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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데나] 님의 서재입니다.

심양왕 단종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파사데나]
작품등록일 :
2019.05.04 07:44
최근연재일 :
2019.08.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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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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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3)

DUMMY

홍위 자신과 월영이 달리고 있는 말들이 울리는 발굽 소리 외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이따금 말발굽 소리에 놀란 들짐승들이 뛰쳐나오면서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렸을 뿐이다. 조금 전 주동에게도 말했듯이 이 근방은 외지고 험한 곳이라 다른 야인 부족들도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다만 송유빈은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을 것이 뻔했다. 확실히 이곳은 인적이 드물긴 했지만 반대로 보자면 괴한 몇이 스며들어온다 해도 알 수 없을 터였다. 분명히 유빈은 홍위를 따라오고 싶어했지만, 퉁주동이 말렸다. 그들 둘은 잠시 한옆으로 물러나 꽤 오랫동안 이야기한 끝에, 두 사람이 일대가 다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서 월영과 홍위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타협했다. 지금도 두 사람이 주변에 특이한 이상이 없는지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홍위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걱정보다는 앞서 가는 월영 걱정만이 더 컸다.


‘넘어질까 걱정도 안 되나······.’


이곳은 사방에 널린 갈대숲으로 뒤덮인 습지라든가 우거진 가시덤불 탓에 말을 몰기 어려울 정도인데 월영은 계속해서 홍위를 앞서나가고 있었다. 홍위 자신도 어느 정도 말 타는 데는 익숙히 했다고 자신했는데, 이 속도로 달려나가자니 등줄기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이지 월영의 말 타는 솜씨는 제법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홍위는 이제야 퉁주동이 왜 그녀가 웬만한 남자들도 당해낼 수 없으리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앞서가던 월영이 말 달리는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홍위도 서둘러 말고삐를 잡아챘다. 무슨 일인가 생각하기도 전에 홍위는 까닭을 알아챘다. 그들의 앞에는 썩은 고목둥치 하나가 넘어져 있었는데, 그 앞에 노루 떼가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노루들이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월영이 돌아보았다.


“오라버니로부터 들었습니다. 사냥 솜씨가 훌륭하다고 들었는데요.”


“대단한 솜씨는 못 되오.”


홍위의 대답에 월영이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주동 오라버님은 빈말을 아니하시는데요······. 소녀에게도 그 솜씨를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홍위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월영이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말의 아랫배에 박차를 가했다. 말이 앞발을 들고 히힝거리며 울더니 그대로 앞으로 도약해나가 나무 둥치를 넘었다. 월영은 그대로 달려나가면서 홍위에게 외쳤다.


“그러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뒤에 남겨진 홍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노루를 쫓는 월영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재빨리 고목을 뛰어넘은 홍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못당하겠군······.”



멀리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유빈은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이 숲 속으로 들어간 이후 말발굽 소리만이 멀리서 들렸을 뿐이다. 그는 옆에서 태평스럽게 앉아 있는 주동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저렇게 홀로 놔둬도 괜찮겠나?”


“물론······. 이곳은 나나 월영이나 잘 알고 있는 곳이야. 여러 번 왔었거든.”


“여러 번 왔었다고? 하지만 아까 아씨의 말과는······.”


유빈의 말에 퉁주동은 빙긋 웃었다.


“원, 사람하곤······. 가만, 그러고보니 자네는 만포진 군관이었다지 않았던가.”


그 말에 유빈은 시선을 떨구었다.


“그랬지.”


“북변 땅은 조선 사람들에게는 험한 벽지 아닌가. 마음에 두고 있던 여식은 없었나.”


그 말에 유빈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긴 한숨을 토해냈다.


“있었지······. 하지만 별로 말하고 싶지 않네그려.”


퉁주동은 시선을 피했다.


“미안하네그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서쪽으로 서서히 움직여가는 태양이 두 사람 위에 내리쬐였다.


