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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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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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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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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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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DUMMY

-자살하는 짐승-



역시 안 되겠죠?


주인님은 저따위를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실 테니깐요.


사실 저를 알아보실지도 의문이에요.


저를 알아보시지 못한다면··· 하긴, 알아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봤자 짐승인데요.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님이 계신 곳을 향해 큰절을 올렸어요.


“같이 지낼 수 있어서 과분할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부디 주인님의 복수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작별 인사까지 드렸으니, 제가 죽는 일만 남았어요.


발판 위에 올라가 밧줄을 바라보았어요.


제가 목에 밧줄을 걸고 발판을 차기만 하면 모든게 끝날 거예요.


목에 밧줄을 걸었어요.


이제 차기만 하면 돼요.


안녕히 계세요, 주인님.


끝까지 주인님이 계신 곳을 보며 발판을···.


“어?”


저게 뭐죠?


하늘에서 초록색 빛을 간헐적으로 뿌리는 무언가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어요.


비록 날은 어둡지만, 뿜어대는 초록빛 덕분에 네모만 한 큰 상자라는 것까지 구분이 돼요.


불길한 건 착지가 예상되는 곳은 주인님이 계신 곳이라는 거예요.


제가 저 빛을 봤다시피 다른 인간이나 짐승도 저 빛을 봤을 거예요.


주인님께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죠?


제가 가봐야겠어요.



///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제 기억을 지웠기에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요, 혹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장면을 본 나머지 방어기제로 저 스스로 기억을 지운 걸까요.


누군가의 의지라면 그 누군가는 누구이며, 저의 의지라면 뭘 봤기에 기억을 지운 걸까요.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이곳에 있었고, 아가씨의 무덤 곁에서 상을 지내는 주인님을 뒷바라지하고 있었어요.


사실 뒷바라지라고도 할 수도 없는 일이에요.


그저 주위에 맴돌며 별 볼 일 없는 침입자나 막고 있었을 뿐이니깐요.


제가 하지 않았더라도 능히 주인님께서 하실 일을 말이죠.


저는 쓸모없는 짐승이에요.


그 상황을 기억해냈다면 주인님에게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요.


원죄를 가진자가 누군지 알았다면 제가 이곳에 끌고 와 수월하게 해드렸을 텐데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을 마치 특별한 일을 한다는 듯이 여기는 별 볼 일 없는 짐승이에요.


“헉, 헉!”


먼발치에서 주인님이 보여요.


석상의 형상으로 아가씨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계셔요.


왜 아직 깨어나지 않으신 걸까요?


분명 신께서 삼년상이 끝났다고 하셨는데요.


다행히 아무 일도 없긴 한데, 너무나도 아무 일이 없어서 문제예요.


주인님의 옆엔 하늘에서 내려오던 상자가 떨어져 있어요.


주인님을 위해 신께서 내리신 선물인가 봐요.


다행이에요.


이제 돌아가서··· 하, 한 번만 뵙고 가도 되지 않을까요?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가, 가도 되겠죠?


죽기 전에 한 번만···.


조심조심 주인님께 다가갔어요.


어느새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갔어요.


아··· 햇수로 3년 만에 주인님을 가까이서 봬요.


제가 멀리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이고 계셔요.


얼굴, 얼굴을 한 번이라도···.


쩌적.


주인님의 몸에서 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고 균열이 가기 시작해요.


탈태하는 한 마리의 나비 같아요.


저는 멍하니 주인님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이내 완전히 석상의 모습에서 완전한 주인님의 모습으로 바뀌었어요.


주인님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세요.


저를 보실까요?


보시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저의 어깨를 두드려 주실까요?


쓸모도 없는 저를 향해 그래 주실까요?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주인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하늘에서 떨어진 상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세요.


어느새 주인님의 오른손엔 익숙한 돌이 있었고, 그 돌을 상자에 갖다 대셨어요.


돌이 조금씩 상자에 흡수되고 있어요.


[확인]


신의 목소리예요!


