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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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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09.18 09:58
최근연재일 :
2021.10.2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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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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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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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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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

DUMMY

“승진하겠군. 손 좀 내려주게나.”


“그게···.”


기다란 바늘이 목뒤에 박히면서 온몸을 휘감는 통증에 말이 멈춰진 무수였다.


“이깟 바늘하나 참지 못하는 자네가 어찌 저 큰사람하나 팔이 끊어 저라 들쳐 업었을꼬.”


“지금 그런 말씀하실 때가···.”


다시 침을 놓여 졌고, 머리를 푹 숙이던 무수였다.


이 양반 돌팔이인건 분명했다.


다친 곳은 바른쪽인데 반대쪽에 침을 놓는다.


그리고 말도 못하는 고통을 수발한다.


차라리 왜놈들 총탄에 맞는 게 반에 반쯤은 덜 아픈 거 같았다.


그런데 신기한건 목이 돌아간, 입이 돌아간, 걷지 못하던, 심지어 뒷방에 누워있는 조경조차도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침 몇 번 놓아주니 기력을 찾는다.


사람의 탈을 쓴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가 아닌가 싶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함을 흘기던 무수였다.


무수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노함이 잠시 후 침을 뽑아내고는 치료용 도구들을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고 입을 열었다.


“귀신같은 솜씨라고 감탄하는 건 아닐 테고. 그 요상한 눈빛은 이제 거두고 준비 하시게나 손님이 오는 모양 일세.”


놀란 토끼 눈을 하던 무수가 두리번거리자 잠시 후 등에 깃발을 한 병사와 춘호가 시야에 들어왔다.


맞는 거다.


귀신이 분명했다.


사람 속마음도 읽어 내더니 이제는 천리안까지 보니 말이다.



소식이 전해졌다.


신립이 일전을 치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왜놈들이 들어와서 처음 치르는 대규모 전투에 양쪽 진영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2군이 근거리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다만, 김천에 머무르고 있는 3군은 어찌된 영문인지 조경과의 일전 후 요지부동이라는 소식이다.


그거면 됐다.


500명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적을 묶어 놓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상부에 보고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200명 정도 잃었고 500명이상 죽였다.


비록 후퇴를 했지만 패배한건 아니다.


그리고 발을 묶었다.


뒤를 돌아보았고 조경의 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북쪽을 바라보았다.


신립이 떠올랐고 한 치의 의심 없이 패배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어딘지 가슴 한 쪽이 불편했다.


고개를 다시 돌려 남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생각났고 은아가 생각났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가슴이 한 쪽이 답답했다.


머리를 흔들던 무수가 노함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자 눈이 마추졌다.


“약주한잔 생각나지? 벌써 거하게 드시고 계시는 곰 새끼 한 마리 있는데 한번 가봐. 적당히 하고.”


등골이 싸했다.


역시 귀신은 못 속인다고 했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자 어느 틈엔가 춘호가 다가와 등을 도닥여 주기 시작했다.


* * *


날이 밝기 전, 최소한의 수하를 이끌어 정찰을 직접 다녀온 신립이었다.


군집을 이루고 있는 왜놈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였다.


모닥불의 수, 병장기들의 양, 임시 천막과 최소한의 식량들이 놈의 병력의 수를 가늠하게 만들었다.


기습전이냐, 수성전이냐, 아니면 전면전이냐는 문제가 아니다.


팔천이 넘는 병력, 아니 만이 넘을 수 있는 병력이다.


병력으로만 따지면 대등한 상황이었고 지형과 지리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조선이 유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병력의 질이 문제다.


북방기병대 최소 오천정도 지원이 됐더라면 아니 삼천이라도 지원이 됐더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오합지졸인 상황이었다.


명령에 즉각 적인 반응, 노련한 움직임, 지휘관의 순발력, 중요한건 전투경험이 전무한 병사들이 뭐하나 제대로 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그저 조총소리에 놀라 몸을 움츠리며 숨어버리는 웃지 못 할 촌극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시간이 촉박했다.


