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폭동과 점령(1)
글렘은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간신히 인지했는지 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멈춰. 움직이지마.』
글렘이 제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명령 하나하나에 마나가 쓱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마나액을 하도 맞아서 괜찮았다.
"아이고~ 이 안일한 녀석아. 내가 서클이 생겼으면 경계부터 했어야지. 그냥 신나가지고 실험이나 주구장창 해대고 말이야."
나는 글렘에게 걸어가 눈을 맞추며 대화했다.
씨익-
짝!
비언어적인 대화를 말이다.
글렘의 뺨이 달아올랐다. 마나를 담아 때렸으니 아프기는 아플 것이다. 그동안의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짝!
"멍청한 건지. 안일한 건지. 아마 둘 다겠지만."
짝!
"제2조건도 만족 못하는 반푼이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건방지게 날 실험체로 써?"
내 말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글렘의 뺨은 양쪽으로 휙휙 돌아갔다.
"제1조건도 쓰레기 수준이라 마나가 없어서 저항도 못하지? 기구에 고정된 실험체처럼?"
히-죽
나는 사정없이 뺨을 후려쳤다. 한대 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체감됐다.
"하아.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그냥 확! 죽여버리고 싶은데. 마나액이 아까워서 여기서 참는 거야. 알지? 내 마음?"
나는 글렘의 턱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상냥하며 말해주었다. 글렘은 내 자상함에 탄복이라도 한 듯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떨리는 고개를 간신히 끄덕인 글렘의 뺨을 나는 다시 한대 후려쳐주었다.
짝!
"사람이 말하면 대답을 해야지. 예의 없게."
글렘은 억울하다는 듯 눈망울을 크게 떴다.
"왜 그렇게 봐? 아~ 내가 닥치라고 해서 말을 못한다 이거야? 응~? 야, 이거 내가 잘못했네. 다 내 잘못이야. 그치?"
짝!
싸다구의 힘을 버티지 못한 글렘이 바닥에 쓰러졌다.
"애새끼 마법도 저항 못하는 게 무슨 마법사라고. 쯧."
나는 실험 기구에 걸어가 몸을 뉘었다. 그리고 글렘을 빤히 쳐다봤다.
"뭐해? 다시 고정시켜."
"...?"
"왜. 더 맞고 싶어?"
글렘은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언령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글렘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고정이 끝나자 글렘은 분노한 듯 눈을 치뜨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아마 고문 장비를 찾고 있는 듯 했다.
"이봐. 글렘."
"?"
『여기서 있었던 지난 30분 간의 일은 모두 잊어라』
"...."
글렘의 동공이 약이라도 맞은 듯 풀렸다. 이번 언령이 들어간 동시에 걸어두었던 나머지 언령을 해제했다.
"...뭐지? 뭐야. 내가 뭘 하고 있었지?"
글렘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턱에 손을 가져다댔다.
"아악! 뭐야? 뺨이 아파! 끄아악! 이게 대체..."
글렘은 의문을 담은 채 나를 바라봤다. 나의 대답은 뻔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내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
내가 글렘의 뺨을 사정없이 날린 이후로, 글렘은 나만 보면 흠칫! 놀라는 일이 잦았다. 기억은 지웠어도 본능적인 공포가 남아있는 걸까? 이러다가 실험도 늦어질 것 같아서 화풀이는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글렘의 뺨을 볼 때마다 손이 근질거리기는 하지만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괜찮아?"
내가 집중 실험을 받는 이후로, 상대적으로 크네히트의 실험 횟수가 줄어들었다.
"괜찮다니까."
"..."
괜찮다고 해도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만연했다. 내 걱정이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갑자기 찾아온 비교적 덜 고통스런 일상에 불안한 걸지도 모른다. 실험체 생활에 완전히 길들여졌구만.
"정말, 정말 괜찮아?"
"아, 괜찮다고! 그만 좀 물어."
"그래?"
"어."
"그럼 나 그거 가르쳐줘."
"어? 그게 뭔데."
"서클."
아. 그거?
"글렘이 그랬잖아. 서클이 생겼다고. 나도 그거 갖고 싶어. 서클."
이거 봐라?
"...뭐야. 난 또 진짜 내 걱정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그게 알고 싶어서 미안한 척 한 거야?"
내 말에 크네히트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아, 아니야. 진짜. 진짜 걱정했어."
"에휴. 됐다. 인간들이 다 그렇지 뭐. 믿은 내 잘못이야."
"저, 정말 아닌데..."
크네히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걸 보고 당황한 것은 나였다.
"..진짜 아닌데..."
"어..? 너, 설마 울어?"
"...아니야. 안 울어."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이던가? 회귀 전에는 무표정하게 불덩이를 날리던 모습 밖에 본 적 없는데. 회귀 후에는 싸가지 없는 모습 밖에 본 적 없고.
나는 잠깐 고민했다. 여기서 운다고 놀리는 게 좋을까? 아니면 위로해주는 게 좋을까? 흠...나는 잠시 크네히트를 놀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더 없이 추했다.
"야. 왜 울고 그래?"
"나. 안 운다니까. 훌쩍."
"그래. 너 안 울어. 내가 오해했네. 아까 그것도 이것도 다 내가 오해했어."
나는 크네히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정말? 나 믿어?"
"그래. 그래. 다~ 내가 오해한 거야. 미안해."
"미안해?"
"그래.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럼...나 서클 만드는 법 가르쳐줘."
아.
"......"
"안 가르쳐 줄거야?"
크네히트가 붉게 적신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죄책감이 몹시 증폭되었다.
"...가르쳐줄게."
"정말로?"
"어."
내 말이 끝나자 크네히트는 눈가를 소매로 닦고 쭈그려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럼 지금 알려줘."
"...그..으래."
크네히트는 정말 기쁜 듯 코를 먹으며 배시시 웃었다.
설마 이거 다 설계였나?
나는 소름이 돋았다.
***
솔직히 말하면 알려주기 싫다. 일단 귀찮기도 하지만 크네히트한테도 갑자기 서클이 생기면 나한테 집중되있던 글렘의 관심이 크네히트에게로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 내가 맞을 마나액이 분산된다.
"어차피 마나액으로 늘릴 수 있는 마나가 슬슬 상한선에 다다르긴 했지만."
그 상한선을 억지로 늘려버리는 게 또 실험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좀 아까운데?
"뭐해."
크네히트가 제촉했다.
"저기 앉아서 명상이나 하고 있어."
"알았어."
이럴 때는 또 말을 잘 듣네. 오히려 그게 더 얄밉다.
흠...어차피 상관없겠지. 이제와서 마나액 정도로 아까워할 필요도 없고. 또 나중에 글렘이 죽을 때 훔쳐가면 되니까. 좋아. 까짓 거 도와주지.
"야. 명상은 잘하고 있냐?"
"야라고 부르지마. 누나라고 불러."
"배우기 싫으냐?"
"...아니면 크네히트라고 부르던가."
"됐고.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알겠지?"
끄덕
"좋아. 그럼 우선..."
...
..
.
5분 후
"...이게 다야?"
크네히트는 서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서클에 공명하는 푸른 빛 마나가 그 증거이다. 그리고 그 밝기는 눈이 부시도록 밝았다.
"하하. 재수 없어."
빌어먹을 천재 자식.
-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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