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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데나] 님의 서재입니다.

심양왕 단종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파사데나]
작품등록일 :
2019.05.04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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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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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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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다가오는 위난 (2)

DUMMY

한명회가 행장 채비를 하는 사이 신임 평안도 도절제사 신숙주 일행은 길을 떠나고 있었다. 일행의 선두에 선 신숙주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명회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수양이 자신들을 북변으로 보낸 이유쯤은 잘 알고 있었다.


‘노산군 때문이 아닌가.’


신숙주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를 비롯해 수양의 심복들 중 노산군의 생존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영월에서 몸을 피해 달아났다는 것은 좋다. 하지만 혼자서 무엇을 하겠는가? 수양이 집권한 지 몇 년을 넘기지 않아 노산군을 동정하고 동조할 만한 이들 중 실질적으로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은 모두 타도했다. 금산대군 일파, 지방에 있는 김종서 일파도 모두 제거했다. 물론 선비라 자처하는 이들 중 영월에 유배된 상왕을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들이 무엇을 하겠는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두 해가 다 되어 가도록 노산군에 대한 뚜렷한 동향은 없었다. 적어도 조선 팔도 안에서는 불온한 세력이 암약한다는 동향은 전혀 없는 것이다. 홍윤성 (洪允成) 같은 이들은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대명에서도 영락대제가 몰아낸 건문제의 종적을 마침내 찾아낼 수 없었으되, 결국 문제거리는 아니 되지 아니했습니까.’


확실히 그럴듯해 보였다. 노산군의 마지막 행방이 야인 땅으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노산군이 북변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전갈을 받자 수양은 신경질적으로 야인 땅에 대한 동향을 강화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렇지만 이징옥의 난 이후 북변 땅은 크게 동요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수양 자신도 노산군이 야인 땅으로 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차마 공표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야인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두 해가 가까워지면서 야인 땅에도 특별한 동정은 없자 노산군이 야인 땅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차차 경계심을 늦추기 시작했다. 단 하나, 수양만은 달랐다. 수양이 노산군에게 가진 애증은 거의 편집광적일 정도였다. 그런 그 때 야인 땅에서 누군가 철을 만들어낸다는 ‘이상 동향’이 보고되자마자 수양은 단정적으로 노산군이 배후에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가장 유능한 심복 둘을 북변으로 보낸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정말 노산군이라면 송씨를 두고 볼 수 없기에······ 송씨를 내게 맡긴 것이 아닌가.’


신숙주는 수양의 의중을 그렇게 짐작했다. 신숙주 일행이 평안도로 떠날 적에 수양은 몸소 나와 이미 관노 신분으로 떨어진 송씨를 신숙주의 수청을 들게 명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혹한 처사겠지만, 수양은 그런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담이 보통 사람 같다면 어찌 수십 명의 어중이떠중이 무사들을 믿고 궁궐을 습격하는 정변을 벌인다는 말인가. 저 태종대왕께서도 그렇게까지 막 나가는 도박을 벌이지는 아니했었다.


신숙주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둘째아들 신면 (申㴐)이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무엇 심려되는 일이 있으신지요.”


“아니다.”


신숙주는 다만 그렇게만 말했다. 노산군 문제는 아들에게조차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신면도 아버지가 돌연 평안도로 전출되는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그래도 워낙에 젊은 나이에 승지 벼슬을 할 정도로 총명한 이라, 신숙주의 전출이 단순한 좌천은 아니라는 정도쯤은 짐작할 것이다.


“평안도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쉬엄쉬엄 가시지요.”


“나랏일을 하는 일이다. 어찌 삿됨이 있겠느냐.”