아니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한양에 부임하고 나서부터 병력을 재정비 했어야 했고 훈련에 매진해서 부국강병에 힘을 쏟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장인의 검은 마수들을 척결해야 했고 뿌리를 뽑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바위에 몸을 내던진 것 마냥 힘들었고 난관에 봉착했던 수많은 일들이 어느덧 결실을 맺으려 할 때 터진 전쟁이었다.


이때다 싶었던 검은 마수들이 웅크려있던 곰팡이 마냥 걷잡을 수 없이 다시 피어나왔고 신립이 요구한 병력은 무참히 반려되어 초라한 병력만을 이끌어야 했다.


전쟁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시작됐으면 막아야 하고 이겨야 한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많은 수에 산적이 나타났는데 어린아이들 몇을 데리고 가서 죽창 들고 물리치라는 소리다.


먹먹하기만 한 가슴, 노함이 생각났고 무수가 떠올랐다.


왜놈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결정의 내려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댄 신립은 바로 앞에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탁자 위에 찻잔만 뚫어지게 쳐다 볼 뿐이었다.



* * *



하루가 더 지났고 해가 머리위에서 부지런을 떨고 있을 무렵 깨어난 조경이 간단한 요기로 배를 채우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수하들과 조우하고 있었다.


무수에게 손을 내밀었고 창이 날아와 손가락이 절단되는 것 까지는 기억난다고 했다.


그 후 머리로 날아온 창이 조경의 투구를 강타하자 눈이 돌아가며 정신을 잃었고, 쓰러지는 조경을 죽을힘을 다해 끌어 당겨 간신히 들춰 업고는 말을 달리다 조총을 몇 방 더 맞았다고 했다.


죽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고, 노함의 응급처지가 조금이라도 지체 됐더라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나흘이 지났다고 했고, 신립이 전쟁을 시작한지 꼬박 하루가 지났고, 희망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소식이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경의 시선에 무수의 어깨에 메어져 있는 붕대들이 보였다.


죄스럽고 미안했다.


자신이 내린 명령에 병사들 모두를 잃을 뻔했다.


종군을 자처했던 그다.


돌격대를 맡겼고, 적진에 단신으로 뛰어들었던 그다.


병사들을 구했고 구사일생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구해줬다.


마음 같아선 수하로 남기고 싶었다.


같이 이 전쟁을 마무리 하며 함께하고 싶었다.


허락한다면 권율대장군님에게 같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녀석을 품기에는 자신의 그릇이 작았다.


아니 차고도 넘칠 것이 분명했다.


힘겹게 입을 연 조경이었다.


“철수다. 여길 벋어나 권율장군님에게 간다.”


굳은 표정에 묘한 화색이 돌기 시작한 수하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이런 소규모의 병력에 귀속되어 고생하는 것보다 대규모 병력에 귀속되어야 살 확률도 높아지고 환경이 좋아진다는 것을 아는 거다.


“다만, 돌격장 정기룡은 곤양으로 간다. 마침 곤양 군수 이광악이 진주로 향하기에 가수(假守, 임시수령)로 임명하기로 했다. 지근거리가 고향이라고 들었고 당분간 전투가 힘들 수 있기에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니 따르도록 하여라.”


모여 있던 수하들이 놀라며 일순간 조용해졌다.


통상 전공을 세운 병사는 곁에 두거나 뛰어난 장수에게 수하로 보내진다.


감당하기 힘든 재물도 손에 쥐어 준다.


하물며 조자룡의 환생, 단기필마로 적진 한 가운데서 지휘관을 구출해 내온 실로 엄청난 일을 벌인 자이고, 조선병사들 사이에서 입방아에 오르며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는 자인데 뭔가 잘못된 인사조치 인가 싶은 표정들이었다.


“필요한 병력은 선발해서 원하는 만큼 데리고 가도 좋다.”


“더는 필요 없습니다. 지금 있는 수하들만 데리고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 부탁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경의 말이 이어지자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던 주위에 있던 수하들이 무수의 답변에 다시 놀란 토끼 눈이었다.


