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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킹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악당이 인성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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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공장장
작품등록일 :
2021.03.22 14:02
최근연재일 :
2021.05.22 18:4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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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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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글자수 :
112,675

작성
21.05.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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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22. 심연(3)

DUMMY

일단 무릎을 꿇었지만 나는 여전히 머릿속에서 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이곳은 나의 심연이고, 저 자 또한 진짜 1주교가 아니란 사실을 말이다. 약간의 공포감이 가시자 머리가 차가워졌다. 나는 그 기세를 몰아 숨을 나누어 천천히 쉬었다. 심장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버지. 아버지는 알고 계셨겠지요."

"음? 무엇을 말이냐."

"멸망이 강림하면 모두, 아니 제가 죽으리란 것을 말입니다."

"하하. 물론 알고 있었지. 당연한 것 아니더냐. 멸망이 강림하면 세상은 멸망한다. 우리 또한 세상의 일부. 멸망에 의해 가장 먼저 멸망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아버지도 말입니까?"

"물론이지."

그는 헌신적인 종교인처럼 자애를 뒤집어쓰며 미소지었다. 나는 그것이 불쾌했다. 그는 늘 저 가면 뒤에 자신을 숨겼다. 나는 그의 진짜 얼굴을 본 적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두려웠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아버지."

나는 굽힌 무릎을 서서히 피며 일서섰다. 그와 나의 시선이 비슷해지더니, 이윽고 나의 머리가 그보다 높아졌다. 어느새 나의 몸이 회귀 전의 어른의 몸으로 변해버린 탓이다.

"이제와서 제가 당신을 따를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 손에는 단도 한자루가 쥐어져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의 목에 찔러넣었다. 주교는 피하지 않았다.

푸욱

"커헉..! 크흐흐. 하하하하."

1주교는 진심으로 즐거운 듯 눈가를 휘며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천박하게 깔깔거리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는 피가 울컥 뿜어져나오는 목을 움켜쥐고 바닥을 구르면서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네가, 푸흡! 드디어 내게 반항하는구나. 재미있어. 크크큭. 내게 반항해봤자 너는 멸망교의 개새끼에 불과하다. 하하하! 네놈의 끝은 결코 평탄하지 않으리라. 네놈은 멸망의 손에 비참하게 찢겨나갈 것이다! 으하하하!"

나는 발에 마나를 실어 그의 머리를 밟아 터뜨렸다.

"그게 이전의 죽음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어리석은 아버지. 그리고 저는 죽기 싫습니다."

나는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실험체 옷을 입은 비쩍 마르고 상처 투성이의 어린 아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상처와 그의 죽은 눈을 마주하니 기분이 참담해졌다.

"아파."

아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엄마는 어디갔어? 아빠는?"

"......"

"날 여기에 놔두고 어디간 거야? 아파. 너무 아프고 무서워. 내가 왜 이렇게 아파야 해? 나 너무 힘들어. 집에 가고 싶어."

"...많이 아프니?"

나는 겨우 첫마디를 떼었다. 고작 이 한마디마저도 녹슨 수도꼭지를 돌리듯 참 힘겨웠다. 그러나 아이는 내 말을 듣기는 한 건지 자기 할 말만 계속 칭얼거렸다.

"아파. 힘들어. 죽기 싫어. 내가 왜 이런 곳에 갇혀서 실험을 받아야 해? 내가 왜."

나는 아이 앞에 무릎 꿇었다.

"...내 잘못이야. 내가 약해서 내가 멍청해서 다 내가...약하니까 일어난 일이야."

아이는 나를 물끄러미 올려보았다. 아이의 죽어버린 눈이 시리게 내 마음을 꿰뚫었다.

"정말 형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래."

"그럼 날 여기서 꺼내줘."

아이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말 조막만한 손이었다. 이 작은 손에 거멓게 죽은 멍자국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가서 나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을 전부 혼내줘. 그럼 용서해줄게."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아이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구체의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환한 빛과 출구를 지키는 마법사의 인사말이었다.

"마법을 통과한 것을 축하하네. 입단식은 어땠나?"

"...별 거 없었습니다."

나는 터질 듯한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러나 마법사는 수다스러웠다.

"그래? 하긴 자네는 아직 너무 어려서 제대로된 심연이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 아직 9살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래도 수고했네."

