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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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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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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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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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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31

DUMMY

-회의적인 사람-



“전황이 좋지 않습니다.”


“괜찮아. 엿새만 버티면 모든 게 해결돼.”


“문제는 저희에게 그 엿새를 버틸 여력이 없다는 겁니다.”


“괜찮아. 쥐어짜면 어떻게든 엿새는 버틸 수 있어.”


아니.


우리는 짐승에게서 엿새 동안 버틸 여력이 없다.


성은 이곳저곳이 허물어졌고, 사람들은 좌절하고 있으며, 짐승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공세를 퍼붓고 있으니까.


만에 하나, 만에 하나 우리가 엿새 동안 버틴다고 해도 엿새째가 되는 순간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앙갚음이 삼년상이 끝나는 순간 바로 이곳으로 오지 않는 이상 우리와 저놈들은 여전히 서로 칼을 맞대고 있을 것이며, 이는 자명하게도 우리의 끝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족장은 막연한 기대감.


삼년상이 끝나는 순간 앙갚음이 곧바로 자신을 구해주고 모든 짐승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거란 허무맹랑한 기대를 한다.


“엿새만 버티면 돼, 엿새만. 삼년상이 끝나는 순간 모든 게 해결될 거야. 암, 그렇고말고.”


어떠한 대책도, 대안도, 지시도, 계획도 없이 삼년상이 끝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말만 끊임없이 되뇌고 있다.


진심으로 믿으면 그것이 진실이 된다는 양.


언제부터 노망에 든 노인처럼 변했을까?


자기 아들이 목이 없는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 딸을 행세하는 짐승을 봤을 때?


그것마저 아니라면 두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성벽에서 투신한 자기 아내를 봤을 때?


“족장님. 그래도 어느 정도 대책은 세워두셔야···.”


“어허! 내 엿새만 버티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족장이 덮고 있는 이불을 신경질적으로 탁탁 내리쳤다.


“엿새만 있으면···.”


[경고. 삼년상이 끝나기까지 닷새가 남았습니다. 원죄를 가진 자 중 죽지 않은 자는 자살하십시오. 앙갚음을 번거롭게 하지 마십시오. 자살하십시오. 자살하십시오. 자살하십시오]


누군지 모르는, 일부는 신의 목소리가 아닐까 하지만, 신이 여자란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일부 남자들은 부정하는, 짐승은 괴물의 목소리라고 깎아내리는, 정체 모를 목소리가 내 귀에 박혔다.


“그렇지! 자네도 방금 그 목소리를 들었지? 이제는 닷새로 줄었다네!”


“네. 들었습니다.”


삼년상이 끝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빈도가 잦아지고 있으며, 일주일이 남았을 시점부턴 매일매일 들려온다.


“후후후, 방금 신님께서 한 말씀 덕분에 짐승 몇 마리가 자살했겠군. 후후후.”


족장이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천천히 빌었다.


“어쩌면 저 앞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전부 자살했을 수도 있고. 흐흐.”


어쩌면 저 말이 잠깐 숨을 돌리고 있는 짐승을 자극했을 수도.


땡, 땡, 땡!


아니나 다를까 짐승이 공격을 시작한다는 신호의 종이 울렸다.


“사령관님, 습격입니다!”


부관 중 하나 문을 벌컥 열고 나에게 소식을 알렸다.


자신의 침소이건만, 족장은 부관의 무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허공을 빤히 쳐다본다.


“내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적어도 문을 두어 차례 두들기기나 하라고.”


“죄송합니다. 상황이 급해서 그만···.”


“그래, 알았네. 족장님.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앙갚음이 온다, 앙갚음···.”


자리에서 일어나 묵례 후 침소를 벗어났다.



///



“사령관님···.”


“모든 잘못은 내게 돌려라.”


성이 불타고 있다.


뜨는 해와 맞물려 불타고 있는 성이 한폭의 그림으로 보인다.


저 성이 우리의 성이 아니었다면.


목소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어 버렸고 우리는 거대한 불길을 맞닥뜨려야 했다.


족장님.


