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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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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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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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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DUMMY

-회의적인 사람-



막상 반대하긴 했는데 딱히 계획이 없어.


사령관의 직책을 내려놓고 이대로 훌훌 떠났으면 좋겠구먼.


사령관이라는 직책의 무게가 이렇게까지 버겁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1구역에서 대족장 셋이 힘을 모은다는 얘기를 얼핏 듣기는 했는데.


나 같은 늙은이는 쓸모가 없겠지만.


제 혼자 살겠다고 부족을 버리고 온 사령관은 더더욱 쓸모가 없겠지.


“사령관님.”


“음, 왜 그러나?”


“날이 저물었습니다. 슬슬 잠자리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그래, 그렇게 하지.”


운이 좋게 동굴을 찾아 은신처로 삼았다.


이런 동굴에 숨으면 발각되기 쉽지만, 이틀째 도망친 결과 짐승은 우리를 쫓지 않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기에 내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


“불도 피우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짐승이 우릴 쫓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졌으니 피워도 되네.”


“알겠습니다. 그럼, 사냥을 해와도 되겠습니까?”


“그래, 저 병사가 사냥에 소질이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어이, 자네.”


“예, 부르셨습니까?”


“자네하고 저 친구랑 가서 사냥 좀 해오게.”


부관이 첫째를 불러 셋째와 같이 사냥을 명했다.


“제, 제가요?”


“그래. 문제 있나?”


“아, 저기···.”


셋째가 날 쳐다본다.


첫째와 언쟁을 벌였으니 가기 싫겠지.


하지만, 내가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군.


나는 셋째의 시선을 외면해 같이 가라는 무언의 의사표시를 했다.


“빨리 가자. 사령관님 시장하시겠다.”


“어? 으, 응. 그래.”


첫째와 셋째가 동굴을 벗어났다.


“사령관님. 저희는 쓸만한 땔감을 구해오겠습니다.”


“나도 같이 가지.”


“아닙니다. 저희끼리 갔다 오겠습니다. 사령관님은 피곤하실 테니 쉬고 계십시오.”


다시 한번 가겠다고 말하려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부관을 말마따나 정말로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부관이 둘째를 이끌고 동굴을 벗어난다.


1시간쯤 지났을까?


부관과 둘째가 장작을 손에 들고 돌아온다.


“쓸만한 땔감이 없었나 보군.”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마른 장작이 보이지 않아서 지체했습니다.”


“그래, 수고가 많았네.”


부관이 서둘러 불을 피운다.


동굴 안에 훈훈한 기운이 돌았고, 이는 내 졸음을 가중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 되어 절로 감긴다.


“족장님. 피곤하시면 주무시죠. 식사가 준비되면 제가 깨워드리겠습니다.”


“으음. 그렇게 해주겠나?”



///



[···자살하십시오. 자살하십시오. 자살하십시오]


허억!


벌써 자정이 지났나?


부관은 왜 날···.


“이제 어떡할 겁니까?”


이 목소리는··· 또 부관이군.


어쩐지 어제와 같은 상황이 또 펼쳐지는 것 같아.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이건 첫째.


“이제 사흘 남았습니다. 사흘 후에는 앙갚음이 활동한단 말입니다.”


부관이 누구에게 존댓말을 하는 거지?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는데.


누가 왔나?


“설득을 해보자. 끝까지 입을 다물면 피곤해지는 건 우리야.”


둘째···.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마음 급하게 먹지 마. 급하게 먹는 순간 끝나는 거야.”


“방법이 있어?”


“우리끼리 가는 건 어때? 6구역 어딘가에 있다는 건 알잖아.”


이건··· 셋째 같은데.


“사흘 안에 찾기란 무리야. 햇수로 3년간 찾아다녔지만 못 찾았어. 사흘 안에 찾을 수 있었다면 진작에 찾았어.”


“일어나면 설득해 보겠다. 우리가 모두 설득하면 사령관도 별수 없을 거야.”


