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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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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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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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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4. 황금의 괴도-괴도를 향한 반격(3)

DUMMY

두 제미니가 휘두르는 공격은 한 번, 한 번이 괴도에게 위협적이었다. 찢어진 망토와 대부분 부서진 마술 도구로 인해 이들에게 저항할 수 없는 수단은 없었다. 더군다나 분신술을 사용하려 해도 아직 두통의 여파가 남았기에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새삼 괴도는 천사의 사슬이 이렇게까지 무섭다는 사실을 자각하고야 말았다. 장미를 관통하여 목에 스친 사슬은 단순한 상처였기에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지만, 지금에야 느껴지는 사슬의 위협적인 모습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상처의 욱신거림이 분신술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에 와서는 사슬에 의한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묘하게 남은 두통은 결국 이 둘에게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말해주었다.


괴도는 마술지팡이를 꺼내 전사가 휘두르는 검을 막았다. 여타 지팡이들과 달리 유일하게 부서지지 않은 도구였다.


“막을 줄도 아네? 도망만 치는 줄 알았는데.”

“공격도 나름 쓸만합니다.”

이내 마술지팡이에서 날이 솟아올랐다. 괴도는 전사가 당황한 틈에 마술지팡이의 날을 휘둘렀지만, 천사가 휘두른 사슬에 막히고 말았다.


“공격을 잘했다면 우릴 습격하고 도망치지는 않았겠지.”

이내 천사는 사슬을 괴도에게 찌르듯 내질렀다. 괴도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손가락을 튕겼고, 사슬이 그를 꿰뚫는 대신 수많은 꽃가루가 흩날렸다.


“도망쳤나?”

“아니, 저쪽이야.”

전사가 가리킨 방향에는 옆구리를 움켜쥔 괴도가 있었다. 그는 몸을 떨며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맞긴 맞았나 보네!”

두 명의 제미니는 즉시 괴도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존재를 곁눈질하던 괴도는 다른 방향에서 현 가문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걸 확인하자 어금니를 깨물었다.


‘하기야, 현 가문을 건드렸는데 안 움직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어딘가 분명히 존재할 틈을 살펴보았다. 살기 어린 시선과 함께 달려오는 제미니, 점차 빠르게 다가오는 현 가문의 사람들 때문에 숨이 막혀왔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빈틈없네.”

이어 희망이라는 끈을 던져버렸다. 평소라면 분명 빠져나갈 수 있었겠지만, 여러 악재가 겹친 탓에 저들의 틈을 뚫고 탈출하는 건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무기를 버려라, 괴도! 더 이상은 도망칠 수 없다!”

현 가문의 사람이 외쳤고, 괴도는 썩은 미소와 함께 보란 듯이 마술지팡이를 하늘로 던져버렸다.


제미니, 현 가문의 사람들, 그리고 괴도를 카메라에 담은 사람들 등 주변 모두가 괴도가 던진 마술지팡이에 시선을 빼앗겼다. 모두가 그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내 고개를 내린 순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


“틈이 없다면 만들면 돼.”

괴도는 손가락 사이사이 수많은 카드를 전개하고 있었다. 곧, 그것은 한 장씩 주변 모두를 향해 날아갔다.


수십 장을 월등히 넘어선 그것은 수백 장의 카드였다. 잠깐의 틈이었지만 괴도는 그 틈을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퍼부어댔다.


제미니와 현 가문의 사람들은 시민들에게 향하는 카드를 튕겨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 명도 안 되는 그들이 수백 장의 카드를 모두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고, 그렇게 생긴 틈으로 괴도는 사악한 미소와 함께 몸을 숨겼다.


도주는 성공적이었지만, 여전히 두통은 남아 있었다. 묘하게 더 심해지는 느낌 탓일까, 괴도는 두통이 말하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높은 빌딩 위, 그곳에서 뮤즈의 천을 벗어 던진 아미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괴도가 그곳에 다다랐을 때도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단지 두통의 진원지를 찾은 괴도만이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선배님, 제가 비록 노래는 못 하지만, 멈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래가 멈춰도, 내 연주는 끝나지 않아.”

아미에게 기타 줄을 튕기는 또 다른 아미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아미와 숄더 키보드를 연주하는 아미가 다가왔고, 그럴수록 괴도의 두통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선배는 절 왜 쫓으시죠?”

“당연한 거 아냐?”

악기를 연주하는 세 명의 아미의 손이 멈췄다. 이내 마이크를 잡은 아미를 제외한 모두가 마치 없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네가 가져간 스크롤, 당장 내놔.”

“스크롤이라면 이걸 말하는 건가요?”

