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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데나] 님의 서재입니다.

심양왕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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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데나]
작품등록일 :
2019.05.04 07:44
최근연재일 :
2019.08.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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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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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함정 (1)

DUMMY

서쪽으로 붉은 해가 이울고 있었다. 홍위는 붉게 물들어 있는 압록강을 건너다 보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강 건너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불현 듯 가슴 속 한구석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저 강, 저 강을 넘어서 어딘가에는 그의 부인이 지금도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이다. 홍위가 팔짱을 낀 채 그 쪽을 노려보는데, 수염 긴 사내가 다가왔다.


“전하, 정녕 가시렵니까.”


홍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의 굳은 뜻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는 듯, 송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 건너 사정은 대략 정탐을 했는가.”


“안 그래도 사람 하나를 만나 왔습니다.”


“누구인가?”


“열경 김시습이라는 이올시다. 본디 정 선비와 면식이 있는 이온데, 전하를 도우는 일이라 발 벗고 나섰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인가.”


유빈은 빙긋이 웃었다.


“가히 만고의 의사올시다. 정 선비와 더불어 마마를 뫼시고자 꾀하고 있었습니다.”


정호찬은 물론 홍위가 직접 송씨를 구출하러 나가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동시에 홍위가 사실을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점도 꿰뚫어보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김시습 등 믿을 만한 사람들을 통해 송씨의 사정을 면밀히 살피도록 하고 있었고, 과연 홍위가 송씨의 사연을 알게 되자 미리 유빈에게 일러 김시습을 만나도록 했다. 이 때 머리를 깎고 중노릇을 하며 방랑하고 있던 김시습은 쾌히 힘을 빌려주기로 약조했다.


“고마운 일이구나.”


“전하께서 옥체를 보전하시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가만히 있지 않을 의기어린 선비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홍위는 고개를 숙였다. 유빈이 그를 달랬다.


“그리고 엄가가 제법 민한 데가 있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엄복동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엄복동은 처음 보았던 유약하고도 비굴해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의외로 쓸 만한 인재였다. 물욕이 좀 있는 것이야 사내라면 당연한 것이고, 써 보니 험한 산길을 구석구석 꿰고 있는 것이 능히 축지법이라도 쓰는 양 하루에 백리를 우습게 내달리는 자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본시는 함길도에서 아비되는 자는 범 사냥을 업으로 삼았고, 어미되는 이는 약초꾼이었다. 산골 무지렁이로 살고 있던 엄복동이 관복을 입을 생각을 한 것은 우연히 함흥으로 행차하던 수령의 행차를 보고 난 후였고, 출세길을 찾아 산을 내려간 것이다.


“장손돌이도 엄가를 퍽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엄복동이 담이 좀 작은 면은 있어도 오히려 밀수꾼 노릇을 하자면 쓸데없이 담이 커서 일을 버르집어놓는 것보다 소심해서 매사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가 더 어울렸고, 복동의 물욕 역시 관리라면 모를까 장사치에는 감점 요인이 될려야 될 수가 없었다.


“그런가. 좋은 사람을 만났다 하겠군. 그건 그렇고, 내 아내는 어떻게 지낸다 하였는가.”


그 말에는 유빈도 대답할 말이 막연했다. 그는 변복을 하고 먼발치에서나마 송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확인하기도 했으련만, 그 정경이 참으로 가긍했던 것이다. 관노 신분으로 떨어진 송씨가 괄시를 받으면서 관아에서 나온 사령들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광경을 볼 때, 유빈 역시 속이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유빈의 모습이 곧 대답이기라도 한 듯이 홍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 역시 영월에서 괄시를 당하며 살았으니 어찌 짐작하지 못할까.”


“송구합니다.”


“속히 준비를 갖추고 들이칠 것이다.”


그 말에 유빈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전하······ 아뢰옵기 송구스럽습니다마는, 저들이 마마를 북변 땅으로 보낸 연유는.”


“함정이란 말이겠지. 수양 숙부도 내가 아직 살아 있으리라고 믿는 것일테고.”


“그렇습니다.”


유빈은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언제 강을 건너 갈 수 있겠나?”


유빈은 홍위의 뜻을 꺾기 어려움을 알았다.


“그믐달 때 건너가기로 약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가.”


홍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믐달이 되려면 아직 며칠 남아 있었다. 그러나 홍위에게는 일각이 삼추와도 같았다.



홍위가 송씨를 구출할 마음을 먹고 있을 즈음, 신숙주는 한양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것을 읽은 신숙주는 깊은 신음소리를 냈다. 차남 신면이 아버지의 안색을 보고 무슨 일인지 여쭈었다.


“편지에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주상 전하께서 변방을 직접 시찰하신다 하였느니라.”


“직접 행차하신다는 말입니까?”


신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위에 등극한 이후 수양은 어지간해서는 직접 지방으로 순방하는 일이 없었다.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 한양을 비웠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몰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양이 직접 온다는 것은······.


“그래, 무언가 집히는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


“무슨 영문일까요?”


신숙주는 대답 대신 아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비록 영민한 아들이었지만 그에게도 말하지 않은, 아니 말할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상왕 노산군이 아직 살아 있고, 그 때문에 수양이 그것을 노상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시기에 수양이 직접 내려온다는 것은 틀림없이 무언가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야인들 때문 아니겠느냐. 야인들 땅이 시끄럽고, 아직 함길도와 평안도가 제대로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으니.”