아쥔타의 무덤으로 가는 걸 말하는 건가?


나를 설득한다고?


“고집이 세 보이던데.”


“우리가 어떻게든 설득해야지. 그러니까 허튼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부관은 첫째에게 왜 말을 높이는 것이며, 첫째는 왜 자신이 대장처럼 행동하는 거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열이 새롭게 형성된 건가?


“밤이 늦었다. 내일도 강행군해야 하니 모두 쉬도록.”


“네.”


첫째의 명이 있자 나머지 3명이 대답하고 이내 잠자리에 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나저나, 아무리 없는데 선 족장님 욕도 한다지만 면전앞에서 들으니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군.



///



“사령관님, 사령관님.”


으음, 또.


“일어났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모두 이미 일어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


“미안하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늦잠을 잤군.”


“아닙니다, 사령관님! 저희도 방금 일어났습니다!”


첫째가 내가 민망하지 않도록 활기찬 목소리로 답했다.


저런 아이니, 부관마저 형으로 인정했나 보군.


그래, 어차피 망한 판국에 계급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 어서 들도록 하지.”


내 명이 있자 식사를 시작하는데 어제와는 달리 깨작이는 모습이다.


역시,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건가.


“저··· 사령관님.”


부관이 내 눈치를 보더니 날 부른다.


“뭔가?”


“저희가 사령관님이 주무실 때 논의를 좀 했습니다.”


“논의?”


“네. 아쥔타의 무덤··· 건에 관해서···.”


부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어제 잠에서 깼을 때 들었던 게 이거였군.


“그 건은 이미 안 가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았나?”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셋째가 내 말을 받았다.


“자네, 어제는 기겁하면서 가기 싫다고 하지 않았나?”


“예, 분명 그랬습니다. 하지만 부관님과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니 제가 잘못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흠. 그래서 다시 결정을 내려보자. 이 말인가?”


“송구하지만, 네.”


그렇게나 살고 싶은 건가···.


정말로 이들은 결정을 번복하면서까지 아쥔타의 무덤에 가면 살길이 열릴 거로 생각하는는건가.


사령관으로서 부하들의 마음을 헤아렸어야 하는데 나 자신만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어.


나는 늙고 마음이 꺾여버렸지만, 이들은 아닐 수 있으니.


“가도록 하지.”


“네, 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뭘 그렇게 놀라나?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면 될 거 아닌가.”


“아, 알겠습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하루 조금 더 걸리겠어.”


“하루··· 말씀입니까?”


이틀 걸린다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쥔타의 무덤이 그렇게나 가까이 있습니까?”


“그렇네. 내가 무의식중에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군.”


그래, 정말로 우연히.


앙갚음이 거짓이라 생각했지만, 내 깊은 의식 속에서는 앙갚음을 희망으로 여겨 찾아갔는지도 모르겠군.


재밌군, 정말로 재밌어.


앙갚음··· 그자가 정말로 세간의 소문처럼 모든 짐승을 상대로 복수를 감행할까?



///



“이곳이라네.”


“아, 이곳이···.”


내 말에 부관과 병사들이 희열에 찬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정확한 위치는 나도 몰라. 그저 이 근방이라고만 알고 있지.”


“이곳은··· 겨울개천이 있던 곳 아닙니까?”


아는 곳인 듯 부관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 겨울개천이지.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폐허지만.”


내 부족처럼 사라진 부족이지.


“아···.”


“자, 들어가기 이전에.”


나는 부관과 병사들을 마주 봤다.


“자네들은 누군가?”


“네? 사령관님 그게 무슨 말씀인지···.”


“자네들이 하는 말을 들었네.”


“저희가 무슨말을 했길래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자고 있을 때 자네들끼리 모여 얘기를 나누지 않았나?”


부관과 병사들이 표정이 심각하게 변한다.


“그래. 그때 나는 잠들지 않고 자네들이 한 얘기를 모두 들었다네.”


족장님.


당신의 딸이 짐승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 이 정도였습니까?


아니, 아니겠지요.


