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완결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09.18 09:58
최근연재일 :
2021.10.20 06:2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5,710
추천수 :
105
글자수 :
253,130

작성
21.10.11 10:00
조회
68
추천
2
글자
12쪽

제 7 장 운명(3)

DUMMY

싸움을 잘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 뒤이어 나온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입술귀신이 김형문이고, 양아들이라고 했다.


수벽(택견)의 전수자였던 그는 왕실 호위무사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은퇴 후 김형문을 데리고 수벽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도중에 뛰쳐나갔다.


입술귀신 이라는 소리에 단박에 알아차린 노인은 무수를 이용해서 김형문을 제자리에 돌리고 싶었던 거였다.


일종에 패배감을 안겨주고 싶었고, 넓은 세상 그저 하찮은 존재라는 걸 각인 시켜주고 싶었던 거였다.


짧은 시간, 육 개월 남짓이었다.


초식 같은 건 일절 없었다.


상대방의 눈빛, 어깨의 미세한 움직임, 동작에서 나오는 온몸에 근육들의 연관성, 피의 흐름과 관련된 혈의 위치, 그리고 매 타작이 전부였다.


수없이 많은 기절, 극한의 고통, 죽음에 이르는 공포심, 이겨냈고 견뎌냈다.


벽을 뚫고 나온 느낌이었다.


일방적으로 이긴 싸움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됐다.


엉망진창이 된 상태이지만,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따뜻했다.


한 쪽 어깨를 들춰 멘 단단한 어깨, 듬직한 덩치, 담이의 품이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 * *



뽀드득, 뽀드득.


눈 덮인 새하얀 풍경, 어둠이 내려오며 눈부신 반짝임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앞선 이에 발자국에 다시금 소리 없이 쌓여지는 눈을 고스란히 다시 밟고 지나가며 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살을 에는 추위, 무릎까지 쌓인 눈, 어깨에 멘 두 개의 횃불, 한 손에 하나씩 조심스럽게 들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백성들과 의병들이었다.


노인들부터 어린아이까지 직접 왜놈과 맞설 수는 없지만 전쟁에 참가했고 자원한 사람들이었다.


상주성을 점령하고 있던 왜놈들, 한양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인 상주성은 놈들의 군량미를 공급하는 병참기지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고, 그로 인해 노략질이 매우 심한 상황이었다.


진주성을 대승으로 이끌었던 숨은 주역인 무수는 곧바로 상주로 대원을 이끌었다.


상주 용화동에서 몸을 숨긴 상주목사 김해가 왜놈과 대치하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놈들을 계곡으로 유인해 몰살시켰고, 십 여일 전에는 노략질을 하러 나온 놈들을 수급을 취했고 이 후 몇 차례 성 밖으로 나온 놈들을 전멸시켜 상주성에 놈들의 발을 묶어 놓았다.


성문을 굳게 닫았고, 개미새끼 한 마리 성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던 상황,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은 단 하나였다.


상주성 탈환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후 7개월 만에 조선에서의 최초의 시도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상주성 안에서의 병력의 구성이나 무기, 그리고 지휘관의 능력을 고려해서 결정을 했고 바로 실행에 옮긴 무수였다.


실재 전투병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정보가 결정적이었다.


백성들을 모집했고, 병력을 최대한 모아 상주성 외곽 곳곳에 배치를 지시했고, 북쪽에 자리를 잡고 있던 무수였다.


좌우로 여섯 필의 말을 세웠고, 중간에 잘 말린 집채만 한 오동나무 앞을 뾰족하게 깎아 수레에 단단히 묶어 놓았다.


준비를 마친 대원들, 개인 장비를 추슬렀고, 명령을 기다리며 높지 않은 진주성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었다.


캄캄한 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눈, 잔잔한 선율이 들려오고 있던 상주성 안이었다.


“뜬금없는 소리지만 지금 성 안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이런 가사를 넣으면 아마도 대박일거다.”


무수의 침묵을 깬 한마디였다.


“진짜 뜬금없는 소리네.”


“무슨 가사를요? 삼촌?”


무수의 말에 춘심이 입을 씰룩거리자 아리가 궁금한 듯 무수를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온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다.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잠시 무수에게 집중된 시선, 그리 길지 않던 가사다.


침묵도 잠시였다.


아리가 입을 열었다.


“삼춘이 저 성을 자유롭게 뛰어 넘고 싶다는 소리네요. 그리고 이 추위에 나비는 어서 빨리 봄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맞죠?”


“그렇게 되나?”


“시방, 아리 말이 맞아불지라.”


“날은 춥고 저 성을 넘어가고자 하는 네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네.”


무수가 반문을 하자 담이와 춘호가 말을 이었다.


“노래 가사가 아니고 소원을 말하셨네요. 소원 말해서 들어 준다면 나도 한마디 하고 싶네요.”


두툼한 털모자를 깊숙하게 들여 쓴 박영수가 입을 열자 시선이 박영수에게 몰렸다.


