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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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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09.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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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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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 7 장 운명

DUMMY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성벽을 기어오르는 놈들 머리위에서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파도에 쓸려가는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있던 왜놈들이었다.


김시민의 수신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하들이 알아서 기름을 성벽 아래로 들이 붓고 있었다.


이어서 활을 재고 있던 궁사들의 불화살이 일제히 하늘로 올라갔다.


피쉬쉬쉬익~!

으악~! 으악~!


또 한 번에 위기가 넘어가던 순간이었다.


따끔거리는 목덜미를 닦아 내던 김시민이었다.


앞으로 이틀정도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비격진천뢰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화포의 포탄도 잘해야 앞으로 한두 차례다.


주력인 활도 급하게 만드는데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수하들과 백성들이 쌓인 피로감인데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쉬게 해야 한다. 아니 쉬어야 한다.


이광악이 헐떡거리며 뛰어 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목덜미가 계속해서 따끔거렸다.


다시 팔을 들어 올리자 무심코 흘겨본 손에서 붉은 빛깔에 흥건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상의에 대충 닦아 내고는 천천히 손을 올려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따끈한 끈적거림이 먼저 손끝에서 전해졌다.


시선이 손으로 향했고 흥건한 핏물이 손바닥에서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달려온 이광악이 김시민을 안아들었고 의원을 불러오라고 외치고 있었다.


소리치는 이광악의 목에 핏대가 눈에 들어왔고, 하얀 입김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제 7 장 운 명(運命)



휘익! 휘익~!

퍼어억!


“헤헤.”

“간다!”


휘익! 휘익!


고사리 같은 손으로 던진 눈덩이를 맞아도 아픈 기색 없이 다시 눈덩이를 뭉쳐 던지던 아이들이었다.


까르르, 까르르.


함박웃음이 절로 나오게 내리고 있던 눈이다.


포근함을 가득 품은 새하얀 함박눈이 아이들을 웃게 만들고 있었고 강아지들이 앞마당을 뛰어다니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며 절간 같던 마을에 모처럼 활기를 북돋아 주고 있었다.


저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게 해주고 싶었고, 웃게 하고 싶었고, 편히 살게 해주고 싶었다.


김시민장군이 간절하게 꿈꾸던 세상이었다.


먼저간 아이들, 고통 속에 비명을 질러대던 아이들이 저승 가는 길 헤매지나 않을까 눈을 감아 버린 김시민, 진주성을 끝까지 지켜낸 백성들의 환호소리도 듣지 못한 채 말이다.


한 참을 서서 뛰어 놀던 아이들을 지켜보던 무수였다.


뽀드득, 뽀드득.


듣기 좋은 발걸음 소리를 내며 무수 옆으로 다가온 담이가 물끄러미 아이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시방 저렇게 웃어 본적이 없었어라.”


한참을 가만히 있던 담이의 한마디,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웃고 싶었고, 뛰어 놀고 싶었는데 시방 그라지 못했어라.”


“···”


“친구는 무쉰, 말상대라도 있었으면 하고 정화수 떠다 놓고 천지신명께 빌어 본적도 있어라.”


“시방 말도 안 되는 소린지 알면서도 가끔씩은 이런 생각도 했어라. 똑같은 사람인데 누군 노비고, 누군 양반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을 만들어 놓아 불고는 말이어라.”


“···”


“왕은 달라 불고, 양반도 달라 불고, 그냥 워디서 태어났냐가 중요해 분다는 거 아니어라? 그람 저 짝에 성을 차지하고 있는 왜놈들하고 뭐가 다르당가요?”


정곡을 찌르고 있는 담이었다.


거침없는 말이 이어졌다.


“저 짝에 있는 얼라들 말이지라, 왜놈 얼라들 델다 놔보랑께요. 츰에는 삐쭉되것지만 조금 지나 불면 같이 소리 지르며 놀아 불거란 말이어라.”


“신분이고, 나라가 틀리고 해도 같이 뒤엉켜 놀다보면 친해진다는 소리요.”


“무식한 지도 알것는디 와 유식한 양반들은 그걸 모른당가요?”


“기득권 이란 거다.”


무수가 입을 열었다.


“이미 차지하고 있는 권리를 내놓지 않으려는 발악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모른다고? 알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가 침해될까봐, 치고 들어올까 두려워서, 유지하려고 애쓰는 거다.”


씁쓸한 표정의 무수였다.


