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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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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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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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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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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This Illusion(3)

DUMMY

현 가문에 처음 와보는 시영은 고풍스러운 한옥의 분위기에 압도당해버렸다.


평소 근처를 지나가면 한 번씩 바라보는 정도였기에 내부 구조를 처음 본 이 순간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기 때문일까, 고속은 그를 보며 피식거렸다.


“자자, 구경은 나중에 하고 일단은 들어가자.”

“아, 네.”



“환영합니다. 고속 님, 그리고 시영 님.”

두 사람이 손님맞이 방으로 다다랐을 때, 마치 용수는 개선장군들을 환영하듯 직접 두 사람을 맞이했다.


“아, 안녕하세요.”

시영은 처음 보는 용수에게 정중하게 인사했고, 여러 번 봐서 익숙해진 고속은 가볍게 인사했다.


“그런데 절 아세요?”

“해성 님의 수제자, 박시영 님의 소문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아하하···”

시영은 어색한 웃음과 함께 시선을 돌렸고, 용수는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품속에서 빛나는 그건 무엇입니까?”

“빛나요?”

시영과 고속의 시선은 검은 재킷을 뚫고 나오는 녹색의 빛을 향했다. 시영이 품속에서 원인을 꺼내자, 그것이 [돌풍의 메모리 스크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거 혹시···”

시영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용수에게 건넸고, 용수는 그것을 받아들며 의아해했다.


“이건 분명···”

“뭔지 아세요?”

시영은 긴장을 삼켰고, 고속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숨을 죽였다.


“어떤 아가씨께서 제게 힘을 빌렸던 물건이군요.”

“혹시 그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죄송합니다. 잘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용수는 시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시영은 얼마 전 만났던 호야를 생각하며 조금은 기대했지만, 용수도 그와 별다를 건 없었다.


“시영아, 저게 뭔데?”

“제가 가진 6장의 메모리 스크롤이요.”

“메모리 스크롤을 6장이나 가졌다고?”

“제 물건이 아녜요.”

“그래?”

고속은 시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니 용수 씨께 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뭐, 일단 두 분 다 들어오시죠.”

용수의 안내로 손님맞이 방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용수는 두 사람에게 용의 잎사귀의 차를 대접했다.


“두 분이 찾아오신 용건이 무엇입니까?”

“얼굴 없는 가희의 정체와 목적을 알아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용수의 표정에는 화색이 돌았고, 마시려던 잔을 내려놓았다.


“두 분이 같이 알아낸 겁니까?”

“사실상 시영이가 혼자 알아낸 것과 다름없습니다.”

고속은 시영을 바라보았다.


“예?”

정작 지목당한 시영은 당황스러워했다.


“그렇습니까?”

그럼에도 오히려 용수의 시선은 고속을 향했다. 자신을 향한 조용한 바람이 느껴지자 고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알려주신다는 정보는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용수는 미묘한 표정으로 여전히 고속을 주시했고, 고속은 단호하게 콧바람을 쉬었다.


“시영 님은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냥 고속 씨를 따라왔어요.”

“그렇습니까?”

차를 한 모금 마신 용수는 시영에게 얼굴 없는 가희를 물었고, 그녀가 아미라는 것과 목적을 알게 되자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결론적으로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정말 별문제 없는 게 맞는 건가요?”

“네, This Illusion 자체가 원래부터 두통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해요.”

“그렇군요.”

그제야 용수의 마음 한편에 놓인 근심이 사라졌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시영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용수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제 조카가 그 동영상으로 두통을 느꼈습니다. 원래 조심해야 하는 아이여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별일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시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고속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기다리세요.”

용수는 고속을 바라보았다.


“시영 님은 더 할 이야기 있으신가요?”

“아뇨, 없어요.”

“그렇군요. 그럼 고속 님과 할 이야기가 있는데···”

“아, 네. 알겠습니다.”

즉시 자신의 차를 전부 마신 시영은 처음 느껴보는 향긋함에 감탄하고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먼저 갈게요. 고생하세요.”




“···저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뭡니까?”

시영이 나가고 1분 정도 지난 시점. 고속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린 거, 잊지 않으셨겠죠?”

용수는 시영이 돌려준 스크롤을 천천히 흔들었다.


“불길의 이유입니까?”

“그렇습니다.”

용수의 시선은 고속의 눈을 향했다. 저번과는 달리 불길은 보이지 않았다.


