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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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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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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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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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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DUMMY

-늙은 사람-



“뭐해? 빨리 문닫고 들어와. 괴물 들어올라.”


어린 짐승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손짓했다.


오랜만에 누가 나를 반겨주는··· 그것도 사람이 아닌 짐승이.


재밌군.


“자네는 어디가 조금 모자라는가?”


문을 닫고 탁자에 앉으며 어린 짐승을 쳐다봤다.


“어, 어?”


어린 짐승이 얼빠진 표정을 하며 되물었다.


“우리가 전쟁하고 있는데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겐가?”


“아니··· 뭐. 혼자 있으니까 좀 무섭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전쟁을 우리가 하는 건 아니잖아.”


“내가 전쟁 당사자가 아닐 거라고 단정하는 이유라도 있는 겐가?”


“어, 어··· 그러니까··· 아니야?”


“자네는 정말로 어디가 모자란 짐승이군.”


나는 피식 웃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전쟁 당사자들끼리 한 집에서 머물게 되다니, 정말로 재밌어.


“그런데 할배 힘도 없잖아?”


“내가?”


“어, 다 늙어서 나뭇가지도 하나 못 부러뜨릴 것 같은데.”


“허허!”


별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나는 웃고야 말았다.


“계속 나보고 할배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늙지 않았네.”


“몇 살인데?”


“60이 넘었네만.”


“60살이면 할배 아니야? 내가 20살이거든. ”


“마음대로 생각하게나.”


“봐 말투에서부터 딱 노땅 냄새가 나는데. 그리고 그 모습도.”


“말투는 높으신 분을 오랫동안 모셔서 그런거고, 겉모습은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거라네.”


“오, 족장 뭐 그런 거야?”


“아니네.”


“그러면 족장을 모셨던, 뭐 이런 거?”


“그렇지.”


내 대답에 흥미가 돋는 듯 어린 짐승이 맞은편에 앉았다.


어린 짐승이 안전거리 이내로 오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 저 어린 짐승의 목을 날려버려야 하건만 어째선지 내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엔 어쩐 일로 온 거야?”


“우리 부족의 대부분이 사라졌네.”


“아···.”


어린 짐승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


왜?


“짐승이··· 그런 거야?”


괜히 마음의 짐을 지게 할 필요는 없겠지.


“아니네.”


“아니야!?”


어린 짐승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아니, 그럼. 누가?”


“좋은 얘기도 아닌데 다른 주제로 넘기지. 자네는 왜 이곳에 왔나?”


“나? 나는 뭐··· 만나야 할 누군가가 있어서.”


“상당히 친밀한 관계인가 보군. 도깨비산을 넘어서까지 보러 가다니 말이야.”


“친밀···은 아니고. 죽여야 할 짐승이 있어서.”


“음?”


생전 처음 보는, 그것도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앞에서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말하다니.


상당히 놀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어린 짐승을 쳐다봤다.


“하하, 갑자기 내가 누구를 죽이겠다고 말해서 놀랐지?”


짐승이 어색한 웃음을 짓고는 자기 가방을 뒤져 탁자 위에 종이를 펼쳐 보인다.


“내가 원래는 이런 거 절대 말 안 하는데. 할배가 사람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도깨비산에 있어서 그런가. 어쨌든 이놈들을 죽이려고 산을 넘는 거야.”


종이에 그려진 짐승을 유심히 쳐다봤다.


“아는 놈이야?”


“모르네.”


“그럴 줄 알았어.”


어린 짐승이 종이를 곱게 접어 가방에 넣었다.


“왜···?”


이유를 물을까 하다 남의 사연을 깊게 파고들 처지가 아니라 급히 다물었다.


내가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없기에.


“궁금해?”


“아니, 안 궁금하네.”


“뭐, 듣기 싫으면 마셔. 그래서 어떡할 거야?”


“뭘 어떡할 거냐니?”


