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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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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09.18 09:58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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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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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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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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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6)

DUMMY

오가도 못하는 구석, 성에 제일 높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검은 물결처럼 밀려오는 왜놈들이 한눈에 보였고, 등 뒤로는 한동안 내린 비에 거친 황토색 물살을 품어 내던 남강이 보이는 자리다.


김형문의 눈이 매섭게 돌아가고 있었고, 어딘가 있을 퇴로를 연신 찾아 대고 있었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더 이상 숨을 곳도 도망갈 곳도 보이지 않았다.


가픈 숨 한번 돌렸을까, 커져만 가는 비명소리에 세 여인들의 시선이 광장으로 쏠렸다.


점점 좁혀오고 있던 왜놈들이 광장 안까지 들어오기 시작했고, 여인들의 반항을 즐기는 듯 누런 이빨을 드려내며 침을 질질 흘려대고 있었다.


목을 잘랐고, 배를 갈라댔으며, 팔 하나 잘라 놓고는 머리채를 잡아채고는 구석으로 끌고 들어가 강간을 해대고 있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던 조총소리가 멈추자 그 자리를 대신한 비명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잔혹한 살육의 현장을 고스란히 지켜만 봐야했던 조선의 백성들이 뒷걸음을 치며 몰려오는 두려움에 입을 틀어막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쿠쿠쿠쿵!


다시 울리는 거대한 굉음. 몸이 가눌 수조차 없을 정도로 성벽이 흔들리고 있었다.


으악~! 으악~!


동남쪽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성벽로에 밀집되어 있던 수많은 인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었다.


커다란 돌덩이들과 함께 남강에 휘말려 떠내려가던 백성들이 수백, 아니 수천이었다.


살아보겠다고 올라왔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으로 기를 쓰고 도망쳐 왔는데 허무하게 몰살을 당하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을 잃은 수많은 백성들, 공포가 극에 달했고 살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광장이 온통 핏물로 붉어져 있었다.


광장을 장악한 왜놈들이 성벽로 계단에 있던 백성들을 죽여 나가며 올라오고 있었다.


“미안하다. 이 못난 애미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엄마 왜 그래? 울지마.”


난간에 등을 기대어 열 살도 채 안 되는 여자아이에 머리를 감싸 쥐며 울부짖는 한 여인이었다.


울부짖는 어머니의 뺨을 닦아 주던 어린아이를 품에 안던 여인,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대로 몸을 던졌다.


풍덩~!


왜놈들에게 윤간을 당할게 뻔했다.


노래개로 전략하다 참혹한 고통에 시달려 죽을게 뻔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 아이를 품에 안고 떨어지는 여인이 편안해 보였다.


모녀의 안타까운 장면을 지켜보던 백성들이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작심한 듯 성벽 난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외치던 백성들, 하나 둘씩 몸을 던지고 있었다.


풍덩! 풍덩!


황토색 거친 물살에 하얀색 점들이 수를 놓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세 여인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고, 작심 한 듯 난간에 등을 기대고는 목에 걸고 있던 은장도를 꺼내 들며 무겁게 입을 연 무수어머니였다.


“고마웠네. 그리고 미안했네. 저승 가서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꼭 그리해서 같이 잘 살았으면 하네.”


“어머니.”


“어머님.”


“어머님~! 잠시만요. 일단 상황을 좀 더 두고 보고···.”


왜놈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김형문이 당황해하며 제지를 하고 나섰지만 이미 표정에서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 동안 고마웠고, 자네라도 꼭 살아서 막내에게 꼭 이 말을 전해주게.”


“잠시만요. 어머님! 저 강물에 뛰어 든다 해도 살 수 있습니다. 일단 칼은 내려놓으시고! 같이 뛰어내려요. 같이요!”


“죽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은아랑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말을 하며 미선이와 시선을 마주친 어머니가 등을 도닥이자 울음을 참고 있던 미선이가 결국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리한테도 전해주세요.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부둥켜 않고 펑펑 울던 세 여인을 지켜만 봐야 하던 김형문이었다.


살수 있다는 말을 했지만 위로가 안 되는 말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어쩌면 극단적인 선택이 최선임을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더는 말을 못하고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당장 세 여인도 여인이지만 본인조차 살기 힘든 상황이었다.