역시 신은··· 아.


돌아가야 해요.


저는 이럴 자격이 없어요.


주인님이 무사한지 확인했고 뵀으니까 이제 여한은 없어요.


서둘러가서 못다 한 일을 끝내야 해요.


조심스럽게 뒤로 돌아가는데 제 발치에 단검 하나가 꽂혀요.


이건 주인님의 단검이에요.


확실해요.


제가 수도 없이 봤던 단검이에요.


가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일까요, 넌 내가 죽일 테니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라는 뜻일까요?


마음 한쪽에 다른 짐승과 다른 대우를 받을 거란 기대가 와르르 무너져요.


네.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마땅히 죽어야 할 다른 짐승과 달리 특별대우로 저는 살려주실 거로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멍청한 생각이었어요.


저는 보잘것없는 짐승일 뿐인데요.


저기 저 사람에게 손톱을 들이밀고 있는 이름 없는 짐승과 구분도 되지 않는 짐승일 뿐인데요.


웃으면서 죽을 거예요.


혹시나, 주인님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주인님에 죄책감을 느끼시지 않도록 웃을 거예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뒤로 돌았어요.


주인님의 모습은 어느새··· 저걸 갑옷이라 불러야 할까요?


갑옷이라고 불려야 할 옷이지만, 어째선지 이 세상 물건이 아닌 듯한 것을 입고 있었어요.


투구는 머리를 전부 감쌀 수 있는 형태지만 앞부분엔 유리와 비슷한 투명한 무언가가 있어요.


주인님은 제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투구를 옆구리에 끼고 아가씨의 무덤 앞에 서서 내려다보고 계세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시는 건지 한참이나 무덤을 내려다보셨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큰절을 올리시곤 곧바로 뒤로 돌아 저를 향해 다가오세요.


이제 끝이에요.


웃어야 하는데 왜 눈에서 눈물이 날까요?


웃어야 하는데···.


안녕히 계세요.


저는 행복···.


죽음을 기대했지만, 주인님은 저를 무시하고 지나치셨어요.


이게 대체···.


천천히 뒤를 돌아 주인님을 쳐다보는데, 발치에 박혀있는 단검이 스르르 뽑혀 나와 주인님의 갑옷에 흡수되었어요.


호, 혹시 저를 살려주시는 걸까요?


제 바람대로 저는 예외인 걸까요?


“주, 주인님.”


제가 불러봐도 들은척하지 않으시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세요.


저 방향은 제 움막이 있는 곳인데.


“저를 살려주시는 건가요?”


조심스럽게 주인님에게 걸어가다 이내 뛰어갔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주인님은 묵묵히 앞을 걷고 계세요.


용기를 조금 더 내어봐도 될까요?


용기를 더 내서 예전처럼 옆이나 앞에서 걸어도 될까요?


주인님의 몇 발짝 뒤에서 뛰는 걸 멈추고 보폭을 맞춰 걸었어요.


변함없이 앞을 걷기만 하세요.


“여, 옆에서 걸어도 될까요?”


대답하지 않으세요.


“주인님이 예전에 그러셨어요. 침묵은 긍정이라고.”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조심스럽게 주인님의 옆으로 가 같이 걸었어요.


오직 앞으로 걸으실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으세요.


“복수하러 가시는 건가요?”


기억을 잃어버린 저처럼 주인님도 충격에 말하지 못하게 되신 걸까요?


얼마나 충격이 심하셨으면···.


“주인님은 아가씨를 해한 나쁜 놈들이 누군지 아세요?”


주인님이 자리에 멈춰서 저를 쳐다보세요.


“모, 모르세요?”


아··· 어떡해요.


저처럼 기억도 잃어버리셨나 봐요.


안타까움에 눈물이 주룩 흘러요.


··· 원죄를 지었는지 모르시기에 저를 죽이지 않으신 걸까요?


그래서 제가 여태껏 살아있는 걸까요.


짐승이 원죄를 가졌다고 말해야 할···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죠?