이런 말을 담이에게 할 줄 몰랐고, 한다고 해도 알아듣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담이에 깊어진 눈동자와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안다고.


알 수 있다고 말이다.


노비였던 담이다.


노비문서가 태워졌고 세월이 많이 지났다.


지위가 사람을 바꾼다고 했던가? 경험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했던가?


놀랄만한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던 담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양반이었다면, 최상위 지배계층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한자리 해먹었을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는 소리다.


처음부터 잘못된 거다.


사람은 사람끼리 아무런 차이를 두지 말아야 한다.


부자건 가난하건, 양반이건, 노비이건 간에 처음부터 시작은 똑같아야 했고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본인에 노력 하에 모든 게 결정되어야 한다는 거다.


“시방, 말이 요상하게 이상한 거시기로 흘러 가버렸어라. 헤헤~.”


침묵을 깨던 담이었다.


“도련님.”


담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방 지가 저 짝에 얼라들 마냥 행복했던 적이 언제인지 아신당가요?”


뜬금없는 소리다.


그거야 노비문서···.


“도련님이 기억 하실랑가 모르것지만 아리가 3~4살쯤인가 곳간 바닥서 잠자고 있던 지 한테 왔고 지 손구락을 붙잡고 놀고 있었지라. 잠이 깼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어라.”


“한참을 지 손구락을 가지고 놀다가 지 품에서 새끈새끈 잠이 드는데 깨울 수가 없었어라.”


“집안이 발칵 뒤집어 져불었지라.”


후후.


“지한테 모든 화살이 돌아왔고, 죽도록 맞아 불고 있는데, 아리가 아장아장 걸어오며 지를 막아서 불고는 울더군요.”



“안돼, 안돼.”


기억이 났다.


담이를 막아선 아리였다.


그 날 이후로 아리는 담이 옆에서 떨어지려하지 않았고, 잠들어서야 겨우 떼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담이를 쫒아 다녔다.


“지를 위해 막아 줘불고 울어주는데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져 불더라구요. 몸은 징그랍게 아파오는데 여그, 가슴 한 짝이 애려 오며 행복하다는 생각이 문뜩 대가리를 훑고 지나가 부는디.”


후~, 후~.


가슴을 치며 머리를 떨구던 담이었다.


13살쯤 일거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마 안 있어서 나온 사건이었다.


뒤숭숭한 집안, 노비들도 하나둘씩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있던 시기였다.


누군가 해코지 하려고 데려간 줄 알았던 어머니와 형수였다.


“나가 그날 다짐 한 게 있었어라. 도망 안 간다고···, 아리는 나가 지켜 불겠다고, 클 때까지 지켜보자는 결심을 했었어라.”


“아리만 보면 행복했어라. 똥 묻은 엉덩이. 오줌 지린 이불, 누군가 해코지 하면 나가 나서서 맞아줬고, 발이 되어 줬어라.”


“도련님이 노비문서 태우는 날 정말이지 죽고 싶었어라.”


노비문서 태울 때라고 생각한 무수였다.


의외였다.


“춘심하고 왜놈 헌티 갔을 쩍에도 말이어라. 몸도 편해 불고 마음도 편해 불것는디 행복하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들고 아리만 보고 싶었어라.”


누구에겐 가볍고, 아무 의미 없이 한 일이지만 누구에겐 가슴팍에 비수가 꽂히는 말이나 혹은 행동이다.


굴레를 벋어나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무수의 행동이 최선이 아닌 최악이었던 거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늘 아리 옆엔 담이었다.


버릇된 행동이 아닌 진심어린 담이만에 표현방식이었던 것이었다.


담이 어깨에 손을 올린 무수였다.


묵직하고 단단했다.


어쩌면 13살 어린 시절에 담이가 느꼈을 힘겨운 삶의 무게감이 손끝에 전해질까 싶었다.


눈을 감았다.


손끝에서 담이에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날 이후 처음인가 싶었다.


담이에 어깨를 만진 게 말이다.


잠시 동안 말이 없이 그저 뛰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과거의 그날을 떠올리던 무수였다.



* * *



맴~맴~맴~.


지리산 깊은 곳, 매미가 짝을 찾아 울어대고 있었다.


숲이 우거져 햇살하나 들어오지 않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 땅을 파고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수없이 많이 지나갔던 곳이다.


그런데 왜? 발견을 못했을까 싶었다.


