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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데나] 님의 서재입니다.

심양왕 단종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파사데나]
작품등록일 :
2019.05.04 07:44
최근연재일 :
2019.08.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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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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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건주위 도독 이만주 (2)

DUMMY

홍위의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이만주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없이 홍위를 노려보고 있었고, 옆에 늘어선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홍위는 침착하게 이만주를 응시했다. 가늘게 째진 눈이 홍위를 요모조모 훑어보고 있었다.


“쇠붙이를 다룬다······ 쇠붙이를 다룬다?”


이만주는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우리에게도 대장장이가 없지는 않다.”


“그럴 것이오. 하지만 그들은 연장이나 무기를 만들어내려면 반드시 잡쇠 덩어리를 구해야 할 것이고, 그것들은 모두 명이나 조선에서 못 쓰는 쇠붙이를 받아와서 구했어야 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소?”


홍위는 말을 끊었다. 이만주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제아무리 건주위 도독 동지라 할지라도 말이오.”


“이 놈이······.”


비리해림돈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 걸음 나섰지만 이만주가 얼음처럼 차가운 눈길을 던지자 그 자리에 못박힌 듯이 설 뿐이었다. 이만주는 천천히 홍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얼음장 같은 눈빛이었다.


“당신은 그 귀한 철을 구하는 데 전적으로 명이나 조선에 의지해야 했을 것이오. 그들은 그리 함으로써 당신에게 고삐를 채운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렇지 않소?”


이만주는 대답이 없었다. 홍위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의 음성에는 확실한 힘이 실려 있었다.


“우리는 당신이 명이나 조선에서 얻을 수 있는 고철에 의지하지 않고도 쇠붙이를 구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소.”


이만주가 코웃음을 쳤다.


“자네는 조선 사람이지. 그렇지 않나?”


“그렇소.”


“어떻게 믿나?”


손돌은 마른침을 삼켰다. 유빈은 겉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들은 이 젊은 전왕이 어떻게 상황을 해결할까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손돌은 어쩌면 이 무모해보이는 젊은이가 활로를 뚫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선 땅에서 쫓겨났소. 죽을 고비도 넘겼고. 지금의 조선 왕이 자신의 조카의 왕위를 빼앗았다면 믿겠소?”


“들어 알고는 있다.”


이만주의 눈에는 처음으로 약간 놀란 눈빛이 서렸다.


“그렇다면, 너는 그와 관련이 있는 자인가?”


“그렇소.”


이만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리해림돈은 못미더운 시선으로 홍위를 흘끗 보다가 다시 이만주 쪽을 바라보았다. 이만주가 턱을 긁적거리면서 홍위 뒤에 있는 유빈 쪽을 넘겨다보았다.


“우리는 저 자를 알고 있다. 압록강 건너 만포진 군관이 아니던가.”


“그렇소. 전에는 그랬소.”


이만주가 심술궂게 웃었다.


“내, 이것이 너희 나라에서 수작을 걸어 오는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겠나?”

“두 가지 이유가 있소. 첫 번째로, 조선은 이제 더 이상 내 나라가 아니오. 그곳에서 내가 발 붙일 곳은 더는 없으니까.”


“흐음.”


이만주는 가볍게 고개만을 끄덕였다.


“둘째로, 내가 당신을 속이려 한다면 당신조차 조선 군관이라고 알고 있는 이를 뻔히 데리고 왔을 리가 없소. 당신의 정보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이 사람은 몇 달 전부터 만포진에서 탈영한 사람임을 알았을 것이오.”


“조선인들의 간계를 내 어찌 다 짐작할 수 있겠나.”


이만주는 짤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주변의 심복 부하들도 따라 웃었다. 웃음을 그친 이만주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그가 조용히 뇌까렸다.


“이 자리에서 허튼소리를 하면 즉시 죽음이다. 내 앞에서 나에게 이렇게 당돌하게 대든 녀석을 본 것도 오랜만이군······. 예전에는 이렇게 한 것만으로 해도 바로 목이 달아난 놈들이 많았는데 말이야.”


