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파사데나] 님의 서재입니다.

심양왕 단종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파사데나]
작품등록일 :
2019.05.04 07:44
최근연재일 :
2019.08.20 20:33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53,059
추천수 :
1,290
글자수 :
406,586

작성
19.08.07 19:15
조회
722
추천
19
글자
16쪽

손 하나에 두 가지 모두를 쥐랴

DUMMY

홍위는 조용히 자신의 내력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본시 세종대왕의 손자이자 문종대왕의 아드님 되는 사람이며, 어린 나이에 왕실 웃어른 없이 군왕의 책무를 짊어지었으되 불행히 수양 숙부의 간계에 휘말려 충신 열사들이 참살당하는 것을 보고 마침내 영월 땅으로 쫓겨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야인 땅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자신의 아내 송씨가 이제 천한 관노 신세로 떨어져 신숙주에게 하사되었다는 것까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퉁주동 일행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월영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홍위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창백한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퉁주동이 중얼거렸다.


“자네가 조선의 왕이었다니. 범상치 않은 위인이라 짐작은 했네만.”


“나 또한 형님 말에 동감이오. 어찌 지금까지 그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소?”


퉁주강도 말했다. 홍위가 사연 있는 귀인이라는 것쯤이야 행동거지로 짐작할 수 있었지만 왕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 이 말을 자네들에게 털어놓은 것은······ 첫째로는 더 이상 숨길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야.”


“마지막이라니, 자네 무슨 그런 말을 하는가?”


홍위의 말에 퉁주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퉁주강도 주먹을 쥐며 외쳤다.


“그렇수. 왜 그런 말을 하시오? 사내 대장부라면 그렇게 나약한 말을 해서는 아니되우. 차라리 그까짓 버러지 같은 놈들을 단매에······.”


“어허! 말이 너무······.”


퉁주강의 말에 호인이 그렇게 부르짖었지만 홍위는 오히려 개운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아닐세. 차라리 그렇게 말해 주니 더 고마울 따름이네. 내 자네들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개운하네. 자네들을 속여 왔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누구에게나 차마 말 못할 비밀은 있는 법입니다.”


월영이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홍위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나더니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는 사슴같이 맑은 눈동자였다.


“그 말씀을 저희에게 하심은, 마음 속에 이미 정해 둔 것이 있으시군요.”


홍위는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이내 견뎌 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뇌까렸다.


“그래. 난 내 아내를 구해내러 갈 생각이다.”


그 말에 호인과 유빈의 표정은 굳어졌고 한가령은 시선을 내리깐 채 입을 다물었다. 한편 퉁주동 형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월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월영의 시선을 피한 채 홍위가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월영은 담담히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오라버님이 일찍이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오라버님이 이 자리에서 아내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거예요.”


홍위는 월영을 돌아보았다. 정말이지 당차고 씩씩한 여인이었다. 거친 광야에서 벼려저 온 강철 같은 여인, 송씨에 대한 연정과 지아비로서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는 홍위 역시 흔들리게 할 정도의 그런 여인. 자신이 연심을 품고 있는 남성이 두고 온 여인에 대한 의리를 위해 사지로 가리라 말하는 와중에서도 굳센 모습을 보이는 여자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월영을 옆에서 보아 온 퉁주동은 그녀의 강철 같은 하얀 얼굴 밑에 감춰져 있는 진정한 모습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이내 월영이 고개를 조용히 돌렸다. 흔들림 없는 그녀 속에는 좋아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음을 알고, 그것 때문에 흐느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눈으로 울지 않고 온 몸으로 흐느끼는 것이다. 퉁주동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월영이 말에 동감하네. 이 상황에서 자네가 자네 부인을 구해내지 않는다 하면 난 오히려 자네를 경멸했을 거야.”


퉁주동의 말에 호인과 유빈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한편 한가령은 팔짱을 낀 채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 초원을 호령하고 우리 야인 부족들까지 무릎 꿇렸던 달단 성길사한 (成吉思汗) 역시 자네와 비슷한 상황에 빠졌었다지. 그 역시 자신의 아내를 적에게 빼앗겼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어.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던 거야.”


달단이라 하면 타타르 족이니 성길사한 즉 칭기즈 칸의 몽골 족과는 다르지만 퉁주동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퉁주동은 홍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의리를 높게 산다네. 자기 사람을 버린 자들을 낮게 치지.”


