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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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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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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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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DUMMY

-늙은 사람-



“헉, 헉! 영감 천천히 좀 가!”


“말할 힘이 있으면 달리기나 하게!”


“앙갚음 못 잡는다니까! 우리가 그놈을 어떻게 따라잡겠어!?”


나는 어린 짐승의 말에 대답 없이 앞을 향해 달렸다.


“안돼! 더는 못 뛰겠어!”


철퍼덕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어린 짐승이 땅바닥에 드러누워 헐떡이고 있었다.


“일어나게! 여기서 멈추면 우린 괴물한테 죽는다니까!”


“아, 몰라!”


“자네 복수한다고 하지 않았나? 복수도 못해보고 여기서 죽을···.”


“내놔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뭐, 뭐야!?”


어린 짐승도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나는 손가락을 뻗어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가리켰다.


어린 짐승이 재빨리 몸을 돌려 뒤를 쳐다본다.


그곳엔 고풍스러운 갓과 하얀 도포를 차려입은 해골이 서 있었다.


“씨, 씨발! 저거 뭐야!?”


어린 짐승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어서 일어나게! 빨리 일어나서 뛰어!”


처음 괴물을 본 모양인지 내 고함을 듣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서둘러 뒷덜미를 잡고 일으켜 세우고 뺨을 세게 후려쳤다.


“아!?”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어서 달리게. 집이 얼마 안 남았네!”


“내놔라!”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괴물은 우리를 향해 소리치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 알았어!”


어린 짐승이 날 한번, 괴물을 한번 쳐다보고 전속력으로 뛰었고, 나도 어린 짐승의 속도에 맞춰 뛰었다.


“내 반드시 네놈들을 잡아내 찢어 죽이고 말겠다!”


“저 새끼 갑자기 나타나서 왜 저 지랄···!”


뭐가 온다!


“숙이게!”


어린 짐승을 덮쳐 바닥에 엎어졌다.


그와 동시에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우리를 덮쳤다.


“이, 이럴 시간 없네! 어서 일어나 다시 움직여야 하네!”


“어, 어!”


고개를 들어보니 주위는 온통 흙먼지와 정체 모를 먹색의 무언가가 우리 앞에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있었다.


먹이 닿은 주변 나무는 전부 깔끔하게 잘려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괴물이 커다란 붓을 검처럼 잡고 여전히 걸어오고 있었다.


“여, 영감 고마워! 영감 아니었으면 우리 목이 저 나무처럼···.”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하고 어서 뛰기나 하게!”


“아, 알았어!”


어린 짐승이 잠깐 뛰어가다가 멈춰버린다.


“왜, 왜 멈추는겐가!? 죽고 싶지···.”


“저, 저기 또 뭐가 오, 오고 있어.”


짐승이 손가락을 덜덜 떨면서 앞을 가리켰는데, 저 멀리서 무언가가 가공할 속도로 이쪽을 향해 네 발로 뛰어오고 있었다.


“띾띾띾띾띾띾”


웃음소린지 뭔지 기괴한 목소리가 내 귀에 칼로 쑤시듯이 박혔다.


“씨발, 씨발! 니미 좆같은! 영감 이제 어떡해!? 앞뒤에 전부 괴물 새끼야!”


탈력감에 우두커니 서서 앞과 뒤를 쳐다봤다.


희망이 없다.


“우린 끝난 거 같군.”


“뭐라고!?”


“이보게.”


“어.”


어린 짐승도 끝이란 걸 느꼈는지 체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네와 만나게 돼서 즐거웠었네. 내가 비록 사람이지만, 왠지 모르게 처음 봤을 때부터 짐승인 자네에게 호감이 갔네.”


“씨발, 나도 그래. 전생에 부부였거나 존나 친한 친구였나 봐. 킥킥!”


어린 짐승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웃음을 지었다.


“복수할 대상이 있다고 했지?”


“어, 그 새끼들 목은 따고 죽었어야 했는데. 씨발!”


“잘 듣게. 내가 먼저 앞으로 뛰겠네. 자네는 내 뒤로 몇 발자국 떨어져서 뛰게.”


