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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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나루토다!”
나루토는 자신의 이름까지 숨길 생각이 없었다.
“나루토?”
슬쩍 고개를 갸웃거린 배주길이 물었다.
“너. 그 이름 어디서 지은 거냐? 네 부모인가? 아니면 네가 지은 건가?”
“내 이름은 스승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 그렇겠지.”
배주길의 눈이 나루토의 왼쪽 팔뚝에 향해 있었다.
일필日必
어디선가 많이 본 문신이었다.
“네 스승은 누구지?”
“흥! 너 따위가 알 아니 입에 담을 분이 아니시다!”
“아니. 난 그 놈 이름을 알 것 같은데?”
“웃긴 소리!”
나루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것을 보며 배주길은 무심하게 말했다.
“권중현. 맞지?”
그러자 나루토가 깔깔거렸다.
“거 보라지. 모르잖나. 권중현? 그건 어디 똥개 이름인가?”
“뭐?”
나루토의 언행으로 볼 때 그리고 어깨의 문신으로 볼 때 확실하다 여겼는데... 원래 일심一心으로 문신하려 했으나 한자를 몰라一이 아닌 日로, 心이 아닌 必로 한 것이었다. 즉 一과 日, 心 과 必을 헷갈린 것. 둘 다 초등생은 물론 유치원생도 아는 쉬운 한자들인데 그걸 틀리다니... 그리고 틀리더라도 보통 한 획이라도 많은 日必을 一로, 必心을 으로 틀려야 하는데 그 반대였다. 나중에 그걸 안 권중현은 일부러 남들 다 一心으로 쓰기 때문에 일부러 日必로 한 것이라고 우겼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주먹 쓰던 놈이 말로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한 것을 보면 본인도 상당히 창피했던 모양. 어쨌든 그 후 日必은 권중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바.
‘모든 것은 권중현을 가리키고 있는데....’
배주길도 조선으로 시공 이동을 했다. 그렇다면 권중현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구덩이로 떨어질 때 배주길은 뭔가 잡았었다. 그때는 나무 뿌리나 줄기를 잡은 것이라고 여겼었다. 아니 지금까지도 그때를 떠올리면 나무뿌리나 줄기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상했던 것은 그게 너무 쉽게 뽑혔던 것. 덕분에 배주길 자신은 조선에 온 것이고. 하지만 만약 그것이 나무뿌리나 줄기가 아니라 그 누군가의 발목이었다면?
‘그야말로 내가 권중현 그 자식 발목을 잡은 것이겠지. 그 놈 제대로 권력자 줄 잡은 것 같던데 말이지. 내 덕에 시공이동을 한 것이니까.’
하지만 나루토는 권중현이란 자를 모른다고 한다. 심지어 똥개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나루토가 거짓말을? 그것도 아니었다. 나루토는 자신의 스승을 아주 극진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깡패찬양영화에서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어쨌든 스승의 이름을 똥개니 뭐니 부를 그런 자는 아니란 것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찔러봐도 밑져야 본전이니...
“설산... 아니 유키야마 오오토라. 그 자와는 어떤 관계지?”
“어, 어떻게!”
나루토의 눈이 커졌다.
‘빙고!’
유키야마 오오토라. 설산대호雪山大虎. 무협지 제목이었다. 또한 그 소설 주인공의 별호였다. 권중현이 특히 재미있게 보던 책이었다. 책이라고는 만화책도 안 사는... 정확히는 자신의 돈으로 안 사고 약한 애들에게 사오게 해서 빼앗는 것이었지만... 그런 인간이 그 책은 자기 돈 들여 사기까지 했다. 특히 설산대호란 자를 얼마나 좋아했느냐하면...
‘그 놈 엉덩이에 설산대호雪山大虎라고 문신을 했지.’
왼쪽에 雪山, 오른쪽에 大虎. 다행히 팔뚝처럼 자신이 스스로 할 수는 없어 전문 문신시술자에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자가 제대로 쓰였다. 그나저나 과연 나루토란 자는 그것을 보았을지...
“후! 그렇군. 그 놈이 이름을 그렇게 바꾼 건가...”
물론 권중현이 설산대호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맞춘 것은 아니었다. 권중현이 하는 게임의 닉네임이 바로 유키야마 오오토라였기 때문이었다. 왜 중국배경에 주인공이 중국인인데 그걸 일본식으로 읽은 건지는 아직까지 모르겠지만... 상관있겠는가? 무협지 속 설산대호는 아주 광명정대하고 정의로운 자였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하지만 권중현이라 놈은 완전 그 반대인 것을. 어쨌든 그런 사실을 알기에 맞출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무슨 소리지?”
“흥! 유키야마 오오토라의 원래 이름은 권중현! 한국 아니 조선인이란 거다.”
“뭐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말이 안 되긴. 너 말이지 그 놈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느끼지 못 했냐? 그 놈 왜어 잘해?”
조선에 와서 5년 동안 배주길은 아무 것도 안 했었다. 아니 못 했었다. 물론 아무 것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본격적으로 이런 사업을 못 했다는 것이었다. 그건 21세기의 대한민국 말과 16세기 조선의 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는 같았지만 그럼에도 또 배워야 했다. 그 시간이 5년이었다. 하물며 배주길 자신보다 머리가 더 떨어지는 권중현이었다. 一心과 日必을 헷갈릴 정도의. 그런 놈이 16세기 왜어를 잘한다? 물론 시공이동으로 훨씬 더 이전으로 떨어져 20~30여년 살았다면 또 모르겠지만...
