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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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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09.18 09:58
최근연재일 :
2021.10.2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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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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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5)

DUMMY

“총 9만5000에 병력에 하달된 명령은 진주성에 있는 모든 조선인 전원 몰살이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생각지도 못한 패배에 천황이 직접 내릴 명령이다. 원흉인 김시민은 제거 됐지만 숨겨진 원흉인 네놈도 제거 대상이고 가족도 포함되어있다.”


크흥.


치밀한 놈들이고 엄청난 놈들이다.


진주성에 백성들이 최소 4~5만은 훌쩍 넘을 텐데 전원 몰살이라고?


그런데 웃기지 않나?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진주성에 머물고 있었고 가만히 있었으면 힘 안 빼도 될 텐데···, 의문은 길게 가지 않았다.


“쥐새끼 한 마리 성안에 박아놓는다면 또 무슨 일 벌일지 모른다는 판단이었다. 일단 밖으로 빼내 상주성 쪽으로 묶어 놓으란 명령이었고 죽이든 살리든 진주성 전투가 끝날 때까지 얼씬 못하게 만드는 게 내 임무였다.”


지독하게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던 순간이었다.


결국 놈들이 손바닥 아래서 놀아난 꼴이었다.


가슴이 저려왔다.


쿵쾅거리는 울림이 머릿속에서 맴도는데 빈 놋그릇 쳐대듯 쏟아지는 빗방울이 머리를 두들겨대자 텅텅거리며 울림이 더해지고 있었다.


진주성이 위험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가야했다.


몸을 일으키던 무수였다.


“행여나 진주성으로 향할 생각은 꿈도 꾸지마라. 김천, 거창, 고령 주둔한 병력만 각 이천씩이다. 네놈이 움직인다면 상주성은 온전치 못할 것이다.”


결정적인 한마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놈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의심도 잠시였다.


지금까지의 치밀함을 보면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칠흑 같은 어둠에 폭우, 다가올 앞날을 보는 듯 했다.


코끝이 찡해지며 내리는 비와 함께 펑펑 눈물이라도 쏟아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 손으로 얼굴에 빗물을 털어내자 무수의 시선을 피하지 않던 이츠라가 입술을 삐쭉거렸고 턱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내 수하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아나?”


침묵을 깬 질문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었다.


고래고래 질러대는 소리에 욕은 대충 알겠는데 나머지는 춘호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무사의 자존심을 보이란다. 크흐흐. 크하하하하!”


머리를 들어 얼굴에 쏟아지던 비를 맞으며 웃던 이츠라,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새끼들. 칼도 들었겠다. 인원수도 해볼 만하겠다. 퍽이나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인지, 나 더러 자결하란다. 크흐흐흑.”


참 비열한 새끼들이다.


지들 살겠다고 상관을 버리는 놈들이다.


놈들을 흘겨보자 칼을 어깨높이 까지 들고는 한쪽 발을 구르고 있던 놈들이었다.


쿵! 쿵! 쿵!


해보겠다는 거다.


다시 이츠라에게 시선을 돌린 무수.


머리를 바로 세우던 이츠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래! 해봐라!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서~!”


아그작!


혀를 깨물었고 잠시 후 머리를 떨구던 이츠라였다.


동시에 거친 고함을 앞세우며 뛰어나오던 왜놈들.


대원 한명이 조용히 월도를 무수 손에 쥐어 주고 있었다.


허리를 숙여 단검을 발목에 걸었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조용히 대원들을 살폈다.


활을 앞세우던 춘호과 궁사들, 나머지는 자신에게 맞는 무기로 놈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간다.”


무수가 달려 나가자 일제히 쏘아대던 화살들, 그에 앞서 놈들의 측면에서 활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영길이었다.


흐릿한 인형이지만 독특한 자세에 단번에 알 수 있는 몸놀림이었다.


퍽! 퍼어억!


오십이 출발했고 남은 인원이 47명이다.


왜놈들이 적어도 300~350쯤 추정된다.


어차피 통솔하기 힘든 상황에서 살려주기도 애매하다.


잘됐다.


차라리 이편이 낳을 것 같았다.


서걱~! 서걱~!


월도가 빗물을 갈랐다.


찔러 들어오는 왜놈의 손목을 잘랐고 팔, 허리, 목과 어깨 사이, 한방에 한 놈씩이었다.


