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뜻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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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이 여기 살던 놈이라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신의 앞에 부복해 있는 자를 보며 물었다. 이름을 유인裕仁이라고 했는데...
“허! 성이 없다니...”
“헤헤. 양반이 아닌 다음에야 뭐...”
“그런가? 그렇다면 묻자. 이곳은 왜 이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고... 모르셨습니까요? 임금님이 여기 오신 후에 또 왜군이 온다는 말에 이리 만든 것입니다요. 왜놈 애고! 죄송합니다요. 왜군에게 쌀 한 톨도 남겨주면 안 된다며 싹 긁어 가셨습니다요. 곡식만입니까? 기르던 가축에... 사람들까지 전부 데리고 갔지 뭡니까요.”
“허허...”
고니시 유키나가는 입맛이 썼다. 조선의 왕이 또 도망갔다. 그것도 이번에는 있는 것 없는 것 다 박박 긁어갔다고 한다. 결국 한숨이 나왔다.
“하아... 도망이라... 그나저나... 그럼 저 십자가는 무엇인가? 왜 여기 있는 건가? 네놈은 저게 뭔지 아는가?”
어쩌면 이게 가장 궁금한 것인지도 몰랐다. 조선 땅에도 가톨릭이 들어갔던가?
“알지요. 음... 발음이 맞나 모르겠는데... 예수인가? 그리스도라고도 하고...”
“헛!”
고니시 유키나가의 눈이 커졌다. 저들이 그걸 어찌 아는가? 조선에 벌써 가톨릭이 전해졌단 말인가? 심경이 복잡해졌다.
“예전에 이곳에 피부는 허옇고, 터럭은 갈색인 냄새가 좀 많이 나는 사람이 왔었더랬습니다. 이름을... 페드로라던가?”
“페, 페드로...”
순간 고니시 유키나가는 움찔했다. 누가 봐도 왜국에서는 오란다 등으로 부르는 유럽 쪽 이름이 아니던가?
“예. 그 사람이 알려 주었지요.”
“그런 일이... 그러면 묻겠다. 그럼 또 묻겠다. 혹시 유키야마 오오토라를 아는가?”
“아... 그게... 이름은 들어봤습니다. 음... 소문이 소문인지라...”
“그렇군.”
고니시 유키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유키야마 오오토라가 한 일에 대한 소문은 들었었다. 그때는 그냥 넘겼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하니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하지만 굳이 제재를 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건 유키야마 오오오토라가 한 일은 조선인들에게 그의 악명을 높이는 일을 했을 것은 확실하기는 했다.
“사실 유키야마 오오토라가 평양성을 점령했었습지요. 그때 얼굴은 못 봤지만...”
“아아... 그렇군.”
생각해보면 멍청한 질문이었다. 지금 자신보다 먼저 평양성을 점령할 수 있을 자는 유키야마 오오토라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유키야마가 없는 거지?”
“사실은 그것이... 아마 보셨을 겁니다. 유일하게 불에 타버린 집을 말입니다.”
“그래 보았다. 좀 이상하긴 했는데...
“그 곳은... 페드로란 사람이 미사? 그거 하는 곳으로 정한 곳이었습니다. 훗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미사를 하는 곳으로 정한 것입지요. 음... 나리는 미사라는 것 아십니까?
“험험! 질문하지 말고 계속 말해라!”
“예. 원래 평양성은 나리께서 오시기 전에 유키야마 오오토라라는 자가 먼저 점령했습니다.”
“그건 방금 말한 것이 아닌가? 음... 설마...”
“예. 사실... 평양성에서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것은 아니었습니다요. 몇몇은 남았었고 소인도 그 중 한 명이었습죠. 그런데 유키야마 오오토라라는 자가 소인에게 물어서 미사 볼 곳이라고 말해주었습죠. 그랬더니 불문곡직 불태워 버려서...”
“뭐얏!”
고니시 유키나가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놈은 어디 있느냐?”
“그게... 임금님 떠났다는 말에 군사 이끌고 쫓아갔습죠.”
그 마레 고니시 유키나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후 물었다.
“그러면 네놈. 유인이라 했는가? 여기에 몇몇 놈들이 남았다는데 왜 지금은 없는 것이냐?”
“그 사람들도 떠나려고 했습니다. 왜군이 오면 우리 조선 사람들은 다 죽인다는 소문이 있어서... 떠나기 전에 유키야마 오오토라라는 자가 온 것입지요.”
“그럼 넌 왜 여기 다시 온 것이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소인은 소문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요.”
“소문을 안 믿는다라.... 그래서?”
“솔직히 소인같은 놈은 조선에서 살기 힘듭니다요. 가진 것도 없고... 양반쪼가리고 아니고... 그런데 소인도 잘 살 수 있을 기회가 생기 새세상이 열린 것 아닙니까?”
“호오...”
고니시 유키나가가 눈을 반짝였다. 이런 자들이 있었다. 심지어 조선의 양반들 중에서도 먼저 접근해 자신의 딸을 바치는 자도 있었다. 그러니 특별할 것 없는 자였는데...
“그래? 내 밑에서 있고 싶은 건가?”
“아닙니다요. 소인은 그냥 일개 장사치입니다요. 싸움을 할 줄도 모르고...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요. 다만...”
“다만?”
“이리 높으신 분과 연을 맺으면 그만큼 편하지 않을까 하고... 또 이제 거래를 해야 할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인데 일본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려면 두루 사귀기도 해야 하고...”
“흐음... 그래 알았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런 자 한 놈이 뭘 할 수 있겠는가? 본인 말로는 싸울 줄 모른다는데 설령 싸울 줄 안다고 해도 전쟁통 속에서 나고 자라며 평생 전투만 해온 자신들에게는 무의미할 것이었다. 마음대로 하라 이르고는 할 일을 생각했다. 먼저 할 일은 유키야마 오오토라를 잡는 것이 먼저였다. 이미 한 번 명령을 어겼다. 거기에 어쩌면 성전일 수도 있는 곳을 불태웠다? 용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를 가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보며 웃는 사람이 있었다.
‘후후. 속 좀 썩어라.’
유인. 그 자는 바로 패주길이었다. 정말 간도 크게 왜군이 점령한 평양성으로 온 것이었다. 만약 비선이 알면 난리를 치겠지만...
‘나중에 나에게 속은 것 알고 욕하더라도 상관없어. 이 이름은 크큭!’
하지만 웃음을 참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앞을 물러났다. 이제는 영업을 할 때였다.
* * *
“자아... 사람 친해지는데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요. 요래요래 섞고... 아이고! 잘 섞으시네. 그렇죠. 그렇죠. 잘 하시네. 조선 놈들은 이거 알려줘도 못 하는 놈들 많던데. 역시 대단하십니다요.”
패주길이 왜군들과 친해지겠다며 하는 것은 바로 고스톱이었다. 고스톱 외에도 여러 도박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놈들아. 이게 내 무기다!’
패주길은 대한민국 시절 카지노에 근무하면서 도박으로 인해 망가진 사람들을 여럿 보았었다. 그 사람들 하는 말은 눈 만 감으면 화투장이 보이고 트럼프카드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고... 그러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말 그대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 그런데 만약 왜군들이 도박에 빠져 눈만 감으면 화투에 카드가 보이고, 싸우다 문득 도박 생각이 난다면? 물론 얼마나 효과가...
‘흠흠! 이게 내, 내 무기라고... 흠흠!’
설마 아주 없지는 않을 거라는 패주길의 자기 암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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