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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킹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악당이 인성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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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공장장
작품등록일 :
2021.03.22 14:02
최근연재일 :
2021.05.22 18:4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7,717
추천수 :
173
글자수 :
112,675

작성
21.05.09 17:10
조회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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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8쪽

21. 심연(2)

DUMMY

나는 그에게, 다시 말해 회귀 전의 나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사제들은 더 크게 기도문을 외웠고 파울은 기도문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용사를 안아든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저벅저벅

그의 발에 덕지덕지 묻은 피가 바닥에 발자국은 남겼다. 그는 내 앞까지 당도하자 품 안의 용사를 바닥에 놓아버렸다. 용사의 시체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 둘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의 얼굴은 꽤나 늙어 주름져있었다. 젊어서부터 고생한 탓이다. 주름에는 그 사람의 세월의 굴곡이 새겨진다는데 그의 얼굴에서는 악의와 투쟁심 외에는 달리 새겨진 세월이 없어보였다.

"이게 내 얼굴이라니. 참으로 고약해."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정말이지 유약해 빠진 애새끼의 면상이 아닌가."

"이 얼굴이 본래 나의 얼굴이다. 유약하게 생긴 미소년의 얼굴. 이 얼굴 때문에 아가사 드래건에게 팔려가 그녀의 노예가 되지 않았던가."

"그래.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당장 그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싶어져. 그렇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나는 지금 새 삶을 살고 있어. 나에게는 힘과 지식이 있다. 굳이 전처럼 고되고 과격한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그러자 파울은 역겨운 악취라도 맡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 애새끼의 몸으로 회귀하더니 정신머리도 회귀해버렸군. 여기가 어디로 보이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고약한 악취가 코에 진동했다.

"그래. 네놈이 벌인 전쟁이고 참극이다. 그리고 이 아래에는 네놈이 직접 죽인 용사 그레이엄 그레이즈가 있지. 그녀가 사람들에게 뭐라고 불렸는지는 기억하겠지?"

그녀는 인류의 희망이라고 불렸다. 나는 과거 내 손으로 인류의 희망을 죽여버렸다. 그게 내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힘이 없었고 하루하루 목숨의 위협을 겪으며 살아왔어.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들을 죽여야 했다."

파울이 나를 비웃으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아니. 병신 같은 변명하지마.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은 없어. 모든 것은 선택이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너는 선택했고 여기 이렇게 결과가 나왔지."

"......"

"과거를 부정하지마. 네가 아무리 잘난 회귀자라 할지라도 과거는 영원히 남아 너를 구성할 테니까. 새로운 삶을 산다? 헛소리! 너도 잘 알잖아? 왜냐면 너는 나니까."

이 말을 남기고 파울과 전쟁터는 사라졌다. 나는 다시금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야만 이 거지 같은 시험이 끝날 테니까.

"...이게 내 심연인가."

저번에 받았던 종이의 문장이 생각났다. 내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 확실히 그 말 그대로군.

더 나아가자 한 여인이 보였다. 우아한 몸가짐과 화사하게 빛나는 미모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주변은 어느새 화려한 귀족의 침실로 바뀌었다. 그녀는 침대에 고혹스러운 자태로 누워있었다.

아. 그렇군. 나의 심연이라면. 저 여인은...

"제가 보고 싶었나요? 파울."

여인이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목소리에도 권태가 묻어나오며 듣는 것만으로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나의 뇌리엔 경종이 울렸다.

"아. 그래. 미치도록 보고 싶었지."

"역시 당신도 저를 잊지 못했군요. 후후. 하긴 당신은 제게 최고의 쾌락을 제공했는데, 그에 비해 저는 당신께 변변한 대가를 제공해주지 못했었죠. 다 소녀의 불찰이에요."

그녀는 기품있게 치마를 들어올리며 인사했다. 그 모습이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 했다.

"그래.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아가사 드래건. 너 정도되는 마법사가 방금 각성한 애송이한테 죽임을 당하다니. 아무리 방심했더라도 말이 안 돼. 일부로 죽었구나?"

