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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킹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악당이 인성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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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공장장
작품등록일 :
2021.03.22 14:02
최근연재일 :
2021.05.22 18:4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7,730
추천수 :
173
글자수 :
112,675

작성
21.04.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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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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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02. 실험실(1)

DUMMY

과거로 돌아왔다. 그것이 기절한 뒤 꿈속에서 고민한 결론이다.

이곳이 과거라는데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어려진 나의 몸. 익숙한 실험실. 무엇보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딱히 선천적인 장애로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 당한 실험으로 목이 망가져 소리를 못 내는 것뿐.

회귀해도 하필 이때로 회귀하다니. 정말 운이 없다. 왜냐하면 이곳은 실험실이고 나는 실험체니까. 실험체가 실험실에서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실험 당하는 일 밖에 없다.

'설마 이 지랄 맞은 인체 실험을 또 겪게 되다니.'

기분이 더럽다. 마음 같아서 벽에 머리라도 박아 죽고 싶지만,

'회귀라는 이 기회를 그렇게 날릴 수는 없지. 어차피 기사단이 언제 구출 오는 지도 알고 있는데.'

나는 눈을 감고 몸을 살펴봤다. 역시 실험체답게 엉망진창이었다. 몸 여기저기에 시퍼런 멍이 잔뜩 들어있고 며칠을 굶었는지 몸에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심각한 건 전신에 불안정하게 넘실대는 마나였다. 누군가 실수로라도 톡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마나 폭주가 일어날 정도로 심각했다.

'왜 아직 안 죽고 살아있는지 신기할 정도야. 이런 아이의 머리를 그렇게 무식하게 후두려 패다니. 미쳤군.'

그 외에도 문제가 많았지만 점검은 여기서 마쳤다. 다음 실험이 언제 있을지 모르니 빨리 몸을 안정시켜야 했다.

나는 명상하듯 자세를 가다듬고 숨을 들이쉬었다. 아직 서클도 형성되지 않은 몸이었기에 천천히 세밀하게 호흡을 나눠 쉬었다. 들숨과 다르게 날숨에 옅은 마나가 섞여 나왔다. 이건 폭주하기 직전의 마나를 조금씩 밖으로 배출해내는 작업이다.

크르릉-

흥분한 맹수를 진정시키듯 차분하게 마나를 어루만진다. 마나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투레질하지만 내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마나를 충분히 배출하여 통제 가능한 상태가 되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몸 안에 퍼져있는 마나를 자극해 심장으로 인도하여 서클을 형성한다.

"쿨럭."

입가에 피가래가 흘러나왔다. 기껏 진정시킨 마나를 자극하여 내상을 입은 것이다. 만약 신체가 멀쩡한 상태로 서클을 만든다면 이쯤이야 쉬운 일이지만 지금 이 몸은 헌 걸레짝 수준이기에 작은 충격도 커다란 내상으로 이어진다.

나는 바짝 긴장하여 마나를 심장으로 인도했다.

마나는 맘에 들지 않는 듯 거칠게 반항했지만 자식의 투정을 받아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인내심있게 기다려주었다.

마침내 마나는 고집을 꺾고 내게 몸을 허락했다. 참으로 앙칼진 녀석이었다. 마나는 심장에 무사히 안착했고 서클을 형성했다.

우우웅-

서클이 형성되자 몸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발했다. 푸른 빛은 마나가 의지에 공명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나는 마나와 함께 신체를 안정시키고 아까 공기 중으로 뱉어낸 마나를 다시 들이마셨다.

'이 거지 같은 상황 속에선 마나 한줌이 절실한데 이걸 버릴 순 없지. 이미 뱉어낸 마나라 서클에 안착시킬 순 없지만 어떻게든 쓸수는 있다.'

나는 들이쉰 마나를 서클에서 순환시키고 목으로 뱉어냈다.

"....아. 아. 크흠! 퉷!"

목에서 내장조각 같은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망가졌던 목이 재생됐다.

"아, 아. 이제야 말이 나오네. 그동안 답답해 죽을 뻔했어."

내가 목을 가다듬고 있을 때 옆에서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아 깜짝이야!"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소녀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옅은 회색이 감도는 백발.

목소리만큼 무기질적인 눈빛.

은은하게 대기를 울리는 갈무리 되지 않은 마나.

이 모든 것이 한 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열살 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처음부터."

"그럼 내가 몰랐을 리가 없는데."

이렇게 마나 냄새를 풀풀 풍기는데 내가 몰랐다고? 그냥 시체인 줄 알고 넘어갔다기에는 이상했다. 내 눈초리가 수상해지자 소녀가 말을 덧붙였다.

"...숨어있었어. 네 상태가 이상해서. 갑자기 폭주할까봐."

"거짓말. 너랑 나 둘이서 한 곳에 갇혀있는데 숨어있다는 게 말이 돼?"

내 눈에 깃든 의심이 진해지는 걸 느꼈는지 그녀의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거짓말 아니야. 이렇게 숨을 참으면 주변에서 잘 못 찾는다고."

동시에 그녀는 '합' 소리를 내며 입을 앙 다물었다. 그러자 은은히 대기를 울리던 마나가 천천히 갈무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미친! 배우지도 않았는데 마나를 갈무리한다고? 이건 천재다. 그것도 재수 없을 정도의 천재. 원래 이런 애가 여기 있었던가?'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은 없었다. 하긴 이게 얼마나 오래된 기억인데. 그리고 실험 당하느라 정신도 없어서 같이 지내던 사람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너. 뭐야?"

소녀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흠. 너 이름이 뭐야?"

"크네히트."

크네히트. 크네히트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그래 크네히트. 혹시 네 머리카락 원래 흰 색이었니?"

"...아니. 원래는 회색이었는데 실험 당하느라 바뀌었어.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 너도 실험 당하느라 머리 흰 색이잖아."

나는 크네히트의 말을 사뿐히 무시했다.

"크네히트가 네 본명이야?"

"본명이라니. 무슨 뜻이야?"

"진짜 이름이냐고."

"...? 그럼 가짜 이름도 있어?"

대화가 묘하게 겉돌았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걸레짝이라 짜증나는데. 이런 사소한 거 하나하나까지 다 설명해줘야 하다니.

"어른이 물어보면 그런가보다 하고 대답이나 할 것이지. 말대꾸는. 쯧."

"네가 무슨 어른이야. 너 나보다 어리잖아. 꼬맹이 주제에."

"...꼬맹이? 하! 참내! 어이가 없어서! 내가 무슨!"

나는 발끈하면서도 차마 반박하지는 못했다. 괜히 회귀 얘기를 꺼내봤자 미친놈 취급만 받고 자괴감이 들게 뻔하니까. 애 앞에서 추하게 '내가 이래봬도...'하고 설명하는 꼬락서니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내가 살면서 이정도로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 참아본 적이 없거늘! 반박조차 할 수 없다니.'

며칠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화자의 주둥이를 찢어버렸을 텐데.

크네히트. 크네히트라. 저런 싸가지에 저 정도 재능이면 내가 모를리가 없는데.

아! 생각났다.

적색 마탑주잖아. 저거.

평소에 이름보다 마탑주란 직위로 자주 불리다보니 잊고 있었다. 설마 우리가 같은 실험실 출신이었다니.

적색 마탑주 하니까 과거의 추억이 떠오른다. 타오르는 불덩이와 그걸 무표정한 얼굴로 집어던지는 마탑주. 그리고 불바다를 갈라 무사히 마탑주의 목을 따내는 나.

"여기서 죽일까?"


작가의말

5분 뒤 3편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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