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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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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09.18 09:58
최근연재일 :
2021.10.2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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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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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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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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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4)

DUMMY

쏟아져 내리는 비가 이렇게 사람에 심금을 울릴 줄 몰랐다.


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허리에 묶인 줄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에서 잘려진 귀에 피딱지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픈 건 둘째 치고 귓속에 파고들며 웽웽 거리는 파리며 날벌레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때마침 비가 퍼붓자 거짓말처럼 없어지며 상쾌함 마저 들고 있었다.


입에 물고 있던 재갈에 젖은 빗물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계속해서 쭉쭉 물기를 짜내 마시자 느슨해지던 재갈이 벗겨졌다.


살았다.


몇 일째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일단 목을 축였으니 당분간은 살 수 있고, 이제는 고함소리도 낼 수 있다.


혼미했던 정신도 제대로 돌아왔고 몸에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깟 투정 한번 부렸다고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분명히 노함의 지시가 있었을 거고, 정기룡이 압력을 가했을 거다.


뭐? 상명하복이라고? 항명? 뚫린 입이라고 개소리나 지껄이는 이영길 이 개새끼는 무조건 뒈진 목숨이다.


아니 노함, 그리고 정기룡 너도 뒈질 각오하고 있어라.


누군가 지나가서 살아난다면 너희들은 내 손으로 반드시 죽인다.


내 기필코 너희들을 죽여다가 뼈째 씹어 먹어 줄 테다.


이를 갈던 상주목사 김해였다.


순간 욱해서 대들었다가 이영길에게 죽도록 얻어터졌고, 욕 한마디 더 했다가 귀가 잘리고 나무에 매달려진 것이었다.


죽이진 않는다고 했는데 차라리 죽었으면 할 정도로 끔찍한 고문이었다.


먹지도 못해, 피가 솟구쳐 잠도 제대로 못자, 거기다가 잘린 귀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에 각종 벌레들, 생각하기도 싫은 지난 며칠이었다.


다시 힘을 내서 손목에 반줄을 이리저리 비틀어 풀어보려 안간힘을 써 보았다.


며칠 동안 먹지 못한 마른 몸에 젖은 반줄, 풀릴듯하다 다시 조여지는 밧줄, 손목을 힘껏 비틀자 새큰거리며 살갗이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훗. 훗.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비인지 땀인지 모르는 물줄기가 연신 얼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를 외치며 눈을 질끈 감으며 손목에 집중하던 김해가 엄지의 관절을 깊이 우겨넣자 두둑거리며 뼈가 빠지는 느낌과 고통이 밀려왔다.


으아악~!


후. 후.


참자. 참자.


심호흡을 하며 참을 인을 속으로 외치며 손목을 조금씩 빼내던 김해의 머리 아래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뜬 김해 머리 아래로 큰 입을 벌리고 있던 맹수가 비와 함께 흘러내리던 김해의 핏물을 받아먹고 있었다.


“으아악~!”


“저리가~! 저리 가란 말이다~!”


머리와 다리를 한없이 치켜들며 놀라던 김해 눈에 깜짝 놀라며 몸을 웅크리던 맹수와 눈이 마주 쳤다.


아그작!


호랑이였다.


웅크리던 몸을 살짝 일으켰고, 김해의 머리를 잡아 뜯기 시작했다.



* * *



목안으로 들어가던 강렬한 목 넘김이 사선으로 들어오는 날카로운 자극에 멈춰졌다.


이츠라의 경직된 몸.


퍼억!


무수의 팔꿈치가 콧잔등 박혔고 머리가 뒤로 튕겨 나가자 뒤통수를 낚아채고는 단도를 쥐고 있는 주먹으로 턱에 다시 한방을 먹였다.


낌새조차 없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힘없이 쥐고 있던 호리병을 낚아채던 무수가 아츠라의 허벅지에 단도를 깊숙이 쑤셔 넣은 직후였다.


“이런 걸 혼자서 마시면 쓰나. 술은 나눠 마시라 했거늘.”


한 모금 목에 털어 놓고 춘호에게 넘겨주고는 대원들이 결박을 하자 잘려진 통나무를 이츠라 앞에 놓고 마주보고 앉은 무수였다.


“제법이더라. 셋이 희생됐다. 지금 세 방은 그 대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수의 말을 춘호가 통역을 해주자 번뜩이는 눈빛을 쏘아 붙이던 이츠라였다.