“뭔 소리야?”


“저 앞에 있는 놈이 내게 달려들면 자네는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뛰게.”


“뭐라고!?”


“나는 살 만큼 살았네. 그러니, 젊은 자네가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 나는 살 만큼 살았지.


“아니, 씨발! 그러니까 영감 말은 미끼가 될 테니까 나는 도망 치라는 거야!?”


“그렇네.”


“그렇네는 무슨, 영감쟁이가 씨발! 내가 그렇게 해서 살아나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게.”


“씨발, 영감쟁이가 늙어서 사리분별이···!”


나는 어린 짐승의 말을 듣지 않고 네 발로 뛰어오는 괴물을 향해 달렸다.


“영감!”


“뛰게, 어서! 내 희생을 무가치하게 만들 셈인가!?”


“아이, 씨발!”


다행히 어린 짐승이 내 뒤를 따라 달려왔다.


얼마 뛰지 않아 앞에서 달려오는 괴물의 얼굴까지 식별이 가능한 거리까지 도달했다.


얼굴 상하가 완전히 뒤바뀌어 굉장히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고, 딸랑딸랑 거리는 방울 소리가 희미하게 났다.


“띾띾띾띾띾띾”


지척까지 왔다.


시선을 내게 돌리기 위해 칼을 뽑아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괴물은 그에 반응하듯 앞발을 하늘로 든다.


“부디 이 산을 넘길 바라네.”


“영감, 하지 마!”


별안간 괴물이 들어 올린 앞발로 땅을 박차 하늘로 뛰어올랐다.


“어?”


“응?”


나와 어린 짐승이 멍청한 소리를 내며 우리 머리 위로 뛰어넘는 괴물을 멍청하게 쳐다봤다.


“띾띾띾띾띾띾”


괴물이 땅에 착지한 후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네발로 타다닥 뛰어가 하얀 도포를 입고 있는 괴물을 덮쳤다.


“이런 천한 무당이!”


“무, 무당?”


“구경할 시간이 없네!”


“아, 아!”


우리는 저들끼리 싸우는 괴물을 뒤로하고 다시 앞을 향해 뛰었다.



///



“빨리 닫게!”


어린 짐승이 문이 부서질 듯이 쾅하고 닫는다.


“하아, 하아. 여기는 괜찮겠지?”


듣기론 도깨비산에 대한 모든 상식을 버리라고 했었는데.


“··· 괜찮을걸세.”


“뭐야, 그 시원찮은 대답은.”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괜히 걱정을 심을 필요는 없겠지.


내말에 안심했는지 어린 짐승이 자리에 벌러덩 누워 가쁜 숨을 내쉰다.


“그런데, 아까 괴물이 한 말 들었어?”


“뒤에 있는 괴물 말인가?”


“어.”


분명 내놓으라고 말했지.


“들었네.”


“뭐라고 했는데?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못 들었는데.”


“내놔라. 이렇게 말했네.”


“뭘 내놓으라는 거야? 미친 새끼네. 갑자기 나타내서 무슨 개소리야.”


“자네 산에 들어와서 이상한 물건 주운 적이 있나?”


“없어. 여기에 값어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흠.”


“뭔지 모르지만, 우린 괴물한테 찍힌 모양이야.”


“씨발, 별 병신같은 새끼가 달라붙고 지랄이야. 그러면 그 새끼는 뭐야? 우리 앞에서 온 놈. 분명 무당이라고 했지?”


“맞네.”


“무당은 뭐하는 놈인데?”


“나도 잘 모르겠네. 애초에 괴물에 관심이 없어서.”


“그 무당이란 놈은 우리한테는 안중에도 없고 뒤에 있는 놈만 보던데.”


“그래 보였네.”


“둘이 싸웠나?”


“괴물도 서로 다투는겐가?”


“내가 물어봤는데 질문으로 답하면 어떡해?”


“말했지만, 나는 괴물에 대해 잘 모르네.”


“에휴, 이럴 줄 알았으면 괴물 도감이라도 읽는 건데. 너무 안일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입구에서 범이 말하는걸 귀담아들을걸. 치기 어린 마음에 무작정 들이댄 행동이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네. ”


그래, 자네뿐만 아니라 나도 안일했네.


