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암행어사 출도요!
“다시 한 번 돌리시게!”
이우진의 두 눈을 충혈이 되어 있었다. 벌써 사흘째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뭐 하는 짓인가 했었다. 사람들이 잔뜩 몰려 노름을 하고 있다니... 역모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다행 중 다행이기는 했지만... 노름이라니... 공맹의 도를 실천하는 유학자로서 못 볼 꼴이었다. 그래도 주상의 명이 제대로 알아오라는 것이라 일부러 좀 어울렸는데...
‘한양에 돌아가기 싫다...’
왜? 한양에는 카지노가 없으니까. 하지만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저 돌아가기 직전까지 최대한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왜 그리 모이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원래 첫날 조금만 해보고 돌아간 후 종사관과 포졸들을 보낼 생각이었으나... 돌아간 그날 밤 눈 앞에 웬 화초와 새들이 날아다니는지... 뭔 통으 데굴데굴 구르는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거기에... 자신의 앞에 쌓여진 칩. 머리로 하는 셈과 하늘이 준 운으로 다른 자의 칩을 가져올 때의 그 쾌감이란... 딱 한 번만 다시 가보자며 오밤중에 일어나 다시 찾은 것이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그나저나...
“밑천 다 털렸네...”
남은 것은 이제 몸에 걸친 옷 한 벌 밖에 없는 이우진이었다. 이우진은 문득 옷을 팔 생각까지 했다. 딱 보니... 벌써 옷 팔아먹은 놈들이 보이기는 했다. 여인이라면 좋을 텐데 사내놈이라 못 볼 걸 보았다.
“에잉... 나중에 눈 씻어야지!”
어쨌거나 저 천한 것처럼 옷을 벗을 수도 없고... 또 다른 팔 거라면...
‘마패...’
하지만 나라님이 주신 물건이었다. 이걸 어찌 판단 말인가? 또 누가 산단 말인가? 다행히 거래가 되었다고 해도 들키는 날에는 모가지여 안녕 빠이빠이가 될 것인데... 하지만!
‘이 마패는 팔고 나중에 몰래 만들어 반납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누가 그걸 하나한아 유심히 살피겠는가? 누가 마패를 위조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러니 그냥 별 살핌없이 그냥 받을 것이고... 하지만 눈썰미 좋은 자가 보게 되면... 하지만 조정에서 그리 눈썰미 좋은 자는 없던데... 하지만 딱히 눈썰미 쓸 일이 있을 리 없으니 안 보였을지도... 하지만 눈썰지 좋은 자가 있어봐야 한 두 명일테니.. 하지만... 하지만... 그야말로 이우진의 머리 위에서는 유혹의 천사와 절제의 악마가 치열한.... 응?
“하하하. 혹시 대출이라고 아십니까?”
광명의 빛이었다. 누군가 다가와 구원의 검은 손을 내민 것이었다.
“대출?”
“예. 대출.”
“허나... 나 뭘 믿고?”
“글쎄올시다... 보통은 담보를 잡습니다.”
“담보?”
순간 마패가 생각나는 이우진이었다. 마패를 담보로 잡고 한몫 딴 후 되찾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본디 운이란 돌고 도는 법! 첫날 한껏 땄었다. 둘째 날부터 내리 잃어 지금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운이 다시 돌아왔을 테니...
“예. 담보. 보통은 집이나 땅을 잡죠. 그도저도 없는 자들은 자신들 안 사람이나 딸을 잡기도 하는데...”
순간 이우진은 자신의 아내와 첩, 세 딸이 생각났다.
‘아니지...’
그러나 곧 고개를 젓는 이우진. 이우진도 양심이 있었다. 괜히 암행어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졌다. 첩은 그나마 괜찮지만 아내와 세 딸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외모니...
“하지만 우리 탐락방에서는 그 누군가의 안 사람이나 딸을 담보로 잡지 않습니다.”
“그러면 난 담보가 없는데... 음... 마....”
혹시 마패도 되냐고 물어보려는 이우진.
“허나! 무조건 다 담보를 잡는 것은 아닙니다.”
“패...애... 아... 흠흠. 무조건 다 담보를 잡지 않는다?”
“예. 신용대출이란 것이 있지요.”
“신용대출이라... 그건 뭔가?”
“말 그대로 신용대출. 그냥 그 사람의 인격을 믿고 빌려주는 겁니다.”
“허... 그렇군. 그런 것이... 그런데 날 뭘 믿고?”
“글쎄요...”
그 사람은 손을 들어 사람들을 가리켰다.
“여기 사람들 많지 않습니까?”
“많기는 하구만.”
“이리 많은 사람들을 보고 상대하다보니 반 관상쟁이다 다 되었지요.”
“흠. 사람은 어떠한 곳에서도 도를 얻을 수 있다더니...”
“하하. 도는 무슨... 아무튼 대충 딱 보면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믿지 못 할 사람이 그럭저럭 구분이 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난 믿을 만하다?”
“예.”
“허... 내가 믿을 만하다라...”
이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이었다.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이우진.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은 광명정대하고 신용이 있는 자였다.
“그럼 대출을 받으시겠습니까?”
“글세...”
하지만 뭔가 찝찝한 것이...
“아... 필요없으시군요. 뭐 그럼 소인은 이만...”
“아니 잠깐!”
이우진은 돌아가는 사람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 * *
“아우... 다리 빠지는 줄...”
배주길은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반 관상쟁이?”
장덕팔이 키득거렸다.
“두 번 반 관상쟁이였으면 당나귀를 말이라고 속여 팔겠네.”
“에이... 그건 아니지요. 말아지로 속여 팔며 모를까.”
“말이나 망아지나!”
“아이고 형님. 원래 말이라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입니다.”
“이 사람아 아와 어는 애초 다르지. 하지만 말과 망아지는 아니잖나? 그 말이야 말로 초승달과 보름달이 다른 달이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원래 흥정은 이리 하는 겁니다.”
“흥정은 개뿔. 어수룩한 사람 배 치고 등 쓸어 주는 짓이구먼.”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겁니까?”
“마음에 쏙 드니 이러지.”
배주길과 장덕팔은 서로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건 그렇고 이우진인지 뭔지하는 어사 말일세. 잘 해줄까?”
“뭘 말입니까?”
“알면서.”
“하하. 잘 할 겁니다. 원래 소금 먹은 놈은 물 그릇 든 사람이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지.”
둘은 이제 멀어져 보이지도 않게 된 이우진을 보며 말했다. 이우진은 그저 빚만 진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우지니 조정에 임금님에게 탐락방에 대해 좋게 말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못된 곳에 들어가 거기에 빠져 빚까지 졌다는 말을 어찌 보고하겠는가? 아무리 도박에 빠졌더라도 그 정도 정신머리는 있을 것이니...
떠나가는 이우진에게 배주길은 화투 한통을 주었다. 앞으로 이우진이란 인간은 글공부대신 화투짝을 더 들여다보리라. 그리고 이우진은 한양땅에 뿌리는 비료 한 줌의 시작인 것이었다. 한양에 뿌릴 카지노란 씨앗의 비료.
그렇게 자신도 모른 새 비료가 된 이우진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며 한양으로 한양으로 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보고 싶었는데.암행어사 출도...”
배주길은 서운함에...
“오늘은 회식이요!”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나저나... 어사 나리는 왜 우릴 대기만 시키고 며칠째 부르지 않으시는 게지?”
잊혀진 그 누군가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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