“여기서 잘 거야?”


그렇군.


같은 사람이라도 경계해야 할 진데 하물며 짐승이라.


“말하는데 나는 잘 거야. 너무 피곤해서 경계고 뭐고 모르겠어. 그러니까 부탁인데 나 죽일 거면 고통 없이 죽여줘.”


“자네를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네.”


“그래? 그럼 잘됐네! 나도 할배 죽일 생각 없으니까. 와, 이거 진짜 신기하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종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란 건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우정이라는 건가?”


어린 짐승이 내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모포를 바닥에 깐다.


“나 먼저 잔다.”


“··· 알겠네.”


고도의 기만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태도가 너무 자연스럽군.


곧 잠에 빠져든 짐승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나는 왜 짐승을 배려한답시고 부족이 사라진 이유를 말하지 않은 거지?


그전에, 나는 왜 이 짐승을 죽이지 않는 거지?


우리 부족의 원수인 짐승이, 내 눈앞에 무방비한 상태로 있는데도 나는 왜?


칼집에서 칼을 빼내 짐승의 목에 겨눴다.


정말로 자는 모양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조금 더 지켜 보는 것도 좋겠지.


나는 어린 짐승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포를 둘렀다.


언제라도 칼을 뽑을 수 있게 손에 칼을 쥐고서.



///



“하아, 영감 잘 잤어?”


“덕분에.”


“다음엔 불침번 설까? 내가 보기엔 못 잔 것 같은데.”


“늙으면 잠이 없는 법이라네.”


“으흠. 그래?”


어린 짐승이 문을 열려다 멈칫한다.


“지금 열어도 되겠지? 아침이니까.”


“입구에서 못 들었나?”


“아니, 듣기 싫어서 안 들었어.”


“용케도 살아있군.”


“뭐, 첫날이니까.”


“문은 열어도 될걸세. 낮에도 괴물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평생 여기서만 있을 게 아니지 않나.”


“하긴, 어차피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어린 짐승이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곤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어젯밤에도 조용했지?”


“벌레 우는소리 하나 나지 않았네.”


“그래? 다행···.”


짐승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더니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린다.


“왜 그러나?”


“버, 벌레가 우는소리가 안 들려.”


“그게 무슨··· 아!”


벌레는 주위에 누군가가 있으면 울지 않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영감도 눈치챘어? 벌레는 누가 있으면 안 울어.”


“그래.”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길이 아닌 곳에 있을 리가 없고.”


“길이 아닌 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괴물이지.”


“씨발! 지금 괴물 새끼가 덫을 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진정하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하는 법이야.”


“어, 어떡하지. 그냥 기다려야 하나?”


“일단···.”


쿵, 쿵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이쪽을 향하는 게 들린다.


“빨리, 문을 잠그게. 어서!”


“어, 어!? 아, 알았어!”


서둘러 문을 잠그려 하는 와중에도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린 짐승이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와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몸이 굳어버려 멍청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건 초록색 외피를 가진 팔이다.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비록 각오는 했다만···.


“씨-발! 내가 여기서 죽을 줄 알아!?”


굳어서 아무것도 못 하는 나와 달리 어린 짐승은 손톱을 빼 들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래, 짐승도 죽자 살자 덤비는데 하물며 내가.


가까스로 몸의 통제를 되찾고 칼을 뽑아 뛰쳐나갔다.


어떤 괴물이든 간에···!


“짐승?”


2미터는 족히 넘을듯한 초록색 외피를 가진 괴물 한 마리와 그 옆엔 짐승이 서있었다.


어린 짐승인가 하니 어린 짐승은 괴물이 한 손으로 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머리와 팔이 축 늘어진 걸 봐선 죽은 것 같았다.


“사람도 있네요.”


괴물 옆에 있던 짐승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주인님 제가 설명해도 될까요?”


짐승의 말에 괴물이 어린 짐승을 집안에 던져버리고 자신도 들어간다.