담담한 표정의 무수에게 안타까운 시선이 이어졌다.


금은보화를 손에 쥐어줬는데 바닥에 버리고 돌아서는 꼴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의 아쉬운 표정을 뒤로 한 채 자리를 털고 일어난 무수가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일행에게 걸음을 옮기자 병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목숨 구해줘서, 당당한 모습 보여줘서, 기가 죽었던 조선병사들에게 작은 희망을 불어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각자 품은 마음은 다르지만 뭔가 해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데 해줄게 마땅한 게 없는 듯 그저 떠나는 마당에 악수라도, 아니면 끌어안고 도닥여 주고 싶었다.


그 와중에 삶은 달걀을 혹시나 깨져서 상할까봐 볏짚에 돌돌 말아 오는 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귀한 곶감을 가져나온 자, 옥수수 알갱이를 한 보따리 싸온 자들이 주섬주섬 떠나는 무수의 수하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말에 올라탄 무수였다.


뒷걸음치며 천천히 길을 내주는 조선의 병사들이 한결 가치 뭔가 한마디 해주기를 바라는 표정이었고 푹 숙여진 머리에 어깨가 한껏 내려져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던 무수가 입을 열었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왜놈들 몰아낼 때 까지 꿋꿋하게 머리 세우고, 이 악물고, 허리 세워서 놈들에게 움츠린 모습을 절대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단한 걸 기대한 게 아니다.


어떤 말이라도 좋았다.


서운하고 아쉬워서 한마디 듣고 싶었던 거였다.


나지막한 무수의 짧은 한마디에 참았던 눈물이 맺혔고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 *



1592년 4월28일 비보가 전해졌다.


신립이 무너진 것이다.


팔천에 달하는 병사가 죽임을 당했다.


화살을 무심코 쐈는데 그 궤적을 찾아 일부러 몸을 던진 꼴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정도로 왜놈들이 총을 쏘자 벼락같은 소리에 놀라 혼비백산 하며 허둥대다 날아오는 총탄에 몸을 던져 죽었고, 강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왜놈들이 한 거라고는 그저 전진하며 사격훈련만 할 뿐이었다.


그 흔한 기습전도, 그 흔한 공성전도 없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설마하며 피할 생각이 없던 충주성에 있던 수많은 백성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전쟁이 아닌 학살이 있었다.


진격하는 왜놈들이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며 무참히 짓밟고 무자비한 살육을 즐기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 10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더러운 윤간이 시작됐다.


심지어 길거리 한복판에 옷이 찢겨져 하얀 피부가 드러내며 죽어있던 시체까지도 몹쓸 짓을 했고, 남편과 아이가 보는 앞에서도 자행되고 있었다.


비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난 4월 30일 백성들 입장에서는 천지가 개벽할 만한 소식이었다.


왕의 파천이었다.


이른 새벽 궁을 버리고 떠난 선조였다.


궁을 버리고 떠나려했으면 우선 백성들을 피난 시켰어야 했고, 보호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최소한의 병력이라도 남겼어야 했다.


그러나 텅 비어져 있던 궁궐이었다.


백성들은 동요되기 시작했다.


나라에 버림받았고, 임금에게 짐승 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고, 무능한 신하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분노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섰다.


굳게 닫힌 사대문은 백성들의 피난조차도 허락지 않았기에 민심은 폭발했고, 극에 달하는 분노에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라로부터 받은 건 없어도, 양반들에게 핍박을 받았어도, 그런 나라마저도 잃거나 침략자에게 점령을 당한다면 더 심한 박해가 있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또한 하늘에서 내린 벼락도 왕이 부덕해서 내린 벌이라고 해도 믿는 이 시대에 백성들을 뒤로 한 채 몰래 한 도망은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장례원과 형조가 가장 먼저 불에 타기 시작했다.


노비문서와 각종 문적(文籍)들이 가득한 곳으로 달려간 백성들이 자신을 옥죄고 있던 문서들을 태워 버림으로써 더 이상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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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4장 단기필마 21.09.30 9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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