아가사는 입을 가리며 히죽 웃었다.

"아아. 그때는 참 얼마나 황홀하던지. 쿡쿡쿡."

"...역겨운 여자."

"후후. 당신이 저와 그렇게 다른가요? 당신도 기뻐했잖아요. 제 목을 조르면서 미칠 듯이 흥분하던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이렇게 선명한데."

그녀는 마치 뱀처럼 순식간에 다가와 내 몸을 휘어감았다. 빠져나가야 하건만 독니에 물린 듯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하아. 그때의 당신은 정말 사랑스러웠는데. 지금은 영 별로네요. 이렇게 온순한 당신은 매력 없어요. 예전처럼 거칠게 굴어봐요. 제가 황홀함에 젖어들 수 있도록."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자신의 목에 가져다댔다. 그녀의 새하얗고 부드러운 목의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그게 그렇게 소원이라면 못 해줄 것도 없지."

나는 아가사의 목을 졸랐다.

"죽어. 죽어! 죽어!!"

그녀가 숨이 막혀 얼굴을 일그러뜨릴수록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때 갑자기 아가사의 얼굴이 크네히트로 바뀌었다.

"허어억...그, 그만. 그만...부탁이야. 파울."

나는 깜짝 놀라 뒤로 풀썩 넘어졌다.

"! 이게 대체 무슨..."

나는 다시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크네히트가 아니었다. 그녀는 용사 그레이즈 그레이엄이었다. 아니. 그녀는 그레이즈임과 동시에 크네히트였고, 어쩌면 아가사일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여인의 수많은 얼굴의 집약일 수도 있었다.

갑작스레 어떤 공포감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그 여인을 밀치고 앞으로 달렸다.

"허억..허억..제길."

나는 숨을 몰아쉬며 욕지거리를 반복했다. 이 무슨 악몽이란 말인가! 내가 대체 왜 이런 시험을...!

"문장. 문장을 떠올려. 문장을...떠올려..."

이곳은 괴물의 심연이다. 이곳은 괴물의 심연이다. 이곳은...나의 심연이다.

나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을 젖혀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나아감에 따라 주변 사물도 빠르게 바뀌었다. 여기는 어디서 많이 본 실험실이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지냈던 익숙한 공간에 미약하게나마 안심했다. 실험기구 앞에는 한 남자가 뒤돌아선 채로 서 있었다.

"마지막은 글렘 너인가. 피날래가 시시하군. 어린 시절 트라우마라니. 너무 뻔하잖아."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뒤돌아봤다.

"글렘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13주교. 하여간 자네는 너무 성급해서 탈이야. 그렇게 내가 자중하라고 가르쳤거늘. 그 불 같은 성정이 도저히 나아지질 않으니."

"...1주교님?"

"그래. 나일세. 글렘이 아니라 실망했나? 그럼 도리어 내가 실망이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다는 말로 들리니 말일세."

"이게 대체 무슨..."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던 탓일까? 나는 당황하여 얼이 빠졌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참인가. 내가 자네를 그렇게 가르쳤던가?"

나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아닙니다."

그러자 1주교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인자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지. 착하구나. 파울."

"......"

나는 그저 고개를 더욱 깊게 숙였다. 1주교는 그런 내 머리를 사르륵 매만져주었다.

"자네는 늘 어린아이 같았지. 순수하고 인내심이 부족해. 불장난을 저지르다 집을 다 태워먹어버리는 어린애처럼. 그래서 나 같은 어른이 자네를 인도해야 하는 거라네. 이해하겠는가?"

"예. 1주교님."

"허허. 내가 단 둘이 있을 때는 어떻게 부르라고 일렀느냐. 파울."

"...예. 아버지."

"그래. 옳지. 착하구나."

나는 주인 앞의 개처럼 배를 내보이며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나의 진정한 트라우마이다.

"너는 정말 충직한 나의 사냥개야."

그 모습을 보며 1주교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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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심연(2) 21.05.09 187 5 8쪽
20 20. 심연(1) 21.05.08 211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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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구출(1) +1 21.05.02 243 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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