홍위는 물러서지 않았다.


“만약에 불쾌하시다면, 지금이라도 나를 죽이시오. 하지만, 그럴 경우 당신은 큰 기회를 놓치는 셈이 될 거요.”


비리해림돈이 눈썹을 치켜떴다. 그는 이 젊은 ‘풋내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편 이만주는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네놈의 눈빛을 보건데······ 적어도 자신의 말에 자신은 있나 보군.”


홍위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만주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놈 말을 믿는다 치고, 그렇다면 쇠붙이를 얼마나 공급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해서는 홍위는 머릿속에서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조차 없었다.


“이제 대장간을 확충하는지라, 확실하게는 말하기 어려우나, 지금 단계에서도 주야로 작업하면 쇠돌 삼십 바리를 넣어 예닐곱 바리 정도 잡쇠를 고아낼 수 있을 것이오. 여기서 쓸 만한 정도로 정련해낸다면, 한 번에 서너 바리쯤은 얻어낼 것으로 생각되오.”


한 바리란 곧 300근에 달했으니 서너 바리 정도라면 천 근 정도 되었다. 무쇠 일천 근! 그 말에 주위에서 술렁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홍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뜻 보이는 비리해림돈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하루에 무쇠 천 근 넘게 얻어낼 수 있다면 적은 양은 아니었다. 거기다 홍위는 대장간이 확충되기 전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만주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홍위는 정신을 집중했다. 이만주의 누르팅팅한 얼굴에서는 생각을 읽어내기 힘들었다. 그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족장 노릇을 하면서 큰 세력을 일군 노회한 자였다. 그의 표정은 마치 두터운 장막을 내린 듯했고,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하루에 무쇠 일천 근이라면 과히 적지는 않을터.”


한참만에 이만주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입술을 핥았다.


“성의를 보아서라도 자네가 바친 칼은 내 접수하도록 하지······. 그나저나, 자네는 아까 전에 부씨 부락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던가.”


그 말에서만큼은 홍위도 약간 흔들렸다.


“그렇소. 하지만 약간의 친분은 있소. 대장간을 세우는 데 그 족장의 힘을 빌렸소.”


“친분이라.”


이만주는 코웃음을 쳤다.


“그 족장이란 자가 나에 대해 특별한 말은 하지 않던가?”


홍위는 눈을 내리깔았다.


“소상히는 듣지 못했소이다.”


“소상히는 듣지 못하였다······ 그렇겠지!”


이만주는 껄껄 웃었다.


“내 조만간 군대를 몰아 그 하잘 것 없는 놈들을 쓸어버릴 작정이었는데, 물론 그런 말도 하지 않았겠지. 아닌가?”


그의 작은 갈색 눈이 잔인하게 번득였다. 비리해림돈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짤막하게 웃었다. 홍위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잠시 뜸을 들여야 했다.


“우리 대장간을 차리는 데는 부씨 부락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소. 그들이 없으면 이미 이루어놓은 일에 큰 지장이 생길 것이오.”


이만주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그러시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소. 도독동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허나, 그리된다면 앞서 도독동지께 말씀드린 무쇠는 바치기가 난망할 것이오.”


그 말에 여기저기서 분노의 고함소리가 물끓듯 올라왔다. 이만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휙 돌리자마자 정적이 내리깔렸다.


“이 나에게 감히 협상을 시도하자는 건가?”


“그렇지 않소. 도독동지께서는 내가 말한 것을 그냥 무시하실 수도 있으시고, 받아들일 수도 있소. 누가 감히 도독동지께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소?”


그 말에 이만주는 섬뜩한 표정으로 웃었다.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말씀드렸을 뿐이오.”