점차 완화되는 두통에 괴도는 제로 메모리 스크롤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 위태롭게 흔들었다.


“당장 내놔! 돌려 달라고!”

“잠깐!”

괴도는 능숙하게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움직였다. 잠깐이었지만 현란한 움직임에 역정을 내던 아미도 입을 다물었다.


“이게 그렇게 소중한 건가요?”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아미는 진심으로 정색하며 마이크레센도를 꺼냈고, 연이은 상처에 지친 괴도는 조심스럽게 양손을 올렸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 스크롤의 가치를 모르는 네게 할 이야기는 없어. 당장 돌려주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할 거야.”

“만약 돌려준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시죠?”

“적어도 걸어서 감옥에 갈 수는 있을 거야.”

아미는 살벌한 눈으로 괴도를 노려보았다. 잠깐이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친 괴도는 마치 그녀의 눈동자 속 불길에 온몸이 타는 듯한 살기를 느꼈다.


“그럼 이 물건은 선배에게 소중한 물건인가요?”

“엄청 소중하니까 당장 돌려달라고. 내 말 못 들었어?”

“처음이네요. 아미 선배가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괴도는 이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반 가면을 벗으며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아미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야?”

“제가 왜 괴도인지 아세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춤을 추고 싶다며?”

아미는 마이크레센도를 더욱 세게 쥐었다.


“세상은 그야말로 반짝거렸죠. 선배는 알고 계시죠?”

“잘 모르겠는데?”

“아쉽네요.”

괴도는 한숨을 쉬었다.


“쓸데없는 수작은 부리지 마.”

“그럴 생각이에요. 이미 선배의 분신이 제 목을 노린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요.”

괴도가 뒤를 곁눈질하자 그곳에는 베이스타카토를 괴도의 목에 겨눈 아미가 있었다.


“제가 가장 훔치고 싶었던 건 세상이었어요.”

“그게 가능해?”

“불가능한 걸 아니까 괴도가 되었겠죠.”

“···무슨 소리야? 세상을 훔쳤다고 해도 네가 괴도가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텐데?”

“만약 세상을 훔쳤더라면, 전 괴도가 아닌 지배자가 되었겠죠.”

괴도는 미소로 반박했다. 아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세상을 훔치지 못한 저는 그때 생각했죠. 세상의 반짝이는 물건을 훔쳐보자고.”

“반짝이는 물건?”

아미는 더더욱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스크롤은 테두리 말고는 반짝이지 않아. 네가 원하는 반짝이는 물건은 아닐 것 같은데?”

“이 물건을 가진 선배는 반짝이고 있었어요.”

그 순간, 아미는 어렴풋이 괴도가 말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미소를 훔쳐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어제였죠.”

“너··· 제정신이야?”

“그 검은 모자와의 시간은 즐거우셨나요?”

괴도는 입꼬리를 올렸고, 아미의 분신은 입을 꾹 다문 채 베이스타카토를 휘둘렀다.


“선배의 반짝이는 미소는 그 어떤 보석보다도 반짝거렸어요.”

괴도는 제로 메모리 스크롤으로 아미의 공격을 막았다. 한순간 당황한 아미의 분신은 사라져버렸다.


“가능하면 제가 그 미소를 훔쳐보고 싶었거든요.”

이어 괴도는 손짓으로 스크롤을 카드로 바꿔버렸다.


“미친 녀석···”

이성을 잃은 아미는 즉시 괴도에게 달려들었다. 무엇보다도 시영의 스크롤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더 이상은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선배도 미쳤다는 거 아시죠?”

괴도는 몸을 빼며 카드를 던졌다. 카드는 아미의 어깨를 스치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너, 그 카드.”

아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그 카드 말이야.”

점점 열이 차올랐지만, 양식당에서 봤던 궤도가 틀어진 카드가 떠올라버렸다.


“종희한테 날아가는 카드, 네가 그런 거야?”

“종희가 맞았나요?”

“아니, 궤도가 틀어졌어. 설마 네가 그런 건 아니겠지?”

“제가 그랬어요.”

괴도의 대답에 아미는 눈을 크게 떴다.


“어째서···”

“왜라뇨? 당연히 종희는 제 친구니까요.”

“친구?”

“반짝이는 물건의 가치에 비할 유일한 친구죠.”

의문은 풀렸지만, 이해는 되지 않았다. 괴도의 진심을 파악할 수 없어서일까, 도저히 그대로 믿기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그 검은 모자가 성격이 좋아서 다행이었지, 누가 선배처럼 하면 좋아할 것 같아요? 미쳤다고 생각할 거예요.”

“시, 시끄러워!”

