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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데나] 님의 서재입니다.

심양왕 단종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파사데나]
작품등록일 :
2019.05.04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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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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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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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변화구 (1)

DUMMY

함길도 도절제사의 본영 (本營)은 본디 경성부 (鏡城府)에 있다가 세종대왕의 육진 개척 당시 고종성 (古鍾城)으로 옮겨졌고, 근년에 다시 경성으로 되돌려졌다. 도절제사 양정의 명을 받고 야인 땅에 세워졌다는 철장을 탐문하게 된 엄복동이 경성을 떠나 이제 압록강께에 이르기까지는 근 한 달이 되었다. 그 사이 그는 강을 건너기 전 무언가 실마리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탐문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아니,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자에 만포진 인근에 잠상들이 무언가 개편되었다는 소문이었다. 나름대로 잔뼈가 굵은 엄복동은 무언가 낌새가 느껴졌다. 문제라면, 그 만포진은 이제 함길도 지경 안에 있지 않고 평안도 관내에 속한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엄복동은 이쯤해서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상관에게 보고해, 이 골치아픈 일을 평안도 도절제사 구치관 (具致寬) 영감이 맡도록 넘겨도 좋을 것이다.


문제라면 야인 땅까지는 함경도와 평안도의 경계가 나누어지지 않았더라는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엄복동은 한숨이 나왔다. 야인들은 알려지기로도 수많은 위소로 나뉘어 있다. 크게 잡아서 건주위와 해서위지만 그밖에도 소소한 부족들이 많았다. 그 부족들 사이에는 수많은 무역로가 뻗어나가 있을 것이고, 어디엔가 자리잡아 있을 철장에서 만들어진 쇠붙이들은 압록강에서 두만강이 이르는 그 광범위한 지역에 뻗어져 있을 것이다.


“에잉······ 이 중차대한 일을 어찌 나에게 혼자 떠맡긴단 말인가.”


누비옷을 걸친 엄복동은 연신 투덜거렸다. 얼마 안 되는 녹봉으로는 이같은 장기간의 출장을 어떻게 댄다는 것인가. 그나마 도절제사 영감에게 하직 인사를 고할 때 양정은 그제서야 미안하기라도 한 모양인지 얼마간의 은자를 내어주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 넓고 넓은 땅에서 어떻게 소식을 탐문해낸단 말인가?


여하간에 복동은 함경도 지경을 넘어 평안도 만포진까지 들어왔다. 이제는 아주 내친걸음이었고, 내일이면 강을 건너 야인 땅으로 들어갈 것이다. 결국 만포진 군관들이나 장사꾼들에게서는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몇 달 전 군관 하나가 실종되었다나, 그 정도뿐이다.


한참 우울해진 엄복동은 객주집으로 향했다. 마침 관시 열리는 날이 내일이라 객주집에 장사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들 중에서 뭔가 쓸만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안은 엄복동이는 탁주 한 사발을 청했다. 웬 거렁뱅이인가 하고 주모가 시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은 부스러기를 내보이자마자 단박에 표정이 변했다.


탁주를 기다리면서 복동은 그 와중에도 술청마루 쪽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 뜨내기들은 알 바 없을 것이고······. 주의 깊게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정보를 알 만해 뵈는 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도 내일 야인들이 오게 되면 자세하게 물어볼 수 있으리라. 복동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주모가 걸어나오더니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탁주 사발을 내려놓았다.


“얼른 먹고 가소.”


뜨내기 장사치로 보는 모양이지······ 복동은 대꾸할 생각도 없이 막걸리 사발을 입에 가져다가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반나마 비운 그의 입에서 절로 커어, 하는 소리가 났다. 소맷부리로 입가를 훔친 그의 눈에 웬 사내 하나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특이한 남자였다. 차림새는 삿갓을 쓰고 갈색으로 물을 들인 도포를 입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행색이 꽤 먼길을 온 티가 났다. 뜨내기 장사꾼인가 싶었지만 변경 군진에서 오랫동안 나랏밥을 먹고 살아온 복동은 그의 걸음걸이나 자세에서 훈련받은 무사의 기척을 감지했다. 호기심이 동한 그는 그 사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냥꾼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장사꾼 같지도 않는데 이 국경지대까지는 무슨 일일까. 남은 탁주를 깨끗이 비운 복동은 그 남자를 좀 캐 보기로 마음먹었다.


“임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구려, 어떻게 오셨소?”


넉살로는 그가 원래 근무하던 경성부에서도 으뜸가는 사람이 바로 복동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귀찮다는 듯이 잘랐다.


“임자가 알 일 없소.”


물론 복동은 그 정도로 물러갈 위인이 아니었다. 관가 밥을 좀 얻어먹은 사람 특유의 본능이었다.


“내 보기에 임자는 뜨내기 장사꾼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에 사내가 짜증을 냈다.


“그러는 댁은 뭐요.”


“보아하니 관가 녹을 먹는 사람 아니오?”


그 말에 사내의 태도가 변했다. 그는 주위를 연신 둘러보다가 복동을 흘겨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쓸데없는 데 관심이 많네그려.”


“나도 관가 밥을 여러 해 먹었는데 아무려면 모를까.”


“끈질긴 것을 보니 그래 보이누만······ 그래, 강을 건너갈 일이 있네.”


엄복동은 입을 딱 벌렸다.


“보아하니 초행길인 것 같은데, 임자 혼자 야인 땅으로 간다고······ 금방 맞아죽거나 기진해 죽거나 할 걸. 그래, 야인 땅에는 무슨 일이슈?”

“나랏일을 하는 것이니 댁이 알 바 아닐세.”