신숙주는 짧게 잘라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양의 편집광적인 면모를 생각한다면 일각이라도 빨리 임지로 가서 주어진 임무에 착수해야 한다. 야인 땅으로 보내진 간자들의 보고들을 취합하고, 군사를 점고하고······ 할 일은 많았다. 수양이 그렇게 야인 땅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수령들의 보고는 늘 보내온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그 ‘늘 보내온 정도’ 자체도 꽤나 상세하기는 했으나······ 수양이 원하는 것 즉 노산군의 행방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보고는 전혀 없었다. 수양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진짜 원인이 노산군이라는 사실은 간자를 보내고 보고를 받는 수령들에게는 알리지 않았기, 아니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북변 수령이나 호족들에 대해 수양이 믿지 못하고 있었는데 노산군이 야인 땅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북변 땅의 군사들은 정예하기로 이름이 높았고, 그렇기에 이징옥 역시 힘으로 누른 게 아니라 타살을 하지 않았나? 어떻게 보자면 신숙주와 신면은 적지로 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었다.


“곧 해가 저뭅니다. 이쯤에서 쉬어가시는 편이.”


신면의 말에 신숙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 해가 저물기까지는 아직 충분히 시간이 남았을 터이다. 어디 불편한 데가 있느냐?”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하오나······.”


그 말에 신면은 당황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신숙주는 아들의 낯빛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나는 괜찮으니 내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있느냐.”


신숙주의 질문에 신면은 한참 동안 망설였다. 신숙주는 별다른 말없이 그런 아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젊은 나이에 일찍 요절한 맏아들 신주 (申澍) 대신에 맏이 역할을 하고 있는 신면은 절대로 이렇게 우유부단한 녀석이 아니었다. 오히려 문관일지언정 활쏘기를 즐기고 불의한 이를 보면 참지 않는 혈기왕성한 아이였다. 이제 막 이십대에 들어서지 않았던가.


“그저······ 죄인 송씨에게 너무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그것 때문이었느냐.”


신숙주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너도 보지 않았느냐. 주상께서 송씨를 대역죄인이라 보고, 온정을 주는 자를 동률로 다스리겠다고 말하는 것을 말이다. 나라의 국률을 어긴 대역죄인의 여식이자, 역시 대역죄인의 아내이다. 그런 죄인을 다루는 일에 어찌 사사로움이 있겠느냐?”


“하오나······.”


신면은 말을 흐렸다. 신숙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더 말할 것은 없느니라. 너 역시 앞으로의 전정이 창창하지 않느냐.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고, 눈 밖에 날 짓은 삼가도록 하거라. 내 비록 정난 일등 공신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주상 전하의 눈 밖에 나는 일을 함부로 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수양은 정난공신 심복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섭섭히 대할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역대 최고로 정통성 문제가 없었던 조카를 무력으로 몰아낸 수양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동조자라고 할 수 있는 심복들을 내칠 수 없었다. 홍윤성 같은 이들의 전횡은 같은 심복인 신숙주 같은 이들이 보아도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지만 그냥 두고 보지 않던가.


“알겠습니다.”


“정말이냐?”


신숙주는 눈을 흘기며 그렇게 물었다. 신면의 표정은 별로 납득한 눈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숙주가 말고삐를 바로잡으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혹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그런 말은 객사에 들어가서 하거라.”


그 말에 신면은 주위를 흘끗 돌아보았다. 과연 그들의 주위에는 신임 평안도 도절제사를 호종하기 위해 따라나선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신숙주나 신면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었다. 말 그대로 공무에 뽑혀 따라가는 자들이었고······ 그들 중에는 송씨를 감시하기 위해 따라오는 자도 있었다. 어쩌면······ 신숙주 부자를 감시하기 위해 따라오는 자들도 마냥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신면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되었다.”


신숙주는 그렇게 대답하고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문득 말채찍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그러나 네 말대로 잠시 쉬어 가는 편이 옳겠다. 저 앞에 그늘진 데가 있으니 쉬어 가도록 하자꾸나.”


잠시 쉬어 간다는 말이 내릴 때, 뙤약볕 아래서 송씨는 한 걸음 한 걸음씩 힘겹게 비틀걸음을 걷고 있었다. 대역죄인의 아내요, 여식인 관노의 신세인지라 그녀한테는 가마는 고사하고 달구지 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마다 마음이 못내 껄끄럽지 않을 수 없었지만, 송씨에게 특혜를 내리지 말라는 것 역시 수양의 특명이었다. 송씨가 겨우 앉을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누구 하나 그녀에게 물 한 그릇 주려는 이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녀로부터 슬슬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송씨는 세상 인심이 못내 야속했지만 동시에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처지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바로 그 때였다.