아미는 해방기를 꺼내 뮤즈 메모리 스크롤을 집어넣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더 나아가 이해되지 않는 괴도, 그리고 그의 도발로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해방!”

그렇게 해방기에서 하늘하늘한 무대 의상이 해방되어 그녀의 몸을 감쌌고, 이내 해방기의 슬롯을 누르자 아미는 뮤즈의 힘을 해방했다.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추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는 넌 범죄자인데, 부끄럽지도 않아?”

“부끄럽지 않아요. 오히려 세상이란 무대에서 논다고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괴도가 손가락을 튕기자 뮤즈의 뒤에서 또 다른 괴도가 나타났다. 새로 나타난 괴도가 마술지팡이를 휘두르자, 뮤즈는 즉시 마이크레센도를 휘두르는 것으로 응수했다.


원래 있던 괴도가 카드를 세 장 꺼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뮤즈가 기타를 휘둘렀다. 당황한 괴도는 팔로 기타를 막아냈고, 기타가 부서지며 충격이 그대로 전해졌다.


“네가 쓰는 능력은 내가 더 잘 알아.”

“그렇습니까?”

괴도가 입꼬리를 올리자 다른 하나의 괴도가 나타났고, 그는 대신 카드를 세 장 던져 뮤즈의 분신을 소멸시켰다.


‘벌써 저렇게까지···’

뮤즈는 세 사람이 된 괴도를 보며 긴장을 삼켰다. 이렇게 되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범위였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강해지는 건 예상 밖이었다.


괴도가 This Illusion을 들으면 두통을 느끼지만, 점점 강해진다. 뮤즈는 그걸 알면서도 실행했고,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같은 능력이라면 훨씬 능숙한 건 자신이었기에 절대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확신은 예상보다 강해진 괴도의 모습으로 조금 꺾이고 있었다. 괴도 이상으로 상처가 누적된 탓일까, 능력의 숙련도는 훨씬 능숙했음에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한 수 배워보겠습니다, 선배님!”

세 명의 괴도는 각자 다른 카드를 들고 뮤즈에게 달려들었다. 서로 다른 행동에 뮤즈의 눈은 괴도들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바빴다. 공격을 막으려 마이크레센도를 들었지만, 어느 순간 사라진 괴도의 분신들이 그녀의 뒤에서 나타나 각각 무릎과 팔꿈치로 몸을 가격했다.


이어 진짜 괴도가 주먹으로 그녀의 복부를 가격하자 두 눈이 크게 뜨이며 양쪽 볼이 빵빵해졌다. 한순간 날아온 세 번의 공격을 버티지 못한 뮤즈는 튕겨 나갔다.


“그 정도밖에 안 되나요? 선배님!”

괴도는 뮤즈의 품에서 빠져나온 절반 정도가 남은 분홍색 물약을 주웠다.


뮤즈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지만, 어느 순간 다가온 괴도가 자신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려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팔로 얼굴을 막았지만, 어째서인지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뜬 뮤즈의 시선에선 괴도의 발끝이 들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선배를 발로 차는 건 조금 그렇겠죠?”

괴도는 자세를 바꿔 손바닥으로 뮤즈의 뺨을 세게 때렸다. 이어지는 충격에 뮤즈는 괴로운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움츠렸다.


“이것밖에 안 되나요?”

괴도는 아미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제로 메모리 스크롤을 꺼내며 생각했다. 대체 검은 모자가 어떤 존재이기에 아미가 이렇게까지 분노한 것일까.


그동안 많은 것들을 훔쳐봤지만, 이렇게까지 끈질긴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물건을 뺏겨도 아미처럼 끝까지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황금의 괴도에게 빼앗겼다는 진실을 알면 되찾지 못할 걸 알기에 도중에 포기하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그건 제미니나 검은 모자도 마찬가지였다. 괴도는 이들처럼 질긴 사람들을 오랜만에 봤기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액셀러레이터만 하지 못했다. 오직 그 녀석만이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선배님?”

괴도는 불러도 대답 없는 뮤즈에게로 다가갔다. 미동조차도 없는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미세한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괴도가 그녀의 팔을 잡아 이리저리 흔들었음에도 움직임이 없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한순간 괴도의 팔을 향한 뮤즈의 손. 꼼짝없이 잡힌 괴도는 몸을 움찔거렸고, 뮤즈는 반대 손으로 자그마한 드럼을 괴도의 몸에 붙였다.


뮤즈의 손을 쳐내며 그녀와 거리를 벌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몸을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원인은 자신의 몸에서 점점 커지는 드럼이었다. 괴도는 모든 움직임을 제어 당하자 사색이 되어 빠져나가려 했다.