“그랬는가.”


홍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자네, 그 말을 우리에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그 말에 홍위가 고개를 들었다. 퉁주동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네. 자네를 날 적부터 본 것은 아니네만, 짧게나마 같이 한 우정이 깊은데 자네 성격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퉁주동은 엄숙한 어조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천지를 두고 맹세하겠네. 나 퉁주동이는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의형제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을 것일세. 의형제의 아내되는 사람은 곧 내 아내와 마찬가지일세. 어찌 자네가 그녀를 구하려 목숨을 아끼지 않는데, 내 어찌 주저함이 있겠나.”


“고맙네.”


홍위는 목이 메여 왔다. 어떻게 그가 차마 말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감히 입 밖에 낼 수 있었겠는가. 우정, 혹은 의형제의 연을 핑계로 친구를 사지에 끌어들이려 하는 놈의 염치 없는 부탁을.


“그렇게 말해 주어 고맙네. 진심일세. 하지만······ 그렇게 말해 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네. 자네를 끌어들일 수는 없어.”


“설마 자네가 이 나를 겁쟁이로 보는 것은 아니겠지.”


홍위의 말에 말에 퉁주동은 피식 웃었다.


“이 퉁주동이는 이제까진 겁이라는 것이 뭔지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야. 말했듯이, 형제의 아내는 곧 나의 아내나 마찬가지야. 내 목숨으로 자네를 돕겠네.”


“너무 무모한 일이다.”


그 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한가령이 조용히 입을 떼었다.


“내 너에게 무예를 가르칠 적에 분명히 말했지 않느냐. 칼을 내리치기 전에 적이 어떤 방책을 취할지 몇 수를 먼저 내다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내 보기에도 이것은 함정이다. 경거망동해서는 아니된다.”


“인의가 군자를 만든다, 옛적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퉁주동은 옛 스승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진정한 무사라면 한낱 도구 같은 무부가 되지 말고,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씀하였습니다.”


퉁주동의 반론에 한가령은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그렇습니다.”


한가령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고개를 외로 꼬았다.


“하지만, 여기 계신 우리 나으리도 알 걸세. 그렇지 않습니까?”


한가령의 말에 퉁주동은 홍위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주동의 시선을 받은 홍위도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자네 스승님의 말이 맞네.”


그 말에 퉁주동의 눈이 커졌다. 그러나 홍위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네는 여기에 끌어들여져서는 안 되네. 자네를 겁쟁이라 생각해서가 아니야. 자네 부락 때문일세.”


“무슨 말인가?”


퉁주동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홍위는 한가령 쪽을 흘끗 돌아보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이만주 때문이야. 자네 스승님 말에 따르면, 이만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어.”


홍위는 한가령이 들려 준 이야기, 즉 이만주가 대장간 마을의 존재를 조선에 고변했고, 그것을 빌미로 부씨 부락이 조선군에게 토벌당하게 만들려 할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퉁주동과 월영, 그리고 퉁주강은 침묵했다.


“이만주라면 능히 그런 흉계를 꾸밀 자겠지.”


한참만에 퉁주동이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긍정했다. 홍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도 알 게야. 족장님이 병중인 지금, 부락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네뿐일세. 난 단지······.”


홍위는 고개를 숙였다.


“난 단지, 내가 아내를 구하기 위해 떠나기 전, 내 혈족처럼 생각하게 된 자네들에게는 모두 털어놓고 가고 싶었을 뿐이야. 일찍이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 말일세.”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잠기기 시작했고, 가늘게 떨리었다.


“고맙네, 모두들 정말로 고마워. 내 어찌 자네들을 잊겠는가. 이생에서도, 그리고 저생에서라도.”


“홍위!”


퉁주동이 몇 발짝 내딛더니 두툼한 손으로 홍위의 양 어깨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았다. 홍위가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자네의 마음은 고마우이. 허나 자네는 필부의 몸이 아니야. 족장님 대신 부족 전체를 건사해야 할 게야. 바로 그것을 알기에 나는 자네의 도움을 마음으로서는 고맙게 받겠지만, 머리로는 사양할 수밖에 없네.”


주동은 침묵을 지켰다. 한가령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보탰다.