그렇게 부르짖던 앙갚음은 우리를 구해주기는커녕 명을 단축했습니다.


이래도 앙갚음입니까?


이래도 앙갚음을 기다리실 겁니까?


저 목소리는 짐승이 주장하는 것처럼 괴물의 목소리에 불과하며, 그 존재를 의심케 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두 사도처럼 앙갚음 또한 허상에 불과합니다.


족장님.


앙갚음이 올 거라는 당신의 믿음을 잘못됐으며, 당신의 거짓된 믿음으로 인해 우리 부족은 결국 보금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짐승은 보금자리를 잃은 우리를 조롱하고, 고문하고, 신문한 후 웃으며 우리 얼굴 가죽을 벗겨낼 겁니다.


··· 족장님은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도 있군요.


거짓된 믿음이지만 희망을 안고 죽었으며, 적어도 우리 사람이 이름을 잃게 될 현실을 보지 않아도 될 테니 말입니다.


“몇 명이지?”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될 만큼의 수이건만, 성이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간 부관의 정신을 차리게 만들 목적으로 물었다.


“사령관님을 포함해 5명입니다.”


“그렇군.”


부관의 말이 있자 3명이 내 앞에 도열해 경례한다.


“그래, 긴박한 상황이니 긴말하지 않겠네. 나를 따라올 사람은 따르고 아니라면 헤어지세. 붙잡지 않을 것이며 아무런 위해도 하지 않을 테니.”


3명이 저들끼리 속닥거리고 이내 결정을 내린 건지 나를 쳐다본다.


“결정했나?”


“흩어지면 사냥감이 될 게 분명하니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뭉쳐도 사냥감이 될걸세.


눈이 돌아간 저 짐승놈들은 우리가 1명인지 5명인지 관심 없으니.


저들이 관심 있는 건 오직 사람인지 아닌지 그것뿐이지.


“잘 생각했네. 일단 이곳을 벗어나지.”


“사령관님.”


그러고 보니 이 병사들 이름을 모르는군.


이름을 물어··· 어차피 전부 죽을 운명인데 물을 필요는 없겠지.


내 편의상 지금 질문한 활을 맨 병사는 첫째로 해야겠어.


그 옆에는 차례로 둘째, 셋째로.


“그래.”


“어디로 갈 예정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없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니.”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당돌한 놈이군.


보통 병사는 사령관 앞에서 주눅이 드는데 이 병사는 주눅 들기는커녕 의견까지 제시하는군.


“그래. 말해보게.”


“저희는 아쥔타의 무덤으로 가야 합니다.”


“뭐라고!?”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말에 나도 모르게 평정을 잃고 목소리를 올렸다.


“자네 지금 아쥔타의 무덤이라고 했나?”


“네.”


“삼년상을 지내고 있는 그 아쥔타의 무덤 말인가?”


“네. 저희는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대체 왜··· 일단 움직이지.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간 발각될 게 분명하니까.”



///



“허억, 허억! 사령관님. 날도 충분히 어두워졌고, 이 정도로 달렸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달렸으니 충분하겠지.


짐승도 5명밖에 안 되는 우리를 잡기 위해 여기까지 쫓아올 가능성도 없고.


“후우, 후우. 그래. 이쯤에서 휴식하도록 하지.”


당장이라도 땅에 퍼질러 누워 쉬고 싶었지만 날 따르고 있는 부관과 병사의 시선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망한 부족의 사령관이란 짚신 한 짝만도 못 한한 체통을 지키기 위해 본능을 억누르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사령관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나마 부관이 내 마음 상태를 눈치채고 나무 밑을 안내한다.


눕지는 못해도 기대기라도 하라는 말이지.


“고맙네.”


두어 번 거절하고 병사들을 먼저 챙기라고 답하는 게 마땅하건만 그러지 않았다.


너무 힘들기에.


“큼, 큼.”


민망함을 안고 기댄 듯 안 기댄 듯 나무 밑에 앉았고 그제야 부관과 병사들이 둘러앉는다.


저들도 누워서 편하게 쉬고 싶은데 내가 있어서 그러지 않겠지.