“각오는 됐지?”

뮤즈는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그녀는 양손에 커다란 드럼 스틱을 한 자루씩 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강렬하게 연주할 것 같은 살기가 만연해서일까, 괴도는 공포를 느꼈다.


“모르겠으면, 시영 씨와 내 추억을 함부로 논한 죄를 생각하렴.”

뮤즈는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괴도에게로 다가갔다.


“서, 선배···”

“왜? 할 말이라도 있니? 미안하지만, 난 없단다.”

이내 뮤즈는 괴도의 앞에 우뚝 섰다.


“넌 말이 안 통하거든.”

드럼 스틱을 능숙하게 돌린 뮤즈. 그녀의 연주는 즉시 시작되었다.


드럼은 하나였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했다. 오히려 커다란 드럼은 그녀의 손에 들린 두 자루의 드럼 스틱에 비해 턱없이 작았다. 혜성 전역에 울려 퍼질 그녀의 연주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새벽에 당한 분노, 다가오는 시영을 내칠 수밖에 없는 슬픔, 그럴수록 강해지는 사랑, 그리고 자신을 향한 괴도의 비웃음. 모든 감정이 어우러지자 연주는 점점 격정 되었고, 그럴수록 지쳐야 할 뮤즈는 오히려 힘을 얻으며 더 강하고, 더 빠르게 드럼에 연주를 때려 박았다.


연주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뮤즈는 드럼 스틱 두 자루에 힘을 실어 끝을 장식하는 강렬한 한 방을 때려 박았다.


드럼은 깨지며 뮤즈는 아미로 돌아왔다. 괴도는 충격으로 무력하게 튕겨버렸다. 그의 마음도 충격에 휩싸였다. 이 충격이 연주의 훌륭함인지, 강렬한 울림의 여파인지 괴도로서는 그 느낌을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다.


“힘들다···”

그 직후 뮤즈의 모든 힘이 다해버렸다. 남은 힘 모두를 사용한 최후의 연주였기에 더 이상 일어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질끈 감은 눈의 뮤즈는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으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당했던 것 이상으로 되돌려줬기에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한때는 후배였기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자, 이제 시영 씨의 스크롤을···”

아미가 눈을 뜬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상 세계 현상?”

떨리는 눈꺼풀의 뮤즈. 괴도를 중심으로 공간이 무너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아미의 몸은 두려움에 감싸였다.


이상 세계 현상은 D-Zero의 여파로 일어난 일종의 후유증과도 같았다. D-Zero 이후 6개월 정도 지난 지금 시점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기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스, 스크롤···”

아미는 주머니를 뒤져 블랭크 스크롤을 꺼냈다. 하지만 모든 힘이 빠져버렸기에 힘들게 꺼낸 스크롤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사이 괴도는 이상 세계 현상을 보며 아미에게서 주운 절반 정도 남은 물약을 깨뜨려 그대로 입으로 넣어버렸다. 유리에 찔린 피가 입 안으로 들어오자, 함께 들어온 물약과 유리를 함께 씹어먹었다.


“아미 선배, 그거 아세요?”

물약의 효과로 조금씩 괴도는 기운을 차렸다.


“D-Zero 이후로 이 세상은 빛을 잃었다고 생각했어요. 왠지 아세요?”

괴도의 물음에도 아미는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세상이 빛나는 이유를 하나 잃었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전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어요.”

괴도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세상에게 도움을 받다니··· 조금 웃기네요.”

점차 공간의 붕괴는 커졌고, 괴도는 아미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


“도망··· 쳐야 해···”

사색이 된 아미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도망치려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기어가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했다.


여유롭게 사라진 괴도와는 달리 아미는 점점 그녀에게 향하는 공간의 붕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붕괴는 공포와 함께 점점 마음을 집어삼켰고, 아미는 그저 허무하게 붕괴에 먹혀버릴 수밖에 없었다.


“시영 씨··· 사랑했어요.”

이미 체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미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그와 나눴던 추억을 떠올렸다. 커질 대로 커진 이상 세계 현상처럼 그를 향한 사랑이 마음이 담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리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이봐, 정신 차려!”

그런 그녀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


현장으로 빠르게 달려온 고속은 아미의 근처에 떨어진 블랭크 스크롤을 이상 세계 현상에 던져버렸다. 커질 대로 커진 이상 세계 현상의 규모는 단 한 장의 블랭크 스크롤에 먹혀버렸고, 그녀를 덮치려던 위험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당신은···”

눈을 뜬 아미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고속을 바라보았다.


“안 늦었지?”

이어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자 울컥해진 마음에 입술을 앙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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