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반첩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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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지하라...”
이래서야 일부러 해가지지 않았을 때 온 보람이 없었다. 그래도 모르면 몰라도 알았는데 느긋하게 올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도 횃불이 있어 다행이었다. 막쇠를 비롯 부하들 몇 명 까지 횃불을 들고 있으니 보일 건 다 보였다.
“빨리 가자!”
유키야마 오오토라는 막쇠를 재촉했다. 지금은 막쇠와 유키야마 오오토라, 그리고 유키야마 오오토라의 측근들만 같이하고 있었다. 아마 유키야마 오오토라의 병사들은 지금 밥을 먹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저녁 좀 늦게 먹는 것이 대수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돈이 될 물건들이었으니...
“예.”
막쇠는 두말없이 지하로 유키야마 오오토라 일행을 안내했다. 만약 그들이 금덩이 은덩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없는 평양기생이라도 만들어 끌어들였어야 했는데 먼저 이리 재촉하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별 것은 없군.”
가는 도중 방이 나오면 다 열어보고 뒤졌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남기는 것 없이 다 치웠으니 당연합죠.”
“과연 그런 것 같군.”
이 정도로 치웠다면 숨겨진 장소는 꽉 찼을 터... 유키야마 오오토라는 그것들이 보고 싶어 마음이 더 급해졌다.
‘진정하자. 진정해. 의외로 돈 될 것은 적을 지도 모르니... 그나저나... 제대로 꾸며놨네. 배주길 그 자식 룸살롱 숱하게 드나... 아니다. 인천카지노에 룸살롱이 있었지. 그 놈 주제에 룸살롱은 무슨...’
그냥 콧방귀 한 번 뀌는 유키야마 오오토라였다.
“그런데 말입죠. 배주길... 여기서는 배사장이라고 합죠.”
“하하... 배사장이라...”
“배사장은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지요. 예전 친구 이야기인데..”
“예전 친구?”
순간 혹시? 하는 생각이 드는 유키야마 오오토라.
“예. 이름이 권중현이라고 했던가?”
“허... 그, 그래? 뭐라고 했는데?”
“예. 아주 못 되 먹은 인간말종에다...”
막쇠는 천천히 배주길이 권중현에 대해 한 말을 그대로 읊었다. 처음에는 그냥 인간말종으로 시작해 가면 갈수록 점입가경인 지경.... 거기에 갑자기 웬 생명의 은인이자 먹고 살 수 있게 해 준 주인 딸을 겁간하고 죽인 후 도망간 노비? 그 말을 듣는 유키야마 오오토라의 얼굴이 울그락붉그락 시시각각 아니 초초각각 변해갔다.
“그, 그런가?”
“예. 정말 세상에 그런 망해 처 먹을 놈이 없지요?”
“허... 허... 그, 그래도 그런 말은...”
성격 같아서는 당장 막쇠의 모가지를 칼로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뒤에 부하들이 있었다. 지금 막쇠를 죽이면 그 인류역사상 최악의 인간 권중현이 바로 자신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 아니던가? 유키야마 오오토라는 자신을 왜국 시골 영주의 자손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몰락했지마 그래도 영주의 혈통! 그런데 그가 조선에서 온 노비. 그것도 구명의 은인인 주인의 딸을 겁간하고 죽인 후 도망간 노비라고 알려진다면? 왜국은 전국시대를 거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였다. 그 기간 동안 숱한 배반과 음모가 넘쳤었다. 섬기던 주인을 배반한 일도 많았다. 그런 일이 많았다는 의미는 그런 배반자에 대한 거부가 더 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니 당장 손은 물론 볼살까지 푸들푸들 떨릴 지경이면서도 어찌 할 수 없었다.
“그, 그런데... 여, 여긴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
겨우 이런 호통만 칠 뿐...
“조오기 숨겨진 방이 있습죠. 귀한 것들은 아마 그 방에 숨겨뒀을 겝니다.”
“그럼 빨리 가자!”
얼른 나가고 싶은 유키야마 오오토라였다.
* * *
방 안은 제법 넓었다. 당연했다. 그 방은 숨겨진 방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회의실이었을 뿐...
“여기에 있다고?”
유키야마 오오토라는 눈만 껌뻑였다. 이건 뭔가 있을 방이 아니었다. 그저 정면에 큼직한 족자 하나만 걸려 있을 뿐이었다.
“흥! 누가 그렸는지 참으로도 못 그렸구나.”
그림의 문외한인 유키야마 오오토라가 보기에도 정말 못 그린 그림. 그런 그림을 왜 저기에 걸어놨을까? 그것도 작은 그림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던 유키야마 오오토라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혹시!”
급히 걸어가 족자를 젖히는 유키야마 오오토라. 분명 거기에 뭔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없어?”
뭔가 열리게끔 되어 있는 무엇도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장군님 여기 무슨 글씨가 있습니다요.”
도끼로 이마까가 횃불을 벽에 들이 밀었다. 그러자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權重顯開子息兒
有可兀茁亞裸多
東勿恚談屈塞己
水來己可儭老馬
化弱不二斗怯之
巾勿道無老眞多
地玉雨老羅可羅
“이게 뭔가?”
말은 해도 한자에는 까막눈인 유키야마 오오토라였다. 결국 도끼로 이마까를 불렀다. 도끼로 이마까는 모국어인 왜어는 물론, 조선어도 잘 하고, 한자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다기마라... 아이가 많고... 하... 장군님 이건 그냥 의미없이 늘어놓은...”
“아니 잠깐!”
유키야마 오오토라가 도끼로 이마까의 말을 멈췄다. 지금 도끼로 이마까는 한자를 읽는 방식대로 읽는 중. 하지만...
‘그래. 나 고등학교 때 이런 장난이 있었어.’
유키야마 오오토라가 권중현으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두놀이라는 것이 있었다. 당시 별명이 독사였던 국어 교사가 있었다. 수업 중 이두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한동안 그게 유행했었다. 그냥 어떤 말을 할 때 소리 나는 발음의 한자를 쓰고 읽는... 물론 그건 이두가 아니라는 국어 교사의 핀잔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것이 새삼 기억이 났다.
‘난 끼지 못 했지만...’
이두건 뭐건 한자를 알아야 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초등학생과 한글 받아쓰기 내기를 해도 지는 유키야마 오오토라가 그런 장난에 동참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만약 배주길도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면 같은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컸다. 즉 음만 따라 읽으면 된다는 것. 그리고 21세기 한국에서 온 배주길이라면 한짜 쓰는 방식도 당연히...
“이 순서대로 읽어봐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방식. 그 말에 도끼로 이마까가 그대로 읽었지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도 딱히...”
“그냥 음으로만 읽으란 말이다!”
“아. 예. 음... 권중현이개새기...”
유키야마 오오토라의 말대로 읽은 도끼로 이마까의 표정이 묘해졌다. 음으로만 읽으니 써 있는 글이... 그리고 얼굴색이 변하기는 유키야마 오오토라도 마찬가지였다.
“지옥이라... 좋습죠. 여기서 가산 탕진한 자들은 여기 카지노를 지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모두들 글자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막쇠가 조용히 회의실 구석으로 가더니 구석에 달린 줄에 횃불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뭔가 치칙 거리는 소리가 났다.
“허허. 지옥에서 죽어 지옥으로 가면... 본전이구만요.”
정말 즐겁게 껄껄 웃는 막쇠였다.
- 작가의말
한자로 쓰인 것은 한 번 읽어보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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