“편히 쉬도록 하게.”


“아,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부관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순간 고민했나 보군.


“아니. 편히 쉬게. 편히 쉬어야 내일도 부지런히 움직이지.”


“하지만···.”


“명령일세. 지금 당장 자리에 누워서 쉬게.”


내 입에서 명령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눕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기댄 듯 안 기댄 듯 나무 밑에 앉아 있을 뿐이다.


30분쯤 지났을까?


어느 정도 기력이 회복된 건지 하나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한다.


“사령관님. 저녁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각자 가지고 있는 식량을 가운데 모아보게.”


역시나.


그리 여유롭지, 아니.


당장 저녁 식사로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다.


도망치는 게 급급한 나머지 먹을거리를 챙길 여력이 없었겠지.


지금 상황에서 사냥을 나가기엔 너무나 위험해.


혹시 모르는 짐승이 있을지도 모르고, 사냥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이걸로 해결해야···.


“제가 토끼 두어 마리만 잡아 오겠습니다.”


첫째가 자신의 활을 앞으로 들며 말했다.


“아니, 사냥은 위험하네.”


“어릴 때부터 사냥을 자주 해오던 터라 토끼쯤은 눈을 감고도 잡아 올 수 있습니다.”


“잡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아닐세.”


“네? 무슨 말씀인지···.”


“모두 토끼를 날로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내가 쳐다보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불을 이용해 구워야지. 하지만 불을 피워선 안 되네.”


“발각될 수 있겠군요.”


부관이 내 말을 받았다.


“그렇네. 이런 어둠에서 불을 피운다는 건 대놓고 우릴 잡아가라는 행동이지.”


모두가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첫째를 제외하곤.


“그럼, 제가 버섯이라도 캐오겠습니다.”


“자네?”


“이대로 가다가는 짐승의 손톱에 쓰러지는 게 아니라 배고픔에 지쳐 쓰러질 겁니다.”


일리 있군.


아침부터 지금까지 강행군했는데 먹은 건 없으니.


“그래, 자네 말도 타당하군.”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동의의 의사표시를 했다.


“나와 부관은 남을 테니 자네가 나머지 둘을 이끌고 채집해 오게.”


“자칫 발각될 수 있으니, 셋보단 둘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 자네 뜻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첫째가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둘째와 같이 산속으로 사라진다.


“저 친구. 제법이군.”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음.”


“사령관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모르겠네.”


“외람되지만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해보게.”


“방금 버섯을 채집하러 간 병사의 제안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아쥔타의 무덤에 가는 것 말인가?”


“네. 절대 그곳에 가서는 안 됩니다.”


갈 생각도 없었다 만.


“흐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령관님. 아쥔타의 무덤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


“··· 없네.”


“네.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사령관님에 국한된 게 아닙니다. 이봐, 자네. 자네는 뭐 알고 있는 거 있나?”


“아뇨.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셋째가 고개를 저었다.


“네. 사령관님도 모르고 이 병사도 모르고 저도 모르고 아무도 모릅니다.”


“그곳에 가면 모두가 죽으니, 정보가 없다. 이 말을 하고 싶은겐가?”


“네. 그곳은 꽃밭이나 도깨비요람 등 사지라고 불리는 장소와 차원을 달리하는 곳입니다. 그곳에 간다면 저희는 반드시 죽을 겁니다.”


짐승의 손에 죽으나 앙갚음의 손에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진데 무슨 상관이 있겠나?


우리는 어차피 모두 죽을 텐데.


“그래도 누군가는 살아서 나왔겠지.”


“그럴 지도요.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저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그런데 그 병사는 무슨 생각으로 아쥔타의 무덤으로 향하자고 한 거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자네가?”


“네. 어차피 불침번을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병사와 교대하는 시간에 알아내 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게.”


작가의말

131화 이후로 욕설, 폭력적인 장면 등 개인에 따라서 눈살을 찌푸릴만한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130화는 순서를 보기 좋게 하여 다시 업로드 했습니다

내용은 달라진게 전혀 없으니 안보셔도 됩니다

월요일 업로드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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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140 24.02.25 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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