“크윽!”
나루토가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사실 나루토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조선 출신이든 아니든. 원래 고향이 어디든 그곳 떠나 다른 곳에 뿌리 내리면 그곳이 고향 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배주길이란 자에게는 이상하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네가 배운 무예는 주지수綢肢手라는 조선 무예고.”
“이익!”
나루토의 스승인 유키야마 오오토라도 그 무술을 주짓수라고 불렀다. 살짝 발음이 다르지만 유키야마 오오토라의 왜어 실력과 발음이면 원래와 달라지는 것도 이해 가능한 것.
“권중현은 내 사제였지.”
“뭐?”
“감히 사제의 제자가 사부의 사형에게 덤비다니...”
“자, 잠깐!”
경악한 나루토가 외쳤다.
“무슨 헛소리냐! 누가 봐도 우리 스승님이 너 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그 놈 노안이야.”
배주길은 한마디로 모든 설명을 했다.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해보자고.”
지금까지 무표정한 얼굴이었던 배주길이 씩 웃었다. 하지만 눈도 아니 얼굴 전체가 무표정한 상태에서 입꼬리만 올라간 웃음이었다. 무서운 표정보다 더 소름이 끼치는 그런 얼굴... 나루토는 그만 침을 꿀꺽 삼켰다.
* * *
생각보다 심각했다. 대체 권중현 아니 유키야마 오오토라 그 자는 대체 전생에 뭔 복을 얻어서 가는 곳 아니 가는 시대마다 권력자의 줄을 잡는단 말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병의 무술사범. 그것이 유키야마 오오토라의 현재였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도와 조선 정벌의 준비를 하는 자! 미래의 지식을 가진 자가 최고 권력자가 믿는 심복이라면? 미래를 아는 유키야마 오오토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정복하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믿는 심복이라면?
“권중현이니 걱정 안 한다만...”
만약 미래의 누군가가 임진왜란 전 왜국으로 가 조선 침략을 돕는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연히 이순신 장군 암살일 것이었다. 왜국의 조선 침략을 막은 공신은 이순신 장군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있어 적의 병력 보충과 물자 보급이 끊겼다. 식량과 무기 모두. 식량이야 현지조달은 한다고 해도, 물론 그것도 쉬운 것이 아니지만... 무기 보급은 더 어려웠다. 병력도 마찬가지 그 모든 것을 바다에서 막았기에 조선 관군의 반격도, 의병의 반격도 가능했고 유효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순신 장군을 임진왜란 이전에 암살한다면 조선침략은 성공가능성 거의 100%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순신 장군을 언제 어떻게 암살할 거냐는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지금 이 시점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수소문한다? 어떻게?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 어디 있소? 하면 누가 알 수 있을까? 더욱이 임진왜란 직후의 이순신 장군 직책은 조선수군 전라좌수사였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이 조선수준 전라좌수사가 된 것은 임진왜란 일어나기 직전이고, 그야말로 벼락출세로 오른 것인데. 솔직히... 친구 류성룡의 빽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 그럼 그냥 이름으로 찾아야 했다. 하지만 조선 천지에 이순신이란 이름이 한 둘인가? 당장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에만 이순신이 한 명 더 있었으니...
그래서 걱정하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 사진을 보고 구마적이라고 하는 놈이었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을 동네 총싸움으로 아는 놈이었다. 읍. 면. 리. 청산리라고 하니 어디 시골 동네려니 한 것이었다. 아니 애초 이순신 장군이 배 12척으로 임진왜란 처음부터 끝까지 싸운 줄 아는 그런 놈 따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걱정할 것은 권중현이 그의 아버지에게 익히고 있는 종합격투기. 하지만 그것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건 링 안에서 일 대 일 대결에서나 그 빛을 발하는 무술이었다. 무기 들고 집단전을 벌이는데 상대를 잡고 뒹굴면 죽여 달라고 고사 지내는 것과 다름없는 짓!
문제라면 어차피 권중현 아니 유키야마 오오토라 따위가 아니더라도 왜군은 조선 깊숙하게 들어올 것이고... 분명 유키야마 오오토라 그 놈도 들어올 것인데 그 놈 성격으로 볼 때 어떤 짓을 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요, DVD요, AVI였기 때문이었다.
“아... 나도 연식이 있나? 분명 AVI보다 나중에 나온 더 좋은 것도 많은데 기억이 안 나네...”
하긴 언제 그런 것 보고 야동 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다운받아서 본 것...
“아!”
순간 배주길은 또 다른 사업 아이템이 생각났다.
“야설을 만들어 파는 거야.”
그냥 소설을 만들어 팔아도 될 것을... 야설 외에는 딱히 본 책이 별로 없는 배주길이 한계이기는 했다. 어쨌든 야설을 쓰든 뭘 하든 지금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골치 아픈 일이지.”
어쨌든 이제 할 일은 하나였다. 최대한 빨리 조선을 떠야한 다는 것!
“그래 비선. 너의 원수도 잡았으니... 그 놈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부디... 하늘나라로 가거라...”
그리고 그 시각 다른 방에서는...
“나 안 죽었다고요! 바보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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