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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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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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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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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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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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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UMMY

-선-



불은 켜져 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고요함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한다.


한참을 주위에서 서성거리다 문고리를 잡고 열어보니 끼익하고 들리는 소리가 내 귀를 마구 울린다.


소리가 듣기 싫어 확 열어젖혔고 촉새가 아닌 다른 접수원이 깜짝 놀라 날 쳐다본다.


주위 용병들도 놀란 것인지 날 쳐다본다.


“무, 무슨 일이세요?”


눈이 똥그래진 접수원이 말했다.


“어··· 여기 등이 굽은 사람 안 찾아왔어요?”


“아, 안 왔는데요.”


“아, 네. 죄송합니다.”


괜히 호들갑 떨었잖아.


민망해서 서둘러 문을 닫고 조합을 빠져나왔다.


쓰읍.


얘가 어딜 간 거지?


조합 앞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내 눈앞에 피 칠갑을 한 천이 나타났다.


“너, 너···.”


“하나만 묻겠소.

당신이 보냈소?”


“뭐, 뭘 말하는 거야?”


“암살자 말이오.”


“아, 아니! 내가 안 보냈어!”


“내가 안 보냈어?”


씨발.


너무 당황해서 실수해버렸어.


“그, 그래! 무슨 암살자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너한테 암살자를 왜 보내니!?

근데 너를 노리는 암살자가 있었어!?”


“내가 아니고 짐승이었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고 천은 내 의도대로 휩쓸려 주었다.


“짐승을 노리는 암살자가 있었다고?

사도드리니 아니야?”


“그럴 가능성도 있지.”


이 미친놈이 천이 있는데 짐승을 죽이려고 한 거야?


“그런데 말이오.”


천이 무언가를 내 앞에 툭 던진다.


“어디서 본 얼굴이란 말이지.”


자세히 보니 내가 보냈던 용병이다.


이 멍청한 새끼!


진짜 그랬나 보네!?


내 이름은 팔지 않았겠지?


“주, 죽이기 전에 안 물어봤어?

정체가 뭔지 말이야.”


천이 대답하지 않은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애석하게도.”


다, 다행이다.


“그, 그래서 짐승은 어떻게 됐어?”


“안 죽었소.”


“다, 다행이다···.”


쓸모없는 새끼.


그거 하나 못 죽여?


“전으로 돌아가서.

어디서 본 얼굴이란 말이지.”


내가 뺨을 때린 사람이란 걸 기억하나?


“그 얼굴 자세히 보시오.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소?”


“그, 글쎄 기억이 날락 말락 하는데···.

어디서 봤더라···.

잘린 머리만 뎅그러니 있으니까 잘 모르겠는데.”


고민하는 척하며 천을 살펴본다.


하지만 시종일관 무표정을 고수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나, 난 잘 모르겠는데.”


“그럴 줄 알았소.”


천이 내게 다가온다.


여기서 칼에 손을 대면 무조건 죽을 거야.


태연하게 행동해야 해.


내 발밑에 있는 용병의 머리채를 잡고 자세히 보여준다.


잘린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은 덜렁대는 편이지.

이놈은 당신한테 추근댔던 놈이오.”


씨발···.


기억하고 있어.


“그, 그런가?

나는 왜 낯설지?”


“그리고 저 조합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덤비지 않았던 놈이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은채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떨림을 주체할 수 없다.


그리고 천 또한 내 떨림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대단하다···.”


천이 날 또다시 빤히 쳐다본다.


“이놈은 당신에게 추근대는 척하며 우리 정보를 모은 거요.

짐승을 죽이기 위해 말이지.”


“어, 어?”


“일부러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척하며 당신에게 정보를 얻으려고 했단 말이오.

당신이 예쁘다는 거짓부렁으로 혼을 쏙 빼놓고.”


아니, 의심받는 건 받는 거고.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데.


예쁘다는 게 거짓말이면 내가 못생겼다는 거야!?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천은 일부러 저 말을 꺼낸 거야.


내 반응을 보기 위해서 말이야.


