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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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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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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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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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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DUMMY

-돌아온 사람-



“사명감에 어머니의 자리를 받지 마. 내가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되면 하지 말라는 말이야.”


“그럼?”


“하고 싶으면 해. 족장이 하고 싶으면 하라고. 이어받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널 비난하지 않아.”


“내가 하지 않으면? 내가 안 하면 누가 족장을 하는데, 누나가?”


나도 모르게 침을 한번 삼키고 대답을 주저했다.


“누나가 할게.”


“족장이 하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누나가? 그거야말로 사명감에 족장을 하려는 거잖아.”


“그건···!”


“봐. 아무 말도 못하겠지?”


동생이 피식 웃으며 날 쳐다본다.


“그렇다고 저놈들한테 줄 수는 없잖아. 그냥 내가 해야겠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고 나서 허락도 없이 짐승 한 마리가 들어온다.


“준비되셨을까요?”


“맡겨놨어?”


표독스럽게 짐승을 쏘아붙였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짐승이 동생과 나를 한 번씩 쳐다본다.


“주인님과 제가 여기서 하루라도 빨리 사라지는 게 두 분께 좋지 않겠습니까?”


“기다려. 네 주인이라는 앙갚음 새끼가 한 짓 덕분에 정신없으니까.”


“주인님과 저는 정보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알았으니까, 꺼지라고!”


짐승이 동생과 나에게 인사한 후 물러난다.


“건방진 새끼, 뒤에 앙갚음을 달고 있으니까 보이는 게 없나 보지?”


씩씩거리며 짐승이 나간 문을 노려봤다.


“정말일까?”


“뭐가.”


“어머니가 원죄를 가졌다는 거.”


“아니야. 저놈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앙갚음이 잘못도 해?”


대답을 대신 시선을 회피했다.


“누나가 밖에 있을 때 어머니와 나는 종종 대화하곤 했어. 예전에 셋이서 하던걸.”


어머니는 항상 동생과 나를 불러 앉혀놓고 교훈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곤 하셨지.


동생을 쳐다봤다.


“어머니가 굉장히 두려워하셨어. 이유 모를 죄의식도 가지셨고. 삼년상이 끝나는 날을 기점으로 더욱 심해지셨고, 5구역에 왔다는 말이 들리는 순간 극에 달하셨어.”


동생이 씁쓸한 얼굴을 하고 바닥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어제. 어머니께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평온한 얼굴로 날 보며 말씀하셨어. 앙갚음이 오면 정중하게 맞이하라고.”


동생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고개를 젓는다.


“그때 확신할 수 있었어. 어머니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단 걸.”


동생이 날 바라본다.


“나는 알았다고만 대답했어. 앙갚음이 이쪽으로 온다는 걸 알았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어. 어머니가 죽는 걸 방관했다고.”


“아니.”


동생의 손등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잖아. 정중하게 맞이하라고. 네 잘못이 아니야. 어머니가 죽은 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어머니는 죽음으로서 앙갚음에게 속죄를 하고 싶었던 거야. 어머니는 죽음으로서 용서를 구하고 앙갚음에게서 우리 부족을 구하신 거야. 6구역의 이야기는 들었지?”


동생이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더라. 어머니도 그걸 알고 계시고 고심하셨을 거야. 그래서, 어머니는 당신의 목숨으로 용서를 구하니, 죄 없는 다른 이들은 건들지 말라는 의도를 앙갚음에게 던지신 거야. 앙갚음은 그걸 알고 다른 이들은 건들지 않았고.”


동생이 작게 한숨을 쉰다.


“어머니는 다 준비해두셨던 거야. 우리를 위해서.”


동생이 작게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


“그래, 네가 웃는 모습을 보니까 좋다.”


“피곤할 텐데 이제 좀 쉬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정말 피곤하다. 그럼···.”


동생의 눈치를 봤다.


“내가 자리를 이어받아야지. 누나는 바보라서 이런 거 못 하잖아.”