마법사가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고 곧장 방으로 돌아갔다.

"흠...까칠하구만.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봐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아니면 저 안에서 뭐 대단한 거라도 봤나보지. 신입 마법사들 입단식을 치르면 다들 저렇잖아."

"하! 9살밖에 안 된 놈이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한 걸 봤다고."

"다음 신입 들어간다. 일이나 하자고."


***


나는 방으로 돌아가 홀린 듯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어 명상에 잠겼다. 명상은 반나절동안 지속됐는데 심마에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나는 명상에서 깨어나 입단식 전에 챙겨두었던 종이를 발견했다. 나는 그 때 받았던 문장 중 마지막 말에 주목했다.

「그 괴물은 에고(ego)이다.」

나는 이 문장을 곱씹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입단식에 의해 들어간 곳은 나의 심연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만난 모든 인물은 내가 제멋대로 그려낸 내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그곳에서 들었던 모든 말들은 내가 자신에게 한 말이고, 또한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은 전부 내 관념에 의해 경험된 일이다.

나는 몸을 이완시키고 에고에 대해 명상했다. 명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 서클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에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에고는 분노와 공포, 복수심으로 가득했다.

"......"

나는 에고를 함부로 건드리려하지 않았다. 단지, 그곳에 팽배한 감정의 파도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에고는 거칠게 감정을 터뜨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활화산 같았다.

나는 여전히 가만히 보기만 했다. 섣불리 위로하거나 같이 분노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봤다. 에고는 나의 태도에 점차 누그러지더니 이윽고 잠잠해졌다. 나는 그제서야 에고를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본 에고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입단식 환영 마법에서 마지막에 본 그 아이이다. 아이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 아이는 실망할 것이다.

"......"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것을 본 아이는 눈을 크게 뜨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져주었다.

스르륵

나는 명상에서 깨어났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나있었다.

꼬르륵

"아. 배고파. 대체 얼마나 굶은 거야."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 식당을 향했다.

"잠도 안 잤는데 벌써 아침이네."

아침밥을 먹고 입단식이 있었던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아직도 입단식을 대기중인 신입 마법사들이 몇몇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문득 궁금해졌다.

"저 안에서 내가 무슨 환영을 봤는지 심사하는 마법사들도 다 봤으려나?"

그럼 곤란한데.

나는 근처의 마법사를 잡고 물어봤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아무리 신입이라도 남의 심연을 맘대로 들여다볼 자격은 마탑에도 없으니까. 애초에 환영 마법이라는 게 시전자가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줄 수도 있지만, 이번 마법은 그렇지 않지. 스스로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 내용을 알아낼 방법도 없어."

하긴. 그렇긴 하겠군.

"그럼 왜 이런 입단식을 하는 건가요?"

"그건 입단식이 끝나면 마탑주님께서 전부 설명해주실거다. 오. 곧 있으면 끝나겠군.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그러나 나는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했다. 입단식을 치르던 신입 마법사 중 한 명이 혼란스런 분노에 휩싸여 마나를 주위에 흩뿌리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저 또한 매년 두세번씩은 발생하는 일이라고 한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입단식은 마무리 됐고, 입단식을 무사히 치뤄낸 마법사들은 마탑주의 연설을 듣기 위해 강당에 모였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면 으레 웅성거리고 시끄러울만 하건만 마법사들이라 그런지 강당 전체가 고요했다.

그래서인지 마탑주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강당에 울렸다.

뚜벅뚜벅

「아아- 들리는가. 음. 잘 들리는군.」

마탑주는 위엄이 넘치는 얼굴로 연설을 시작했다.

「나 마탑주는 자네들에게 실망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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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옴 학파(2) 21.05.12 143 2 8쪽
23 23. 옴 학파(1) 21.05.11 158 5 8쪽
» 22. 심연(3) 21.05.10 169 5 9쪽
21 21. 심연(2) 21.05.09 187 5 8쪽
20 20. 심연(1) 21.05.08 211 5 8쪽
19 19. 마탑으로(3) 21.05.07 227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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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마탑으로(1) 21.05.05 236 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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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위기 후엔 새로운 위기(4) +1 21.05.01 244 7 7쪽
12 12. 위기 후엔 새로운 위기(3) +1 21.04.30 255 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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