지금 파고 있는 곳 자시방향으로 네 걸음 앞, 축시방향으로 다섯 걸음 옆이다.


아직 어린놈이니 몇 해만 지나면 약성이 제대로 된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라.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땅을 파고 있던 무수였다.


됐다.


모습을 드러낸 놈이었다.


“심봤다~!”


포효를 하며 어깨를 들어 올렸고, 주먹을 불끈 쥐던 무수였다.


잘은 몰라도 50년 이상은 된 산삼이 두 개다.


춘호와 같이 왔으면 하나씩인데 아쉬울 뿐이었다.


거기다가 작은 멧돼지 한 마리와 장끼 두 마리다.


오랜만에 집에 빨리 돌아갈 생각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무수가 주섬주섬 산삼을 챙겨 안주머니에 숨겼고, 지게를 들어 하산을 시작했다.


묵직한 멧돼지와 장끼.


며칠은 식구들 고기 걱정 없을 거고, 장끼는 춘호에 화살의 재료다.


어깨에서 전해지는 무게감이 오히려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었다.


확실히 활 쏘는 거 배우길 정말 잘 했다.


물론 아직까지 춘호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쌓여가는 실력에 어깨가 으쓱해지고 있었다.


빨라진 발걸음에 속도감이 더해지자 무성한 숲을 금방 지나왔고 오솔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고갯길을 넘어가자 앞서서 느릿하게 걸어가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멈춰진 걸음.


허리 줌에 걸쳐 있던 칼이 눈에 들어왔다.


벌건 대낮에 산적은 아닐 거란 생각을 할 때쯤 힐끗 뒤를 돌아보던 두 사람, 멀리서 보아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던 인상이었다.


얍삽하게 생긴 삐쩍 마른 놈, 다른 한 놈은 입술에 길게 난 흉터가 인상적이었다.


미간이 좁혀지며 살짝 인상이 구겨지던 찰나에 몸을 돌려 다시 갈길 가던 놈들이었다.


숲으로 돌아가려 했던 무수,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코지 하려 했다면 몸을 돌렸을 거고 허리 줌에 칼을 매만 졌을 거다.


일단 지나가 보자라는 판단에 발걸음을 옮겼고 잠시 후 놈들을 지나가려던 순간이었다.


“토실토실 하네? 네가 잡았냐?”


삐쩍 마른 놈이 멧돼지를 슬쩍 보더니 무수에게 말을 걸어왔다.


“운이 좋았죠.”


무수가 대답을 하며 앞서 걸어가려 하자 무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마른 놈이 무수의 지게 상단을 잡아챘다.


“당찬 놈이네? 니 몇 살이고?”


“나이는 왜? 어리면 사냥하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와~! 나 이 새끼 말하는 싸가지 봐라. 어른이 질문을 했으면 고분고분 대답이나 할 것이지 꼬박꼬박 말대꾸 하네.”


“그 손부터 놓고 말하시죠. 어른이 애들이 가는 길 막아 놓고는 싸가지를 운운하십니까? 그게 어른들이 할 짓입니까?”


큰 키에 앳되어 보이는 얼굴, 반쯤 돌려진 몸에 눈빛이 날카롭게 마른 놈을 향해있었다.


“이 새끼가 근데!”


손을 올려 무수를 위협하던 마른 놈, 지게 지팡이를 들어 놈의 손목을 막은 무수였다.


황당하다는 표정의 놈이 손목에 지팡이를 뿌리치고는 반대쪽 주먹을 날렸다.


허리를 굽혀 놈의 주먹을 피했고 복부에 지팡이를 우겨 넣은 무수였다.


“흑!”


놈의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굽히자, 지게를 지팡이에 기대어 내려놓은 무수, 그 틈을 비집고 쏜살같이 주먹을 내지른 놈의 주먹을 가볍게 두어 번 피했고, 놈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퍽~!


턱이 돌아갔고 입새에서 진한 핏물이 맺히고 있었다.


“이런 후레자식이~!”


다시 달려든 마른 놈, 복부에 한방, 관자놀이에 묵직한 한방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나이만 헛먹은 새끼다.


입만 살아 나불대는 놈, 양아치 같은 새끼들.


머리를 향해 묵직한 주먹을 날리던 무수, 동작이 중간에서 멈춰졌다.


옆에 있던 놈이 무수의 주먹을 막았고 입을 열었다.


“제법이구나.”


무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한 무수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런 눈, 사람을 죽여 본 자다.


퍼버버버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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