한편 거의 반 시진이 넘도록 홍위와 월영 두 사람은 실로 정신없이 숲 속을 쏘다녔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그늘 아래에서 노루 떼를 쫓아 졸참나무며 참나무 둥치 사이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말을 몰아 달리느라 홍위는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월영이 하는 양을 흘끗 보자 나무 사이사이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모습이 그야말로 인마일체 (人馬一體)라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였다. 이를 악문 홍위는 자신이 쫓고 있던 노루를 노려보았다. 개활지로 몰고 나가야 어떻게 활을 쏠 엄두라도 내볼 텐데······. 그 때 저 멀리 앞쪽 시야가 환하게 트였다. 숲이 끝난 것이다. 홍위는 한 손으로 말고삐를 움켜쥔 채 오른손을 안장에 걸린 활 쪽으로 가져다댔다.


환한 햇살 아래 겁에 질린 노루 떼들이 튀어나왔고, 그 뒤를 홍위와 월영이 바투 쫓았다. 홍위가 흘끗 보니 어느새 월영도 활시위에 화살 한 대를 메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홍위는 월영의 입가에 슬쩍 걸린 미소를 보았고 순간 얼어붙었다. 앗 하는 순간, 월영이 시위에 걸린 검지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와 동시에 앞서 달리던 노루 한 마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소녀가 이긴 것 같······.”

자신만만한 월영의 외침은 우렁찬 포효 소리에 먹혀들고 말았다. 깜짝 놀란 월영과 홍위의 시선이 막 숲에서 뛰쳐나온 호랑이 한 마리에게 고정되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호랑이는 바로 월영의 오른편에서 뛰쳐나왔다. 그 바람에 월영이 타고 있던 말이 겁에 질려 앞발을 높이 쳐들었고, 월영은 자신의 말을 통제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홍위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호랑이 쪽을 겨냥했다. 쌔액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았고, 정확히 호랑이의 잔등에 명중했다. 명중인가, 하기 전에 홍위는 거의 본능적으로 두 번째 화살을 전통에서 꺼내 바로 메겼다. 지축을 뒤흔드는 포효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 사이에 월영은 가까스로 자신의 말을 통제할 수 있었다. 여유가 있었다면 홍위도 그 노련한 실력에 감탄했겠지만, 그의 정신은 온전히 호랑이 쪽에 쏠려 있었다. 이제 호랑이의 시선은 월영 쪽보다는 홍위 쪽에 쏠려 있었고, 붉은 입을 쩍 벌린 채 도약할 채비를 갖추었다. 다시 두 번째 화살이 허공을 갈랐고, 이번에는 정확히 오른쪽 눈에 명중했다. 끔찍한 포효 소리가 메아리치는 것과 동시에 호랑이가 앞으로 내달렸다.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어 도약하는 호랑이의 왼편으로 몸을 빼낸 홍위였지만 그 바람에 말고삐를 놓치고 말았다.


“어이쿠!”


당황한 말이 사납게 날뛰는 통에 홍위는 병장기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 홍위의 손을 벗어난 활이 말발굽 아래 굴러떨어졌다. 활을 잃고 만 홍위는 오른편 눈에 화살이 박힌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내며 자신 쪽을 노려보고 있는 광경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가 막 달려들려는 찰나였다.


“에잇!”


막 도약하려던 호랑이는 왼편 어깻죽지 쪽에 예리한 충격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창 한 대가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을 확인한 호랑이는 고통스럽게 포효하며 창이 날아온 쪽을 돌아보았다. 월영은 침착하게 자신이 입힌 상처를 확인하고는 말을 돌려 세웠다. 그 사이 자신의 말을 진정시키고 고삐를 잡은 홍위는 안장에 걸려 있던 창을 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호랑이 쪽으로 달려들었다.


오른눈을 잃은데다 새로 나타난 적수 쪽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호랑이는 홍위의 돌격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그것이 호랑이에게는 치명적이었고, 호랑이가 대처하기 전에 목덜미를 창으로 꿴 홍위는 유연한 동작으로 말을 돌렸다. 홍위의 일격이 어찌나 강했던지, 목을 관통한 창이 땅에 박힐 정도였다. 부질없이 머리를 움직여보려 노력하던 호랑이는 최후로 한 번 크게 울부짖고는 이내 고개를 땅에 박았다.