성벽로까지 올라온 왜놈들, 계속해서 흔들림을 멈추지 않고 있던 성벽. 옴짝 달싹 하지 못하는 망루,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와 한 맺힌 비명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던 세 여인에 움직임이 멈춰졌다.


울음을 그쳤나 싶었던 김형문에 시선이 가슴팍으로 향했다.


붉게 물들고 있던 저고리.


순식간이었다.


어머니가 먼저 은장도를 가슴에 꽂아 넣었고, 큰며느리, 그리고 미선이가 그 뒤를 따랐다.


“어머님~!”


나란히 맞잡은 손, 서로를 응시하며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손을 뻗었고 몸을 던지던 김형문에 가슴을 울리던 나지막한 음성.


아리, 무수, 그리고 파르르 떨리던 강미선의 입술.



* * *



와그작~~!


채챙~! 푸후훅~!


반에 반이 남은 월도가 부러지며 가슴이 뜨거운 불에 대인 것처럼 화끈거렸다.


몸을 틀어 잘려진 손잡이로 놈의 목덜미에 깊이 박아 넣고 남은 한쪽 손에 들려진 월도는 옆에 놈의 울대에 박아 놓던 무수가 자세를 낮춰 단검을 빼들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쩌러럭 거리며 상처가 벌어졌고 통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앞선 놈이 달려오는데 누가 먼저 칼을 상대에 몸에 넣을까라는 의심도 잠시다.


그건 해보면 된다.


뛰어 올라 쓰러지는 놈의 왜도를 낚아챘고 내려치는 왜도를 튕겨내고는 옆구리에 단검을 박았고 다시 몸을 돌려 반대쪽 가슴과 팔 사이에 우겨 넣었다.


후. 후.


집중 할 때는 참을 만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누군가를 바닥에 눕혀 놓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때쯤 다시 웅웅 울려댄다.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통증에 가느다란 호흡으로 잠시 전장을 살피던 무수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철퍼덕, 철퍼덕.


발목까지 차오른 빗물에 발소리가 요란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군의 발소리는 귀신같이 안다.


움찔하던 손세용이 안도의 한숨이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한쪽에서 쓰러져 칼에 기대어 몸을 낮추고 있는 손세용과 윤업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무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마음 안다.


너희는 최선을 다했고 최고였다.


다시 등을 보이며 뛰어나가는 무수였다.


동시에 들어온 공격이었다.


팔에 한방, 허벅지에 다시 한방을 맞고 쓰러지던 손세용의 목에 칼을 들이밀던 놈의 왜도를 손에 움켜쥐고는 놈의 팔을 잘라냈고 옆구리를 반쯤 가르던 무수였다.


죽을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손세용을 구한 무수의 손에서 흥건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칼을 쥐기도,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텐데 다시 뛰어나가며 그를 보던 손세용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기다란 창을 집어 들었고 쩔뚝거리며 무수 뒤로 향했다.


자신도 힘들고 아플 텐데 이를 악물고 범접할 수 없는 독기를 품어대고 있는 대장, 이런 대장에 맞서려던 부끄러운 과거가 떠올랐다.


후웃!


지독하게 말이 없었다.


웃는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화를 낸 적이 있었나 싶은 대장.


하지만 대들거나 경우에 어긋난 행동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묵사발을 만든 그였다.


왼쪽 뒤통수가 얼얼한 느낌이었다.


대장 밑에서 훈련한지 일 년쯤, 타 훈련소에서 합동훈련을 마친 후 주막에서 한잔 걸치던 자리에서 대장을 욕하던 놈과 한바탕하다 패싸움까지 번진 사건.


상부에 보고가 될 뻔한 사건을 자신의 말 두필을 주고는 무마시키고는 하는 말이 떠올랐다.


어설프게 건든 거니까 다음번에 일어나지 못하게 더 두들겨 패란 소리였다.


그때 결심했다.


진짜를 만났고, 인생을 한번 걸어 보고 싶다고 말이다.


저런 듬직한 등을 보이는 대장이 자랑스러웠다.


피숫~!