“물을 드시지요.”


예상치 못한 호의에 송씨는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상대는 관복 차림의 훤칠한 젊은이였다. 신숙주를 호종하는 군관인 모양이려니 하고 생각한 송씨가 힘겹게 대답했다.


“뉘신지요.”


그녀의 어조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 말에 젊은이는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실은 그것 자체도 송씨의 배려였다. 보아하니 물정 모르는 젊은이가 괜한 호의를 품어 주는 것 같은데······ 지금 같아서는 송씨에게 사소한 호의를 보여 주는 것조차 나중에 큰 죄책을 입을 수 있기에 송씨가 이렇게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젊은이의 다음 말에 송씨가 오히려 놀라고 말았다.


“시생은······ 도절제사 영감의 아들 되는 사람이올시다.”


그제서야 송씨는 그가 신숙주의 아들임을 알았다. 그녀는 대답 없이 신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한참 그러니까 오히려 신면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목이 마르실 텐데 드시지요.”


“배우신 분으로써······ 신첩이 어떤 처지인지 모르시지는 아니하실 텐데요.”


“어려움에 처한 이를 못 본 척 하라는 말은 그 어떤 경전에도 배우지 아니하였습니다.”


한참 신면을 올려다보던 송씨는 그에게 특별한 악의가 없음을 알았다. 신면이 다시 권했다.


“어서 드십시오.”


“죄인 된 몸으로써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것에는 감사합니다만, 지아비께서도 이보다 더한 간난을 겪으시었습니다. 하온데 신첩이 어찌.”


다소 숨을 고른 송씨의 말은 단호했고, 또한 위엄이 서려 있었다. 신면은 그녀의 뜻이 완고함을 알았고, 동시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기품 있으신 분이 이렇게 영락하게 되셨을꼬. 그런 그녀의 뜻을 존중해 주는 편이 오히려 도리겠다 하는 마음이 든 신면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샘물이 저쪽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샘터로 향했다. 신면은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돌아보았다. 그가 몸을 돌리는데, 바로 뒤에 신숙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버님.”


“잠시 따라오너라.”


신숙주가 먼저 앞장서고 신면이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그늘진 산비탈 쪽으로 향하자 호종군관이 일어서려는데 신숙주가 막았다.


“잠시 경치 좋은 곳에서 아들과 단둘이 시조 한 수 지으려 하네.”


“알겠습니다.”


호종군관들을 남겨 둔 채 두 사람은 일행으로부터 조금 떨어졌다. 신숙주가 적당한 바위를 골라 걸터앉았고, 신면이 그 앞에 섰다. 신숙주가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신면이 자리를 잡고 앉자 신숙주가 입을 열었다.


“햇볕이 쨍쨍하구나. 확실히 걸어가는 이들은 고될 터.”


신면은 입을 다문 채 아버지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린 신숙주가 그런 아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려운 이를 긍휼히 여김은 좋다. 허나 죄인에게 온정을 베풀지 말라는 어명을 듣지 아니하였느냐.”


신숙주의 말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의 어머니이자 신숙주의 정실 부인인 윤씨가 죽고 난 이후 신숙주의 성정은 어딘가 모르게 변해 있었다. 그것도 퍽 오래된 일이라 이젠 그의 아버지가 원래 그러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소자 물론 들었습니다. 하오나······.”


“하오나? 네 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아니하였던 모양이로구나.”


그러나 신면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버님. 전하께서는 송씨를 살려서 임지로 보내라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도 삼가라는 것은 죄인에게 과분한 온정을 삼가라는 것이었지, 죄인이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가혹하게 몰아붙이라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흠.”


신면의 말에 신숙주는 수염을 쓸어내릴 뿐 더 질책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네 말도 일리는 있구나. 허나, 그것 이상으로 쓸데없는 호의를 보일 필요는 없음이니라.”


신면이 바로 대답하지 않자 신숙주가 못마땅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알아들었느냐?”


