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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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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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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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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DUMMY

-의문을 품는 사람-



이놈이 지금 나보고 사람반역자가 되라는 말인가?


“씨발, 지금 나한테 너희 끄나풀이라도 하라는 말이야?”


“내 말을 곡해하는군. 그것도 상당히.”


“씨발, 곡해든 뭐든 어차피 뜻은 배반하라는 거잖아.”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좆이나 까서 잡수세요, 씨발 새끼야.”


원로가 날 빤히 쳐다보며 팔짱을 낀다.


나는 원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족장이 남긴 문서를 계속 읽어갔다.


“그걸 읽는 게 무슨 소용이지? 어차피 결론은 정해졌는데.”


“입 좀 닥치면 안 될까, 원로가 되는 자격 중에 수다도 있는가 보지?”


나는 원로의 말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뇌리를 파고들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그걸 읽는다고 결과가 바뀔까? 앙갚음은 나타났고, 짐승을 복수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건 저명한, 아니지. 아직 세상은 모르니까. 하여간 바뀌지 않는 사실인데.”


“아가리 좀 닥쳐.”


저놈 입을 막을 방법은 네가 반응하지 않는 거야 등신아.


왜 자꾸 저놈의 말대답하는 거야!?


“얼른 보지 그래? 나도 그게 궁금하군.”


빌어먹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놈에게 주도권이 있어.


그리고 저놈은 그걸 알고 날 가지고 놀고 있고.


나는 분을 삭이며 족장이 남겨둔 서류를 살펴봤다.



///



마, 말도 안 돼.


종이 잡고 있는 내 손이 통제를 벗어나고 떨린다.


“무슨 말이 적혀있길래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거지?”


개, 개소리하지 마!


손에 힘이 풀려 문서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종이가 펄럭이며 바닥에 널브러진다.


“무슨 말이 적혀있길래.”


족장이 내가 떨어뜨린 문서를 집어 들어 읽어보더니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떨림이다.


“이게 사실인가?”


나는 답하지 않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여기 적힌 말이 사실인가 물었어.”


“몰라!”


“개소리야. 노망난 늙은이가 적은 개소리에 불과할 뿐이라고.”


“개소리라고, 오히려 너희들은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씨발, 아쥔타는 자귀추적자였으니까 좋아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공포 그 자체였던 사도 중 하나가 죽었다는 게 사실로 밝혀졌으니까!”


“사, 사도가 죽었다고, 사도가? 그래서 여태껏···.”


“씨발.”


어떤 새끼가 사도를 죽이려는 발칙한 생각을 한 거지?


“잠깐, 앙갚음이 말하길 분명히 짐승은 원죄를 가지지 않았다고 했어. 그렇다면, 인간 중에···.”


원로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날 쳐다본다.


“인간 중에 사도를 죽이고 앙갚음으로 만들어버린 범인이 있는 거군.”


맙소사.


도대체 누가, 누가 사도를 죽일 생각을 한 거지?


아니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일 가능성도 있어.


족장이 작성한 문서에는 인간이라고 콕 집어서 말한 게 아니잖아.


“하, 하하, 하하하! 이거 상당히 재밌게 돌아가는군. 인간이 사도를 죽였다고!? 하하하!”


원로가 목청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는다.


“괴물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괜히 억측하지 마.”


“아니지, 아니야. 괴물이라면 앙갚음은 이곳이 아닌 도깨비숲으로 직행해 괴물이 보이는 족족 죽였을 거다. 굳이 이곳에서 정보를 모은다는 귀찮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지랄하네, 등신이. 대가리는 장식이냐? 네 말대로라면 앙갚음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보이는 족족 죽이겠지. 어차피 죽이다 보면 걸려들 테니까.”


“그건···! 흠, 일리 있군.”


원로가 자기 턱을 매만진다.


“그런데, 그 본능만 있는 놈들이 아쥔타를 죽이려고 할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는 걸 감으로 알 텐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긴, 우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겠군. 우리 짐승은 원죄를 가지지 않았다고 앙갚음이 직접 말했으니.”


