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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킹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악당이 인성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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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공장장
작품등록일 :
2021.03.22 14:02
최근연재일 :
2021.05.22 18:4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7,722
추천수 :
173
글자수 :
112,675

작성
21.05.0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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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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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15. 구출(2)

DUMMY

"기억 안나요."

"그게 무슨. 얘야. 한번 잘 생각해보렴."

"기억 안나요."

"그러지 말고 천천히 자세히 다시 생각해보면..."

"음...기억 안나요."

"...하아. 이럴 수가."

그레이즈는 눈에 띄게 허탈해했다. 그 모습이 마치 비에 젖은 강아지 같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였지만 내버려두었다.

그레이즈는 사제를 불러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것이...극심한 충격으로 인한 기억 상실 같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요?"

"글쎄요. 저 아이가 누워있을때 몸을 살펴봤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몸 상태였습니다. 몸의 내부가 완전히 엉망진창이죠. 살아있는게 용할 정도입니다. 아마 유일한 성공 실험체라고 하니...그만큼 모진 실험을 당한 게 아닐까 하는데."

그레이즈는 손을 저으며 사제의 입을 막았다. 굳이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기억을 잃어버릴 정도의 충격이라니. 정말 끔찍한 실험이었겠어. 젠장! 내가 여기 조금만 더 빨리 도달했더라면. 하아."

자책은 아무리 빨리도 늦은 법이다. 그레이즈 또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아직도 파울을 심문하는 단원을 물렸다.

"그래. 몸도 성치 않을 텐데,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미안해. 편히 쉬고 다음에 뭔가 떠오르는 게 있다면 우리에게 알려주겠니?"

"아...네. 죄송합니다..."

"아니야.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지."

그레이즈는 연민 어린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편히 쉬어."

그레이즈는 방을 나섰고, 나는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태양신의 가호를 받은 듯 찬란한 금발. 그에 어울리는 하얀 피부와 푸른 벽안.

굳은살이 박힌 손과 탄탄한 몸. 총기와 의지로 가득한 눈동자.

신의 기사라는 것을 증명하는 고결한 연민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굳센 결단력.

내 기억 그대로다.

태양의 용사. 그레이즈 그레이엄. 멸망교와의 전쟁에서 항상 선봉에 섰던,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던 여인. 나랑 여기서 만났을 줄은 몰랐는데.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벌써 내가 죽였던 거물만 2명을 만나다니.

저 인간이랑 싸우느라 진짜 고생 많았는데. 나도 셀 수 없이 죽을 뻔하고. 우연이었다 해도 결국 내가 이겼지만.

나는 헛기침을 하며 과거의 상념을 털어냈다. 어차피 모두 과거의 일 이제와서 신경써야 이득될 것도 없다. 지루한 과거 이야기는 이쯤하고 나는 앞으로를 생각했다.

본래였다면 나는 여기서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요양 보내지고 귀족에게 팔려간다. 그러나 마법적 재능이 탁월한 크네히트는 적색 마탑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나도 크네히트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마탑이라...재밌긴 하겠네. 흠."

그러나 그것이 확정된 미래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본래 성공하지 못했을 드래곤 프로젝트의 유일한 성공작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료도 남아있지 않은 현재 나라는 존재는 꽤나 곤란한 존재이다. 과정이 없는 결과값이라니! 수학 시험이었다면 오답처리 됐을 것이다.

"그래도 설마...해부하지는 않겠지. 전생의 크네히트도 어떻게든 살아남았는데."

결국 나한테 죽었지만.

"나 불렀어?"

"아! 깜짝이야!"

크네히트가 불쑥 나타났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인지하지 못할 만큼 생각이 깊었거나 몸상태가 나쁜가 보다.

"...?"

"안 불렀어. 저리가."

"파울. 너 건방져. 누나한테 자꾸 기어올라."

"하. 참내. 그 누나 타령 좀 그만할 수 없냐? 그보다...애들은 좀 어때?"

"애들?"

"그래. 그때 로프 뒤집어 쓴 자식한테 목이 잡혔던 애들말이야."

크네히트의 안색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죽었어."

"8명 전부?"

"...응."