숲 속에는 잠시 정적이 내리깔렸다. 자신이 쓰러뜨린 호랑이를 마치 홀린 듯 내려다보고 있던 홍위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경계했다. 다른 호랑이가 또 있지는 않을까? 격렬한 사투 직후였으므로 거친 숨이 절로 나왔고 가슴은 두방망이질쳤다. 다른 위협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월영이 말을 몰아 다가왔다. 그녀 역시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거친 숨을 채 고르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홍위는 고개만 그저 끄덕이다가 한참만에 대답했다.


“별말씀을······ 나 역시 빚을 졌구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렸다. 한참만에야 새 우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두 사람은 쓰러진 호랑이 옆에 있던 나무 아래 주저앉았다.


“창 던지는 솜씨가 제법입디다.”


“활 솜씨도요. 그리고 창 쓰는 솜씨도.”

홍위는 씩 웃었다.


“그럼······ 오늘은 비긴 걸로 치는 거요?”


그 말에 월영도 마주 웃었다.


“그런 셈이겠군요······.”


두 사람은 소리내어 웃었다. 잠시 후 홍위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소. 슬슬 걱정할 것 같으니.”


홍위는 호랑이 시체를 끌어다가 말 위에 비끄러맸다. 자신이 잡았던 노루를 말 위에 실은 월영도 말 위에 올라탔다. 홍위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에 올라타면서 물었다.


“야인 여인들은 모두 이 정도입니까?”


“어느 정도는요.”


그렇게 대답한 월영이 홍위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웃었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당신같지는 않더군요.”


그 말에는 홍위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헛기침을 했다. 월영은 당황해하는 홍위가 재미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홍위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무렇게나 내뱉고 말았다.


“주동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만주에게······.”


“정확히는 아니었습니다. 이만주가 아니라 그 아들들 중 하나였지요.”


월영이 딱 자르는 바람에 홍위는 입을 다물었다.


“소녀는 그 아비의 후광에 기대어 거들먹거리는 이들을 가장 경멸하지요······. 스스로는 남자답다고 생각하더랍니다마는.”


홍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천천히 말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조차······ 지켜내지 못한 못난 사람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홍위의 말에 월영은 잠시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불행이란, 뭇 사람들에게 항시 따르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녀는 불행을 맞이했냐, 맞이하지 않았냐보다는, 그이가 불행을 당한 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보다 중하다고 봅니다.”


월영이 잠시 말을 끊더니 미소지었다.


“그이는······ 어떻게 할 작정이라던가요?”


홍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모르겠다고 합디다. 허나 지키지 못한 것들 중에는 자신을 따르던 여인도 있기에, 번민하고 있다고 합디다······.”


월영은 홍위의 옆으로 말을 천천히 몰아 가면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긴 듯한 깊은 눈망울, 마치 그 눈동자에 빨려들 것만 같다고 생각하였기에 홍위는 시선을 피해야만 했다.


“그이가 그 일로 상심하고 있다던가요?”


“상심하고 있다지요······ 사무치도록, 뼈에 사무치도록······.”


월영의 부드러운 손길이 목덜미에 닿았다. 그러나 홍위는 그 손길을 떨쳐내지 않았다. 떨쳐내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강한 손길이었다.


“그이가 그런 상심조차 하지 아니하였다면, 오히려 경멸했겠지요······.”


월영의 손길이 떨어져 나갔다. 두 사람은 왔던 숲 속을 묵묵히 걸었다. 뭐라고 말해 주어야 하나? 홍위가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월영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해가 이운 모양이로군요. 이제 소녀도 부락으로 돌아가보아야 하겠습니다.”


작가의말

원래는 조금 더 쓰고 한 화를 마무리지으려 했는데

그 다음 부분을 쓰려니까 뭔가 오그라드는 느낌이라 그건 나중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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