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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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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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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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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DUMMY

-늙은 사람-



선비가 체통도 잊고 갓을 벗어 바닥에 패대기친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머리에 불까지 붙어버렸다.


“이런 육시랄 놈들! 내 반드시 네놈 년들을 죽여버리겠다.”


··· 저 선비는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


“자네는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아는가?”


“지금 그게 중요해!? 빨리 도망가야지!”


“아, 아. 그렇지.”


“갑자기 왜 이렇게 멍청해진 거야!? 빨리 움직여!”


“알았네. 지도를 이리 주게.”


“지도를 왜 달라는 거야, 아까 저놈이 한 말 못 들었어?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이 바로 이 지도 때문이라고!”


어린 짐승이 지도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발로 짓이겼다.


“이 씨발것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 좆같은 지도!”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군.


“빨리 가자. 또 쫓아올라.”



///



“헉, 헉!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런 것 같군.”


“지도 좀 줘봐. 여기 도깨비산 지도.”


“여기 있네.”


품속을 뒤져 어린 짐승에게 건네주었다.


“후, 얼마 안 남았어. 내일 아침에 움직여서 아무 문제 없으면 정오 전에 빠져나갈 수 있겠어.”


“잘됐군.”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고, 그 이후에 있었던 일을 들었다.


어린 짐승의 손톱에 상처를 입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내가 문을 열어버렸다고?”


“그렇네.”


“기억이 전혀 없어···. 내가 문틈으로 보겠다고 한 다음 밖을 본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정말 놀랐네. 자네가 비명을 지르고 온몸을 긁어서 뭔가에 씐 줄 알았지.”


“그래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구나. 말려줘서 고마워.”


“음.”


“영감도 기억이 안 난다고?”


“나는 분명 집 안에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길가에서 자네를 보고 있었지.”


“우리 둘 다 무당에게 홀렸었나 봐.”


“그런 거 같군.”


“내가 괴물한테 홀렸다니.”


어린 짐승이 자신의 팔을 쓸었다.


“그래 소름 돋는··· 크윽!”


옆구리에 고통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긴장이 풀리니 나조차 잊고 있었던 상처가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왜 그래!? 어디 다친 데라도 있는 거야? 하긴, 그렇게 오랫동안 무당한테 홀렸었는데 없는 게 이상하지!”


“난 괜찮네.”


“어디 봐봐.”


그렇게 걱정하는데 내 어찌 자네 손톱 때문에 난 상처라고 말하겠나.


“괜찮다니까.”


“아, 진짜! 그냥 좀 보여줘 봐. 간단한 처지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늙으면 상처도 잘 안 낫는데 치료라도 해야지. 여기서 덧나면 답도 없어!”


“어차피 하루면 산을 벗어날 텐데 그 정도는 괜찮네.”


짐승의 손톱에 당했다고 하지만 스친 것에 불과했고 하루 후면 의원에게 갈 수 있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겠지.


“아니, 그래도···!”


“괜찮네.”


내 완강한 태도에 어린 짐승이 어쩔 수 없이 물러선다.


“내려가서 치료 꼭 받아.”


“알겠네.”


“흠. 지금까지 아무 일 없는 거 보니까 더 불안한데?”


어린 짐승이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말했다


“저 두 괴물은 낮에 버젓이 돌아다니지만, 문을 열지는 못하는 것 같군.”


이거 생각보다 상처가 심한 모양이야.


고통이 점점 퍼지고 있어.


“그래, 나를 홀려서 문을 열게 하였으니까.”


“그러니 적어도 이 안에선 안전하네. 그러니 마음을 놓게.”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태연히 어린 짐승을 다독였다.


“또 내가 홀려서 문을 열면?”


아무래도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이야.


“그럴 일 없네. 자네가 밖을 보지만 않으면 홀릴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 그렇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야. 중요한 건 그 실수를 양분으로 삼아 다음엔 더 나은 행동을 하도록 노력하는걸세.”


“응.”


“이런 일이 반면교사가 되어도 쓸모는 없겠지만.”