“너, 너희들은 뭐지?”


“저는 주인님을 모시는 짐승입니다.”


무슨 개수작이지?


짐승을 부리는 괴물도 있었나?


“아, 주인님을 괴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주인님은 괴물이 아니라 앙갚음이십니다.”


“앙갚음!?”


그러고 보니 앙갚음이 도깨비산에 들어왔다고 했었지.


“그, 그럼, 저 사람이 앙갚음이고···.”


“저는 주인님을 모시는 짐승입니다.”


“허, 허허···.”


내 앙갚음을 눈으로 직접 볼 줄이야.


그것도 도깨비산에서.


“실례가 안 된다면 들어가도 될까요?”


“어, 어. 그러게. 우리 것도 아니니.”


“감사합니다.”


짐승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간다.


··· 나는 이대로 가야 하나?


이것 참.


지금 떠나기엔 조금 아쉽···아쉬울 것 같군.


“안 들어오세요?”


“가, 가네.”


짐승의 말에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앙갚음은 양반다리를 한 채 무언가를 읽고 있었고 짐승은 그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어린 짐승은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채 있었는데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짐승치고 꽤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너도 나처럼 짐승에게 원한이 있어 보여 더욱더 그래 보였는지도 모르지.


조금만 더 인내했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그 용기가, 이럴 땐 객기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지만 어쩐지 용기라고 말하고 싶구나.


네 무덤을 만들어줄 만큼은 우리가 친밀하않았지만, 애도 정도는 표현해 줄 수 있을 것 같군.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애도를 표했다.


“안 죽었어요.”


“음?”


“저 짐승 안 죽었어요.”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짐승이 날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짐승의 눈이 어딘가 꺼림칙해 눈을 마주 보지 않고 애써 시선을 어린 짐승에게 돌렸다.


“표정에서 다 드러나네요. 나이가 든 사람치고는 감정표현이 풍부하신 모양입니다. 아무튼, 주인님께서는 시체를 집안에 들이시는 악취미는 없으십니다.”


“아, 그런가?”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지만 새어 나오는 내 감정은 막을 수 없었다.


“신기하네요. 종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란 건가요?”


“아니, 그런 게···.”


“이런 시국에서?”


짐승이 갑자기 말을 낮춤과 동시에 노려봤다.


“당신, 아무리 봐도 탈을 쓴 짐승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배신한 건가, 아니면 저 짐승이···.”


앙갚음이 수첩을 접고 나와 짐승을 한 번씩 쳐다본다.


마치 그만하라는 듯이.


“아, 죄송합니다. 주제넘은 행동을 했습니다.”


짐승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수첩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서 땔감이라도 구해오겠습니다.”


타박 아닌 타박에 민망했는지 밖으로 나가버렸다.


장작이 많이 있다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맙소.”


앙갚음은 내 감사 인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수첩만 쳐다본다.


과묵한 양반이군.


앙갚음에서 시선을 돌려 여전히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어린 짐승에게 다가갔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정말로 살아있는 모양이다.


··· 나도 다 늙었군.


눈썰미가 이리 떨어져서야.


“이보게, 이보게.”


“어, 어?”


살아있긴 하지만 몸에 어떤 손상에 있을지 모르기에 흔들지 않고 깨웠다.


그런데도 어린 짐승은 금방 일어났다.


“괜찮은가?”


“아, 무슨··· 저, 저거 괴물이잖아!”


어린 짐승이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했다.


“일단 진정하게. 괴물 아니니깐 진정하게.”


작은 소란에 앙갚음이 고개를 들어 어린 짐승을 보고 날 한번 쳐다봤다.


그 모습이 꼭 조용히 시키지 않으면 내가 조용하게 만들겠다고 하는듯했다.


“이, 일단 밖으로 나가세.”


“이 영감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버둥거리는 어린 짐승을 억지로 끌어내 밖으로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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