“킥킥, 알았어.”


고마워.


내가 짊어져야 할 큰 짐을 네게 지우는구나.


못난 누나라 정말 미안해.


“맞다. 앙갚음이 원하는 걸 줘야 하는데.”


“내가 할게.”


“아니야, 내가 할게.”


“넌 이제 족장이야.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쓸 필요 없고 큰일만 신경 쓰면 되는 거야. 내가 나가는 김에 저기서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가신들한테 말해놓을게.”


“그래, 알았어.”


“정말 간다.”


“그래, 정말 가.”


미소를 짓고 동생에게 인사한 후 밖으로 빠져나왔다.


모든 대신의 눈이 내게 집중된다.


표정을 굳히고 대신 하나하나를 쳐다본다.


“편전으로···.”


이제 동생의 집무실이 될 테니까 거기서 피를 보는 건 좀 그렇고.


“편전 말고. 적당한 데 없나?”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곳이 있습니다.”


역시, 우리 부관은 척하면 척이야.


내 의도를 단번에 눈치채네.


“그래, 거기로 모여. 야, 여기 없는 것들도 끌고 거기로 와. 거부하면 대가리만 잘라서 오고. 머릿수는 맞춰야 하니까.”


서슬 퍼런 말에 대신들 모두가 동요한다.


“예, 알겠습니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병사가 밖으로 나간다.



///



“다 왔나?”


짐짓 모르는 척 뒷짐을 지고 좌우로 일렬로 선 대신들을 쳐다봤다.


대신들의 뒤엔 병사들이 칼을 찬 채 서슬 퍼렇게 노려보고 있다.


“부끄럽지만, 내가 부족 내부의 일은 잘 몰라서 말이야. 부관, 다 왔지?”


“네. 확실히 머릿수는 맞췄습니다.”


“흠.”


과연 몇몇은 잘린 머리만 덩그러니 있었다.


“부관이 다 왔다고 하면 믿어야지, 암.”


“왜 우리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오!?”


그나마 강단 있는 대신 하나가 대신들의 가운데서 소리쳤다.


“아니, 너희 내가 누군지 알지?”


“돌아가신 족장님의 따님이지 않소!”


“아네. 너희도 다 알아?”


대신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모를 리가 없지.


“좋아. 이러면 얘기가 편하겠네. 지금 우리 부족 상황이 안 좋아. 앙갚음이 다행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소란을 피우지 않고 어머니만 대상으로 복수했기에 부족민 대부분은 몰라. 하지만 새어나가는 건 금방이야. 그전에, 여기서 앙갚음을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서로를 쳐다만 볼 뿐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좋아, 어머니가 무능한 놈들을 신하로 삼지는 않으셨네.


“너희도 듣는 귀가 있으니까 6구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거야. 나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하지만 앙갚음은 천재지변 같은 존재야.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복수할 생각 안 하잖아. 이건, 우리 부족의 얼굴에 먹칠하는 말이지만···.”


어머니가 원죄를 가졌으니 돌아가셨단 말은 굳이 할 필요 없겠어.


“큼, 본론으로 돌아가서. 부족민이 동요하기 전에 어머니는 적당한 이유로 돌아가셨다고 공표하고, 누군가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야 해. 문제는 누가 이어받느냐겠지. 정당한 후계자는 동생이나 나 둘뿐이니 둘 중의 하나 아니겠어?”


모든 대신이 고개를 끄덕이나, 몇몇이 불만 섞인 표정이다.


나는 부관에게 눈짓했고 부관이 뒤로 물러난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족장이···.”


하기 싫다고 하면 내가 버린 족장의 지위를 동생이 주워드는 꼴이 되잖아.


“족장이 될 자격이 없어. 여태껏 밖으로만 싸돌아다녔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돌아와서는 족장의 자리에 앉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내 동생을 족장으로 추대할까 하는데. 너희 생각은 어때?”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너도나도 내 의견에 동조하고 일어섰다.