제가 받은 충격은 족장님이 받은 충격의 새 발의 피만도 못하겠지요.


이제야 당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족장님.


이제야 앙갚음을 부르짖던 당신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흉을 본 제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아이, 씨발. 늙은이는 잠이 없다더니, 들켰네?”


부관이 건들거리며 병사 쪽으로 다가간다.


“대장, 이 근처인 건 알았으니까 이 늙은이는 이제 필요 없지 않습니까?”


첫째가 부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날 빤히 쳐다본다.


“다시 한번 묻지. 너는 누군가?”


“정말 알길 원하십니까?”


“그래.”


“아니에요, 사령관님. 아닙니다. 사령관님은 그 질문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이번 한 번만 못 들은 것으로 하고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무슨 수작이지?”


“사령관님. 저는 그저 평범한 병사에 불과합니다. 저도 그렇고 이 친구도, 저 친구도 말입니다.”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


첫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부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부관님. 뭐가 들통났다는 말씀입니까?”


“네, 네?”


“부관님. 오늘따라 조금 이상하시군요. 괜찮으십니까?”


“어, 어! 괘, 괜찮지. 괜찮고말고.”


“흠.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괜찮지 않다면 제가 괜찮게 만들어 드리려고 했습니다.”


부관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사령관님. 여기가 확실한 게 맞습니까?”


이 짐승이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날 가지고 놀 속셈인가.


“죽여라.”


“사령관님.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무슨 소리지?”


“지금껏 사령관님을 살펴본 결과 목숨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첫째를 쳐다만 봤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세상 모든 인간과 짐승이 궁금해하는 것을 저희와 함께 알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앙갚음의 실체를 말입니다.”


“싫다.”


“좋습니다. 이제는 저희끼리 찾도록 하죠.”


“대장! 그게 무슨 말씀···!”


둘째가 큰소리치자, 첫째가 사나운 눈으로 쏘아본다.


“후, 내 결정에 토를 달겠다는 건가?”


“망해버린 부족이지만 저 사람은 사령관입니다! 캐낼 정보가 수도 없이 많단 말입니다!”


자기가 짐승이라고 말만 안 했지, 대놓고 티를 내는군.


“우리의 목표는 사령관이 아니다. 우리가 왜 이곳을 왔는지 잊었나?”


“그건···!”


수긍한 둘째가 고개를 숙인다.


“앙갚음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1순위는 앙갚음을 찾는 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알았으면 가서 찾아.”


“네.”


둘째와 셋째가 사라진다.


부관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첫째를 쳐다본다.


“부관님? 저들을 통솔해 주십시오.”


“그, 그래. 알았다!”


부관마저 부리나케 사라진다.


“이것 참, 제가 짐승인 걸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티를 안 냈으면 내가 모를 거로 생각한 건가?


“내가 바보인 줄 아나 보군.”


“사령관님.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첫째가 흐름을 끊고 다른 주제를 내세운다.


“뭘 속였다는 거지?”


“사령관님도 앙갚음의 정체가 궁금하기에 저희를 이쪽으로 안내하지 않았습니까?”


“너희들의 부탁이 있었기에 왔지 내 의지대로 온 것이 아니다.”


“아뇨, 사령관님. 이곳은 사령관님의 의지로 온 겁니다. 사령관님은 무의식중에 이곳으로 움직였으며, 저희에게 수차례 기회를 부여하면서까지 이곳으로 방향을 잡길 원하셨습니다. 무의식이 발로된 것이죠.”


나는 아무 말 없이 첫째를 쳐다봤다.


“사령관님도 느끼셨군요. 자신도 모르는 동안 이곳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을요.”


“··· 그래. 너희들이 제안하는 전날. 나는 깨달았다. 무의식적으로 이곳으로 향한걸.”


“사령관님. 자각하셨으면 다시는 본인을 속이지 마십시오. 저와 함께 앙갚음을 찾아주시겠습니까? 찾아서 앙갚음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보시겠습니까?”


“···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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