“그럼 내가 못생겼다는 거야!?”


내가 소리를 빼액 질렀고, 그제야 천이 표정을 풀고 피식 웃는다.


“당신답군. 비키시오.”


“뭐, 뭐하게?”


“안에 들어가서 물어봐야지.

이놈이 뭘 하는 놈인지 말이오.”


“잠깐만! 그럼 짐승은 어디 있는데?

그렇게 풀어놔도 되는 거야?”


“밖에 잘 놔두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분명 경비병이 밖으로 나간 짐승이 없다고 했는데.


천이 내게 말하고 조합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들어가 봐야 하나?


고민 끝에 천이 난동을 부릴까 봐 문고리를 잡는데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린다.


황급히 문을 열어보니 접수원을 제외한 용병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을 뒹굴고 있다.


유심히 보니 모두 왼팔이 잘려있다.


“왜, 왜 그런 거야?”


다른 목소리가 들리자 천이 고개를 휙 돌려 악귀 같은 표정을 한 채 날 노려본다.


나를 인지한 것인지 표정을 풀며 다시 고개를 돌린다.


천이 접수원에게 걸어가 잘린 용병의 머리를 들이밀었고 접수원은 기겁하며 도망치려고 했다.


“도망가면 네 팔도 잘라주지.”


“죄, 죄송해요. 마, 마, 말씀하시는 건 뭐든 할 테니 제 목숨만은···.”


접수원이 자리에 앉고는 덜덜 떨며 말했다.


“이놈이 어디에 살고 있지?”


접수원이 종이를 부욱 찢어 무언가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그리곤 덜덜 떨며 천에게 내민다.


천이 종이를 받지 않고 접수원을 빤히 쳐다본다.


“이, 이상한 짓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그제야 눈을 내려 종이에 적힌 걸 보기 시작했다.


그리곤 바로 몸을 돌려 조합을 빠져나갔다.


나도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갔는데 날 기다렸던 건지 말을 건다.


“당신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니 이만 돌아가시오.”


“너 어쩌려고 그래?

아무리 노예기사라고 해도 너 무사하지 않을 거야.”


“상관없소.”


“상관없어? 너 정말 제정신이야!?

그깟 짐승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거야!?”


천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려 접수원이 말한 곳으로 가려고 했다.


나는 천의 앞을 가로막고 마저 못한 말을 쏟아낸다.


“대답해! 짐승 새끼 하나가 뭐라고!

길에 차이는 게 짐승인데 왜 그 새끼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는 건데!?

짐승이 사람을 노리는 걸 너도 알잖아!

그래서 랑도 우릴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거고!

그런데 노예기사인 너는 짐승의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뭐라고 말을 했으면 좋겠건만 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더니 날 지나친다.


“너··· 내가 경비대에 신고할 거야.

그러니까 가지마.”


발걸음을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농담 아니야. 정말 신고할 거야.”


“···얍얍을 데리고 빠져나가시오.

우리의 동행은 여기까지인 것 같소.

애초 아가씨를 보살피게 하려는 목적으로 당신을 데려왔고 아가씨는 이제 없소.

우리는 끝이오.

잘 가시오.”


“씨발!”


천에게 다급히 걸어가 어깨를 잡아채어 몸을 내 쪽으로 향하게 했다.


천이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바닥만 보고 있다.


“알았어. 갈 테니까 이것만 대답해줘.

그 짐승을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는데?”


“말했지만 난 짐승을 끔찍이 생각하지 않소.”


“그런데 씨발 왜! 왜 그러는 거냐고!?”


천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 눈빛은 너도 알고 있잖아? 라고 하는 듯하다.


“말을 눈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하는 거야.

그런 눈으로 봐도 나는 몰라.”


“그놈이 죽어야 관계가 유지되니까.”


관계···?


그게 무슨 말이지?


천은 내 대답을 듣지 않은 채 용병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천을 잡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



천에게 한 엄포와 달리 나는 신고하지 않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천이 말한 관계라는 단어를 계속 곱씹어봤지만 도통 의미를 모르겠다.