“지금 오지게 내리는 이 눈이 화살로 변해서 저 안에 왜놈들 대가리에 하나씩 꽂았으면 원이 없겠네요. 그치? 칠수야?”


“크크크.”


칠수가 웃자 대원들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한바탕 웃음꽃을 펴댔다.


대놓고 크게 웃지는 못하지만 잠시나마 긴장이 풀린 듯 서로의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며 옅은 미소를 내보이고 있던 대원들이었다.


무얼 바라는 것도, 소원을 빌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잔잔히 들려오는 선율에 가사를 붙여 보았던 것이었다.


웃었으면 된 거고,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렸으면 된 거다.


목을 꺾었고, 어깨를 돌리던 무수의 치켜뜬 시선이 향교봉으로 향했다.




상주성 동문.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수백의 관민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몽둥이, 활, 농기구, 제각각 쥐어진 무기들이 열악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이글거리는 눈빛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노함장군님.”


뽀드득 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상주목사 김해가 노함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노함을 불러댔다.


대답 대신 목을 돌려 김해를 보라보던 노함이었다.


“다시 말씀드리는 거지만, 이런 오합지졸가지고 전투를 벌인다는 게 무모하지 않나 싶습니다.”


“명령권은 자네한테 있고, 무를 수 있는 것도 자네인거로 알고 있네만.”


머리를 돌렸고 상주성 뒤쪽 향교봉에 시선을 고정시킨 노함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정장군에게 전권을 부여한 이상 저도 명령을 받는 입장에서 건의···.”


“십여 일 이상 머리를 짜냈고, 결정 한 사안이네. 의심난다고 안하고, 하기 싫다고 안하고 또 뭔가?”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성을 버리고 쥐새끼 마냥 숨어 있던 자네였네. 저기 뒤에 날선 눈빛을 하고 농사할 때 쓰던 이빨나간 장비 들고 결의를 다지고 있는 백성들이 안보이나?”


“···”


“자네가 버린 성, 자네가 내친 백성들이네. 저 순진무구한 백성들이 자기 집 찾겠다고 목숨 걸고! 이 어둠에! 이 뼈가 갈기는 추위와 싸우며 힘겹게 한 손 거들겠다고 나선 저 사람들!”


“···”


후. 후.


순간 커진 목소리였다.


잠시 숨을 고르는 노함이 김해를 바라보며 차가운 시선을 주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노함의 커진 음성을 들어야만 했던 병사들이 숨을 죽였고, 귀를 열며 김해에게 따가운 시선을 주고 있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네. 적어도 나라에 녹을 먹고 있다면 말일세.”


몸을 움츠리며 뒤통수를 한차례 쓸어내고는 손을 비벼대던 김해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지휘관은 의심하며, 토를 단다거나, 몸을 숨기기에 급급한 분은 없었네. 지난 30년간 말일세.”


“신···, 신립 장군님 말씀이시면.”


백정보다 못한 새끼다.


적어도 상주를 관할하는 최고의 자리에 있는 놈이라면 죄송하다, 정진해 나아가겠다는 소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신립장군님이다.


노함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다시 시선을 향교봉으로 돌렸다.




“칙쇼~!”


잔잔하게 울림을 주던 악사의 손끝이 멈춰졌고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여?”


얼굴에 뿌려진 술을 쓸어내리며 닦아 내던 수하를 노려보고 있던 도다였다.


맷집 좋게 생긴 두툼한 턱에 난 수염을 매만지다 만질게 없어 보이는 대머리를 한 차례 훑어 내고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봐, 몇 차례 조선 놈들에 공격에 속수무책 당했다고 내가 겁이라도 먹은 줄 아나? 그래서 성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시정잡배처럼 요래 놀고만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장군들이!”


보고를 하러 온 수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들고 있던 도다였다.


“그깟 조선 놈들 따위 무서워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 명령을 기다리는 거고! 대책을 강구하려고 있는 게 안보이냐는 거다!”


모여 있는 장수들의 머리가 끄덕여 졌고 한심스러운 듯 계속해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성을 습격한다는 정보? 언제? 지금?”


“그건 알 수 없지만 조선 놈들이 모이고 있고 수상한 조짐이 포착···.”


퍼어억!


들고 있던 호리병을 머리에 내려친 도다였다.


“제대로 된 정보를 가져오란 말이다. 이 새끼야~! 이 추운 날씨에 눈보라까지 휘날리는 이 혹독한 날씨에 무슨 공격에 대비라는 거야! 쥐새끼 마냥 숨어서 벌벌 떨고 있을 조선 놈들···.”


쿠쿠쿠쿵!


적이다!


조선놈들이 나타났다! 성문이 무너졌다!


벌떡 일어나던 도다와 장수들, 눈이 휘둥그레 커지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활짝 열린 성문, 성 외곽에 포진해 있는 횃불들이 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고, 성벽위에서는 언제, 어떻게 넘어왔는지 모르는 조선인들이 살육을 즐기고 있었다.