“이유를 알려드릴 수는 있지만, 그걸 궁금해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번에 말씀드린 공존이라는 말 기억나십니까?”

“기억납니다.”

“고속 님은 그때 분명히 원수와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죠.”

그 순간, 고속의 눈동자는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속 씨가 원하는 건 마술사의 정보였습니다. 그게 정보상을 하게 된 이유라고 하셨죠.”

“맞습니다.”

용수의 말은 마치 장작과도 같았다. 그가 말하면 할수록 꺼져있던 고속의 눈동자 속 불길은 두렵도록 타올랐다.


“정황상 마술사가 원수고, 그것 때문에 정보상이 되신 걸로 알아들으면 되겠습니까?”

“···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체 그게 공존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죠.”


어쩌면 고속은 이미 알고 있었을 수 있었다. 용수의 말은 그에게 눈 감고 있던 무언가를 일깨운 것만 같았다.


“현 가문의 대표로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마 고속 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으로 만났을 겁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지만, 고속 님처럼 특이한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별로 유쾌하지는 않군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태울 것처럼 살벌한 불길. 마치 복수자와 같았습니다.”

“안 그래도 전문가에게 들어봤는데, 복수자의 눈이라고 불렸습니다.”

“복수자의 눈···!”

용수는 긴장을 삼켰고, 고속은 한숨을 쉬며 눈동자 속 불길을 꺼뜨렸다.


“용수 님의 말대로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전 그 녀석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용의 알을 주셨으니 특별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제 누나 때문입니다.”

“누나? 누나분께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후우···”

본능적으로 나온 한숨은 그동안 고속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과 같았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묘한 느낌의 공기에 용수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속의 눈동자는 타오르긴 했지만, 미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티가라는 녀석을 알고 있으십니까?”

“티가? 혹시 대부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티가라면 분명···”

용수는 생각했다. 그의 시선이 고속의 눈을 향했을 때는 이미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그 녀석 때문에 저와 누나의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일단 진정하세요.”

용수는 자연스레 긴장을 삼켰고, 고속은 떨리는 손으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일순간 증오가 가득했던 머리와 눈의 불길이 조금이지만 가라앉았다.


“제 누나는 티가 녀석의 마음에 들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두 사람을 축복했었죠. 놈은 진심으로 누나를 사랑했고, 누나도 그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고속은 차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누나를 배신했습니다. 누나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는 놈을 찾아갔지만, 티가는 누나를 만나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런···”

“아무것도 모른 채 누나를 잃게 되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살아있을 수 있지만, 생사조차도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바람일 뿐이겠죠.”

고속은 한숨을 쉬며 마냥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


“그날도 이렇게 달이 밝았죠. 젠장···”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용수 님이 이해됐습니다.”

“제가?”

용수는 자신을 가리켰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군요.”

“뭐, 어쨌든 그 이후로 티가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팀을 이뤘습니다. 이게 정보상 일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아무 정보도 없이 무력한 경험 때문에라도 녀석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고···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된 겁니다.”

“그럼, 동료분들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병원입니다.”

고속은 한숨을 쉬었다.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으시군요.”

“이미 고생할 거라 각오했습니다. 어떤 고통도 버틸 수 있지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더군요.”

“맞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용수는 차를 한 모금 마셨고, 고속은 그를 주시했다.


“용수 님께 소중한 분들은 누구십니까?”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일까, 오히려 고속은 조금이지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궁금하십니까?”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숨길 것도 없죠. 고속 씨를 비롯한 혜성의 모든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

고속의 눈은 커졌고. 용수는 달을 바라보았다.


“현 가문은 모두와 공존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왕이면 모두와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싶습니다.”

“멋진 포부군요.”

“고속 님의 사정을 알게 되니 괜히 이야기를 꺼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말하고 나니 시원하군요.”

고속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나저나 안 받겠다고 선언하신 정보 말입니다.”

“예.”

“저라면 티가의 정보를 알려드릴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마술사의 정보를 얻으시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더군다나 마술사의 정보면 얻기 힘든 것도 아닐 텐데··· 아니 뭐, 티가가 마술사는 맞지만, 뭔가 이유가 있는 겁니까?”

용수가 박수를 두 번 치자 사람이 나와 두 사람의 찻잔을 채워주었다.