얍얍은 내 속도 모른 채 혼자서 놀기 바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헤헤 웃으며 사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온다.


“숨바꼭질 재밌니?”


“네! 재밌어요!”


“혼자서 하면 재미없을 텐데 내가 같이할까?”


“괜찮아요! 지금 제가 이기고 있어서 끼어들면 안 돼요.”


“그, 그래 네가 이기고 있어서 다행이다.”


창가로 밖을 쳐다보니 어수선한 분위기가 아니다.


용병조합이 여기서 먼 곳이 아니라 무슨 일이 터졌다면 알 수 있을 텐데 평온한 걸 보니 자체적으로 수습한듯하다.


“뭘 그렇게 보세요?”


혼자 하는 숨바꼭질이 끝난 것인지 얍얍이 내 옆에 서서 물었다.


“이겼니?”


“네! 이겼어요!”


“축하한다.

그냥 밖을 보고 있었어.”


“저도 봐도 돼요?”


“그래.”


얍얍을 등에 업어 밖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잘 보이니?”


“네! 잘 보여요!”


얍얍의 얼굴이 내 귀에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아기곰 특유의 숨소리가 들린다.


12살인데 아직 아기 티를 벗지 못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다 30살이 되면 갑자기 둘로 분열해 사납게 행동하겠지.


살아남으면··· 살아남으면 말이야.


“천님은 안 와요?”


얍얍의 목소리가 내 상념을 깼다.


“어? 천?”


“네. 어제부터 지금까지 오지 않으셨잖아요.

무슨 일을 당한 게 아닌지···.”


“괜찮아. 걔는 어디에 있어도 살 수 있으니까.”


“꽃밭에서도요?”


“응? 꽃밭?”


“네! 천님은 무궁화꽃밭에 가도 살 수 있을까요?”


이미 살아남았는데.


나도 그렇고.


“당연하지.”


“와- 정말요!?”


“그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나저나 너는 어떡할 거야?

오늘 떠날 거야?”


“네. 해가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면 떠날 거예요.

선님도 오늘 떠나실 거죠?”


“어··· 원래라면 그래야 하는데···.”


“천님이 오지 않아서 못 떠나시는구나.”


“맞아.”


“같이 찾으러 가볼까요?”


“괜찮아, 조만간 올 거야.”


“선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내 표정이 어둡다는걸 눈치챈 걸까?


얍얍이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그렇게 보이니?”


“네. 옆에서 보니까 더더욱 그렇게 보여요.”


옆에서 보니까 더더욱···.


혼자서 놀고 있을 때도 그렇게 느낀 모양이네.


그래서 일부러 정신없이 논건가?


내가 제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게?


“아니, 뭐, 그냥···.”


“말씀해보세요.”


“어? 너한테?”


“고민은 털어놓을 수 있으면 터는 게 좋다고 디쿤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너한테 말하는 건 좀···.


“그리고 저는 헤어질 곰인데 털어놔도 괜찮잖아요?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하긴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적당한 각색해 얍얍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얍얍은 가만히 업혀 내가 하는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렇게 된 거야.”


“그렇군요. 어쩐지 그 짐승이 이상하다 했더니···.”


“그리고 그 관계라는 말이 제일 신경 쓰여.

무슨 뜻으로 한 걸까?”


“그러게요.

선님에게 떠나라고 했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용병을 죽인다···.

그 관계는 반드시 선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건데.”


얍얍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천님은 선님이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거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전에도 한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내가 무시하니 다시는 하지 않았고.


“그런데 용병을 죽이는 게 왜 관계를 유지하는 걸까요?”


“그, 글쎄?”


잠깐.


설마 내가 청부한 걸 눈치챘나?


그래서···.


“아- 배고프다! 선님.

저희 아침 먹으러 안 가요?”


“먹어야지. 어서 먹으러 가자.”


설마.


아니겠지.


천은 나에 대한 의심을 풀었어.


알고 있다면 날 살려두지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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