당황한 도다, 몸이 휘청거렸다.


갑자기 출연한 조선놈들 때문이 아니었다.


뭔가 몸에 들어왔기에 머리를 숙이던 도다였다.


가슴팍에 박힌 불화살을 멀끔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향교봉 맨 꼭대기 봉수대에 불이 붙자, 일제히 횃불이 온 사방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한사람이 두 개에서 최대 네 개 까지 횃불을 붙였고, 상주성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장관이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횃불들이 설산에 반짝임과 동화되며 마치 거대한 불기둥이 성을 집어 삼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성벽아래 몸을 기대고 있던 무수, 여섯 마리 말에 의해 단 한방에 성문을 박살내자, 준비된 갈고리를 성벽에 던졌고 거침없이 줄을 타고 올라갔다.


활활 타오르는 수레를 이끌며 거침없이 달리는 말, 성문으로 집중된 왜놈들의 시선, 늠름하게 성벽에 올라 경계병의 목을 가르고 있던 무수와 그 일행이었다.


환하게 정리가 잘된 불빛, 경계가 삼엄한 누각 최상단에 뛰어 나온 대머리, 왜놈들의 목을 따고는 활을 저미었고 불을 붙이던 무수였다.


무수의 손을 떠나며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나간 불화살이 놈의 가슴팍을 후벼 파며 뒤로 넘어가자 고함을 질러대며 모습을 감추던 나머지 놈들이었다.


“저쪽이다.”


무수가 몸을 날리자 뒤따르며 잔나무가지 쳐대듯 왜놈들을 제거하며 달려가는 대원들이었다.


자리 잡고 있던 궁사들이 성문 앞으로 튀어나오는 왜놈들에게 화살 비를 선사하자 당당히 말을 이끌고 성문을 통과하는 기병대들이 뒤를 이었고, 잠시 후 보병들이 우르르 성안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다닥, 다다닥.


거칠어진 호흡,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번득이는 눈빛, 등에 꽂혀 있는 월도.


그놈이다.


말로만 듣던 그놈을 보았고, 상관의 가슴팍에 우겨넣은 불화살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월도와 편곤, 거기다가 귀신같은 활 솜씨에 가능한 놈과 마주치면 안됐고, 맞서 싸우다가 고향 땅 밟지 못한다고 했다.


죽은 도다가 한 식경도 채 안 되서 해준 말이었다.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주눅이 들었던 건 사실이었다.


멀었지만 방금 본 그 눈빛은 정말이지 잊지 못할 만큼 강렬했고 무서웠다.


동문 쪽이 조용했다고 했다.


일단 성을 버리고 후퇴명령을 내렸다.


혹시 모르니까 최소 병력만 방어를 하고 최정예 부대를 동문방향으로 먼저 길을 확보하라고 했다.


그나저나 이놈의 계단은 왜 이렇게 높고 많은지,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완결공지입니다. 21.10.20 73 0 -
공지 참고하고 읽어 주시면 도움이 될겁니다. 21.09.18 141 0 -
48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7) 21.10.20 78 3 10쪽
47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6) 21.10.19 49 1 11쪽
46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5) 21.10.18 48 1 12쪽
45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4) 21.10.16 59 1 12쪽
44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3) 21.10.15 57 1 12쪽
43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2) 21.10.14 55 1 12쪽
42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 21.10.13 64 1 13쪽
41 제 7 장 운명(6) 21.10.13 67 2 12쪽
40 제 7 장 운명(5) 21.10.12 61 2 12쪽
39 제 7 장 운명(4) 21.10.12 61 3 12쪽
» 제 7 장 운명(3) 21.10.11 69 2 12쪽
37 제 7 장 운명(2) +1 21.10.11 62 3 12쪽
36 제 7 장 운명 21.10.08 69 2 12쪽
35 제 6 장 진주성(5) 21.10.08 69 2 12쪽
34 제 6 장 진주성(4) 21.10.07 64 2 12쪽
33 제 6 장 진주성(3) 21.10.07 66 2 12쪽
32 제 6 장 진주성(2) 21.10.06 74 2 12쪽
31 제 6 장 진주성 21.10.06 85 1 12쪽
30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4) 21.10.05 92 3 12쪽
29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3) 21.10.05 78 2 12쪽
28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2) 21.10.04 84 2 12쪽
27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 21.10.04 84 2 12쪽
26 제 4장 단기필마(5) 21.10.02 87 2 12쪽
25 제 4장 단기필마(4) 21.10.02 87 2 12쪽
24 제 4장 단기필마(3) 21.10.01 85 2 12쪽
23 제 4장 단기필마(2) 21.10.01 91 2 12쪽
22 제4장 단기필마 21.09.30 91 2 12쪽
21 제3장 귀신을 보는자(9) 21.09.30 90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