할 수만 있다면 촉새같이 지껄이는 저 입을 찢어버리고 싶어.


“거기다가 자귀추적자가 죽었다니. 하하, 이거 하늘이 우리를 도우시는군! 아마도 신께선 너희가 아니라 우릴 선택한 모양이야!”


희열에 찬 족장이 날 보고 말한 후 급히 집을 나간다.


“사령관, 사령관 어디 있나···!?”


이어 묵직한 발소리가 들리고 문이 덜컹 열린다.


나타나는 건 내 예상과는 달리 왼손에 원로의 뒷덜미를 쥐고 있는 앙갚음이다.


앙갚음이 원로를 우악스럽게 의자에 앉힌다.


이어 다시 문이 열리며 사령관을 제외한 병사들이 들이닥친다.


“앙갚음, 좋은 말할 때···!”


맨 앞에서 앙갚음에게 소리 지르던 짐승의 머리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는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머리 없는 몸뚱이가 그제야 만족하는 듯 허물어진다.


“누가 내 허락 없이 들어오라고 했나!?”


“하, 하지만···.”


원로의 말에 대답한 짐승의 또다시 머리가 사라지고 온 방향으로 흩뿌려진다.


이어 앙갚음과 가까운 짐승의 머리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살점을 뿌린다.


하나씩, 차례로 머리가 사라지는데, 정작 앙갚음은 그쪽으론 시선도 두지 않은 채 원로만 쳐다보고 있다.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은 시간에 집안으로 들이닥친 짐승이 모두 머리가 사라진 채 죽어버리고 말았다.


집안은 온갖 살점과 피가 덕지덕지 묻어 참극의 현장이 되었다.


“으, 으···.”


원로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앙갚음은 그제야 원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바닥에 흩뿌려진 문서를 쳐다본다.


앙갚음이 문서를 갈무리하고 천천히 읽는다.


보는 내가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마지막 장까지 읽어 본 후에야 문서를 손에 쥐고 몸을 돌린다.


“자, 잠깐!”


내 외침에 앙갚음이 몸을 돌려 날 쳐다본다.


“정말로 아쥔타가 자귀추적자였나?”


앙갚음은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빤히 쳐다본다.


아니, 날 보고 있기는 한 걸까?


오직 내 눈에 보이는 건 앙갚음의 투구에 반사된 볼품없는 내 모습뿐이다.


“넌 얼마나 무능했길래 사도를 죽음에서 구해내지 못한 거지!? 얼마나 무능한 노예기사였길래 아니지, 아니야. 너 같은 무능한 놈이 노예기사였을 리가 없지.”


나는 애써 앙갚음을 부정했다.


마치 내가 부정하면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란 희망··· 또다시 헛된 희망을 품고.


“왜 자신이 앙갚음인냥 남을 속이는 거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하고 있냔 말이다! 너는 앙갚음이 아니야, 아니라고! 너는 단지, 단지··· 괴물에 불과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고! 그런데 왜, 왜!? 우리에게···.”


감정이 북받쳐 말을 맺을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앙갚음의 앞까지 비틀비틀 걸어가 가슴을 두드렸다.


“너는 마지막 남은 우리의 희망이었다고. 우리에게 희망을 품게 했으면서··· 왜 좌절하게 만드는 거냐고. 왜”


앙갚음은 날 빤히 내려다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다.


“씨발, 뚫린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 좀 해봐! 이 개새끼야!”


앙갚음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려 집을 나간다.



///



“전향하겠다.”


“탁월한 선택이다. 앙갚음과 자귀추적자라는 희망이 사라진 이상 사람에게 남은 건 패배뿐이니까.”


씨발놈.


원로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 미소가 꼭 날 비웃는 것 마냥 느껴진다.


“그나저나, 몸은 괜찮은 건가?”


“아, 신경 쓸 필요 없어. 기절한 것뿐이니까.”


원로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기 목을 매만졌다.