“내가 이런 말 할 줄은 몰랐는데, 협조만 잘하면 살려 줄 용의는 있다. 물론 저기 몰려오고 있는 수하들 전부는 아니고 일부정도긴 하지만 말이다.”


깍지를 가볍게 쥔 손을 앞세우며 놈을 노려보던 무수였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던 이츠라의 작디작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만 묻자.”


고통이 심할 텐데 오히려 반문을 했고 두 손을 들어 내보인 무수였다.


“수하들은 어떻게 했냐? 다 죽였냐?”


“쉽지 않았지.”


크흥.


오백이 희생됐는데 셋만 죽었다고? 정기룡이 이끄는 병력이 오십 명 정도라고 했는데 열배가 넘는 인원을 가지고 고작 셋?


“네 놈이 정기룡이냐?”


다시 질문을 하던 이츠라였다.


믿기 힘들었다.


“혹시 추가병력을 이끌었나?”


상상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꾸만 말이 나오고 있었고, 눈앞에 있는 놈이 누군지 확인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새끼가 말이 많구나. 시간 끌면 뭐가 나아지나? 저기 달려오고 있는 놈들을 기대하고 있나 본데···.”


손가락 두 개를 펼쳤고, 눈이 두세 번 깜박일 때쯤 이었다.


“박영수~!”


두 개의 검은 구체가 뛰어 들어오는 수하들 한복판으로 날아가자 일제히 등패를 꺼내들고는 몸을 숨기던 조선인들이었다.


쿠우쿵~!


으아악! 으아악!


벼락같은 굉음 뒤에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하얀 연기가 걷히자 셀 수 없이 많은 수하들이 바닥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힘든 광경이었다.


이 비에? 불조차 켜기 힘든 상황에서 심지가 젖을게 분명한데 폭탄을?


쪽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놈들의 실력도 실력이겠지만 말로만 듣던 비격진천뢰를 소지하고 있던 놈들이다.


조총을 들고 오지 않은 게 뼈저린 후회가 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대화가 통하길 바란다.”


다시 등패를 등에 걸던 무수가 자세를 바로 잡으며 입을 열었다.


한껏 붉어진 눈, 코에서 나오는 피가 입으로 들어갔는지 머리를 살짝 틀어 핏물을 내뱉던 이츠라였다.


“투입된 인원은?”


“···”


“여기에 온 목적은?”


파르르 입을 떨며 말을 못하자 가차 없이 들려진 무수의 주먹이었다.


왜도를 치켜들고는 이츠라의 얼굴이 돌아가는 장면을 보던 왜놈들이 몸을 움찔할 정도의 큰 한방이었다.


“칼을 내려놓는다.”


무수가 말했고, 목을 추스른 이츠라가 수하들의 눈치를 살피며 명령을 내렸다.


주춤거리던 왜놈들이었다.


고작 스무 명 남짓에 상관이 잡혀 있다고 해도 충분히 힘으로 밀어 붙일 수 있는 병력이었다.


칼을 못 버리고 주춤거리고 있던 상황.


이츠라의 허벅지에 박아놓은 단검을 뽑아 들고는 반대쪽 허벅지에 세워 놓던 무수였다.


몸을 틀었고 시선을 왜놈들에게로 향했다.


서서히 힘을 주자 단검이 조금씩 살을 파고들자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아내던 이츠라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으으으윽.


“빠가야로~!”


왜놈들이 일제히 칼을 바닥에 던졌다.


협박이 통했나 싶어서 단검을 빼내려 몸을 일으키려던 무수.


순간 거친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몸을 던지며 달려오던 놈들이었다.


칼을 버리라고 했지 달려들지 말라고는 안했다.


폭탄에 줄어든 숫자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한꺼번에 달려들면 묵사발은 시간문제다.


상관이 위급했지만 그런 건 저놈들 죽여 놓은 다음이다.


실력하나 만큼은 본국에서 손꼽히는 자들로만 뭉쳐있는데 덩치만 커다란 저런 조선 놈들 따위는 겁날게 없었다.


칼 따위도 필요 없다. 주먹하나면 된다.


와아아악~!


단검을 빼들고 몸을 돌린 무수, 춘호와 궁수들이 벌써부터 활을 내지르고 있었고 담이와 아리 그리고 손세용과 윤업이 튀어나가려 자세를 잡고 있었다.


언제는 쉽게 된 적이 있었나.


적당히 협박하면 투항할 줄 알았는데 역시 나였다.


손님을 맞으러 몸을 던지던 무수, 단검을 거꾸로 잡았다.


확실히 다른 왜놈들하고는 달랐다.


