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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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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09.18 09:58
최근연재일 :
2021.10.20 06:2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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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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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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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 7 장 운명(6)

DUMMY

창고의 문이 열렸다.


곡식과 옷, 각종 생필품들을 나눠주고 있었다.


당분간 배불리 먹을 거고, 편히 쉴 수 있을 거다.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뜨거운 눈물을 보이고 있던 백성들이었다.


그간 보여준 누군가와는 다른 행보다.


몰려들어오는 왜놈들을 피해하며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백성들보다 자신의 안위에 신경을 더 썼고, 물 한바가지 조차 배려하지 않았던 상주 목사 김해와 비교가 됐다.


생활의 터전을 찾아줬고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줬고 먹고 살게 해주고 있는 정기룡이다.


늠름하게 월도를 손에 쥐고 있는 저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군자이며 영웅이었다.




산을 이룬 시체를 태우는데 사흘이 넘게 걸렸다.


성을 정비해야했고 축대도 쌓아 올렸다.


무너진 곳도 성문도 보수해야했고, 추가로 해자도 만들게 지시를 했다.


성에 화포를 곳곳에 설치했고, 군수물자를 지원받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었다.


가능한 모든 인원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있었고 언제든 전투에 투입될 수 있도록 각 병과에 맞는 훈련이 계속되고 있었다.


추후에 밀어 닥칠 왜놈들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지내고 있던 상주성이었다.




전라남도 보성. 마을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외딴 초가집.


지독하게 쏟아져 내리던 눈에 마당을 쓸던 빗자루를 한 쪽에 세워두고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멍한 표정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함박눈을 한동안 지켜보던 여인이었다.


간밤에 꾸던 꿈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너무나 생생하게 나타난 아들이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는 걸 붙잡기를 한참이었다.


도대체 어디를 간다기에 한사코 손을 뿌리치는지 아직도 손아귀가 아파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기도 했고 너무 안 봐서 그런가도 싶었다.


지난봄에 왔다 갔으니 벌써 일 년 가까이다.


일 년에 두세 차례 집에 머물었던 녀석이 왜놈들이 쳐들어와서 그런지 덩그러니 잘 지낸다는 소식만 간간히 전해만 주고 있었다.


진주에 있다고 했고 진주성은 잘 막아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올 때도 됐다.


일단 눈이 그치면 관아도 가서 소식이 있나 둘러봐야겠고 장에 들러 좋아하는 고기도 넉넉히 준비를 해야겠다.


머리를 돌려 작은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소도 해야 했고 깔끔하게 덮고 잘 이불 손질이나 해둬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일어나려는 순간 머리가 핑 돌며 귀에서 이명이 들려왔다.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속이 더부룩했다.


잠을 설쳐서 그런가 싶어서 자리에 앉아 큰 숨을 몇 번 고르고 다시 일어섰다.


가슴 한쪽이 누군가에 의해 쥐어 짜내는 아픔이 몰려왔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두툼하게 깔려 있는 이불을 걷어내 털어낼 요량으로 허리를 숙였고 팔에 힘을 주자 다시 몰려오는 통증에 그대로 엎어지며 아들이 평소에 베고 자던 베개에 얼굴이 파묻혔다.


후. 후.


아들에 체취가 아직 남아있었다.


포근했다.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계십니까?”


“아무도 없습니까?”


무수가 눈짓을 하자 춘호가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싸리나무를 촘촘히 엮어서 만든 남루한 담벼락, 방이 두 칸 정도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초가집 담벼락에 두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에 운구가 놓여있었다.


사람이 드나들던 흔적이 없이 조용하기 짝이 없었고 굴뚝에서 피어나왔어야 하는 연기조차 없었다.


부엌 쪽으로 몸을 돌리던 무수, 허름한 창고를 살피던 담이와 아리였다.


방문을 열고 상체를 들이밀며 안을 살피던 춘호가 몸을 뺐고 몸을 돌려 옆방 문으로 향했다.