저 하나 살겠다고 주인님의 복수에 훼방을 놓다니요.


말씀드려야 해요.


제가 만약 짐승이 원죄를 가진자라고 말하면 저는 여기서 죽겠죠?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또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어요.”


관심이 동하시는지 저를 계속 쳐다보세요.


“··· 짐승이 아가씨의 죽음과 연관이 있어요.”


말을 끝내자마자 눈을 꼭 감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떠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요.


눈을 살짝 떠보니 주인님은 여전히 저를 쳐다만 보실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으세요.


왜, 왜···.


“짐승이에요. 짐승이 아가씨를 죽였어요.”


변함없이 저를 쳐다만 보세요.


“아, 아닌가요?”


어떠한 말이라도 해주시면 좋을 텐데···.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짐승이··· 아가씨를 죽인 게 아니에요?”


주인님이 제게 시선을 거두시고 앞으로 걸어가세요.


아닌가 봐요!


짐승이 아닌가 봐요!


“저에게 방법이 있어요! 주인님, 저에게 방법이 있어요! 찾을 방법이 있어요”


저에게서 멀어지는 주인님을 힘찬 발걸음으로 쫓아요.



///



짐승이 주장하고 있던 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그런데 주인님은 알지 못하시는데 어떻게 구분하시는 걸까요?


아무렴 어때요.


저는 아니고 또다시 주인님과 이 세상을 여행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요.


꺼림칙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일이 잘 풀렸으니 된 거예요.


그걸로 된 거예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래요.


신변을 정리하기 위해 쓸모없는 물건은 전부 정리했는데도 바닥에 늘어놓고 보니 한 아름이나 돼요.


추억이 깃든 물건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거든요.


차곡차곡 가방 속에 넣··· 이 달걀귀신이 준 활은 챙길 필요가 없겠죠?


화살이 없으니깐요.


그런데 왜 찾으러 오지 않을까요?


쓸모가 없어진 물건인데요.


아, 제가 너무 지체했어요.


이럴 시간이 없는데.


바닥에 늘어진 물건을 전부 쓸어 담아 가방에 욱여넣었어요.


정리는 나중에 하면 돼요.


시급한 건 제 짐 따위가 아니라 아가씨의 복수니깐요.


움막에서 나와 주인님을 찾아보는데 제가 의자 대용으로 사용했던 바위에 앉아계셨어요.


양손을 깍지 끼고 고개를 숙여 이마를 대고 계세요.


마치 기도하는 모습이에요.


준비 다 끝났는데···.


제가 방해하면 안 되겠죠?


주인님께서 기도하시는 시간에 계획을 점검해 봐야겠어요.


늙은 사람.


그 사람이 도망쳐왔던 곳에 갈 거예요.


이 근방에서 가장 큰 곳이니깐요.


더 가까운 곳에 겨울개천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벼락을 맞아 사라졌다던가, 짐승에게 습격당해 사라졌다던 거라는 풍문이 있어요.


하지만, 어느 하나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몰살당했다는 거예요.


생존자가 없다고 해요.


그래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무도 몰라요.


짐승이 그랬을 거예요.


그 종자들은 배은망덕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거든요.


딴생각을 잠깐 했네요.


어쨌든, 늙은 사람이 도망쳐왔던 곳으로 가 정보를 얻어야 해요.


사람이 막아냈든지 짐승이 점령했든지 상관없어요.


제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얻어낼 거예요.


짐승이 아니라면 원죄를 가진 자는 인간이에요.


그 말은 사람도 될 수 있다는 말이죠.


하지만 사람은 아닐 거예요.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의 사도를 그렇게 할 리가 없거든요.


곰, 도깨비, 범.


이 중에 원죄를 가진 자가 있어요.


죽여버릴거예요.


반드시 죽여버릴거예요.


[현 시간부로 모든 구역간 이동이 차단됩니다. 현재 앙갚음은 6구역에 있습니다.]


주인님이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셨어요.


이제 시작이에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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