"하아. 젠장. 개자식."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감싸쥐었다. 진짜 다 죽었단 말이지.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 그래도 아이들은 기사님들이 다 묻어주셨어. 다 같이 모여 기도도 했고. 그러니까...그러니까 아마 좋은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크네히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레 잡아, 좀 더 마음 편히 울도록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훌쩍 거리며 울었다.

나는 새삼스레 그들에 대한 연민이 들었으나, 과연 내게 그들을 연민할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실험실은 멸망교의 후원으로 운영되었으며 나는 한때 멸망교의 13명의 수장 중 하나였다.

'젠장......'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일부러 무고한 시민을 잡아 죽이지는 않았지만 결국 나의 선택의 결과로 그들은 멸망했다. 나는 인류의 수호자를 죽이고 제국을 무너뜨렸으며 마침내 멸망을 강림시킨 주역들 중 하나다.

"참...인생 거지 같네. 그치?"

내 물음에 크네히트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의 마음 속 피어난 자기혐오는 그 꽃망울을 활짝 만개했다.

이게 다 내 업이지. 받아들이자. 어쩔 수 없잖아. 이제 와서.


***


기사단은 글렘의 실험실을 조사할 인원들을 남겨두고, 아이들과 함께 근방의 수도원으로 향했다. 이미 통신구를 통해 대략적인 보고는 올렸고, 자세한 보고서는 나중에 작성하면 된다.

일단은 수도원에서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의 요양에 신경쓰고, 특히 파울의 기억상싱을 치료해야 했다. 그 외에도 마탑에서 내려올 인원을 기다리기도 해야 했다. 글렘은 애초에 마탑 소속의 범죄자이기에, 그에게서 파생된 범죄와 피해에 대한 복구 등의 책임 또한 마탑에서 부담해야 한다.

"혹시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았니?"

"아니요."

"오늘은?"

"전혀요."

"지금도? 한번 잘 생각해봐."

"잘 모르겠네요. 기억이 날 듯 하면서 나지 않는데. 하아 저도 참 답답해네요."

"그래. 알았어. 그럼 쉬렴."

그런 평화로운 와중에 매일 한번씩 나를 찾아오는 저 여자의 집념도 참 대단하다. 할 일이 없나?

"그레이즈 단장님! 지금 작성해야 하는 보고서가 몇 갠데 자꾸 이렇게 돌아다니시는 거예욧!"

"아. 그, 그게..."

"어서 빨리 가요!"

"아아. 안 돼-!"

부하 여기사에게 잡혀 끌려가는 것을 보면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은데. 참 속 편하게도 사는군. 누구는 몸이 엉망이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그 덕에 하루를 의무실에서 보낸다. 침대가 푹신해서 불만은 없지만.

다만, 불만인 것은 내 몸이 당분간은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약한 상태로 지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조금이라도 강해져야 하는데.

이는 파울의 고질적인 버릇이다. 어린 시절을 약자로서 철저히 짓밟힌 경험이 있는 그는 약함을 견디지 못한다. 약자는 언제나 강자에게 병탄당하는 존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에.


작가의말

오늘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제 마음 아시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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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 심연(1) 21.05.08 211 5 8쪽
19 19. 마탑으로(3) 21.05.07 227 5 8쪽
18 18. 마탑으로(2) +2 21.05.06 236 5 7쪽
17 17. 마탑으로(1) 21.05.05 236 6 7쪽
16 16. 구출(3) 21.05.04 222 8 7쪽
» 15. 구출(2) 21.05.03 237 6 7쪽
14 14. 구출(1) +1 21.05.02 243 7 7쪽
13 13. 위기 후엔 새로운 위기(4) +1 21.05.01 244 7 7쪽
12 12. 위기 후엔 새로운 위기(3) +1 21.04.30 255 6 7쪽
11 11. 위기 후엔 새로운 위기(2) +1 21.04.29 267 6 7쪽
10 10. 위기 후엔 새로운 위기(1) +1 21.04.28 278 8 8쪽
9 09. 폭동과 점령(4) +1 21.04.28 282 7 8쪽
8 08. 폭동과 점령(3) +1 21.04.27 288 5 8쪽
7 07. 폭동과 점령(2) +2 21.04.26 335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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