부뚜막 안을 쭈그리고 앉아 멀뚱히 쳐다보고 있던 무수가 일어서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한동안 아궁이를 사용하지도 않았는지 타다만 재들만 남아있었고 솥뚜껑에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엄동설한에 한복판이다.


아궁이에 불이 없다면 사람이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쌓여진 장작과 잘 말린 시래기가 널려있는 모습은 최근까지 사용을 했고, 계속해서 사용을 하겠다는 의사표시다.


뒷문으로 나간 무수에 눈에 처마 밑에 널려진 빨래가 고드름을 매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살짝 열려있던 창문 사이로 춘호가 보였다.


앞으로 다가가 열어젖히고는 머리를 작은 창문 사이로 밀어 넣자 베개를 끌어안고 누워있던 여인 앞에 춘호가 무릎을 꿇고는 여인의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머리를 떨구던 춘호였다.


홀어머니에게 안타까운 소식만 전하기에는 사람 된 도리가 아니라는 판단이었고 노함에게 성을 맡기고 윤주승이 담긴 운구와 함께 고향을 찾았다.


왜놈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던 전라도 지방이라 사뭇 다른 풍경을 보이던 곳이었기에 윤주승의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뭐라고 전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던 무수였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겠지만 이 소식만은 직접 전해주고 싶었고 그래야 마음 편히 주승이를 보낼 것만 같았다.


편안해 보였다.


추운 날씨 탓에 온몸이 꽁꽁 얼어 있었지만 표정이 그래 보였다.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말이 이거였나 싶었다.


좋은 곳에 묻어 달라는 마지막 소원이었나 싶었다.


어머니와 함께 말이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죽음 앞에 당혹감보다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고 차라리 부탁을 들어 준다는 소리라도 했어야 하는 미안한 아쉬움에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있었다.


쏟아져 나오는 눈물 뒤로하며 사체수습에 매진한 무수였다.


인부를 동원했고 명망 있는 지관을 불러 전망 좋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봉분을 나란히 세웠다.


늦은 장례지만 이승에 미련이 남아있지 않게 해주었다.


오일 동안 이루어진 장례가 마무리 됐고 봉분 앞에 나란히 서있던 무수가 멀리 지평선을 바라 보고 있었다.


붉어진 노을에 깔린 구름이 마치 주승이가 어머니와 손을 잡고 떠나는 뒷모습처럼 보였다.


고마웠다.


이렇게라도 해서 마음 편하게 뒷수습하게 해줘서.


그리고 미안했다.


먼저 떠나게 해서 말이다.


봉분에 시선을 돌려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던 무수였다.


“시방 날이 겁나 추워져분디 계속 요라고 계실랑가요?”


기울어져가는 해에 바람까지 더하자 쌀쌀함이 더해지고 있자 담이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발길이 안 떨어지네.”


“그만하면 됐어라. 헐 만큼 해부렀어라.”


“···”


“아 글씨 주승이도 얼렁 저승가서 엄니랑 알콩달콩 잘 살게 아니것어라.”


듣고 보니 그렇다.


이렇게 붙잡고 있는 다고해서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언제고 다시 오리라는 다짐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던 무수였다.



* * *



지리산 산자락이 한눈에 잘 보이는 양지 바른 곳.


지독하게 추웠던 지난겨울을 뒤로한 채 다시금 봄이 찾아왔다.


봉분에 푸른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꼼꼼히 제거를 하며 정리를 하던 중년 남자가 봉분 앞에 자세를 잡았고, 두 번 절을 하고는 일어서더니 그대로 머리를 한참동안이나 숙이고 있었다.


삼년을 예를 다했다.


전 같으면 무작정 세상을 경험해보려 나가려 했을 거다.


그러나 그런 무의미한 일들 따위는 이제는 관심이 없다.