“내가 뭘 하면 되지?”


“네가 모진 고문을 당해서, 마음 같아서는 당분간 요양이라도 하라고 하고 싶건만.”


“말하기나 해.”


“승기가 넘어왔는데 쐐기를 박아야 해서 말이야. 이거 미안하게 됐군. 고생 좀 해줘.”


“그러니까 뭘 원하는데?”


“유격대의 근거지, 작전 내용, 신상 등 모든 것. 그리고 네가 나서서 전향을 독려해.”


이 개새끼가···.


“지금 나보고 전면에 나서서 반역을 부추기라는 말인가?”


“그래. 네가 나서면 마음을 돌릴 사람도 몇 있겠지. 그런데 조금 의외군. 난 네가 유격대의 정보를 파는 걸 더 거북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전자는 얼굴이 안 팔리지만 후자는 얼굴이 팔려서 꺼림칙한가? 하하하!”


나는 속으로 삭일뿐 어떠한 반응도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람을 배반하고 짐승에 붙은 이상 나는 원로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니까.


또한, 원로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마음껏 날 조롱하고 비웃어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알았다.”


“흠, 이제는 나한테 말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내 밑에 들어왔는데 말이야.”


“알···겠습니다.”


“좋아, 좋아. 나가봐.”


나는 원로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문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사이 짐승 시비 둘이 지나가며 속닥이는데 꼭 나를 욕하는 것만 같았다.


배알도 없는 놈이라고, 목숨 하나가 아까워 사람을 팔아먹은 놈이라고.


나는 서둘러 내 유일한 안식처인 방으로 뛰듯이 걸어갔다.


“오셨어요?”


수하가 날 보고 맞이했다.


아마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면 저렇게 못 할 테지.


“어떻게 됐어요?”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밖을 쳐다봤다.


어제 그 사건이 있고 난 뒤로 원로가 지시했는지 막아뒀던 창문을 열어주었다.


이제 쓸모가 없으니 도망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거나, 내가 배신할 거라는 걸 예상했거나.


“설마, 아니죠?”


수하의 목소리가 불안정하게 떨렸다.


“서기관님, 말 좀 해보세요. 네?”


“미안하다.”


“정말이에요, 정말로 우리를 배신했어요?”


“할 말이 없다.”


“그 비루한 목숨을 부지하고 싶어서 우리를 팔았어요?”


수하의 말에 가시가 돋치기 시작했다.


“왜요, 지금까지 그 모진 고문을 견뎌냈으면서 왜 하필 지금에···.”


“희망이 없어졌으니까!”


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수하를 쳐다봤다.


“희망이 없어졌으니까, 어디에서든 희망을 찾았어야 했어, 너도 이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잖아! 족장은 우리를 등한시했고, 사령관은 우리를 버렸어! 그러면 나도 그래도 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에요. 제가 서기관님 앞에서 족장을 흉본 건, 사령관이 도망갔다고 고자질한 건 서기관님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거예요! 서기관님은 그러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거라고요!”


수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미 끝났어. 나는 이미 원로에게 유격대에 관한 정보를 넘겼으니까. 그 대가로 나는 죽을 때까지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기로 약속을 받았어.”


“서기관님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 지금까지 날 모셨던 공을 봐서 너 하나쯤은 도망가게 해줄 수 있으니까. 그게 싫다면··· 나와 같이 사람을 팔아먹으며 호가호위하던가.”


수하가 날 노려보고 문을 쾅 닫으며 방을 나간다.


“어이, 저 녀석 놔둬도 괜찮아?”


우리를 지키는 짐승이 문을 살짝 열고 물었다.


“괜찮아. 필기구와 튼튼한 줄이 필요해. 최대한 빨리.”


“필기구는 알겠고. 줄은 왜? 도망이라도 가려는 속셈인가. 창문을 다시 막아야 하나.”


“이미 전향한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내가 왜 도망을 가? 잔말 말고 가져오기나 해.”


그래, 이러면 된거야.


이러면 된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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