나는 만족한 표정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보다 내 동생이 낫겠지.


“그래, 전부 나가 봐.”


대신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간다.


전부 나간 걸 확인한 후 나도 나가려고 하는데 부관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외람되지만,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내가 섭정이 될까 봐 그러는 거야?”


부관이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주위를 서성거렸다.


“내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


부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동생을 내세운 후 안정이 되면 자리를 빼앗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은 행동을 했습니다.”


“아니, 자칫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소문을 흘려. 안정되면 나는 변함없이 밖으로 떠돌아 다닐 거라는걸. 저 밖에는 아직도 짐승이 우릴 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지. 내가 갈 곳은 그곳이야. 여기가 아니라.”


“원로와 교섭을 한 건은···.”


“하늘 아래 우리는 짐승과 같이 살 수 없어. 저것들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약점을 노출···.”


전부 모였을 때 입을 조심하라고 엄포를 놓을 걸 그랬어.


“다들 입단속 시켜. 사태가 안정화 될 때까지 어머니가 앙갚음의 손에 돌아가셨다는 걸 모르게 하라고. 짐승이 써먹기에 좋은 심리전 도구니까.”


“앙갚음이 이곳으로 온 걸 짐승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초조하겠지. 무슨 사건이 터져도 터져야 하는데 잠잠하니까. 어떤 정보라도 캐내려고 짐승이 많이 들어와 있을 거야. 이 궐 안에도. 궐 안에 있는 사람이라도 네가 책임지고 하나하나 거울로 확인해. 예외는 없어. 반항하면 죽여버려.”


“알겠습니다.”


“치안병력을 증원···.”


씨발··· 지금 내가 하는 짓이 섭정이잖아.


“지휘관님?”


“아니야. 거기까지 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족장님에게 향했다.



///



“안에 계셔?”


“네, 하지만···.”


친위대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아···.”


안에선 동생이 앙갚음과 짐승을 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빌어먹을, 조심해야 했는데.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동생의 방에 들어가는 것처럼 행동했어.


“누나 왔어?”


기분 나쁠 법도 하건만, 동생이 반갑게 날 맞이했다.


“네··· 실례했습니다. 저는 다음에···.”


“아니, 누나도 와서 들어.”


“네?”


“누나도 들으라고. 어차피 알게 될 텐데.”


“알겠습니다.”


아무리 앙갚음의 앞이라지만, 토를 다는 건 위엄을 해치는 일이기에 잠자코 동생의 옆에 앉았다.


“그래서··· 제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인님?”


짐승이 앙갚음을 쳐다본다.


앙갚음이 동생을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누구나도 느낄 동생의 만족스러운 대답과 함께 앙갚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칼집에 손을 올렸다.


앙갚음은 그런 내 행동을 보고도 모른척하며 짐승과 함께 방을 나가버린다.


“무슨 일이야? 앙갚음이 널 왜 만나러 온 거야?”


“내가 만나자고 했어.”


“네가? 왜?”


“누나가 나가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앙갚음은 분명히 우리 어머니에게 원한을 가지고 복수했어. 하지만 그걸로 우리와의 관계는 끝이잖아.”


“그, 그런가?”


“보아하니 앙갚음은 연좌를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역으로 제안했어.”


“제안?”


“우리가 네게 정보를 줄 의무가 없다고. 원하면 대가를 치르고 가져가라고 했지.”


“지, 진짜야?”


얘, 얘는 누굴 닮아서 간이 이렇게 큰 거야?


“어. 그렇게 말하니까 방금 본 것처럼 받아들이네?”


“무슨 대가를 치르라고 했는데?”


“5구역에 있는 짐승의 근거지를 쓸어달라고.”


“뭐, 뭐라고!?”


“말 그대로야. 앙갚음에게 근거지를 쓸어버려 주면 원하는 정보를 내어주겠다고 했어.”


작가의말

다음주부터 2-3 주간 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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