몰래 접근하며 대장의 뒤를 노리던 쥐새끼, 놈의 눈이 창을 찔렀고 뒤로 넘어가자 힐끗 뒤를 돌아보던 대장이었다.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고맙다고 말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나는 모르지만 어느 틈엔가 비도 멎은 상태였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던 놈들이 이제는 어느덧 끝을 보이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젖은 발걸음이다.


빙 둘러서 압박을 가하던 무수와 대원들의 거친 숨소리가 공포심을 더하고 있었다.


놈들의 번득이는 눈빛에 두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춘호에 화살이 놈의 발밑으로 쏘아졌다.


그만하라는 신호고, 항복하라는 거였다.


“징언 새끼들, 이쯤허면 포기헐만 헌디 시방, 허벌라게 덤벼불고 지랄이네. 퉤~!”


한쪽 팔을 쭉 늘어트리고는 도끼하나만 들고 있던 담이가 놈들을 쏘아 붙이며 불편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너덜거리던 상의를 벗어 던졌고 한 쪽 어깨를 빙그르 돌리며 몸을 풀다 두 손으로 도끼를 움켜쥐던 담이에 미간이 좁혀지며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탈의된 상반신에 여기저기 베인 상처가 제법이었다.


옆에 있던 아리의 눈길이 담이에 상처로 이어지자, 결국 입을 연 아리였다.


“괜찮은 거지?”


말이 없이 머리를 움직여 작은 흔들림으로 답을 한 담이었다.


평소 같지 않은 행동에 한발 앞서 담이 앞을 나서려던 아리에 움직임에 담이가 입을 열었다.


“워매, 시방 틈만 보이면 기어 올라오네. 으째쓸까나. 이걸 그냥 확!”


떨리던 몸이다.


힘을 다하면 나오는 현상이다.


담이와 아리의 행동에 대원들이 피식거리며 헛웃음을 뱉어내자 거짓말처럼 떨림이 멈춰졌다.


저벅! 저벅!


다시 한발 내딛은 무수, 손세용이 결국 무릎을 꿇었고 이에 맞춰 놈들의 발밑에 다시 한발 쏘아 올린 춘호에 활이었다.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던 놈들, 남은 인원이 대략 열 명이 채 안 되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무려 오백이 달려들었는데 겨우 이 정도면 남았으면 다시 달려든다고 해도 바닥에 누워있는 동료들이 될게 뻔했다.


얕봤다고?


아니다.


진심을 다했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 동원했는데 결과가 처참했다.


힘든 훈련 과정을 통과했고 치열한 경쟁을 비집고 겨우 무사라는 칭호를 얻어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오십이 안 되는 놈들한테 유린을 당한 지금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왜도를 거꾸로 집어 들었다.


이츠라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떠올랐다.


칼을 던지고 무릎을 꿇었어야 했던 조금 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하고 그저 머릿속에서 맴도는 훈련소 교관의 거친 목소리만 떠올랐다,


‘자존심을 지켜라! 대 일본제국에 무사다! 개죽음 보다 영광스러운 자결을 선택해라!’


호흡이 떨려오고 있었다.


한 마리 맹수를 연상케 하는 눈빛을 하며 몸을 짓누르는 위압감을 보이는 정기룡이라는 놈, 곰 같은 덩치에 도끼를 쳐들고 찍어 내던 놈, 뒤에서는 기묘한 동작으로 상처 하나 없이 여유를 보이는 놈, 어디하나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항복을 권유하던 놈들이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다.


후~~~~!


후회 한들 흘러간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츠라가 선택한 길이다.


날카로운 칼끝이 배에 맞닿았다.


“천황폐하 만세~!”


푸욱~!

깊숙하게 찔렀고 반쯤 박힌 왜도에 다시 힘을 주어 기어코 등을 뚫고 나오던 칼끝이었다.


앞선 놈을 뒤따르던 나머지 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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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 6 장 진주성(4) 21.10.07 64 2 12쪽
33 제 6 장 진주성(3) 21.10.07 66 2 12쪽
32 제 6 장 진주성(2) 21.10.06 7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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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3) 21.10.05 7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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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 21.10.04 8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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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 4장 단기필마(4) 21.10.02 8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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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 4장 단기필마(2) 21.10.01 91 2 12쪽
22 제4장 단기필마 21.09.30 91 2 12쪽
21 제3장 귀신을 보는자(9) 21.09.30 9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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