백정의 도끼질 소리를 내던 담이는 빛 하나 없는 어둠에서 웅웅거리며 귀를 괴롭히는 공포심을 더하고 있었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한 너희들!


서걱! 서걱!


그럼 맛보여주마. 지옥을 말이다.


살인이라는 피 맛에 미처 버린 광기어린 눈빛에 이 살인마 새끼들아.


염라대왕 앞에서도 꼭 그렇게 하고 있어라.


장담컨대 그 눈깔 뽑아다가 간식삼아 와그작 씹어 먹을 거다.


터어억!


앞으로 나서는 손세용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무수였다.


“후. 후. 넌 뒤로 빠져.”


“할 수 있습니다!”


“주승이가 넌 천천히 오란다.”


피식.


손세용의 한쪽 입술이 올라갔다.


아직 할 만 하다는 거다.


뒤로 한발 물러서며 칼을 휘두르는 손세용의 기합소리에 힘이 더하고 있었다.



* * *



가마솥에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김이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아궁이에 불이 빠져 잠시 숨을 고른다 싶으면 어느새 뚜껑이 열려 속이 비워졌고, 잘 불린 쌀과 보리가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소쿠리에 담긴 찰진 밥은 고소한 참기름과 간장에 환상적인 비율이 곁들어져 주먹크기로 연잎에 말아져 누군가의 굶주린 한 끼 식량으로 전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세게나.”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서는 무수어머니의 입에서 옅은 신음소리가 베어 오고 있었고, 매우 지친 기색에 초취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쉬시라니까 참 말도 안 들으시네요.”


물장수가 지고 다닐 법한 커다란 양동이에 수북이 쌓아 올린 주먹밥을 어깨에 들쳐 메고는 뒤를 따르던 김형문이었다.


“다들 힘들게 왜놈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데 그런 한가한 소리는 집어 치우시게나.”


“걱정 되서 하는 소리 아닙니까? 그러다가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네, 왜놈들 물러날 때 까지는 말일세.”


맞는 소리다.


성안에 초가집들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전부 불에 타있었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성벽을 기어오르는 놈들과의 백병전에 쉴 틈조차 허락지 않았기에 녹초가 되어 있는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쉰들 쉬는 게 아닐 거고 잠든다 해도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지런을 떨고 있을 텐데 힘들다고 손을 놓고 있기도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묵묵히 뒤를 따르던 김형문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질척인 바닥, 눈부신 맑은 하늘이 오긴 하나 싶을 정도로 흐릿한 날씨.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살벌한 현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루 구석에 기대어 있는 날선 눈빛들, 핏물이 베어들어 있는 바닥, 그 위에 시체들, 간간히 날아오는 주인 잃은 총탄들에 몸을 낮추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얼굴, 손끝에 찌든 때, 열일 계속되는 비에 땀과 섞인 구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가운데 힘없이 내민 손에 한 개씩 쥐어주며 일일이 악수를 청하던 무수어머니였다.


간혹 손을 내밀지 않은 병사의 어깨를 치면 깜짝 놀라며 날선 반응에 겁이라도 먹을 법한데 그럴수록 병사의 손을 감싸며 위안 섞인 말을 하고는 주먹밥을 한 개 더 쥐어 주고 있었다.


쿠쿠쿠쿵! 쿠쿠쿵!


흔들림이 더하고 있었다.


처음엔 자잘한 진동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발걸음이 휘청될 정도로 크게 흔들리고 있던 진주성이었다.


휘청되며 넘어지는 무수어머니에 팔을 낚아채던 김형문.


“나머지는 제가 할 테니까 어머니는 일단 돌아가서 쉬세요. 보세요. 지금 이렇게 서 있지도 못하잖습니까.”


“고집 좀 그만 부리시고.”


“가족이 없다고 했죠?”


자세를 잡으려던 무수어머니가 한 쪽 무릎을 바닥에 기대 놓고는 물끄러미 김형문을 바라보며 말을 끊었다.


흉터에서 보이는 위협감보다는 깊은 슬픔과 외로움이 눈에 들어왔었다.


“그런데 그건 또 왜?”


잡았던 손에 힘을 빼고는 천천히 들어 올리던 김형문이었다.


무수보다 대여섯 위라 했다.


넌지시 던진 한마디에 일손을 도운지 벌써 엿새째 아니며 이레쯤이다.


불평한마디 없었다.