“나으리 말씀이 지당하네. 자네들은 자네가 처한 처지를 생각해보아야 해. 이만주의 세력이 곧 부씨 부락을 공공연히 적대하려 들 게야. 조선에서도 조만간 토벌군을 보내 올 거고.”


한가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내뱉었다.


“나으리께서 부인을 구해내려 가는 행동 역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일단은 목숨 부지부터 하는 것이 먼저라네. 내가 권고하고 싶은 것은 상책은 지금이라도 부락을 옮기고 다른 곳으로 가는 편이 더 낫다고 보네.”


그 말에 퉁주동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부락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조선군에게 밀려 집은 불타고, 남자들은 죽고 아녀자들은 얼어죽거나 노비로 끌려갈 테지! 아니면 이만주 자신에게 당하던가. 그래도 좋은가?”


그 말에는 퉁주동도 무어라 반박할 수 없었다. 한가령의 말에는 틀린 점은 없었다. 이내 퉁주동이 고개를 떨구었다.


“곧 겨울이 닥쳐올 겁니다. 부락 전체가 어디에서 몸을 피할 수 있겠더라는 말씀이십니까.”


“자네는 소싯적에 북쪽 땅을 방랑하지 않았던가.”


퉁주동은 고개를 저었다.


“나와 동생 단 둘이 떠돌아다니는 것과 부락 전체가 이주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쪽도 사람 사는 땅이고, 수백 명 사람들이 일시에 움직이는 것은.”


“가만히 있다가 화를 당하기보다는 낫겠지. 그게 아니라면 이만주를 적대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은 어려운 일일세. 언젠가는 이만주에게 대적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닐 거라고 보는데.”


퉁주동은 침묵을 지켰다.


“일단 알아는 보아야겠군요. 한두 달 정도는 길을 떠나야 하겠습니다.”


한가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에는 홍위 쪽을 돌아보았다.


“평안도 땅으로 들어가실 생각은 굽히지 않으시겠지요.”


“그렇네. 내 스스로에게 한 점 거리낌이 남아 있는데, 천하 사람들을 어찌 마주 대하겠나.”


홍위는 이미 결심을 굳힌 듯했다. 한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준비 없이 들어가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 점에라면 소신이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자네가?”


그 동안 내내 가만히 있었던 유빈이 불쑥 나섰다. 그 말에 호인도 놀라 돌아보았고, 홍위 역시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내가 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길 거라 생각했네.”


“맞습니다, 전하. 전하의 옥체를 생각하자면 몇 번이라도 말리고 싶습니다. 하오나······ 전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소신이 어찌 견마의 수고로움 (犬馬之勞)을 거리끼겠나이까.”


유빈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그 말에 홍위도 웃었다.


“그대라면 그렇게 말해 줄 것을 알았네. 하지만······ 어떻게?”


“소신의 원래 임지는 평안도 만포진이었지 않습니까. 그 때 면식 있는 이들도 있을뿐더러······. 소신이 따로 믿는 이도 있도소이다.”


홍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빈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소신, 외람되오나 전하께 간할 말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내 듣겠네.”


홍위의 말에 유빈은 한가령 쪽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의 말마따나, 칼을 휘두른다 해도 적이 취할 수를 몇 수 먼저 내다보아야 합니다. 보건데, 수양 세력은 이미 전하께오서 어찌 나오실 것을 먼저 내다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그보다 몇 수를 더 앞질러야 합니다.”


“으음.”


“그러하온즉, 감히 청한다면, 소신이 먼저 탐문하고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 주소서.”


유빈의 간언에 홍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홍위는 당장이라도 송씨를 구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이 없었다. 한참만에 홍위는 마지못한 투로 대답했다.


“그리하겠네.”


그 말에 유빈은 깊숙이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홍위는 퉁주동 일행 쪽을 돌아보았다.


“귀한 분이 오셨는데 자네들을 청해 놓고, 주안상을 차릴 경황이 없었네. 미안하네. 한 잔 들고 가시게.”


한가령을 맞이하기 위한 주연은 비교적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짧게 이어졌다. 홍위 일행의 배웅을 받은 퉁주동 일행은 말없이 마을 문 밖을 나섰다.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한데, 늦가을 바람은 스산하고 길가의 억새풀들은 청승맞게 나부끼고 있었다. 월영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을 몰아갔다. 동생 퉁주강을 먼저 앞세워 보낸 퉁주동은 그녀 옆으로 나란히 말을 몰아갔다.