“헹······ 거기서 몇 해 굴러먹은 놈도 목숨 부지를 못할까 봐 염려인데 임자 그따우로 느긋하게 있다가는 뭔 일인지는 몰라도 몸 성치는 못할걸.”


엄복동이가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남자는 바로 종사관 최형욱이었다. 노산군의 행적을 찾아내라는 밀명을 받아 만포진까지 온 그는 도착한 즉시 이리저리 탐문했으나, 결국 야인 땅으로 건너가 하나하나 뒤져 내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는 엄복동이의 악담을 대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으나 그의 지적 중 하나만큼은 옳다고 내심 여겼다. 그의 말마따나 자신은 야인 땅에는 처음인 것이다.


“그래, 임자는 야인 땅을 좀 아나?”


“조금은······ 소문 정도는 알고 있지.”


“그럼, 야인 땅에서 뭔가 특이한 동정 같은 건 없던가.”

“특이한 동정이라······ 있고말고.”


그 말에 사내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래, 뭔가.”


“맨입으루다가?”


그 말에 최형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따라오게. 여기서는 깊게 말할 거리가 못 되는 듯 하군.”


최형욱이 먼저 일어나자 엄복동은 요것 보라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가 보기에 이 사내는 지방 관아 사람은 아니고, 어쩌면 한양에서 파견을 나온 관리인 듯 했다. 잘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형욱은 인적 드문 골목길로 먼저 들어섰다. 엄복동이 그를 줄레줄레 뒤따라가는데, 주위를 살핀 최형욱이 느닷없이 복동의 명치를 내질렀다. 애고고, 하고 엄복동이가 구슬픈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사내의 억센 손길이 그의 입을 콱 틀어막았다.


“허투른 수작이나 부리면 이것이여, 알아듣겠어?”


최형욱의 손에는 어느새 날카로운 비수가 들려 있었다. 복동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최형욱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였다.


“허투른 수작하면 바로 멱을 따버릴 터······ 네 알고 있는 것들을 이실직고 하렷다.”


겨우 숨통이 트인 엄복동이 캑캑거렸다. 이내 그는 야인 땅에서 대장간이 새로 만들어졌다든가, 함길도 도절제사 영감으로부터 그 실정을 탐문하라는 명을 받았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쏟아내었다. 최형욱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절제사 영감이 임자보고 야인 땅에 들어가서 탐문을 해 오라, 그랬더란 말이지.”


“제에기, 그렇다니까!”


사내의 얼굴에 비웃는 듯한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럼 됐어.”


“됐다니 뭐가······.”


“어쩌면 내가 찾는 거하구, 임자가 찾는 거하구 겹칠 것 같아서 그래.”


“겹치다니 무슨······.”


“그렇다면 그런 줄 알어.”


엄복동은 비슬비슬 몸을 일으키면서 투덜거렸다.


“제에기 영문을 모르겠네······ 그렇지만 같이 간다면 좋소. 하지만 약조 하나만 해주슈.”

“뭔데?”


“임자가 나랑 같이 갈라문 방금 전처럼 내 멱을 틀어쥐지 말라는 것이제.”


“임자 하기에 따라서······. 어쨌건 임자는 이제 내 명을 따라야 할 것이야.”


최형욱은 비수를 거두어들였다. 엄복동은 투덜거리다 최형욱의 재촉에 마지못해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는 다짜고짜로 비수를 들이대는 이 작자가 영 못미더웠으나 틀림없이 지위가 높은 자이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어차피 혼자서는 도절제사 영감이 내린 명을 받잡을 가망이 없으니, 차라리 이 낯모르는 이 밑에 기어들어가는 편이 더 낫겠다 싶었다. 일이 잘못되면, 이 작자 때문에 절제사 영감의 영을 미처 못 받잡았다는 변명이라도 될 것이다.


최형욱과 엄복동이 객주점으로 돌아오는 사이, 마루에 있던 정호찬은 객주 안에 있는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나 그는 팔도 유람을 하고 있는 한가한 한량 선비처럼 보였지만, 식사를 하는 중에도 그는 객주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따금 훔쳐보고 있었다.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관에서 시키는 대로 얌전히 만포진 안에 열릴 관영 시장에서 야인들과 거래를 하려는 이도 있겠지만, 한밑천 잡을 궁리를 하면서 강을 넘으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랬다가 들키면 극형을 받는 것 정도는 각오해야겠지만.


‘어이쿠.’


최형욱이 들어오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정호찬과 시선이 마주쳤다. 호찬은 느긋하게 그의 시선을 받아내었다. 한동안 그를 보던 최형욱은 이내 주춤주춤 따라오던 엄복동을 불러 안으로 들어갔다. 정호찬은 빙긋 웃었다. 행색은 장사꾼 차림을 따라하려 했지만 그에게는 아무래도 훈련을 받은 티가 났다. 그것도 살인깨나 한 듯한 느낌이다.


‘수양이 보낸 간자인 모양이군.’


노산군이 사라지고 행적이 묘연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것도 한 해가 훌쩍 지났다. 그가 북행길을 가라는 조언을 들었다면, 함길도 같은 곳이 아니라면 천상 강을 넘었겠다 싶었다. 함길도에 있는 친구들에게서는 노산군의 소식이 없었으니 천상 야인 땅이려니 싶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힘으로 하늘의 뜻을 막을 수는 없을 터······ 앞으로 일이 어찌 되려는고.”


식사를 마친 호찬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언젠가는 노산군을 찾아가야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함길도 땅에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안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볼 참인데, 경흥진 병마 절제사 (慶興鎭兵馬節制使)에 부임해 있을 이시애 (李施愛) 어른께도 문안인사를 드릴까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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