“녀석의 정보를 조사하던 중, 티가가 생명의 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생명의 돌이 마술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마술사의 정보를 모으려 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생명의 돌입니까···”

용수는 한숨을 쉬었고, 고속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을 이어갔다.


“동료들은 굳이 마술사를 조사할 이유가 없다는 쪽과 티가는 위험하니 마술사부터 천천히 조사하자는 쪽으로 나뉘었습니다. 마술사의 정보를 얻는 건 말씀하신 대로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모였을 때 실력을 낼 수 있습니다. 의견이 갈린 채로는 이도저도 아니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용수는 김이 올라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혼자서라도 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티가를 혼자서 조사하는 건 너무나도 위험하고, 더군다나 용수 님께서 내주신 의뢰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죠. 단지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티가에게 복수하고 싶은 겁니까?”

담백하게 묻는 용수, 고속은 순간적으로 이터널의 눈이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던 공포, 그의 말대로 그런 눈빛이 자신에게도 있다면 위험한 일이었다. 문제라면 정말 그 눈빛의 증오만큼 복수하고 싶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투쟁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고속 님께서 위험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용수 님, 우리는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절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조금 부담됩니다.”

“하하, 알다시피 전 현 가문, 괴수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마법에 속한 티가도, 과학에 속속된 고속 씨도 저와 우리에게 있어선 공존해야 할 친구입니다. 두 분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싸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저는 단지 친구를 걱정하는 겁니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용수는 지그시 미소를 지었고, 고속은 마치 시영의 진심을 담긴 미소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고속 님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고속 님은 티가의 정보를 모아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용수는 고속의 반쯤 살기 어린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눈은 바람을 뿜는 용과도 같았다. 그 바람에 눈이 번쩍 뜨인 고속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제일이었지만, 지금은 통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공존을 우선하는 현 가문의 사람에게는 복수라는 이름의 나쁜 행동은 꺼릴 것이 분명했다. 이터널이 말한 복수의 말로도 있었기에 복수는 이터널처럼 뭔가의 실수로 끝날 것만 같았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저지할 겁니다.”

최대한 순화한 고속. 아무리 생각해도 복수의 끝은 티가의 죽음이었다. 물론 고속은 솔직한 마음으로 죽음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수의 불길은 차올랐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는 차올랐다.


“진심입니까?”

이런 마음을 꼬집기라도 하듯, 용수는 지그시 물었다. 고속은 차를 한 잔 마시고 맑은 정신으로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저 복수였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고속의 머릿속에는 차례로 달라진 소민의 태도, 복수자의 눈을 언급하는 이터널, 자신을 막아서는 아미, 그리고 해방기를 망설임 없이 던진 시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습니까?”

“제가 잘못 생각한 것도 있고, 실수한 것도 있습니다. 뿌리 깊게 박힌 편견 때문에라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속은 심호흡했다.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복수를 포기하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공존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용수는 손뼉을 두 번 쳤고, 즉시 그에게 다가온 사람에게 무언가 귓속말로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보는 기계장치가 용수의 앞에 놓였다.


“받으세요. 티가의 목적과 관련이 있는 물건입니다. 원래 드리기로 했던 정보 대신 드리겠습니다.”

용수가 건넨 물건은 특이하게 생긴 기계장치였다. 카드가 두 개 정도 들어갈 슬롯이 있었고,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게 뭡니까?”

“듀얼 슬롯이라고 합니다. 티가의 목적이 저것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군요. 아, 물론 제작자는 유마 님입니다.”

“그렇군요.”

고속은 듀얼 슬롯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보다는 고속 님께 필요한 물건일 것 같습니다.”

“이거, 뭐 하는 물건입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예?”

고속은 용수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미심쩍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녀석다운 물건이군요. 감사합니다.”

고속은 듀얼 슬롯을 품속에 넣었다.


“고속 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야말로 많은 걸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단지 고속 님께서 스스로 깨달으셨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고속은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현 가문을 나오는 고속은 달밤 아래에서 여러 생각에 잠겼다. 그중 드는 생각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적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 스스로가 해방기 소지자에 대해 생각을 다르게 할 거라는 예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적이라 판단된 존재를 믿게 될 줄은 몰랐다.


그동안 분노에 사로잡힌 복수자의 눈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 것일 수도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정보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을지도 몰랐다. 생각을 마친 고속은 피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춤추는 그림자. 높은 곳에서 그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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