신숙주는 그렇게만 말해 두었다. 그렇지만 신면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주상 전하께서 직접 납신다구요. 이미 아버님과 한 대감을 각각 양 도의 도체찰사로 임명하시어 내려보내지 않았습니까.”


“주상 전하의 뜻을 어찌 짐작하겠느냐.”


그 말에 신면은 입을 다물고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혹시······ 노산군비를 이곳으로 보낸 것과 무슨 관련이 있지는 아니합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게냐.”


신면의 말에 신숙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간에서는 노산군이 북변으로 도망쳐 왔다는 소문도 파다했습니다. 일전 역도 이징옥의 일도 있고 해서.”


“한갓 소문일 뿐이지 않느냐.”


“그렇기는 합니다만······ 전하께서도 그 소문을 의식하신 것이 아닐까 해서.”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


신숙주는 말을 아꼈다. 노산군이 살아 있고 야인 땅으로 잠적해 있다는 말은 아들에게도 쉽게 할 말이 못되기 때문에 어물거릴 수밖에 없었다. 신면은 생각에 잠긴 눈치였으나 아버지가 이 주제를 더 길게 끌어갈 마음이 없음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신숙주 부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즈음, 수양은 직접 내금위 갑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국왕이 직접 북변 시찰을 나선다는 이야기가 장안에 파다했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수양은 신경쓰지 않았다. 며칠 전, 야인 땅에 보냈던 밀정 하나가 보낸 서찰이 그의 뜻을 굳혔던 것이다.


“홍위가 야인 땅에서 제법 일가를 꾸렸단 말이지.”


서찰을 받아든 수양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끝내 어리게만 보았는데 제법이로구나. 장한 일이다. 과연 선대왕들의 기풍을 이어받았겠다고 칭찬해야겠구나.”


한 순간 수양의 얼굴에는 연민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옛날 옛적, 그의 형님이 살아있었을 적 어린 조카와 보냈던 시간을 회상하였을지도 몰랐다. 다음 순간 수양은 마음을 공글렸다.


“그렇지만 차라리 영월 땅에서, 아니면 야인 땅에서 생애를 마쳤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너는 이 숙부를 이다지도 괴롭힌단 말이더냐. 어찌하여 이 내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너와 나의 연을 직접 끊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단 말이더냐. 그냥 그대로 스러지면 아니되었더냐.”


“전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수양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야말로 네 소식을 다시 듣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수양은 바깥으로 나섰다. 정예들만 가려 뽑은 자들이었고, 이미 함길도 도체찰사 신숙주에게도 미리 준비를 하라는 밀명을 내렸었다. 아울러 건주위 이만주에게도 밀지를 내린 바 있었다. 이만주는 믿을 수 없는 족속이긴 했지만 홍위를 확실히 끊어 놓기 위해서 일단 믿는 척이라도 하기로 했다. 그 일만 제대로 한다면, 수양은 이만주가 북방에서 뭘 어찌할까는 관심 밖이었다. 그에게는 오로지 홍위만이 있을 뿐이었다.


문득 수양은 자신이 홍위에게 이렇듯 집착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스스로 물었다. 그것은 어쩌면 요즘 들어 고질이 된 피부병에 시달리는 그의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 때문일 수도 있고, 장차 대통을 이어야 할 그의 아들이 영 못 미덥게 느껴졌다는 점에서도 그러할 수 있었다. 그런 데 반해 홍위는 어떤가.


수양은 눈을 감았다. 그 옛날, 호랑이 앞에서 잠깐 동안이나마 보았던 어린 홍위의 기백이 눈에 아른거렸다. 조카를 직접 죽이기는 껄끄러워서 노산군으로 격을 떨어뜨리고 영원히 소식이 들려올 일 없기를 바라며 영월 벽지로 보내 두었더니 어느 순간 빠져나가 이제는 야인 땅에서 세력을 일구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 오고 있지 않은가. 수양은 눈을 부릅떴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결코 가만히 둘 수는 없단다. 이제 와서 너무 원망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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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최형욱 (2) +1 19.08.14 607 19 14쪽
49 최형욱 +5 19.08.13 657 16 16쪽
48 손 하나에 두 가지 모두를 쥐랴 (2) +2 19.08.08 737 19 15쪽
47 손 하나에 두 가지 모두를 쥐랴 +5 19.08.07 723 19 16쪽
46 한가령 (2) +9 19.08.06 691 16 14쪽
45 한가령 +5 19.08.06 686 17 13쪽
44 이고납합 (2) +5 19.08.05 666 17 14쪽
43 이고납합 +9 19.08.02 700 16 15쪽
42 다가오는 위난 (4) +6 19.07.31 750 16 13쪽
41 다가오는 위난 (3) +4 19.07.30 712 18 17쪽
40 다가오는 위난 (2) +3 19.07.28 727 19 17쪽
39 다가오는 위난 +9 19.07.27 791 27 10쪽
38 전령 (2) +4 19.06.13 932 30 10쪽
37 전령 +2 19.06.11 871 26 15쪽
36 몰려오는 먹구름 (5) +3 19.06.05 914 26 17쪽
35 몰려오는 먹구름 (4) +12 19.06.03 866 23 16쪽
34 몰려오는 먹구름 (3) +6 19.06.02 869 29 15쪽
33 몰려오는 먹구름 (2) +4 19.06.01 877 26 22쪽
32 몰려오는 먹구름 (1) +14 19.05.28 983 29 19쪽
31 음모가들 (2) +6 19.05.27 838 24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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