꾀를 부릴 법한데 전혀 그런 모습도 없이 오히려 팔을 걷어붙이고는 적극적으로 일을 돕고 있는 모습이 착실하고 건실해 보였다.


“의형제라고 했던데···.”


“그게, 어머님~!”


손사래를 치며 놀라던 김형문.


“그리하세요. 그리고 언제든 원하면 집에 와서 살아도 좋습니다.”


“어머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의붓아버지가 자신을 거둘 때 그 느낌처럼 말이다.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과 눈빛이었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한 거짓말은 무수를 찾아야 했기에 했던 거다.


“어머니! 그게 말입니다!”


양손바닥을 펼쳐 흔들던 김형문.


“무수 만나면 꼭 좀 전해주세요. 진짜 의형제 맺으라고.”


말을 끊은 무수어머니였다.


쿠쿠쿠쿵! 쿠쿠쿵!


다시 들려오는 엄청난 굉음에 몸이 심하게 흔들렸고 몸이 아래로 푹 꺼지자 무수어머니를 안아들고는 자세를 잡던 김형문이었다.


사람 키 정도 아래로 푹 꺼진 난간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고, 성벽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자세를 바로 잡았고 흔들림이 그친 상황에 한숨 돌리던 찰나였다.


“성이 무너졌다! 왜놈들이 들어온다! 피해라!”


“동쪽 성벽이 무너졌다.”


연이어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 성이 무너진 것이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던 어머니, 성벽을 타고 성루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던 김형문이 서둘려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자세를 낮추고 등을 보이던 김형문이었다.


“들으셨죠? 일단 업히세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꽉 잡으세요!”


떨리는 손으로 목덜미를 끌어안던 어머니였다.


거침없이 난간을 내려왔고,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간 후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그 동안 두텁고 견고한 성벽에 그나마 기댈 수 있는 희망이 무너진 것이고 동시에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성이 무너질 거란 생각, 왜놈들한테 패배할 거란 생각 꿈에도 생각 하지 않던 백성들이었다.


오히려 왜놈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진주성으로 더 많은 백성들이 몰렸고 그로인해 지금까지 버티고 있던 진주성이었는데 성이 무너짐과 동시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관군과 의병의 반대방향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


무너진 성벽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던 왜놈들, 함성은 커져만 갔고 비명소리가 성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견고한 동문이 활짝 열리자 곧이어 북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 박살이 나고 있었다.


꽉 조여진 목덜미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쯤에 멀리서 창백한 얼굴로 연신 어머니를 외치며 뛰어 나오는 두 여인이었다.


“어머니~!”


“왜 업혀오세요? 어디 다치신 건가요?”


큰 며느리와 작은 며느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니다. 일단 서두르자.”


한손에는 큰며느리, 다른 손엔 작은며느리를 양쪽에 부여잡고 발걸음을 재촉하려던 무수어머니가 머리를 돌렸다.


“자네도 서두르게.”


허리를 숙여 숨을 돌리고 있던 김형문,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던 세여인 뒷모습에 자연스럽게 몸에 힘이 들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전쟁터에 무기하나 없으랴, 손에 맞는 검을 하나 집어 들고는 뒤를 경계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제껏 없었던 긴장감에 손아귀에 땀이 맺히고 있었다.


좁은 골목 사이를 벗어나자 너른 광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드넓은 광장에 모여 있었고 어딘가 있을 탈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초췌한 얼굴들, 남루한 복장이 그간의 고생들을 말해주듯 힘겨운 표정들에 백성들이 거의가 여자들이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남자는 노인이거나 어린 아이들 뿐이었다.


비명소리가 가까워지며 드문드문 왜놈들의 모습이 모이자 다급하게 한곳을 가리키던 김형문이었다.


“일단 저쪽으로~!”


진주성 제일 남서쪽 구석 망루에 자리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혼잡한 인파를 뚫고 겨우 자리를 잡은 일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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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 6 장 진주성(4) 21.10.07 65 2 12쪽
33 제 6 장 진주성(3) 21.10.07 66 2 12쪽
32 제 6 장 진주성(2) 21.10.06 7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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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3) 21.10.05 78 2 12쪽
28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2) 21.10.04 85 2 12쪽
27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 21.10.04 84 2 12쪽
26 제 4장 단기필마(5) 21.10.02 87 2 12쪽
25 제 4장 단기필마(4) 21.10.02 8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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