달관(達觀)했냐고? 아니다. 아버님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이 몸에 베인 거고 속세를 벋어난 이 생활에 적응이 된 것 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자꾸만 아버님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찾아보라고 했다.


한번쯤은 봐야했고 소식을 전해야 했는데 지금은 왜놈과 전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찾아가봐야 피난 갔을 거고, 수소문 하며 찾아 헤매는 고생길이 눈에 뻔히 보였다.


그런데 눈에 자꾸만 아른거렸다.


궁금하다는 거다.


16살 소년에서 30대 성인으로의 녀석의 얼굴이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보면 알아 볼 수나 있을까 싶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보내오던 곡식과 생필품도 이제는 더 이상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도 해야 한다.


만난다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정신 차리게 해줘서 고맙다.


아버님의 진정한 품을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아버님이 전해주라는 말을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못할 것 같았다.


훗!


아무튼 신세는 여기까지다.


구석에 놓아둔 봇짐을 슬쩍 눈길을 주던 김형문이 입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귀까지 늘어진 흉터가 실룩거리고 있었다.



* * *



조정에 분명히 승전보가 전해졌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이 벌써 몇 달이 흘렀다.


정기룡은 상주판관에 감사군대장까지 교지가 날아온 상황.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런데 상주목사인 나한테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윗선에 연통을 넣어 두었고 적당한 뇌물을 곁들인 상태였다.


왜놈의 심장을 꺼내들었고 내장을 잘근잘근 씹어대던 미치광이 정기룡장군에 대해 알려야했다.


항복하는 왜놈들을 사지를 잘라내던 잔혹함, 불타오르던 강렬한 눈빛으로 언제 어디서 월도를 세워들고 자신을 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알려야했다.


나이도 어린놈이다.


군부에 경력도 한참이나 아래인 놈이다.


저렇게 빨리 승진한 꼴은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는 용납 못한다.


잘못된 처사를 바로 잡아서 상주성 수복에 일등공신은 바로 자신이고 저 놈은 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러나 왜 이렇게 함흥차사인가.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소식이 없었다.


눈엣가시인 노함의 날카로운 시선을 요리조리 피하는데도 한계가 있고, 쥐새끼마냥 숨어 지내는 것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때마침 왜놈들의 출몰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원을 한 김해였다.


몇 번에 거절과 간절한 부탁이 이어졌고 결국 노함의 승인이 떨어졌다.


무식하게 생긴 구리 빛 얼굴에 이영길이라는 놈의 지휘를 받으라는 조건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받아들였던 김해.


하지만 해방감도 잠시였다.


며칠을 계속해서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데 이건 도무지 사람 새끼들이 아니었다.


북방기병대에 수색을 전담했다고 하는데, 심마니들도 아니고 연신 산속에서만 웅크리며 전진만 계속할 뿐이었다.


도대체 왜놈들은 어디 있고, 언제 전투하며, 밥은 언제 먹여 줄 것이며, 잠은 왜 안 재우냐 싶었다.


보이지 않는 적에 몸은 도대체 왜 웅크려야하는지 경계는 왜 서야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고 결국 치밀어오는 분노에 폭발한 김해였다.


“지금 똥개 훈련시키는 거야 뭐야~!”




무수가 승낙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이놈은 내 손에서 해결해 볼 생각이었다.


죽이든 살리든 말이다.


지방에 제일 높은 수장을 해먹 던 놈이라 개과천선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기에 일단은 놈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꼬랑지를 붙여 놓고 지켜봤다.


하지만 여지없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한자리 해먹으려고 구구절절한 편지에 뇌물은 도대체 몇한테 보내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상주성을 수복하는 날 놈의 목을 내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할 따름이었다.


기회를 엿보던 노함이었다.


때마침 뒤늦게 합류한 이영길 대장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했고 흔쾌히 승낙을 한 상황, 거짓된 정보를 흘렸고 기다렸다는 듯이 걸려든 김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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