“괜찮으냐? 심란해 보이는구나.”


“그렇게 보이시나요.”


자신의 눈가에 드리워진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내린 월영이 대답했다. 퉁주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홍위 때문이겠지.”


“오라버니께 제가 무엇을 숨길까요.”


월영이 시선을 말 잔등에 고정시킨 채 중얼거렸다.


“오라버니, 저는 그이를 좋아해요. 사무치도록······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지평선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볼 때면, 밤하늘의 저 별들을 바라볼 때면, 그이의 얼굴이, 목소리가, 그이의 모든 것이 생각나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퉁주동은 묵묵히 월영의 말을 들어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이가 가겠다는 것을 붙잡을 수 없어요. 어떻게 붙잡을 수 있겠어요? 붙잡아 둔다면 저이의 육신은 여기, 이곳에 남겨 둘 수 있을런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이는 언제까지나 자신이 가지 않았던 것 때문에 괴로워할 거예요. 저이는 지금도 그런걸요.”


비록 어둠 속이었지만 퉁주동의 눈에는 월영의 눈가에 반짝이는 이슬이 보이는 듯했다.


“늘 생각하고 있어요. 차라리 저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만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저이가 평범한 초원의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고개를 들어올린 월영은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결국 저이를 만났고, 저이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월영은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눈물이 어리고 있음을 깨닫고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께서도 위중하시고, 이제 이만주와 이고납합이 우리 부락에 마수를 뻗치려 하는데······.”


“월영아······.”

퉁주동은 월영의 손목을 잡았다.


“울어도 좋다. 어릴 적부터 보아 왔지만, 너는 강인한 아이야. 그렇지만 지금 울지 말라고는 않겠어. 강인한 전사들도 때로는 울 수도 있는 법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때로는 눈물 흘리는 것이 나약함의 징표는 되지 않는 법이다.”


“오라버니······.”


퉁주동의 말에 월영은 왈칵 눈물을 쏟아내었다. 퉁주동은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 온 그녀를, 그가 늘 여동생처럼 생각해 왔던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저녁 달이 그들이 가는 길을 비추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심양왕 단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 +4 19.08.05 1,542 0 -
51 함정 (1) +3 19.08.20 1,216 20 10쪽
50 최형욱 (2) +1 19.08.14 607 19 14쪽
49 최형욱 +5 19.08.13 657 16 16쪽
48 손 하나에 두 가지 모두를 쥐랴 (2) +2 19.08.08 737 19 15쪽
» 손 하나에 두 가지 모두를 쥐랴 +5 19.08.07 723 19 16쪽
46 한가령 (2) +9 19.08.06 691 16 14쪽
45 한가령 +5 19.08.06 686 17 13쪽
44 이고납합 (2) +5 19.08.05 666 17 14쪽
43 이고납합 +9 19.08.02 700 16 15쪽
42 다가오는 위난 (4) +6 19.07.31 750 16 13쪽
41 다가오는 위난 (3) +4 19.07.30 712 18 17쪽
40 다가오는 위난 (2) +3 19.07.28 727 19 17쪽
39 다가오는 위난 +9 19.07.27 790 27 10쪽
38 전령 (2) +4 19.06.13 932 30 10쪽
37 전령 +2 19.06.11 871 26 15쪽
36 몰려오는 먹구름 (5) +3 19.06.05 914 26 17쪽
35 몰려오는 먹구름 (4) +12 19.06.03 866 23 16쪽
34 몰려오는 먹구름 (3) +6 19.06.02 869 29 15쪽
33 몰려오는 먹구름 (2) +4 19.06.01 877 26 22쪽
32 몰려오는 먹구름 (1) +14 19.05.28 983 29 19쪽
31 음모가들 (2) +6 19.05.27 837 24 23쪽
30 음모가들 (1) +7 19.05.26 1,017 28 13쪽
29 변화구 (2) +5 19.05.23 910 32 13쪽
28 변화구 (1) +8 19.05.22 946 31 11쪽
27 건주위 도독 이만주 (2) +14 19.05.21 946 27 12쪽
26 건주위 도독 이만주 (1) +2 19.05.20 960 32 20쪽
25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3) +9 19.05.19 1,084 29 12쪽
24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2) +6 19.05.17 940 27 21쪽
23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1) +11 19.05.16 1,008 30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