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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데나] 님의 서재입니다.

심양왕 단종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파사데나]
작품등록일 :
2019.05.04 07:44
최근연재일 :
2019.08.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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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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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다가오는 위난

DUMMY

함길도 도절제사로 부임하라는 어명을 받은 한명회는 바로 한가령이를 불렀다. 그가 홍위를 놓아 준 이후 한명회는 그를 그리 책하지는 아니하였다. 심복 무사들을 잃은 동료 공신인 홍달손은 심중에 크게 앙앙불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명회는 그리 신경쓰는 기색이 없었다. 마침 한명회가 찾았을 때 한가령은 무예 단련을 하던 중이었다.


“그간 잘 지내고 있었는가.”


“대감께오서 신경써 주신 덕분이로소이다.”


그 말에 한명회는 씩 웃었다.


“일품 해동청을 어찌 닭장에만 가둬 놓겠으며,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를 어찌 외양간에만 두겠으며, 천하 보도를 어찌 칼집에만 넣어 썩히고 있어야 하겠는가.”


“황감하여이다.”


한가령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한명회는 수염을 쓸어내렸다.


“자네도 내 함길도로 떠나게 되었음을 잘 알지.”


“그러하오이다. 이미 장안에 소문이 파다하오이다.”


“그래, 뭐라든가.”


여상스러운 어조로 묻는 한명회였다. 한가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희현당 대감과 더불어 대감 같은 으뜸 공신을 북변으로 보낸다는 것에 대해 뒷공론이 파다하오이다. 대감들께오서 주상의 신임을 잃었다는 둥, 정난 공신에 대한 견제책이라는 둥······.”


한가령의 말에 한명회는 풀썩 웃었다. 그가 시답잖다는 투로 말했다.


“세상 입 가진 자들의 소견이야 겨우 그런 정도 아닌가. 제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이렇다 저렇다 할 뿐이지, 그 이상 할 능력도 없는 자들이야.”


“그러하오이까. 하오시면······.”


“자네와 나 사이에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기로 하세. 자네 같은 이가 어찌 모른다 하겠는가.”


그 말에 한가령은 입을 다물었다. 한명회는 눈을 내리까는 한가령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 딱 까놓고 묻겠네. 자네 보기에, 노산군은 어떤 자로 보이든가?”


그 말에 한가령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노산군 이홍위에 대한 질문은 한가령이 혼자 한양으로 돌아온 이래 한명회의 입에서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는 노산군을 놓친, 혹은 놓아 준 일에 대해 한 마디도 추궁을 하지 않았고, 한가령 역시 한명회가 그것을 물고 늘어진다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을 사람이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시운이 비록 불길해 낙백하였으나, 시세만 따라 준다면 싹이 보이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던가.”


한명회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눈이 그러하다면 틀림이 없겠지······. 그래서 야인 땅으로 보낸 것이 아니던가.”


한가령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수그렸다. 한명회가 말을 이었다.


“뭐, 자네 같은 정직하고 담백한 사람이라면 치국의 어두운 이면과는 맞지 않을 것을 내 알고 있네. 내 자네를 익히 보아 왔는데 어찌 불만할 수 있겠는가. 지나간 일은 어찌되었든, 그래. 자네 본 대로일세. 낭중지추란 말이 있더랬지.”


한명회는 제 풀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시운이 따라 준다면 능히 왕도의 길을 걸어 갈 사람인가는 시간이 증명해 주겠지. 허나, 주상뿐 아니라 나로서도 그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음이야. 그래서 주상께오서 이 나와 희현당을 북변으로 보낸 것이 아니던가.”


“토벌을 하실 생각이시오이까.”


한명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은 아닐세. 일전 이징옥이가 난동을 부린 이후로 함길도와 평안도의 민심이 어수선해진 상태일뿐더러, 그 쪽 호족들의 충성심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네. 또한 작은 토벌이라면 모를까, 군사를 크게 일으키자면 대명 조정에도 상주할 필요가 있을 터······.”


조선은 개국한 이래 한반도 왕조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꽃피운 나라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특히 함길도나 평안도는 선대왕 세종대왕께서 군사를 보내 4군 6진을 개척하고 지경 안으로 편입시킨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고, 조선에 귀부한 야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 수양과 한명회는 군대를 일으키기 앞서 그 쪽 사람들의 충성을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번 토벌은 변경을 어지럽히는 적호 부락들을 토벌하고 반호 부족들이 허튼 마음을 먹지 않도록 하는 그런 정도와는 경우가 다름이네. 내 임지로 부임하게 되면, 그 쪽 호족들의 충성을 재확인하고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일을 진행할게야. 양정이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하오시면, 소인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이해가 빨라서 좋군.”