그제서야 신면이 대답했다.


“예, 아버님.”


신숙주는 고개를 끄덕이다 슬슬 일어나자는 말을 했다. 신숙주가 막 일어나려는데 신면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 여쭙고자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전하께서 아버님더러 송씨를 취하라는 어명을 내리시기는 하였으나······ 세상의 이목이 그것 때문에 아버님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수락하셨는지.”


그 말에 신숙주는 차갑게 웃었다.


“그래, 청사에 내 이름이 어떻게 남을지 능히 알 수 있겠더구나.”


“그러한 사실을 꿰뚫어보시고도······.”

“가끔은 후대에 남길 욕을 감수할 때가 있는 법이 아니더냐. 너 역시 내가 노산군비 송씨를 거리낌없이 취할 것으로 보이더냐.”


“아버님!”


신면의 말에 신숙주는 손을 내저었다.


“되었다. 세간에서는 어차피 나를 지조 없다고 평하지 않겠느냐. 같은 집현전 동기들과 대비해서 말이다.”


신면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사실이 그랬다. 신숙주의 인물됨에 대한 평은 과단성 있고 결단력이 있어 우유부단하지 않는 위인이라는 것이며, 아들인 그가 보기에도 그랬다. 그렇기에 문관일지언정 능히 군대를 통솔할 수 있어, 안에서는 정승, 바깥에서는 장군으로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라도 결국은 세간의 평을 신경써야 하는 사대부가 아니던가. 무릇 사대부의 생명이라 함은 세간의 평판이었다. 그런 평판이 어그러지니 아무리 신숙주라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 송씨를 취하지 않겠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취할 것인데, 그것이 누구냐고 물어 보았다.”


“누구더이까?”


“수옹이 일찍부터 송씨의 자색을 알고 그녀를 받기 위해 청했다더군.”


“수옹이 말입니까? 확실히 그라면······.”


신면이 얼굴을 찡그렸다. 수옹이란 예조 판서 홍윤성의 자이며, 역시 수양의 심복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인물됨이 참으로 세상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오만방자하고 경박하기 짝이 없었다. 계유년 이후 권세를 잡게 되자 제 마음대로 재물을 착취하고 여색을 취하는데, 그를 욕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지만 오로지 수양만은 그를 싸고돌고 있었다. 확실히 홍윤성이라면 얼굴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송씨를 취하려 했을 것이라고 신면도 수긍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듣기로는 홍윤성이 남아 평생 왕비를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더라고 떠들어댔더라는 것이다. 풍설일 뿐이지만 홍윤성의 사람됨이 워낙에 그랬다.


“그래, 너라면 어찌 생각하겠느냐?”


신면은 할 말이 없었다. 신숙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내가 뜻하는 바는 노산군 아래에서는 이루기 어려워 보였다. 그렇지만, 나 역시 사대부로서 구은을 아주 잊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아무쪼록 몸가짐을 조심히 하거라. 알아들었느냐?”


“알아들었습니다.”


“그만 가보거라. 슬슬 갈 길을 재촉해야 할 터인즉.”


신면이 일어나 인사하고 일행 쪽으로 돌아갔다. 신숙주는 잠시 바위에 걸터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구은이라. 신숙주는 씁쓰레하게 웃었다. 그의 행장 중에는 그 옛날 집현전에서 숙직을 설 적에 선왕 세종대왕께서 몸소 덮어 주신 의복이 있었다. 지금도 신숙주는 그 옷을 쓸어 보면서 그 때 일을 회상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계유년 정난 때 그는 직접적으로 참여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 상왕 노산군을 지속적으로 핍박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던가. 노산군이 탈출했다지만 그대로 영월에 있었다면······ 수양을 모시게 된 이로서 그 역시 세종대왕의 손자 되는 노산군을 사사하라고 주청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평안도로 가게 되면 노산군을 찾아내서 죽이는 데 앞장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신숙주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어물전에 손을 집어넣은 이상 생선 비린내를 피할 수 없는 법이려니.”


작가의말

어제 한 세분 정도는 수정전 것을 보신 것 같은데...... 분량조절을 실패해서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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