“무슨 말이야?”


“허허, 자네는 이제 도깨비산에 얼씬은커녕 이쪽으로 오줌도 싸지 않을 거 아닌가?”


“그렇지, 나는 이제 이쪽으로 오줌도 안 쌀 거야! 히히!”


내 우스갯소리가 통한 듯 어린 짐승이 긴장이 풀어진 모습을 보였다.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게.”


“영감은?”


“늙으면 잠이 없는 법이라네.”


“언제는 안 늙었다더니.”


“내가 그랬던가?”


“아니면 말고.”


피곤했던듯 바로 바닥에 누워 모포를 덮는다.


“영감도 무리하지 말고 어서 자.”


“알았네.”


곧이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어린 짐승이 자는 걸 확인한 후 상의를 벗었다.


“쓰읍.”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부러진 손톱의 거친 표면에 살이 찢겼고, 더욱이 바로 조처를 하지 않고 무리한 활동을 해 더더욱 깊어 보였다.


“깨끗한 물로 씻어내기라도 해야겠어.”


문을 열···.


문고리를 부여잡고 멈칫했다.


내, 내가 문을 열려고 했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물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문을 열려고 했다고.


“빌어먹을.”


어느새 식은땀이 흥건히 맺은 얼굴을 한번 쓸었다.


무당은 아직 죽지 않았어.


저 밖에서 뱀처럼 똬리를 틀고 여전히 우릴 노리고 있다고.


우린 산을 나가지 못할 거야.


무당과 선비가 우리를 노리는 이상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였어.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리 나오너라.”


선비의 목소리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어린 짐승을 쳐다봤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자고 있다.


“죽이지 않겠다. 나오너라.”


“··· 네.”


문을 열고 선비님을 맞이했다.


“그분께서 너에게 주신 다른 물건이 또 있느냐?”


“없습니다.”


“살고 싶은가?”


“살고 싶습니다.”


“연유가 무엇인가?”


“죽여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호오, 짐승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내 분명 짐승이라 들었건만.”


“외람되오나, 짐승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말에서 풍기는 느낌으로는 짐승이었는데.”


“···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짐승이다. 네 부족은 짐승에게 몰살당했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중요한 게 아니니깐. 내 말 했다시피 너희를 찢어 죽일 생각이었다. 허락하지 않은 자가 물건을 가졌고, 또한 날 조롱했기 때문이다.”


“살려주십시오.”


“너에게 제안하겠다. 저 어린놈을 죽여라. 그렇다면 너는 살지니.”


“저는···.”


“이 제안은 도깨비산을 벗어나기 전까지 유효하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두 놈 다 죽이겠다.”



///



“하암-! 영감, 잘 잤어?”


어린 짐승이 기지개를 켜며 내게 인사했다.


“잘 잤네.”


“상처는 좀 어때?”


“어제보단 좀 낫군.”


“다행이네. 여기서 나가면 의원부터 찾아.”


“그러지.”


“근데, 영감.”


“왜 그러나?”


“괜찮아?”


“괜찮네.”


“아니, 잠깐만.”


어린 짐승이 앞에 다가와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다.


“괜찮은 거 맞아? 조금 창백해 보이는데.”


“괜찮대도.”


“흐음.”


“그전에. 자네가 노리는 놈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어. 내가 안 보여줬나?”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그러네.”


미안하네.


자네 복수는 내가 대신해주겠네.


적어도, 그러는게 맞는 거 같아.


“뭐, 그러던가.”


어린 짐승이 종이를 펼쳐서 내게 보여준다.


반드시 이놈들의 멱을 따서 자네의 혼을 위로하겠네, 반드시.


짐승의 얼굴을 머리에 새겨넣고, 또 새겨넣었다.


“근데 영감도 복수할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나도 좀 알려줘. 궁금하네.”


“이런, 나는 그려놓은 게 없는데.”


“그래? 그럼 어디 사는 누군지만 말해줘 봐. 누구길래 영감의 원한을 산 거야?”


“5구역에 있는 어느 족장의 딸을 노리고 있네.”