번들거리는 눈빛, 튀어나오는 자세, 일사불란한 행동, 주먹의 위치.


흩날리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며 내리고 있었다.


딱 좋다.


흐르는 땀을 씻어내기에는 말이다.


스걱. 푸욱. 스걱,


두 놈은 목에, 한 놈은 옆구리와 겨드랑이에 한번씩, 그리고 또 한 놈은 심장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순식간에 네 놈이 피를 뿜어내며 꼬꾸라졌다.


튀어오는 핏물에 시야가 흐릿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데 뜨거운 열기에서 나오는 피비린내는 아직까지 적응하기 힘들다.


머리를 흔들었고 눈 끝에 맴도는 핏물을 떨구고는 주먹을 날리던 놈을 살짝 피하다 목덜미에 단검을 박아 넣자 두 놈이 한꺼번에 무수를 덮치고 있었다.


퍼억~! 푸우욱~!


빠르게 단검을 회수하며 앞선 놈의 울대에 팔꿈치를 우겨 넣었고 뒤에서 무수의 목덜미를 잡아채던 놈의 귓구멍에 단검을 박아 놓고 반 바퀴 돌려 후벼 파자 드르륵 뼈가 갈리는 진동이 손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무술을 잘하는 것과 싸움을 잘하는 것이 다르고, 살인을 해본 건 더욱더 다르다.


또한 목을 그어 숨통을 끊는 것과 몸통에 칼을 집어넣는 것도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바로 죽는 것과 고통을 받으며 죽는 그 차인데, 살인은 하는 입장에서는 전자가 맘이 편하다.


극심한 고통에 머리를 움켜잡고 바닥을 뒹굴다 죽어가는 방금 전에 저 모습을 본다면 말이다.


순식간에 활에 죽은 놈과 육박전에 희생된 놈들이 바닥에 산을 이루고 있자 주춤 되며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하나 둘씩 들던 왜놈들이었다.


“그만해라~! 그만 하라고~!”


결박된 상태에 이츠라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방적인 살육의 현장을 고스란히 두 눈으로 보고 있다가 질끈 두 눈을 감아 버렸지만, 시체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내지르는 소리와 비명에 결국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수년간 공들이며 한솥밥을 먹던 수하들, 더는 안 된다. 여기서 막을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이름을 호명하며 일면식이라도 있는 놈들을 하나하나 불러대며 그만 하라고 안간힘을 쓰자 서서히 뒷걸음을 치며 수하들이었다.


움직임이 멎었다.


우기에 접어든 조선이다.


쏟아지는 비는 퍼붓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시체의 온기인지 아니면 바닥과 마찰된 물방울인지는 모르지만 잔잔한 물안개에 시체들의 모습이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차가운 물방울에 반응하는 시체들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며 자꾸 눈길을 주게 만들고 있었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모습.


“협조하겠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표정을 짓던 이츠라가 나지막한게 말했다.


대원들을 살피던 무수가 이츠라의 음성에 잘려진 통나무 앞으로 걸음을 옮겼고 털썩 자리에 앉았다.


꽤나 애를 먹은 모습의 대원들이지만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손세용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깨를 부여잡고 한쪽 무릎이 바닥에 꿇린 상태에 대원하나가 천을 동여매어 주고 있었다.


“이렇게 해야 피가 멎고 상처가 빨리 아뭅니다.”


무수의 팔뚝에 깊게 베인 상처에 천을 질끈 동여매면 섬세한 손놀림을 보이고 있었다.


“어디서 배웠나?”


“노함 어르신이 가리켜 주더군요. 손길이 섬세하니 부상당하는 대원들 있으면 응급치료나 해주라면서.”


새끼.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투박한 손길로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는 대원의 모습에 윤주승이 떠올랐다.


머리를 내저은 무수였다.


자꾸만 과거를 떠올리면 집착이다.


퍼붓는 빗속에 눈 한번 깜빡이지 않던 무수의 시선에 잠시 숙여진 머리가 들려졌고 체념을 한 듯 무수의 시선을 받아내며 피하지 않던 이츠라였다.


“다시 묻겠다. 여기에 투입된 인원, 그리고 목적은?”


무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천이고, 정기룡 너의 발을 묶으란 명령이었다.”


“이유는?”


“진주성 근처에 얼씬 못하게 만들라는 거다.”


상주성을 치고도 남은 병력일 텐데, 고작 그 이유 때문에 이 난리를? 뭔가가 또 있다. 혹시?


“진주성에 하달된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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