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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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길은 막대기를 잡고 휘둘러보았다. 요즘 일과가 그것이었다. 배주길이 유일하게 배운 무기술. 다른 것을 배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부터 배워봐야 얼마나 배우겠는가? 그나마 꾸준히 배운 것을 계속 하는 것이 나았다. 어르신에게 배운 펜싱. 사실 대단한 기술을 배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대의 칼을 흘리며 찌르는 기술 하나만 배웠을 뿐... 어르신은 펜싱은 다른 기술 없다며 그것만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인천카지노에서 근무하며 우연히 본 펜싱경기에서는 그렇지 않았었다.
“뭐... 어르신도 어디서 운이 닿아 잠시 배우셨던 모양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연습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좀 등한시 했었다. 카지노 식구들에게 가르쳐 줬을 때 빼고는 별로 연습을 한 적도 없으니...
“애고... 왜놈들은 왜도들고 싸우는데 난 이게 뭐냐고...”
만화나 애니에서 보면 일본도와 일본의 검술로 서양의 펜싱은 그냥 씹어 먹던 것을 숱하게 봤었다. 물론... 그 만화나 애니가 다 일본 것이라는 구멍이 있지만...
“에이! 찔러! 찔러! 찌르다 보면 뭐라도 쑤시겠지!”
투덜거리며 연습하던 배주길은 순간 몸이 멈춰졌다. 등골이 싸했다. 몰랐었다. 생각도 안 했었다. 하지만 왜인이 왜도를 휘두르는 장면을 상상하며 찌르는 연습을 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어르신이 가르쳐 주신 기술. 이건...
“왜놈들 상대하는 기술이잖아!”
그랬다. 적이 창칼로 공격할 때 어떻게든 그 창칼을 흘리며 그대로 찌르는... 아주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물론 적의 실력이 뛰어나면 어찌 하기 전에 칼 맞고 죽겠지만, 어차피 왜적이 공격해 오고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도망가다 등에 칼 맞고 죽느니 한 번이라도 적에게 타격을 줄 요량으로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펜싱과도 좀다르기는 했다. 펜셍경기를 볼 때 뭔가 위화감이 들었었는데...
“설마... 이거 어르신이 창안한 거?”
가능성은 있었다. 만들고 보니 21세기 지구의 펜싱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펜싱이라고 말했을 수도... 아니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솔직히 21세기에 태어나 자란 한국인 중 펜싱 배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펜싱 배울 기회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가장 대중화 된 검도장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펜싱을 가르쳐 주는 곳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배주길이었다. 중고교 시절 학교에 펜싱부가 있다면 또 모를까... 그런 것이니 성인이 된 조선인이 미래의 한국에 와서 펜싱을 배울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했다.
“하... 이거야 원...”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며 혀를 찰 때였다.
“형님! 정해가 왔습니다.”
“그래?”
배주길은 급히 몸을 돌렸다. 정해는 왜무사였다. 왜국에 밀무역하러 갔을 때 우연히 구한 자였다. 원래 작은 영주에게 소속된 무사로 그 영주는 아케치 마쓰히데에게 충성하던 가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전쟁에 패했고 적을 피해 달아나던 정해는 이번에는 농민들의 공격을 받았다. 전란 중에 농민들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바. 농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어느 간덩이가 부은 농민이 영주에게 덤빌까? 그런 농민들에게 영주도 잃고 홀로 떨어진 낙오자같은 무사는 분풀이 대상으로 최적격이었다. 결국 쫓기고 쫓기다 배주길이 밀무역하는 마을까지 쫓겨왔고 배주길이 몰래 숨겨준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으로 데려오며 저절로 거두게 된 것이고. 정해를 거둔 배주길은 마사미正海라는 이름의 그 무사의 이름을 따로 지어줄까? 했으나... 배주길이 짓는 이름마다 사람들이 한숨을 쉬는 터라 그냥 한자 조선식 독음으로 정해라 한 것이었다.
“뭐라 다른 말은 없고?”
“그거야 가서 직접 물어보시면 되죠.”
“그건 그렇지...”
왜국의 사정은 밀무역하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는 잘 알 수가 없어 정해를 보냈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은 유키야마 오오토라라고 이름을 바꾼 권중현 때문. 배주길은 권중현을 믿고 있었다.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았고, 책이란 것도 성인잡지 아니면 안 보던 인간이었다. 무슨 지식이 있어야 뭔가 하든 말든 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만약! 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권중현이 지식 쌓기와는 담을 쌓은 인간이기는 해도 멍청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평소 듣고 보고 하는 것 자체가 지식을 얻는 것이고. 특히 미래에서 보고 들은 지식이 과거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왜국의 상황을 알아볼 필요로 정해를 보냈던 것이었다. 왜인 출신인 정해라면 뭔가 달라진 것이 있으면 금방 알아볼 것이었다.
“빨리 가자.”
배주길은 먼저 앞장섰다.“
“거꾸로 갔소. 형님. 밴대요. 반대.”
* * *
일단 배주길은 안심했다. 왜국에 딱히 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가장 크게 두드러진 것이라면...
“글세 닌자란 것들이 그런 옷을 입고 뭘 하겠다는 건지...”
정해가 혀를 찼다. 닌자라 함은 무릇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그런데...
“가서 보니 닌자들 밖에 안 보이더라 이겁니다. 닌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옷이 너무 독특해서 말입니다.”
딱 봐도 알 일이었다. 일본 닌자에 심취해 닌자 애니만 골라 보더니...
‘멍청한 놈.’
이라고 속으로 비웃었지만 사실 양심이 살짝 많이 찔리기도 하는 배주길이었다. 자신이 일본으로 떨어졌다면 같은 짓을 했을 것이기에... 권중현이 닌자 애니 볼 때 배주길은 다른 것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외 뭐 다른 것은 없어? 뭔가 달라졌다거나... 뭔가 이상한... 없던 물건이 있다거나.”
“예? 음... 없습니다.”
“없어?”
“예.”
“그런가...”
배주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없다면 다행이었다.
“그럼 가서 쉬고.”
“예.”
그렇게 모두 물러난 후 배주길은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할 준비는 다 끝났나? 미비한 것은 아직 시간이 있을 테니 그때 하도록 하고...”
그리고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어르신. 뭐... 그래요. 교도소에 계시니 뭘 할 수는 없었겠죠. 그래도 그렇지... 그 많은 사람들 다 놔두고 왜 저 한테 조선의 앞날을 맡긴 겁니까?”
다시 생각해도 그저 황당한 상황! 마치 어떤 거대한 손이 어르신을 통해 자신을 계속 흔드는 것 같았다.
“그래 뭐... 흔들려주지. 누가 흔드는 걸까? 운명의 신? 하지만... 사람 잘 못 흔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갑자기 무슨 자신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 전쟁을 피하지 못 하고 휘말리는 것이 내게 큰 기회가 될 것 같단 말이야.”
이젠 오히려 전쟁이 기다려지는 배주길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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