“딸··· 정확하게는 몰라?”


“기억나는가? 내가 앙갚음에게 한 말을.”


“어!? 그러고 보니 5구역의 한 족장이 복수의 대상이라고 말했잖아.”


“그렇지.”


“그, 그럼 앙갚음에게 거짓말한 거야!? 앙갚음이 대신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아닐세.”


그년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하네.


“아니야?”


“그 족장인 건 확실하네. 다만, 내가 알려준 이유는 흔들어 놨으면 하는 마음에서지.”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족장이 죽은 후 그 어수선함을 노린다는 말이지?”


“맞네.”


“흠.”


어린 짐승이 고개를 끄덕인다.


“족장이 죽었다고 해도 딸이라면 노리기 어려울 텐데. 차기 족장 감이잖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네.”


“이야, 근데 영감 머리 진짜 좋은데? 앙갚음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운에 운이 겹친 거지. 우연히 복수의 대상을 알고 있었고, 앙갚음을 만났으니.”


“하늘이 도우시나 봐.”


“자,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잠에서 깼을 테니 슬슬 일어나게. 정오 전에 나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서두르는 게 좋아.”


“벌써? 아침이라도 먹고 가지.”


“아침 먹을 시간이···.”


그래, 아침이라도 배불리 먹게.


그게 내가 자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호의일세.


미안하네, 정말 미안하네.


“내가 준비하겠네.”


“아니, 내가 할게. 영감은 쉬고 계셔.”


“내가 하겠네.”


“내가 한다니까.”


“내가 하겠네. 부탁일세.”


“아··· 어, 어. 영감이 해.”


“고맙네.”


나는 밖으로 나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쌀을 씻어 가마솥에 안치고 불을 땠다.


고기 반찬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무슨···!”


인기척이 느껴져 급히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나타난 선비가 뒷짐을 지고 날 내려다보고 있다.


“결정했는가?”


“했습니다.”


“재밌군, 아주 재밌어. 허허!”


내 대답을 들은 선비가 웃으며 부엌을 나간다.


그 웃음이 마치 날 비웃는 웃음처럼 들린다.


“영감, 영감!”


선비가 사라진 쪽을 쳐다보고 있는데, 어린 짐승이 부엌으로 헐레벌떡 뛰어온다.


“왜 그러나?”


“아, 아니. 뭐하나 궁금해서.”


“밥하고 있지 뭐하긴.”


“그, 그래? 난 또 혹시나 싶어서.”


“걱정됐나?”


“어, 어. 그렇지.”


내가 자네 목숨을 빼앗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자네는 날 걱정해주는군.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게.”


“아, 알았어. 빨리 와.”


“알았네.”


어린 짐승이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간다.


··· 내가 자네 목숨을 한번 구했지 않는가?


또한, 자네도 그 빚을 갚겠다고 했고.


염치없지만, 그 빚을 이번에 갚는다고 생각하게.


어느샌가 밥이 다 지어졌고, 상을 차려 방안으로 가져갔다.


“드시게나.”


“잘 먹을게.”


어린 짐승의 표정이 좋지 않다.


“왜 그러나,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아니, 난 괜찮은데. 영감이 먹기엔 좀 그러네. 맛있는 거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괜찮네.”


어린 짐승의 걱정이 죄책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목에 메여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몇 숟가락 뜨다 놓고 말았다.


“괜찮아?”


“괜찮네. 자네도 입맛이 없는 모양이군.”


어린 짐승이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이만 상을 물리지. 물리고 움직이세나.”


“부탁해서 미안한데, 영감이 설거지 좀 해 줄래? 난 좀 챙길 게 있어서.”


“알았네.”


상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남은 음식물을 정리하고 쪼그려 앉아 설거지를 시작했다.


집에서 나가는 순간에 실행해야겠어.


고통은 없게 머리나 심장을 노려야겠군.


그래, 이미 결심한 이상···.


“미안해, 영감. 날 용서하지 마.”


뒤에서 어린 짐승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작가의말

다음주부터 2-3 주간 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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