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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킹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악당이 인성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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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공장장
작품등록일 :
2021.03.22 14:02
최근연재일 :
2021.05.22 18:4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7,715
추천수 :
173
글자수 :
112,675

작성
21.05.08 17:10
조회
210
추천
5
글자
8쪽

20. 심연(1)

DUMMY

"저는 멸망교인이 아닙니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그건 이미 들어 알고 있네. 그 외의 자세한 답을 하게."

마탑주가 냉정히 첨언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다음 말을 입에 올렸다.

"그러나 저는 한때 멸망교인이었습니다."

"....!"

"어허. 그런..."

분위기가 술렁이는 것을 느낀 나는 재빠르게 다음 내용을 이어나갔다. 여기서 어물쩡대면 저 노인내가 갑자기 미쳐서 '역시 멸망교도였군. 당장 죽어라.' 라며 달려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였으면 그랬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자의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진짜, 정말로, 진심으로! 저도 싫은데 멸망교에 들어간 것입니다."

베르베르가 마탑주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진실이다."

"허어. 이런 어린 아이까지 학을 떼다니. 멸망교. 이 얼마나 끔찍한 종교 단체란 말인가."

"하긴 생각해보면 저 아이는 멸망교 주도의 실험의 실험체가 아닌가. 이상한 반응은 아니지."

둘은 자기들끼리 잠시 속삭였다.

"제가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소외된 내가 공손히 물었다. 그들도 민망했는지 헛기침하며 허락했다.

"어험. 좋다."

"저는 사실 멸망교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멸망교를 빠져나가면 제 목숨이 위험하기에, 그리고 애초에 빠져나갈 수 없도록 제약을 제 몸에 걸어놓았습니다. 그렇게 멸망교에 부려먹히던 어느 날 한차례 저는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죽음? 죽음이라. 무슨 의미지?"

"죽을 뻔한 위기라는 의미가 아닐지요."

"하긴 그렇겠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내 말을 제멋대로 해석해주니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이 기세를 타서 얼른 진술을 끝내야 한다.

"저는 제가 죽은 줄 알았지만 눈을 떠보니 제 몸에 있던 제약과 멸망교로부터 벗어나있더군요. 물론 그곳은 글렘의 실험실이었지만."

"흠...모두 진실이군."

"허어. 저 말 그대로라면 멸망교에서 쓸모가 없으니 실험체로 소모해버린 것 같은데. 정말 끔찍하군."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래? 뭐가 더 있느냐?"

"네! 물론입죠! 멸망교에 대해서는 1시간 동안도 떠들 수 있습니다."

나는 1시간이 넘게 멸망교에 대한 갖은 울분과 험담을 토해냈다. 묵힌 체증이 내려가듯 시원한 기분이었다.

"...제 이야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그, 그래...참 고생이 많았겠구나. 아해야."

"듣다보니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나와. 이건 믿을 만 할것 같습니다. 탑주님."

"그래. 마나를 살펴봐도 전부 진실이다."

"그럼..."

"그렇지."

베르베르와 마탑주는 서로를 마주보았다가 동시에 말했다.

""넌 혐의가 없다.""


***


나는 전부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핵심적인 이야기를 쏙 빼고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어차피 핵심은 워낙 허무맹랑해서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왕년에는 잘 나가는 멸망교 13주교였어! 어?! 내가 막 마탑주 목도 따고 용사 목도 따고 다 했다고! 내가 임마 그런 인간이야!'

이랬다가는 미친놈 취급받고 아까 그 약물이나 한사발 했겠지. 젠장. 다 사실인데. 문득 내 신세가 무척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내가 약해빠졌는데. 힘이 곧 법이라는 내 지론이 또 들어맞는 순간이다.


멸망교와의 연관성이 무척이나 미약하다고 판단된 나는 내가 지낼 수 있는 마탑의 숙소로 안내되었다. 그동안 내 숙소는 마탑 병실의 침대였는데, 이제는 진짜 내 방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인은 나를 방으로 안내하고 간단한 설명과 함께 곧 있을 마탑의 입단식 일정을 이야기해줬다. 입단식은 마탑에서 준비한 한 마법 견뎌내는 것으로 일주일 후에 진행된다고 한다. 이 입단식을 통해 신입 마법사의 자질과 성향을 분석하여 스승이 될 마법사가 제자를 선택할 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도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인이 작은 쪽지를 건네주었는데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볼 것이다. 그 괴물은 에고(ego)이다.」

꽤나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심연이라...잘 모르겠군. 저런 심오하고 오묘한 문장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종이를 대충 탁자에 올려두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오늘은 참 거짓 같은 하루였다. 목숨의 위협이나 받다니. 그럼에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마탑에서의 앞으로가 아마 순탄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경험 있는 노련한 마법사니까. 앞으로 꽃길만 걸으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참으로 안일하게도.


***


꿀 같은 일주일이 지나고, 일주일 동안 그냥 놀았다, 어느덧 입단식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입단식이 이루어지기로 한 장소로 갔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날 입단하기로 한 수많은 신입 마법사들이 줄을 이뤄 서있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한참 기다려야겠네."

마법사의 행렬 끝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니, 그곳에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검은색 구체가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입단식인가보다. 구체를 둘러싼 5명의 마법사가 마법을 유지하는 것으로 봐서 간단한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뭘까?

나는 일주일 전에 받은 종이의 문장을 떠올렸다. 아마 그곳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시간이 꽤 흐르고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이곳으로 곧장 들어가면 된다. 들어가면 무장을 전부 해제하고 발동되는 마법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버티기 어려울 땐 기존에 주었던 문장을 떠올려보도록. 그럼 마나의 축복이 있기를."

"마나의 축복이 있기를."

나는 마주 인사하며 구체 안으로 들어섰다.

"뭐지? 이 안이 이렇게 넓었나? 밖에서는 그렇게 안 보였는데."

구체 안에 들어서자 검은색의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이상할 정도로 넓었다. 잠시 기다리자 주변의 마나가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마법인가?"

나는 가르쳐준대로 무장을 해체하고 마법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마법이 내 몸을 감싸안아 유려하게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대체 뭘까?"

나는 궁금증을 안고 구체 안을 걸었다. 앞으로 나아가자 주변의 어둠이 일그러지며 풍경을 만들어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풍경은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여긴..."

이곳은 전쟁터이다. 시체가 쓰레기처럼 널부러져있고 시체 위에는 또 다른 시체가 포개어져 있다.

킁킁

코에서 역한 썩은 내가 맴돌았다. 시체 썩은 내가. 시체를 쪼아먹는 까마귀와 들끓는 구더기. 진한 피비릿내. 나는 이곳에서 불쾌한 익숙함을 느꼈다. 나는 전쟁의 참상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저 앞에 피웅덩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을 둘러싼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멸망교의 사제들이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도 있었다. 멸망교 제13주교. 용사 살해자란 이명으로 유명한, 멸망의 사냥개 파울.

그곳에서 또 다른 내가 용사의 시체를 품에 안고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작가의말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볼 것이다.”

이 문장은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에서 발췌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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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심연(2) 21.05.09 186 5 8쪽
» 20. 심연(1) 21.05.08 211 5 8쪽
19 19. 마탑으로(3) 21.05.07 227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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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구출(2) 21.05.03 236 6 7쪽
14 14. 구출(1) +1 21.05.02 243 7 7쪽
13 13. 위기 후엔 새로운 위기(4) +1 21.05.01 244 7 7쪽
12 12. 위기 후엔 새로운 위기(3) +1 21.04.30 255 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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