도깨비산의 악명을 알면서도, 더군다나 최근엔 그 악명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데도 기본적인 준비조차 하지 않았군.


어린 짐승의 독백 이후로 우린 한동안 침묵으로 시간을 보냈다.


“근데 그거 알아? 솔직히 나 그때 좀 감동받았어.”


“뭐를 말하는겐가?”


“알면서 모른척하긴.”


“큼.”


내가 미끼가 된 행동을 말하는 모양이군.


“사내로 태어나서 은혜를 갚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지. 다음엔 내가 영감을 구해줄게.”


“결과적으로 내가 자네를 구한 건 아니지 않나?”


“했다는 게 중요하지.”


“···마음대로 하게.”


“진짜 고마워···. 누군가에게 이런 대접? 이걸 대접이라고 하나? 하여튼, 정말 오랜만이야.”


나는 모른척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어떡하지? 여기서 평생 살 수는 없잖아.”


어린 짐승도 어색했는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방법을 찾아야지.”


“무슨 방법···.”


쾅, 쾅!


누군가가 부서질 듯이 문을 두드렸다.


“뭐, 뭐···.”


“쉿!”


어린 짐승이 깜짝 놀라 소리 지르려 하자 내가 급히 손으로 막았다.


어린 짐승이 고개를 끄덕여 이제 괜찮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내 입술에 검지를 대고 천천히 입에서 손을 뗐다.


쾅, 쾅!


덜컥, 덜컥!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번엔 문고리를 사정없이 두드리기까지 했다.


어린 짐승이 침을 크게 한번 삼키고 문고리를 쳐다본다.


내가 저 문을 잠그라고 하지 않았거나, 어린 짐승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면 우린 모두 죽었다.


이내 사방이 조용해진다.


어린 짐승이 내게 살금살금 다가와 귀에 입을 댄다.


“간 거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이 안에 있는지 없는지 긴가민가한 상태네. 저건 우리를 꾀어내려는 속셈이 분명해.”


어린 짐승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내 귀에 입을 댄다.


“문틈으로 내가 한번 볼까?”


“하지 말게.”


“언제까지 이렇게 숨죽이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다만···.”


“잠깐만 볼게.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 있겠어?”


“내가 보겠네.”


“늙어서 잘 보이지도 않잖아? 내가 볼 테니까 가만히 계셔.”


어린 짐승이 조심조심 걸어서 문틈으로 눈을 갖다 댄다.


“아무도 없는데? 아무것도··· 으아악!”


어린 짐승이 비명과 함께 문틈에서 눈을 떼더니 자신의 몸을 미친 듯이 긁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나!? 진정하게, 진정하란 말이야!”


“이거 놔, 가렵단 말이야! 씨발, 노친네 새끼야 이거 놓으라고!”


팔을 붙잡아 만류했지만, 어린 짐승이 손톱을 빼 들고 이리저리 휘둘러 반항했다.


“크윽!”


어린 짐승이 휘두른 손톱이 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통에 힘이 빠져 놓쳐버리고 말았는데 어린 짐승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문을 벌컥 열어버렸다.


“깔깔깔! 열었다, 내가 문을 열···!”


미친듯이 웃던 짐승이 눈을 까뒤집고 혼절해버렸다.


“띾띾띾”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에 내 눈이 절로 열린 문으로 향했다.


괴상할 정도로 마르고, 긴 손이 쑤욱 들어와 어린 짐승을 더듬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찾듯이.


이리저리 더듬거리더니 원하는 걸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도로 나가버렸다.


갔나?


아니, 그전에 내가 있는 걸 모르는 건가?


어찌할지 몰라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빨리 어린 짐승이 괜찮은지···.


“허업!”


이번엔 문으로 얼굴이 쑤욱 들어와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버렸다.


재빨리 내 입을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고 있는 얼굴이 날 똑바로 바라보고 천천히 다가···.


아, 내가 지금 뭘 하는거지?


선비를 죽여야 한다.


지도로 꾀어내 선비를 함정에 빠뜨려야 한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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