“사람은 많다. 대장장이도 많지. 부씨 부락의 사람들을 고집할 이유는 자네에게 없을 터인데.”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같이 일해 왔소. 그들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쇠가마를 다룰 수 있는 자는 다른 어디에서도 없소. 나를 뺀다면 오로지 그들뿐이오.”


그 말에 이만주는 침묵을 지켰다. 비리해림돈은 분명한 적의가 담긴 눈으로 홍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만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나에게 조건을 건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만주는 씩 웃었다.


“그렇지만 내 네놈의 배짱은 높이 쳐주기로 하지. 네놈의 목을 붙여서 돌려보내는 대가로, 우선 네놈이 고아 낼 수 있는 만큼 내게 바쳐야 할 것이다. 부씨 부락 놈들을 잠시 살려 두는 대가라면 비싸다고 할 수 없을 터.”


“물론이오.”


홍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주는 차갑게 웃었다.


“만약 네놈이 허튼소리를 지껄였다거나, 이 일로 문제가 생긴다면 네놈의 목숨을 받아갈 것이야. 부씨 부락도 씨알머리를 아니 남길 것이고. 알아듣겠는가?”


홍위는 이만주를 마주보았다.


“알아들었소.”


이만주는 대답 없이 장막 뒤로 휭허케 사라져갔다. 비리해림돈이 앞으로 걸어나오면서 홍위 일행을 노려보았다. 접견이 끝난 것이다.


이만주의 집을 빠져나온 손돌은 다리에 힘이 풀려 거의 후들거리다시피 할 정도라고 홍위에게 말했다. 그 말에 홍위가 빙긋이 웃었다.


“자네같은 노련한 이도 그러한가.”


“그러다뿐이옵니까. 소인은 바지에 지릴 뻔하였습니다.”


손돌은 익살맞게 웃었으나, 내심으로는 아주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상 노릇도 여러 해 해먹었지만 오늘만큼 조마조마한 때가 없었다.


“그러나, 나으리께서는 정말로 대단하시옵니다. 저 이만주를 상대로 배짱을 부리시다니요.”


“그런가.”


홍위는 나지막하게 웃었다. 손돌은 고개를 조아렸다.


“소인은 나으리께 감히 조언이라는 것을 드리기에는 배움도 적고, 하찮은 장사치에 불과하오니, 허락하오신다면······.”


“말해 주시게. 내 듣겠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오소서. 협상도 상대를 보아가면서 해야 할 것이옵니다. 다행히 이만주는 말이 아주 통하지 않는 자는 아니었습니다만.”


그 말에 홍위는 태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너무 괘념치 말게. 내 목숨은 영월을 벗어날 때 한 번 죽었네. 내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이야. 천명이 나에게 없다면 백 가지 술책을 써도 무효할 것이요, 천명이 나에게 있다면 내 세 치 혓바닥이 어떤 식으로든 길을 보여 주겠지.”


손돌은 침묵을 지켰다. 너무나도 담대한 배짱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유빈 역시 새삼스럽게 홍위를 바라보았다. 이전부터 가끔 느낀 것이지만, 홍위는 정말로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겪은 고난이 그를 성숙케 한 것일까? 아니면 그는 단순한 모험주의자인 것일까? 그러나 방금 전에도 보았듯이 결과적으로 홍위는 일을 잘 풀어나갔다. 손돌이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얼마간 예상은 했습니다만 앞으로 대장간에서 고아 낸 모든 쇠를 이만주에게 바쳐야 한다니······.”


그 말에 홍위가 웃었다.


“부씨 부락을 호랑이 입에서 빼낸 것치고는 싼 대가이지. 그리고 내가 어련히 생각을 하지 않았겠나.”


그 말에 손돌과 유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만주에게 말한 양은 실제보다 줄여서 말한 것일세. 너무 걱정할 것은 없네.”


그 말에 손돌이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과연······ 그와 같은 상황에서도 그런 머리를 굴리시다니요! 나으리께서는 이제 소인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십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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