한명회는 씩 웃었다. 한가령과 그 사이에 쓸데없는 사설을 구구히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비록 야인 출신으로 한미하며, 경전에 배움은 적을지 모르나 한가령은 글줄이나 읊을 줄 아는 여느 사대부들도 가지지 못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있었다. 그러나 한명회의 다음 말은 한가령으로서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자네, 노산군에게로 들어가게.”


이 때만큼은 한가령조차 눈을 휘둥그렇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잠시, 한가령은 다시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자신을 노산군에게 보낸다! 얼마 전 영월에서 마땅히 처단했어야 할 노산군을 북쪽으로 보낸 장본인에게 이런 말을 태연히 하다니, 여느 사람이라면 한명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것은 한가령도 얼마간은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단지 아무리 한명회라도 이런 결단을 쉽게 내릴까 했으므로 가능성을 거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후환을 없이 하려면 노산군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히 탐문해야 하네. 그런데 노산군의 처지를 보건데 낯선 자를 쉽사리 받아들일 리가 없어. 그런데 자네는, 자네는, 내 감히 말하건데, 노산군으로서도 의심할 리가 없지. 그리고 자네는 야인 땅에서 오래 살았고.”


한가령은 침묵을 지켰다. 그는 한명회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명회도 사람의 속을 헤집어내는 듯한 특유의 눈빛을 번득이며 그의 눈길을 받아 내었다. 이 순간 한가령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인에게 이런 임무를 내릴 생각을 하시다니, 과연 대감이올시다. 허나, 정녕 소인을 그 정도로 믿으시는 것이오이까.’


그러나 한가령은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는 한명회의 대답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한명회였다.


“해주겠나.”


“알겠습니다.”


그 말에 한명회는 빙긋이 웃었다. 한가령이 입을 열었다.


“소인이 야인 땅에서 오래 살았다고는 하나 일단 야인 땅 안으로 들어가면, 그리고 노산군 밑에 붙어 있게 되면 대감께 보고를 쉬이 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게.”


한명회가 간단히 대답했다.


“정기적인 보고를 할 필요는 없네. 그런 정도야 해줄 간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자네는 노산군 옆에 숨어 있다가 결정적일 때만 움직여야 하는 거야. 그런 일을 맡길 만한 자는 거의 없지.”


“당연한 말이지만, 야인 땅에 자네가 들어가면 조정에서 자네를 원호할 길은 마땅치 않네. 전적으로 자네 손에 달린 일이지. 혹 야인 땅에서 자네가 아는 자들이 있나?”


한가령이 맡을 일을 생각해본다면 조선 조정에서 손을 쓸 수 없으니 그 곳에서 신분을 숨기고 간자 노릇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한가령의 역량에 따라 달린 일이다. 그런데 한명회는 한가령의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결국 한명회의 질문은 확인에 불과했다. 그리고 한가령도 그 믿음에 어긋날 사람이 아니었다. 한가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그곳에서 살 적에 무예 사부 노릇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가르친 녀석들 중 아직 살아 있다면 제법 장성한 친구가 있겠습니다.”


“자네가······? 하긴, 자네 정도면 그래도 충분히 먹고 살았을게야. 그래, 그런데 누군가?”


한가령이 추억 속에 잠긴 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성씨를 퉁씨라 하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형의 경우에 소질이 보였기에 몇 년 초원에서 같이 생활하며 지냈었더랬습니다. 결국은 친척 족장이 불러서 떠나갔습니다만. 그를 찾아가 볼까 합니다.”


한명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훌륭하군. 아무튼 내 자네를 믿고 맡길 터일세. 나 또한 조만간 함길도로 올라가겠네만, 한 발 먼저 들어가 주게. 내 군사를 일으킬 때는 못되어도 반 년 정도는 여유가 필요할 테니까 말일세.”


한가령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한명회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이보게, 나는 자네를 예전부터 크게 믿어 왔던 편일세. 내 이제껏 심복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을 여럿 만나 보았네만, 자네만한 인물은 없었네. 내 자네를 얻을 수 있었음이 오늘날 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기꺼운 일이었네. 자네를 처음 만난 날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으이.”


“황감한 일이올시다. 소인 역시, 대감의 의리를 어찌 잊으리오리까.”


그 말에 한명회가 웃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먼 길 떠나야 할 테니, 내 노자며 조선 지경 안에서 필요할만한 것들을 챙겨줌세.”


한가령이 하직 인사를 고하고 떠나자 한명회는 생각에 잠겼다. 한가령······. 노회하고 약삭빠른 그로서도 유일하게 믿을 만한 이가 있다면 한가령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한명회의 심복들 중 안에서도 쑥덕거리는 이들이 없지 않았지만 한명회는 개의치 않았다. 한가령이라는 사내를 잘 알기에 가질 수 있는 남자로서의 믿음이었다. 권모술수에 능한 한명회로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작가의말

올리지 않은지 퍽 오래되었습니다.

6월부터 발령 장소를 새로 옮겼는데 제법 일이 많네요. 변명이라긴 그렇습니다만.

 (--)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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