃술의 손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눈물이 맺히는지 눈빛도 영롱해졌다.


“많이 버틴 거예요. 은서님이 키우는 정령의 나무에서 기운을 많이 받았고, 천사님이 같이 사니까 지금까지 버틴 거죠. 천사가 있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되네요.”

“언제 떠나요?”

“준비되는 대로.”


나는 꽃술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무가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언제까지 신파를 찍을 거야? 우리도 준비할 게 많다고.”


아무가 장부를 꺼내 들었다. 장부를 보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그래요. 정리되면 가게로 갈게요.”

꽃술이 따라 나와 배웅해주었다.


돌아서며 흘끗 쳐다보니 아무는 입을 실룩대며 장부를 닫았다. 월세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왠지 미안했다.

빌라 대출금 갚는다고 협박 아닌 협박이 그렇게나 심했는데. 대체 얼마나 남았기에 아직도 저러는 걸까.


나는 계단을 다 내려와 숨을 몰아쉬었다. 설마 또 월세 얘기를 하지는 않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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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천사 가온의 생활적응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번 이야기는 마무리되어도 22.08.04 36 0 -
54 에필로그 – 하륜의 이야기 2 22.08.04 46 0 10쪽
53 에필로그 – 하륜의 이야기 1 22.08.04 33 0 10쪽
52 꽃이 질 때 다시 필 것을 알고 있듯 22.08.04 36 0 13쪽
» 사라져도 좋은 추억은 없어 22.08.04 46 0 9쪽
50 마지막 대결 22.08.03 34 0 12쪽
49 우연을 가장한 만남 22.08.03 36 0 12쪽
48 비바람을 견뎌야 열리는 씨앗 22.08.03 35 0 10쪽
47 움직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야 22.08.03 40 0 12쪽
46 꽃잎에 어린 눈물이 새벽을 깨우면 22.08.02 36 0 12쪽
45 내 깊은 울음이 기억하는 이름 22.08.02 36 0 9쪽
44 잃어버린 기억 6 – 부딪치는 두 세계 22.08.02 38 0 12쪽
43 잃어버린 기억 5 – 기다림이 꽃을 피운다 22.08.02 38 0 11쪽
42 잃어버린 기억 4 – 갈 곳도 없이 22.08.01 39 0 8쪽
41 잃어버린 기억 3 – 머물지 못하고 22.08.01 62 0 9쪽
40 잃어버린 기억 2 - 숨어있는 고리 22.08.01 36 0 10쪽
39 잃어버린 기억 1 – 근원을 찾아서 22.07.31 35 0 10쪽
38 뭔가 일이 터지겠군요 22.07.31 36 0 10쪽
37 비바람이 지나면 한 뼘 더 자랄 거야 22.07.31 41 0 10쪽
36 운명적인 만남을 운명이라 믿으면 안 돼 22.07.30 41 0 10쪽
35 우리에겐 축제가 필요해요 22.07.30 33 0 10쪽
34 어떤 빛깔도 어울리는 오늘 22.07.30 37 0 10쪽
33 새 한 마리가 알에서 나올 때 22.07.29 31 0 10쪽
32 가면이 두꺼워지면 눈물도 늘어나 22.07.29 29 0 11쪽
31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야 22.07.29 32 0 11쪽
30 문이 열리면 새로운 비밀이 들어서고 22.07.28 31 0 11쪽
29 길목마다 서성이는 바람 22.07.28 35 0 10쪽
28 고개를 돌려요, 그림자가 사라질 거예요 22.07.28 28 0 10쪽
27 가끔 잃어버려야 맞는 길이죠 22.07.27 29 0 11쪽
26 이렇게 만난 인연도 소중하니까 22.07.27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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